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첫번째에 대한 해석

쿠라라네 작성일 09.10.15 19: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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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제가 퍼온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는 대부분 츠바키탐정님께서 댓글주신 내용이 맞습니다.

다만 첫번째 이야기에 대한 해석 글이 올라와서 이것도 올려봅니다.

첫번째 이야기를 제외한 이야기들은 모두 간단한거라서 따로 더 말할 필요는 없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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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
작은 새가 지저귀는 숲 속을, 한 명의 소녀가 달리고 있었다.
「엄마!어디에 있는 거야?」
외치는 소녀.하지만 대답은 없다.
그러던 중 소녀는, 어떤 집 앞에 겨우 도착했다.
「여기군요! 여기에 있군요!」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거기에 있던 것은, 중간이 끊어져 있는 일기장 하나 뿐.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 불쑥 놓여져 있다.
소녀는 살그머니 손에 들어, 읽기 시작했다.

5월16일
내일은 즐거운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 가득. 매우 즐거워.
5월17일
산타씨가 오지 않는다.
산타씨가 오지 않는다.
산타씨가 오지 않는다.
5월18일
어제는 매우 즐거웠다.
산타씨에게 가득 선물 받아 버렸다.
그렇지만 이상한데. 그 선물 어디에 둔 거지?
9월33일
시계의 바늘이, 천천히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12월65일
오늘이군요, 밖에 나와 보았어.
그랬더니 사람이 많이 있었어.
가득 많이 있었어.
그리고 전나무는 이상한 색이었다.
어째서일까?

소녀는 돌연, 일기장을 덮었다. 소녀는 깨달아 버렸던 것이다.
그래.소녀는, 깨달아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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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아 숲속을 달리고 있는 소녀'란 설정은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집에 도착합니다. 일기장 하나만 있는 집.
분위기는 급작하게 냉랭해집니다. 그리고 소녀의 심정이 되어 독자는 일기장을 읽습니다.
궁금증이 가득한채로. 여기까지가 도입부.
동화적 배경에서 빠르게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5월 16일이든 17일이든 이즈음은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크리스마스'로 일기장 주인공은 인식을 했을까요.
그건 누군가가 이미 주인공에게 '내일이 크리스마스'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산타와 동일인물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타가 올리 만무하니까요.
주인공이 크리스마스를 즐겁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 여러분은 '산타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라 생각하실텐데, 그건 아닙니다.
뒤에 설명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일이 크리스마스라며 산타를 기다린다는 행위는, 이미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걸 전제해야 합니다. 아니고서야 '기다린다'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산타로 가장한 누군가는 이미 횟수는 모르지만 5월 17일마다 주인공에게
뭔지 모를 선물을 주었습니다.

주인공이 소녀인지 소년인지 모르지만, 소녀라고 봅니다.(뒤에 설명)
소녀는 혼자 있습니다. 아니라면 5월 17일을 크리스마스라 알고 있을리 없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낙은 오직 산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일기장의 첫 날짜, 5월 16일 이전에 이미 꽤 많은 날이 지났고,
처음 선물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소녀는 산타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는 주위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도입부에도 일기장은 '아무것도 없는 집에 불쑥'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다른 존재나 사물이 있다면, 혼자 있더라도 그걸 대상화하여 지낼 수 있습니다.
에서 톰 행크스는 배구공과도 말을 합니다. 사람은 그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소녀는 산타만 기다립니다. 이해하시겠죠? 사실은 이해가 안 가실 겁니다.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의 '선물'도 일반적인 선물과 같지 않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소녀는 혼자이고, 산타에 의해 사육된 것과 같은 상태니까요.
뭘 갖다 줘도 소녀는 산타의 말만 듣는 상태입니다.

일기장을 쓰기 시작한 이 시점에 이미 소녀는 제정신인 상태가 아닙니다.

5월 17일로 넘어갑니다. 소녀가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세요.
여기서의 5월 17일은, 조금전 5월 16일의 다음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요.
그 사이 1년이 지났을지 5년이 지났을지 모릅니다.
소녀에겐 시간 관념이 사라져 있습니다. (뒤에 더 설명하죠)
어쨌든 5월 17일인데, 산타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소녀는 너무 불안합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같은 문장을 썼습니다.

