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의 가위, 마주친 그녀[경험담] (3)

작성일 13.06.23 14: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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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를 쓴 후 4년이 지난 후에 3번째 이야기를 적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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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지에 도착하고 난 후 바쁜 일정으로 인해 몇일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찝찝했던 마음도, 마치 오래전 있었던 일인냥 잊어버렸죠.

 

그 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촬영지가 강가였습니다.

 

탁트인 지형 때문에 매섭게 바람이 불어오고 말이 얼어죽을 뻔 하기도 했죠.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어 늦은 밤이 되도록 촬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때마침 B팀이 교대를 위해 내려왔고 저와 형은 몸을 녹이기 위해 차량으로 향했습니다.

 

탁 트인 촬영지와는 달리 갈대숲이 무성하게 우거져있었고 불빛 하나 없다보니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차안으로 들어온 저는 운전석에, 형은 뒷자리에 누워 감독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뒷자리에 누워있던 형은 휴대용 게임을 하는지 게임소리가 들려왔지만

 

추운 곳에 있다가 들어온 탓인지 노곤한 상태가 되어버린 저는 쪽잠이라도 청해야겠다며

 

의자를 살짝 젖힌 상태로 팔짱을 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뜨였죠.

 

불빛 하나 없던 곳이 여기저기 환해졌고 희미하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려왔죠.

 

'촬영이 끝났나 ?' 주변을 보려 상체를 들려고 하는데 그때 차량이 주차되있던 앞의 갈대숲이 이상하리만치 흔들렸습니다. 

 

바람 때문이라고 보기엔 다른 갈대들은 흔들리지 않았기에 의아함은 커졌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흔들리던 갈대 사이로 웬 꼬마아이(5-6살 정도)가 온몸이 푹 젖은 채, 아직도 물기가 떨어지는

 

긴 머리칼을 축 늘어뜨린 채로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나왔습니다.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촬영장에 분장을 맡고 있던 팀장님이어서 얼굴을 알았지만

 

아이의 얼굴은 늘어진 머리칼 때문에 잘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낯이 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팀장님의 손을 잡은 아이는 저희 차량 왼편으로 터벅터벅 걸어갔고 저는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확인했습니다.

 

아역배우가 있을리 만무했고, 이 주변 아이라고 보기엔 주변엔 민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지 ?'

 

궁금하긴 했지만 팀장님이 데려가니 누군가의 아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리곤 머리를 돌려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려했죠.

 

'끼익 -'

 

정말 끔찍한 광경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마치 심장을 죄여오는 듯한 갑갑함에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질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제가 잠에서 깨어 상체를 드는 순간부터 가위에 눌린 듯 싶었습니다.

 

차량이 스타렉스였고 제가 의자를 젖혔기 때문에 작은 꼬마아이가 보일 리 없었죠. 하지만 저는 땅에 떨어지는 물까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더구나 옆으로 지나가는데 아이의 전신 모습마저 생생히 봤으니까요.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그 꼬마 아이였습니다. 그 작은 몸으로 본네트 위에 올라서서

 

앞 유리에 두 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늘어뜨린 채 시커먼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굴은 마치 어두운 허공을 바라보는 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전에 보았던 형태들보다

 

더욱 또렷하게 사람의 형을 하고 있었죠.

 

귓가를 울리는 유리를 긁는 소리, 무언가가 뚝뚝 끊어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맴돌았습니다.

 

가슴은 점점 갑갑해져만 갔지만 애석하게 몸은 움직여주질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가슴에서 메아리 치지만 입밖으로

 

세어나오질 못했고, 따뜻해진 몸이 마치 얼음물에라도 들어갔다 나온듯 딱딱히 굳어 피부엔 한기가 흘렀습니다.

 

발끝에서부터 평생 느껴보지못한 공포가 머리까지 솓구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꼬마 아이의 손이 마치 유리를 후벼파듯 긁어댔고 운전대 위로 유리 조각들이 부서져 제 무릎으로 떨어지며

 

말로 할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직까지 그 기분이 무어라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그건 확실하게 공포감이었습니다.

