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대한 에피소드

니가짱먹거리 작성일 10.06.05 22: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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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1때 일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 일이 환상이었는지 뭐였는지 잘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만, 당시엔 정말 놀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중1때 일본어부에 들었었는데, 어느 봄날 일본어부 전체가 토요일 현충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기로 했었습니다. 토요일에 있는 수업을 전부 빠진다는 특례에 좋아하며 버스를 타고 현충원으로 향했습니다.

현충원에 도착해서 저희는 각자 가져온 마른수건으로 비석 하나하나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수업 빼먹는다고 좋아했더니 생각보다 꽤나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봄날 화창한 햇빛도 거침없이 내려쬐고, 허리도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하자 저는 잠시 묘비 단락 옆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화창하니 좋던 날씨에 갑자기 구름이 살짝 끼기 시작하는 겁니다. 햇빛 때문에 땀이 삐질 났던 참이라 오히려 좋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앉아 맞은편 묘비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습니다.

제가 바라보고 있던 묘비에 무언가가 앉아있는데, 뭐랄까 설명하기가 쉽지 않군요. 제가 상상해낸 환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희끄무레한 연기 같은 것이 사람형상을 하고 묘비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을 보면서 묘비에 비스듬하게 앉아있는 형상이었는데 갑자기 저를 휙 돌아보다니 벌떡 일어서는 겁니다. 그러더니 저를 향해 달려오는가 싶더니 휙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 초 동안에 일어난 일이기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제 눈을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시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앉아있던 묘비 위에도 말이죠. 순간 든 기분은 묘하게도 '무섭다'나 '신기하다'가 아닌, 뭐랄까, 굉장히 슬프고 안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아까 그 묘비를 따뜻하게 내려쬐어 주는 햇빛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 응어리가 진 듯한, 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상한 경험을 겪고 저는 아무 탈 없이 현충원 묘비에 묻힌 이들에 대한 경례와 묵념을 하고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이 경험을 말해주었는데, 다들 거짓말~ 이라면서 믿질 않더군요. 뭐 솔직히 저도 제가 정말 이것을 본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랄까요, 무서운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현충일 날이면 묘비를 정말 열심히, 정성들여 닦습니다. 그게 제가 그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 아닐까-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묘비를 하나하나 볼 때마다 그 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납니다. 부디 그 분들이 편안하게 저세상에서 잠들어계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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