5월 18일에 소녀는 '어제 즐거웠다'고 합니다.
일기장을 쓴 시점을 생각해보죠. 일기를 여러분은 언제 쓰십니까?
그 날이 다 갔다고 여기는 시점, 그 일이 다 끝났다고 여기는 시점이죠.
빨라봤자 그날 밤일 겁니다.
하지만 소녀에겐 '선물'말고 주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생각엔 등불조차 없을 겁니다.
5월 17일의 일기는 5월 18일에 써야 맞습니다.
어쨌든 '5월 17일'에 산타는 오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5월 18일 일기에서 말하는 '어제'는, 일기장에 쓰인 '5월 17일'과 같은 날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 사이에는 꽤 시간의 간격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녀는 아직 5월 17일에 산타가 와서 선물을 준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해엔가 5월 17일에 산타는 안 왔고, 그 다음해인지는 모르지만 몇년 후에 산타가 왔고,
소녀는 '어제 매우 즐거웠다'고 쓴 것입니다.
저는 다음 해라고 봅니다. 아니라면 그 사이에 한번쯤은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고 쓰지 않았을까요.

5월 18일로 돌아오죠. 소녀는 어제 산타에게서 선물을 가득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물은 어디로 간 걸까요?
앞서서도 소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선물을 받았었잖아요.
이제서야 소녀는 인지를 했습니다.
산타는 무언가를 소녀에게 주는데, 그건 계속 남아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마는, 그런 성질의 물건입니다.
이를테면 물 같은 것 말입니다.

대체 산타는 소녀에게 뭘 준걸가요?
5월 18일 일기를 보면, 소녀는 어제 선물을 받았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둔 거지?'라고 한걸 봐서, 그 선물은 소녀 몸으로도 다룰만한 부피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가득'이라 합니다.

하루만에 사라지고 마는, 소녀 입장에선 '가득'이겠으나
객관적으로는 큰 부피가 아닌 물건은 뭐가 있을까요?

전 어떤 액체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갑자기 로리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가득'이란 표현이 가능하죠.
손에 가득? 아니면 어딘가에 가득 받은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받았다고 인지를 했는데, 오늘은 눈에 보이지 않죠.

여기까지 알고 5월 16일의 일기를 보세요.
'즐거워'라는 표현은, '선물이 가득'과 이어진 게 사실 아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즐겁습니다.
하지만 '선물이 가득'해서 즐거운 게 아닙니다. 다시 한번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소녀가 왜 즐거웠는지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9월 33일, 이상한 날짜가 나옵니다.
앞서 소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죠. 다시 생각해봅니다.
소녀는 어떻게 5월 17일을 알고 기다렸을까? 달력을 보고? 아니겠죠.
물리적으로 가능한 추측은, 소녀는 날을 셌습니다.
직접 날을 세는 건 상당히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소녀는 그 끈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더욱 혼란스러워져서 날짜를 잘못 세었습니다.
아니, 잘못 센 거 아닌가 알 수 있더라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겁니다.
지금 뭔가 소녀를 무섭게 하고 있거든요.
9월 33일 일기에서는 그 대상을 '시계의 바늘'로 보고 있습니다.
소녀 주위에 시계는 없을 겁니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어느 분이 설명하신대로, 어떤 날카로운 물체라면,
이미 오랜 시간 혼자 있었던 소녀는 그걸 시계바늘로 착각했을 겁니다.

그 날카로운 물체가 자신에게 옵니다.
무얼 하려는 걸까요? 그건 소녀도 모릅니다.
단지 '시계바늘'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들려있을 겁니다. 자기가 겨누는 건 아니죠.
지금 소녀는 겁에 질려 있습니다.
'누가' 시계바늘을 들고 있는가 알 수도 있겠지만, 겁에 질려있기 때문에
'시계바늘'이 자신에게 가할 위험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죠.
시계바늘은 자길 죽이려는 건 아닙니다.
천천히 천천히 다가와서 뭔갈 하려는 겁니다.

일기장을 쓰기 시작한 때부터 소녀는 정상이 아니지만
이 시점에 이르르면 논리적 설명이 더 불가능해집니다.
소녀는 닥칠 위험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지금 상황의 전말을 얘기할 여유가 없거든요.
이전까지는 제 해석이 대충 맞다고 봅니다만,
여기서부터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질 거라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해답은 '낙태'입니다.
시계 바늘을 든 사람이 의사 같은 외부인이었다면, 소녀는 그걸 글에 반영할 확률이 많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든 시계의 바늘' 이라 하든지요.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안 쓴 이유는, 이미 소녀에겐 익숙한 인물일 거라 추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산타 그놈이죠.

