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악마로 불리는 여인..

비애리 작성일 08.07.22 12: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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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미혼인 채 아이를 낳는 것을 별다르게 여기고 있지 않지만,
근대 이전엔 남에겐 부끄러운 일로 여겨 졌습니다..

 

 
특히 종교적 인식이 강했던 영국등지 에서는
미혼모는 손가락질을 당하며 직업을 잃고,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흔했습니다.

 

궁핍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는 생존의 문제였고
결국 사생아를
죽이는 비극적인 일도 일어 났습니다..


게중에 유복한 사람은 사생아를 남 몰래 다른 사람에게 수양자식으로 보냈습니다..
아이의 수양부모에게 돈을 쥐어주고 아이를 대려 가게 한거죠..
이러다 보니 이런 아이를 입양하고 돈을 받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대리모 중에는 그야말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아이들의 악마라고 불리는 아멜리아 다이어(Amelia Elizabeth Dyer)
란 여인이 이었습니다..
돈을 받고 아이을 입양한 그녀는 아이를 기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인수해서는 모두 죽여 버렸던 것이죠.

 


사건 발각의 발단은, 1896년 3월 30일, 영국 테임즈강에서 나룻배의 사공이
다갈색 포장지로 싸여진 것을 줏어 올림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사공은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 궁금해서 포장지를 살펴 봤는데, 자세히 보니
포장지의 갈라진 곳으로부터 자그만한 아기의 발이 쑥 나와있는 것이었죠

사공은 놀라서 혼절했고 이 일을 경찰에게 알렸습니다..

경찰은 아기의 시신을 조사했고
조사 결과 갓난아기를 싼 종이에는「케이바셤 피거트 가 20번지 하딩 부인」
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하딩 부인」이라는 인물이,
지금은 켄징튼 가 45번지에 사는 아멜리아 다이어 인 것을
알아낸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아 아멜리아를 체포 해서 심문을 한 결과
끔찍한 사실을 알아 낼수 이었습니다..


아멜리아는「하딩 부인」의 명의로 신문에 광고를 내어,
수양 자식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딸인 폴리와 사위 어네스트 파머의 도움으로.
갓난아기를 입양 하고는
아멜리아가 아이를 죽였고사위는 시신을 버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멜리아의 진술을 토대로
테임즈강을 뒤진 경찰은, 또 다시 6구의 아기 사체를 발견해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체들이 아멜리아가 유기한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당시는 유아 살해가 많았다고 함)

 

이 시신에 대해 심문을 하자 아멜리아는 무표정 하게 말했습니다..
「 몇구인지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버린 것은,
목에 테이프가 감아 있을겁니다..]
아기들의 사체에는, 그 말대로 목에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습니다.


 


아멜리아는 이후 옥중에서 자살을 꾀하거나 자신이 정신 이상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형벌을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사형이 선고되어 1896년 6월 10일에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녀의 입양일은 무려 8년간에 달했고,
그 사이에 몇십명의 갓난아이가 그녀의 손에 죽었는지
정확한 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멜리아는 계속 집을 옮겨 다니며 아이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먹을게 떨어지면
아이들을 잡아 먹기도 했기 때문 입니다..


아멜리아가 죽은후인 1900년에도 그녀가 이전에 살고 있던 집 지하에서
4구의 아기들 뼈가 발굴되었는데,
전부 목부분에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 유골도 그녀의 희생자로서 조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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