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산사람님의 게시글에 기억을 되살려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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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1968-1992.
1992년 당시 abc 뉴스에 보도된 사진이다. 이 당시 맥캔들리스는 알래스카 오지(아닌 오지)에서 참혹하게 굶어 죽은 사체로 발견됐다.
사실 알라스카에서 조난을 당해 사람이 죽는 일은 흔하다. 근데, 이 친구의 사례는 좀 특이... 하다기보다 황당한데가 있어 미국 전역을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크리스토퍼는(이후 크리스로 약칭) 명문대 출신의 전도유망한 문학 소년이었다. 아버지가 나사 연구원 출신의 사업가로 집안의 재력도 상당했고, 가족 관계도 무척 화목한 편이었다고. 겉보기엔 말이지.
크리스는 전형적인 천재였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음악 예술 사회활동 뭐 자기가 하고 싶으면 다 잘하는 애들 있잖수. 게다가 사회성도 좋아서 어디서나 인기 독차지. (한마디로 일진)
공부도 자기가 하고 싶은 과목만 골라 공부하는데도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으며, 틈틈이 과외 활동으로 돈까지 벌었다. 특히 돈 버는데 수완이 좋아서 에모리 대학을 우등상 받으며 졸업할때까지 자기가 번 돈으로 차를 사고 은행에 2천만원 훨씬 넘게 저축까지 했다.
한 마디로 가문의 샛별이라고나 할까. 이 다음에 뭘 해도 대성할 듯 했던 크리스는,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갑자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다니던 중 부모와 대화를 단절하고 학교 친구들과도 교류를 끊은 크리스는, 뭔지 모를 것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는 톨스토이와 헨리 소로우의 책을 탐닉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알래스카에 갈거라고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그는 '행동하는 천재'답게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1990년 대학 졸업식 당일날, 졸업복만 벗은채 차를 몰고, 은행 돈 2천만원을 기부하고, 그냥 홀로, 인사도 없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그냥 마냥 그날 이후 속세로부터 사라져 버렸다.
졸업식에 참석한 가족들은 이놈이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려 당연히 기가 막혔지.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미국이 좀 넓냐. 맘 잡고 '속세를 떠났으니' 경찰도 속수무책. 크리스의 부모는 거액을 들여 전국 최고의 사립 탐정까지 고용해 아들 수소문에 나섰다.
그 와중에 크리스는 알래스카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단 자기의 차를 숲 한 가운데 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그때까지 갖고 있던 재산을 몽땅 불에 태워 버렸다.
그리곤 이름도 바꿨다. 알렉산더 슈퍼트램프. 그는 모든 걸 버리고 새로 태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했다.
알라스카에 가기까지 크리스는 깡촌의 농장에서 남들 죽어도 안하려고 하는 더러운 일도 하고,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도 굽고, 노숙도 하고, 농사도 짓고, 빌어먹고... 그렇게 세상 밑바닥에서 뒹굴며 살다가 결국 알라스카로 향했다.
이 기간 동안 크리스는 어지간히 열심히 살았던 모양. 단 한번이라도 그와 이야기를 하거나 일을 같이 해본 사람들은 모두 크리스를 기억했으며, 그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그중 어떤 노인을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려고도 했다고.
모두 그가 알래스카에 가는 것을 만류했으나, 그가 결국엔 어디에 가더라도 무사히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만큼 똘똘하고 믿음직한 젊은이였으니까.
하지만, 이 젊은이는 그 믿음을 어이없이 저버렸다.
사우스 다코다 주에서 일을 하던 크리스는 1992년 4월 15일 알래스카를 향해 떠났다. 히치하이킹으로 알래스카의 오지로 떠난 크리스의 수중엔 쌀 한 자루, 엽총 한 자루, 톨스토이와 소로우의 책 한 다발, 그리고 간식 몇가지 밖에 없었다.
그는 알래스카의 스탬피드 트레일이라는 길을 따라 걷다가 버려진 버스를 발견한다. 스탬피드 트레일은 분명 문명의 흔적이었다. 1930년대 발견된 광산으로 왕래하기 위해 '닦여진' 길이었으나, 60년대 광산은 폐쇄되고 그 뒤로 거의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이 돼 버렸다. 버스는 70년대까지 근처 페어뱅크 시티에서 운행하던 공공 교통수단으로,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시 당국이 버스를 이 버려진 길 한가운데 유기해 버렸다.