자신이 한 짓도 추잡했지만 소녀에게 임신까지 시킨 산타는
더욱 추악한 범죄를 저지릅니다. 야메로 낙태를 하려했던 거죠.
그 분위기를 감지한 소녀는 두려움에 휩싸여
날짜 세는 것도 제대로 못했던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다음 날은 12월 65일. 역시 소녀는 두려움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논리적 설명이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추측만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오늘이군요' 란 말은 상당히 함축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글을 쓴 시점에 소녀는 이미 이 날을 알고 있었습니다.
'줄곧 기다렸던 날이 오늘이군요'라는 식으로, 글 앞에 어울리는 말을 떠올려보세요.
12월 65일에 어떤 일이 벌어져서 그때서야 알게 된 게 아니라,
음 오늘이 바로 그날이군요 식으로, 시점상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군요' 다음의 상황은 그래서, 소녀로서는 딱히 새로울 게 없습니다.
이 날을 특별하게 만든 어떤 중요한 뭔가가 있는데, 그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부차적인 상황 묘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뭔가'는 정작 글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니 부차적 상황 묘사만 갖고 추측해야겠죠.

소녀는 밖에 나갑니다. 이상하군요.
소녀는 지금까지 밖에 나갈 수도 있는 상태였을까요?
제 추리로는, 추잡한 산타에 의해 갇혀 있었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녀가 어디 있을 줄 알고 날을 정해서 산타가 찾아올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면, 소녀가 밖에 나간 것은 '해방'이란 뜻입니다.
저는 '오늘이군요'란 말의 함축적 뜻, 오늘을 중요하게 만든 뭔가는 바로 이것이라 봅니다.
음?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뒤에 설명하죠.

'밖에 나와 보았어'는 '밖에 나왔어'와 다른 표현이죠.
이날 소녀는 밖에 나갈 수 있는 해방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머무르고 싶어했죠. 그런데 이제 해방되었으니
'이렇게 됐으니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밖에 나간 겁니다. 아주 중요한 문구입니다.
소녀가 머무르고 싶어한다는 걸 읽을 수 있으니까요.

밖에는 사람이 많이 있었군요. 이상하네요.
소녀의 집은 원래 사람이 많이 다니던 곳이었을까요?
아니면 맨 처음 일기장을 발견된 집처럼 숲 속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식이었을까요?
당연히 후자에 가깝겠죠.
인기척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산타를 기다리고 그가 찾아오고 등등의 전제가 깨집니다.
산타만 기다릴 정도로 심심했던 소녀가 밖에 있는 사람에게 신경을 안 썼을까요.
소녀의 집 근처에는 사람이라곤 얼씬도 안했다고 보는 게 정상이겠죠?

그러면 소녀가 나왔을 때 본 많은 사람들이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올 이유가 있어서 온 거겠죠.
오직 한 가지 이유, 소녀가 해방되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더더욱 이상해지는군요.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알았던 걸까요?
물리적으로 가능한 추측이 있습니다.
경찰이 산타를 잡았다, 그래서 자물쇠를 풀어주었다,
경찰 관계자들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라고요.

하지만 아닙니다. '밖에 나와 보았어'가 그걸 설명합니다.
소녀는 해방된 오늘까지도 나갈 생각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경찰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해방이 됐다면, '밖에 나와 보는' 한가로운 상황이 안 됩니다.
소녀의 해방은 집 밖에서 이루어진 게 아닌, 집 안에서 스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야 '밖에 나와 보았어'란 말이 이해가 됩니다.

아아, 그렇다면
외부에서 풀어주지도 않았는데
소녀가 꼭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해방된 상태가 되었다는 것.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알고 많이들 왔다는 것.

소녀는 12월 65일 이날 죽은 것입니다.

많이, 가득 있었던 사람은 장례에 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닌 령일 수도 있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전나무는 이상한 색이었는데, 관일 수도 있고,
죽은 소녀 눈에는 이제 색을 구별 못하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을 해도 관계 없을 겁니다.
다들 '부차적인 상황 묘사'일 뿐이니까요.

'어째서일까?' 란 말에서 우리는 소녀가 자신의 해방 상황을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죽은 걸 모릅니다.
왜 밖에 나올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소녀는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르고, 또 밖에는 한번 '나와 본' 것일 뿐
나갈 생각도 딱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직도 집 안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기장을 읽던 소녀는 깨달아버린 것입니다.
일기 속의 소녀는 죽은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자기 주위에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죠.

죄송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일기장 속의 소녀 말입니다.
주위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고 산타만을 기다렸다고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거 사실 이상한 거라고, 뒤에 설명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왜냐하면 이건 논리적으론 말이 안됩니다.

그럼 소녀는 밥은 어떻게 먹었나요?
물은?
화장실은?