 

조금씩 앞 유리에 균열이 생기고 조각들이 떨어지며 작은 아이의 손이 차안으로 들어왔지만 머리속이 새하얗게 되어

 

몸을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입밖으로 세어나오지 못할 외침을 속으로 계속 질러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얼굴, 보이지도 않는 두 눈이 절 응시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감각은 뚜렷해졌죠.

 

이윽고 아이의 팔이 유리를 뚫고 제 목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짧은 팔이 점점 늘어나며 손 끝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이상한 형태로 늘어나 목을 움켜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 끝이 저의 목에 닿는 순간, 그때 둔기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과 함께 눈이 뜨였습니다.

 

"야 !!!!"

 

오른쪽 어깨에 충격과 함께 누군가가 힘껏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뒷자리에 누워있던 형은 식은 땀을 흘리며 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저 또한 멍한 표정으로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너... 괜찮아 ?"

 

뒷자리에 있던 형의 첫 물음이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형은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형 역시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고, 저와 똑같이 그 꼬마아이를 보았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제가 고개를 돌려 그 꼬마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잠을 청하려했답니다.

 

그런데 앞 유리에 꾸물거리는 검은 형태를 보았고 그때 형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죠.

 

형태를 본 후 갑자기 웬 여성이 본네트 위로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여기까진 제가 본것과 비슷했지만 그 다음,

 

형이 본 것은 그 여성이 앞 유리를 손으로 뚫고 늘어난 두 손으로 제 목을 쥔 채 절 유리 밖으로 꺼내려했다는 겁니다.

 

놀란 형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절 잡기 위해 팔을 뻗었고 제 어깨를 움켜쥔 것이고, 저는 그 덕분에 깼던 거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려는데 여운이 남은 것인지 추위나 한기가 아닌 '싸한' 무언가가 감돌았습니다.

 

형은 놀라 일어섰지만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으로 보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거라 생각됩니다.

 

차안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는 이 찝찝한 기분을 떨치려 노력했습니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거라고, 그냥 우연찮은 일이라고."

 

 

 

 

 시간은 자정을 넘어섰고 저와 형은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감독님이 빨리 오시길 기도하다시피 빌었습니다.

 

주변엔 기사님들이 차안에서 잠을 청하고 계셨고, 몇몇 스탭들이 내려와 담배를 피거나 잡담하는 것이 우리가 겪은 일이

 

정말 꿈이나 별거 아닌 해프닝 정도로 여겨질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감독님이 돌아오셨을 때, 저와 형은 어느정도 안정을 취하고 그냥 악몽을 꾼거라 쳤습니다.

 

새벽 2시정도에 촬영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다 생각하니 편안해졌고

 

저와 형은 뭔가 들뜬 마음을 유지하려 잡담을 하며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감독님은 피곤하셨는지 뒷자리에 누워있다 금세 잠이 드셨지만 아랑곳 없이 노래를 틀어놓고 잡담을 했죠.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언덕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안개가 끼었기 때문에 저는 마음과는 달리 속도를 늦춰 달리며 언덕을 올랐죠. 아무 문제도 그런 증후도 없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며 시시껄렁한 얘기나 읊고 있었습니다.

 

언덕을 오르자 터널이 나왔고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자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운전을 하는 편이라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80-90km를 넘기지 않았지만 그날은 안개 때문에 늦은 감도 있고 해서 조금 밟았죠.

 

안개때문에 갑갑했고 시야가 트인 터널에 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밟은 것 같습니다.

 

진입하는 순간에도 형은 자신의 여자친구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도가 올랐다 싶었을 때였습니다.

 

터널을 보면 중앙에 일정 간격으로 기둥이 서있는 형태의 터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대차선이 잘보이는 그런..

 

한창 여자 얘기를 하고 있던 형이 갑자기 반대 차선을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우오, 저 여자 미쳤나봐."

 

이 늦은 시간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형이 가르키는 곳을 보자

 

정말로 어떤 여자가 터널 가를 따라 저희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습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어깨가 드러나는 원피스(오프..숄더?)를 걸친 여성이 하이힐을 신은 채 걷고 있었습니다.