크리스는 이 버스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까지, 죽음의 야생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때는 4월 말이었으니 추위는 큰 문제가 되질 않았고, 생존의 가장 큰 관건은 먹을 것을 제때 구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는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조달했다. 오리, 개구리, 생선, 토끼, 다람쥐 등등, 먹을 건 많았으나 그걸 잡아 먹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렵에 대해선 책으로도 배운적이 없는 이제 대학 갓 졸업한 아이로*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고, 체력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냥에 지친 크리스는 한번은 훨씬 잡기 쉬운 '먹이'인 순록을 쏘았다가 고기를 발라내는데 지옥 같은 경험만 겪었다고 했다.
거주하던 버스를 배경으로 크리스의 셀프 샷. 그가 살아있는 동안 찍은 마지막 사진.
정착한지 2개월 반쯤 지나 크리스는 한계에 봉착했다. 야생에서의 생활은 이쯤하고 gg치려 했는데, 불행히도 이 게임은 그렇게 끝낼 수 없었다.
야생 생활을 '청산'하려고 자신이 왔던 길로 되돌아 간 크리스는 자신이 이곳에 완전히 고립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름이 되자 산 위에 얼었던 눈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2달 전 건너왔던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 버렸던 것. 강을 건너는 것 외에는 그 지역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강물과 산으로 둘러쌓인 지형에 갇힌 크리스. 이제 누군가 우연히 지나가다 구조해주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필사적이었다. 때는 7월말이었으나 다가올 겨울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 알래스카의 8월이면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 얼어죽을 판이었다. 게다가 한여름이 되자 얼었던 동토가 녹아버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밭에서 사냥을 하자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때쯤 크리스는 일기를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의 일기 막바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극도로 약해짐... 씨앗. 서 있기조차 어려움... 위기 상황."
전문가들은 크리스가 독이 든 씨앗을 먹은 것으로 추론했다. 배고픔에 야생에 열린 아무 씨를 마구 따 먹다가 독에 걸렸다는 것.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이는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버스 안에서 배고픔과 고통, 눈에 아른 거리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크리스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 그 사이 버스에 누가 찾아올까봐 이런 메모를 남겼다.
"sos.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상을 입었고 거의 죽을 지경입니다. 몸이 약해져 멀리 걸어 나갈 수도 없습니다. 이건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하느님 제발, 가지 마시고 여기 제가 돌아올 때까지 있어 주세요. 전 지금 먹을 딸기를 구하러 나가 있습니다 저녁쯤 돌아올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크리스 맥캔들리스."
그러나 이런 희망도 8월이 되자 사라졌다. 그는 일기에 자신이 야생에 온지 100일이 됐다는 사실을 자축하면서, 이제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세상을 향해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난 그동안 행복하게 살았고, 신께 감사드린다. 모두들 안녕, 모두에게 신의 가호를!"
그는 8월 19일 사망했다. 사인은 굶주림.
그 뒤로 불과 19일 뒤, 침낭에 쌓인 채 처참하게 말라죽은 크리스의 시신이 근처를 지나던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그 뒤로 4년 후 1996년 작가 존 크라카우어가 크리스의 행적을 추적한 책 "into the wild"를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15년 뒤 2007년 존 크라카우어의 책을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 진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알고 난 알래스카 주민들은 격분했다. 크리스가 지도를 들고 가지 않았다는 것. 이 지역의 지도를 보면, 그가 굶어 죽은 버스로부터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강을 건너는 도르레가 있었고, 다른 방향으로 가까운 곳에 여행자들을 위한 산장도 있었다. 그가, 자신의 얼토당토 않은 자만심 버리고, 지도만 갖고 갔어도 이런 처참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알래스카 주민들은 이것 말고도 크리스가 살아돌아올 수 있었던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다고 말한다. 이 젊은이가 자연을 우습게 여긴 오만함을 버렸더라면, 이처럼 자신과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진 않았을 것이란 거다.)
근데, 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이보다 더 황당한 사례가 두개 더 있다.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