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막 성인이 되어 격었던 옛 이야기입니다.
평소 친구들과 지인들이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가위가 뭔지 궁금하기도 한 찰나였으나, 단 한번도 가위 따위를
눌려본 적이 없었던 저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방송일을 동경하고 있었기에
외주 카메라 감독의 서브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일 밤을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하는 건 기본이었고, 팔도강산
유람하는 약장수 마냥 이곳저곳을 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집에 잘 못가고, 마포, 강남터미널 근처, 감독님의 '숙소'에서 생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는데 어느날, 일산에서 밤을 새운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온 시간이 am 08:00 -09:00 사이였습니다.
집의 형태는 현관을 들어오면 바로 좌측으로 복도로 창이 뚫린 방이 하나 있고
현관으로 거실까지는 8-9 걸음되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거실과 방하나는 분리 되는
형식인 듯 중간에 천장과 바닥에 턱이 있었지요.
언제나 그렇듯이 현관을 들어오자마자 좌측 방으로 들어가 가방
(오랫동안 집을 나오기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득 넣고 다닙니다.)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창가 근처에 있는 2층 침대, 밑 침대에 몸을 누이고 밖을 바라보니,
날이 밝아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침대가 조금 높았기에 아파트 옥상들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다가 어느 순간 눈이 스르르 떠지며 가슴깨로 양손을 모으고
창문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제가 저를 보고 있는 기분..)
양손은 작은 공을 쥔 듯 벌어져있었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에 깼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문으로 보이는 푸르른 하늘, 아니 하늘색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잠들기 전과
잠든 후의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밖이 너무 달랐습니다.
옥상들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고, 구름도 없는, 그냥 페인트나, 물감으로 칠한
도화지 같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등뒤로 오싹함이 느껴지며 방문이 마찰음을 내며 열리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아주, 아주 조금 문을 열고 안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 그리고는 그 틈으로 시커먼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문이 반쯤 저절로 열리더니 시커먼 무언가가 천천히 들어오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온통 흑색이라 사람의 형태인지도 의심스러웠습니다.
팔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무척이나 길게 바닥으로 늘어져있었고, 긴 생머리같은 머리를 마치
정면에서 바람을 맞은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날리고 있었습니다.
오싹함이 공포로 변하여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정말로 소리가 안나더군요.) 제 등뒤로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며 바로 등 뒤로 그것이 다가왔습니다.
(정말 이상한건데 분명 저는 제 감각을 다 느끼는데 방안 자체의 상황이 다 보이더군요.)
그리고는 바닥에 늘어뜨리고 있던, 팔로 짐작되는 것이 제 등뒤를 훑더니 이내 목을 향해
움직이더군요. 손가락인지, 기이하게 꺽여있는 것들이 제 목을 움켜지기 위해 '으드득'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는데 공포에 사로잡혀 '미치겠네'만 연신 중얼거리던 저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가위 눌리면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풀면 돼.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풀려"
이미 손가락 같은 것들이 제 목을 움켜 쥐려는 찰나에 두 손에 온 힘을 줘서 주먹을 움켜지자
좀 전의 상황이 마치 거짓말처럼 제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라구요.
이마에 식은 땀과 꽉 쥔 두 주먹, 숨을 거칠게 내쉬며 '가위였나 ?' 라고 생각하며
안정을 되찾아 갈 때 쯤..
방안 가득 느껴지는 이질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그 작은 방안을 누비는 기운에
다시금 머리가 곤두섬을 느끼고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뛰쳐나오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지며, 현관과 거실의 통로를 지나갈 즈음 현관 쪽에서 누군가가 저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 등뒤로 느껴졌지만 돌아볼 엄두가 나지않아 무작정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떨리는 손으로 tv를 켜서 음악 채널로 돌리고 소리를 100까지 올렸습니다.(주변의 소리가 하나도 안들려
정신 나간듯이 소리를 키웠지요..)
그러나 그 기척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제가 나와있는 거실까지 광범위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 넓은 공간을 미/친듯이 움직이며 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실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중앙의 턱을 넘어오지 못하고 그 외에 방안은 온통 그 기운으로만 가득한 것을 느끼고, 안심하고 있는
가운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신줄 놓은 듯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잠시후, 누군가가 저를 흔드는 느낌에 눈을 뜨자
다행히도 같이 일하는 감독과 같이 일하는 형이 와서 "이제 가야지" 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공포스런 경험을 감독에게 말하자, 감독은 '여기 숙소에 지내는 애들 한번쯤은 가위 눌리더라'
라고 태연하게 말씀하셨고, 천장에 있는 턱을 가르키며 그곳에 붙여있는 부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너무 자주 눌려서 아는 무속인 집에 가서 붙여놨어, 괜찮지 ?'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pm 05:00 - 06:00 즈음 일어난 저는 '아.. 자주 눌리는건가.. 별거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며
짐을 챙겨 감독, 형과 함께 다음 촬영을 위하여 sbs에서 방영된 '연개소문' 촬영을 위해 문산으로
함께 내려갔습니다. 촬영일은 이틀 후이기 때문에 여주(지명이 잘 생각 안나지면 맞을 것입니다..)
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감독이 지인을 만난다고 같이 따라갔죠.)
이때 그 찜찜한 느낌도 어느정도 수그러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