 

옅은 꽃무늬가 보이고 흰색과 분홍이 섞인 옷을 입은 여자가 보였는데 뒷모습만 보아도 상당한 호감이 들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 진짜네. "

 

그때 저와 형은 아무것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몇초간 여성이 저희가 처음 본 각도에서 걸어가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아무것도요.

 

더구나 제가 그 여자의 옷이며 구두며 걷는 모습을 보는 순간에도 말이죠.

 

놀란 나머지 비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숨을 집어삼키는 형의 단말마같은 비명만이 전부였습니다.

 

서로가 놀라 잠시 눈을 마주치고 다시 보았을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서로가 놀랐을 뿐이지 마치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냥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몸을 돌려 뒤를 살펴도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터널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빠르게 달리는데도 마치 계속 늘어나는 터널이라도 들어온 듯이, 느리게만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본 것이 아까의 나쁜 여운이 남은 거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 멀리 터널 끝이 보였습니다.

 

" 잘못.. 본걸꺼야..? "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멀리 터널의 출구가 보이는데 출구 오른편으로 표지판이 서있었습니다. 너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운전하고 있던 제 몸이 그대로 굳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있는데 전 표지판인 줄 알았던 것이...

 

절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이, 저와 두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확신이 차가 달리면 달릴 수록,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몇초가 정말 몇십초, 몇분이라도 된 듯 길게 늘어져 흘렀습니다.

 

라이트 불빛이 아까보았던 구두를 비추었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까 느꼈던 발 끝에서 머리를 순간 관통하는 그런 공포가 아닌 천천히, 발 끝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이 천천히 머리를

 

향해 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이 흥건해질 정도로 땀이 흘렀고 악셀을 밟고 있는 발은 움직일 줄 몰랐습니다.

 

구두를 비춘 라이트가 여자의 새하얀 다리를 비췄고 연분홍의 옅은 꽃무늬가 보이며 길게 늘어뜨린 가느다란 팔이

 

보였지만 눈은 여전히 날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전과 같이 안보고 싶었지만 뭔가 달랐습니다.

 

이윽고 훤히 드러난 어깨를 비춘 라이트, 저는 불빛 반사하며 반짝이는 누동자, 평온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여자의 두눈과 마주했고 그대로 핸들을 크게 틀어버렸습니다.

 

급제동으로 인해 차량이 길게 미끄러졌고, 다행으로 차가 뒤집어지진 않았지만 차선을 크게 벗어나 정지했습니다.

 

좌측으로 휘어지는..

 

큰 커브는 아니었지만 조금만이라도 늦었다면 아마 가드레일을 뚫고 내리막으로 곤두박질 쳤을지 몰랐습니다.

 

저와 형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문을 열고 튕겨져 나오듯 내려 길게 늘어진 타이어 자국을 따라 터널 진입구를 찾았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엔 표지판도, 불빛을 반사할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놀란 감독님은 갑자기 튀어나간 저희를 보고 뭐라 묻고 싶으셨지만 묻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저와 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습에 그냥 조용히 계셨답니다.

 

 

 

 

그 날 이후로 몇달은 고생한거 같습니다. 그날 그 일이 일어난 후 제가 어떻게 운전해서 서울로 올라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두달 넘게 멍하니 생활한거 같습니다.(정확히는 몇달간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수년이 흘렀지만 뇌리에 박힌 냥 생생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때 느꼈던 공포감은 거짓말처럼

 

기억으로는 남아있는데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습니다. 이후로 느낀 적도 없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지막 터널의 끝에서 본 여자는 잊혀지질 않네요. 몇달은 그 공포감에 떨었는데

 

지금은 생생히 기억나지만 공포감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상하네요.. 떠올리기도 싫었는데...

 

긴 생머리, 선명하지만 깊은 두 검은 눈동자. 오똑한 콧날 얼굴 어디 하나 찡그리지 않은 듯 평온한 표정.

 

아마 일반 여성이라면 그 어떤 남자가 보아도 반할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뭐, 입이 있어야 할 곳에 입이 있었다면 말이죠.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새하얀 여자의 피부가 입이 있어야할 곳을 뒤덮고 있더군요.

 

그... 사일런트 힐(?) 영화 포스터 처럼 말이죠.(개인적으로 정말 끔찍한 포스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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