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펌

민쨍이 작성일 08.06.23 15:16:07
댓글 5조회 5,535추천 7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

존 말론 워터맨(john mallon waterman). 1952년 워싱턴dc 태생. 10대 때 알래스카로 이주. 프로 등반가.

아버지 가이 워터맨은 꽤 잘나가는 연설문 전문 작가이자 음악가. 대통령의 연설문도 여러번 쓰고 그랬단다. 취미로 등반을 즐겼는데, 자기 혼자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세 아들을 모두 데리고 다녔다.

둘째 아들 존도 아버지 따라 13살의 나이에 처음 암벽을 올랐다. 바로 이때의 등반이 그의 나머지 인생을 결정지었다. 그는 산 타는 것을 좋아했고, 산을 더 잘 타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일단 주변에 보이는 산은 무조건 올랐다. 여행을 가도 산에 올랐고, 산에 오르기 위해 여행을 갔다. 산에 오르지 않는 날에는 산에 오르기 위한 훈련에 매진했다. 매일 팔굽혀 펴기 400회, 4km나 떨어진 학교까지 매일 뛰어 가기, 심지어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집 대문을 찍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매일 4+4+8=16km를 뛴거지.  

그래서 16살인 1969년엔 알래스카의 맥킨리 산을 정복하는 기염을 토한다. 맥킨리 산은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데 (알래스카 인들은 데날리 산이라고 부름) 역사상 3번째로 젊은 나이에 등반에 성공한 케이스였단다. 그가 대학에 들어갈 때쯤 그는 이미 북미 대륙 최고의 프로 등반가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그에겐 문제가 있었다. 가정 문제. 아버지란 양반이 일찌감치 이혼을 한 뒤로 자식들을 아주 내쳐 버린 거다. 이유도 뭐도 없었다. 그냥 자식들을 죽을 때까지 만나주질 않았다. 심지어 존이 형 빌과 함께 이혼한 아버지를 만나러 겁나게 먼 길을 물어물어 집까지 왔는데도 얼굴 한번 비추지 않고 그냥 가라고 했단다. 

존과 그의 형제들은 그래도 아버지가 애타게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등반 하려고 알래스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밤잠 설치며 기다렸는데 이 놈의 아버지란 양반은 그냥 혼자 산 타고 친구 만나고, 아들들에겐 전화 한통 없이, 그냥 집에 가 버렸다.

이는 존에게 정신적 치명상을 입힌다. 애비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그를 평생 고통에 시달리는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정신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사교적이고 기괴한 성격이었다. 160cm도 안되는 키에 동안, 그리고 *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오타쿠스러운 행동들. 대학 동창생들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학교에서 검은 망또에 별이 달린 안경을 쓰고 * 듯이 뛰어다니며, 때때로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의 모험을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고 한다. 뭐 대충 감이 오겠지.

어쨌든 그는 슬픈 사람이었다. 그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형 빌은 10대 때 달리는 기차로 점프하다가 다리를 하나 잃었다. 그리고 1973년엔 여행을 떠난다는 메모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도 빌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와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동료 등반가들이 8명 있었는데 모두 등반 도중 죽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젊은 나이에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어버린 존.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산 뿐이었다.

1978년, 그는 알래스카의 헌터 산에 오르는데 일부러 가장 어려운 등반 코스를 택한다. 이 코스는 그간 최정예 등반가 3팀이 줄줄이 실패한, 단 한번도 인간이 성공한 적이 없는, 극악의 난이도 길이었다.

3-4명이 함께 가도 실패한 이곳을, 존은 혼자서 정복하고야 만다. 대신 지독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헌터 산을 오르내리는데 걸린 시간은 총 145일.

혼자 극도의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 문명의 세계에 도착한 그는, 그러나 돈 한푼 없는 거지였다. 그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자신을 데리러 온 비행기 조종사에게 20달러를 빌렸고, 이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접시를 닦았다.


죽을 고생을 수백번 넘기며 살아 돌아왔지만, 거기에 접시 닦으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지만, 존의 산에 대한 열정은 전보다 더 끓어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는 이번엔 아예 계몽주의 등반을 시도했다. 미국인들의 돼지같은 식생활을 비판하기 위해 그는 최소한의 식량과 최소한의 장비로, 그것도 한겨울에, 맥킨리 산에 오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이 등반을 위해 그는 얼음 담근 물에서 온종일 버티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는 첫번째에는 맥킨리 행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돌아갑시다 아직 죽기 싫어요"라며 돌아왔고, 두번째엔 맥킨리 베이스 캠프에 머물다가 밤 사이에 불이 나서 가지고 왔던 물품이 홀랑 다 타버리는 불운을 겪는다. 이 화재로 그는 그가 평생 써온 일기와 여행일지, 시와 창작품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존에겐 순식간에 자신의 인생이 날라간 듯한 아픔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못다한 계획을 이루고자 병원을 박차고 나온다. 그는 다시 맥킨리 산의 베이스 캠프로 갔다. 그러나 그는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산에 오르고 싶어 했지만 살아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사라졌고, 계속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침낭, 라디오 통신기 같은 필수 장비도 필요 없다며 가져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맥킨리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립공원 공무원들을 존을 찾기 위해 비행기로 일주일 내내 산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그가 대체 어디로 가다가 어디서 발을 헛디뎠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발견된 그가 남긴 마지막 메모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3-13-81. 나의 마지막 키스 1:42pm"



한 마디로, 애비가 이렇게 만든게지. 시체도 못찾았으니 그의 애비에겐 참으로 편한 죽음이 아니었을지.

민쨍이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