여러분,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하다못해 '집'이라도 있지 않나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문 하나.
아무것도 없다면 일기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요?
펜은요?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아닙니다.
밥도 먹어야 했을 거고 무엇보다 확실히 '집'이 있습니다.
그러니 앞서 없었을 거라고 봤던 달력, 시계 등등도 사실은 있었을 수가 있습니다.
단지, 이 글을 쓸 때 소녀는 그런 것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 시점에서,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만을 쓴 것일 뿐이죠.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추리가 다 틀렸다는 것.
최소한 5월 18일까지의 일기에서 소녀가 산타만을 기다렸던 것은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어서 그랬던 거라고요.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시점 이전부터 쓰고 나서도 최소 몇 년의 시간이 흘러있지만
소녀는 집요한 성격이었기에 다른 모든걸 무시했었다고요.
이것도 나름 으시시한 결론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고 또 하나의 가정, 즉 지금까지 추리가 맞다고
생각하고 밀고 나가봅니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은 9월 33일 등의 이상한 날짜입니다.
달력이 정말 있었다면 이렇게 쓸 이유가 없었지요.
시계처럼 객관적으로 시간을 측정할 도구가 있다면,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 관념에 빠지는 게 힘들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얘기긴 한데요.
사람은 주위 사물을 통해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고,
그 관계를 나름대로 설정해 자신의 세계를 만듭니다.
예컨대 남자들은 상하관계와 권력에 민감합니다.
주위 것들은 내것, 내 부하, 내 윗사람 등으로 관계를 나눕니다.
다른 사람이 없다면, 이 글을 읽는 대부분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이 세계의 왕이 됩니다.
한번 보세요. 지금 자기 방의 왕이 자신이 아닌지.
먹다 버린 과자 봉지가 그냥 널부러져 있지 않나요?
이불은 헝크러져 있지 않나요?
자기가 왕인데 누구 눈치를 봅니까. 저 물건들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요.

하지만 남자들도,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는 지경이 되면
여자들과 비슷한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상하가 아닌 수평관계, 권력이 아닌 친구에 민감하게 바뀐다는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는 사물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겁니다.
자신과 함께 이 세계를 이루는 친구들이거든요.
왕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주위와 평화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는 말입니다.
왜 여자들이 인형과 얘기를 하는지 이해가 가시나요?

그런데 소녀의 글을 보면 산타, 선물, 시계의 바늘 이외에는 아무런 상호관계의 서술이 없습니다.
때문에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거였고요.

주제로 돌아와서,
소녀의 주위에 다른 물건들이 객관적으로 전무한 상황은 생길 수가 없죠.
하지만 글을 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이 모순이 둘 다 성립되는 해답은, '일기를 쓴 시점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소녀가 저 일을 겪을 당시엔 객관적으로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시점에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심정이 반영되어 일기의 글로 드러난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쓰고 있는 일기장조차도 '무'인 상황에서,
오로지 그 날의 중요한 느낌만이 자신을 가득 채운 채로 글이 되어버린 것이죠.

앞에 있던 물음을 다시 해봅니다.
여러분은 일기를 언제 쓰십니까?
그 날이 다 갔다고 여기는 시점, 그 일이 다 끝났다고 여기는 시점이죠.
'오늘이군요'라고 말하는 시점에, 이미 중요한 뭔가가 일어날 거란 걸
알아야 그런 표현이 가능하다고 했죠.
일기를 쓴 시점은 그러니까 '해방'된 이후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시겠죠.
일기의 글은 실제 소녀가 쓴 게 아니라 소녀가 죽은 후 적힌 것입니다.
령이 쓴 글, 혹은 사념이 화한 글.
그러면 이해가 갑니다.
모호한 시간의 흐름,
이상한 날짜,
객관적이지 않은 사건들.
살았을 때 몰랐던 건 죽어서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이제 진짜 마지막.

위의 글 전체를 보세요.
처음 시작은 객관적인 묘사입니다.
한 소녀가 엄마를 찾다가 외딴 집에 들어가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는, 아주 평범한 서술입니다.

죽은 소녀의 글이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평범한 서술로 돌아옵니다.
'소녀는 돌연 일기장을 덮었다. 소녀는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알게 됩니다.
평범한 서술이 아니었다는 걸.

'그래. 소녀는,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녀가 숲속을 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 일기장을 덮기까지는
누군가가 말하고 있는 얘기였군요.

말하는 누군가는 일기의 내용을 압니다.
읽던 소녀가 깨달은 것을 알 정도로 그 내용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저 일기는 죽은 소녀의 사념체 아니던가요?
그 내용을 전부 알고 있고 숲속 소녀를 쭉 지켜보고 있던,
이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누군가가 얘기해주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 깨달아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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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입니다.

재미있게 보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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