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5편

민쨍이 작성일 08.07.17 17:14:16
댓글 2조회 2,364추천 3
img_6905_1248441_0?1214143716.jpg
에버렛 루스(Everett Ruess, 1914-1934).

아마도 "Into the Wild" 책이 발간되지 않았더라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생에서 죽은 젊은이'로 기록될 청년이었다.

실제로 "Into the Wild"에도 에버렛 루스의 일대기가 소개돼 있는데, 소개를 안하고 넘어기가 힘들만큼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성향과 닮아 있다.

에버렛 역시 지적인 가정에서 자라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그의 부모는 철학자, 작가 등으로 활동하는 자유인이었으며, 미국 전역을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다.

부모의 방랑벽 덕인지 에버렛은 16살 때부터 야생에 심취해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다. 풍찬노숙은 예사. 그는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먹을 것이 생기면 먹고, 먹을 것이 없으면 굶고, 해가 떨어지면 땅위에 그대로 누워 잠을 잤다. 그는 홀로 요세미티 등지를 히치하이킹도 하고 무작정 걷기도 하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 몇 달을 같이 살기도 했다. 

천성이 낙천적이고 순박했던 그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그를 맞아준 어떤 이는 자신의 2명의 아들들과 함께 에버렛을 양육할 생각도 했다고.

1931년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다시 홀로 여행을 떠나 유타, 아리조나, 뉴 멕시코 주를 맨몸으로 떠돌아 다녔다. 당시 이 지역은 현재의 알라스카보다도 더 황량하고 인적이 드문 야생이었다.

그는 서부 지역의 명문인  UCLA에 입학했으나 한 학기만을 다니고 중퇴하고 말았다. 그는 이때 이미 자연 속에서 살다 죽으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독한 야생의 방랑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자연 속의 길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마 이런 자연의 매력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도 방랑은 계속될 겁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가 된다면, 자연의 가장 동떨어진, 가장 외롭고, 가장 황량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이 나라의 아름다움은 이제 저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관조자가 된 기분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온화해진 것 같습니다. 이곳에도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이들은 내 기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가 왜 여행을 떠나왔는지, 왜 혼자 다니고 있는지... 지금까지 너무 혼자 멀리 온 탓일까요.

"전 항상 남들 사는 인생에 불만이었어요. 전 항상 다른 이들보다 치열하고 풍성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에버렛은 한마디로 낭만주의자였다.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된. 여느 낭만주의자들처럼,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자기 자신의 안전에 대해선 완전히 무관심이었다.

그가 잠시 알바를 했던 식당의 주인은 에버렛이 절벽을 타는 모험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내 생전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라고 말하기도.

에버렛은 신체적인 위험과 고통을 즐기는 편이었다.

한번은 야생에서 덩굴 독에 감염이 되서 일주일을 앓아 누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는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열에 시달렸다. 독으로 인해 몸에서 분비물이 쏟아져 나오자 개미떼와 파리떼가 잔뜩 모여 들어 고통을 배가시켰다. 일주일 동안 그는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맸는데도 그는 오히려 이를 '철학적인 순간'으로 묘사했다. 그는 매번 덩굴 독에 감염되면서도 그 지역을 떠나지도 않았다. 

크리스 맥캔들리스와 마찬가지로 에버렛은 야생의 가명을 썼다. 니모(Nemo). 해저 2만리의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 가명이 1934년 11월 Davis Gulch의 나바호 모래바위에 새겨진 것이 발견됐는데, 그 뒤로 에버렛은 영영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는 1934년 아무 이유없이 Davis Gulch로 모험을 떠났다. 부모에게 "한두달 연락이 안될 것이다"라는 편지와, 그리고 모래바위에 새겨진 "Nemo"라는 닉네임만 남긴채 그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Gulch 지역의 목동 캠프. 이곳에서 그는 이틀밤을 자고 야생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가족과 경찰이 이곳을 시작으로 주변 수십KM를 오랜 세월 샅샅이 수색했으나, 에버렛의 시체는커녕 그의 옷가지 물품 어느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끌고 갔던 당나귀 두마리가 초원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발견됐을 뿐이었다.

오늘날까지 에버렛의 최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왜 당나귀를 두고 떠났는지, 어째서 그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럴 듯한 추론은 정리해 보자면...

1. 절벽을 타다가 떨어져 죽었다: 에버렛는 절벽을 타는 것을 좋아했고 이 지역엔 모래바위가 많아 바위가 부서지면서 떨어져 죽었을 가능성. 그러나 이 경우 시체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2. 살해 당했다: 감정 싸움, 혹은 절도 때문에 주변의 목동, 혹은 부랑자들에게 살해돼 물품을 묻히고 사체는 강에 버려졌을 가능성. 상당히 가능성은 높으나 당나귀는 왜 그대로 두었는지 이해 불능.

3. 강을 건너다 빠져 죽었다: 당나귀를 두고 강을 건너려다 그대로 익사. 자신의 수영 실력을 과신한 덕. 이 역시 매우 가능성이 높으나 과연 그많은 장비와 함께 익사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

에버렛은 60년대까지 미국인들에게 화제거리였다. 60년대 에버렛이 살아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괴담이 떠돌 정도 였다. 당시 괴담에 따르면 에버렛은, 마치 해저2만리의 니모 선장처럼,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나바호 원주민 여성과 결혼해 최소 한명을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고.

img_6905_1248441_1?1214143716.jpg
에버렛과 그의 교통수단. 그는 야생을 탐험할 때 나귀를 즐겨 이용했다. 그의 최후를 목격한 것도 결국 그의 나귀였을듯.
민쨍이의 최근 게시물

무서운글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