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는 농부셨고 슬하에 6남매를 키우셨는데
그중의 다섯째가 저의 아버지 이십니다. 이때는 아직 아버지가 중학교를
입학을 막 하셨던 시기로 14살 봄 즈음때의 있었던 일 입니다.
저희 할아버님은 쌀농사를 주업으로 삼으셨는데 쌀농사 외에도 여러 농삿일 이란 것에는
소가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시골집으로 찾아가면 외양간 터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놈의 소가 그날따라 말썽이었다는 것 입니다.
아버지가 학업을 마치고 늦게까지 놀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작은누나 (즉 저에게 작은고모님)만을 남기고 집에 아무도 없더라는 것 입니다.
그때가 아직 이른 저녘이라 어둡진 않았지만 곧 해가 질 무렵이었는데
작은고모님이 울다 지친듯 퉁퉁 눈이 부어 있어 저희 아버지도 어리지만
금방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네요.
외양간 밑으로 맨 바닥인체 둘 수 는 없으니 보통 짚이나 톱밥을 깔아두는데
이것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 갈아주어야 했습니다. 그 날 햇볓에 잘말려
쌓아두었던 볏짚을 외양간에 깔기위해 외양간 뒷문을 활짝 열고 반나절의
작업을 할아버님과 첫째 큰형님 둘째 큰형님이 하고 있으셨는데 정말 이유를
알 수 없게 소가 외양간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줄이 끊어진 것도 아니고
코뚜래가 부서진 것도 아닌 그저 줄이 풀려났다는 것 만이 일리가 있는
것 이었습니다만 누구도 그럴 일은 없다고 믿고 계셨답니다. (아주 기본적인 일이라서...)
어쨌거나 코뚜래가 걸린 소는 줄만 잡아주게 되면 어느정도 말을 듣게되기 때문에
어른들이 달려들어 줄을 잡으려했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소가 살살 도망을 치는
통에 점점 소가 집에서 멀어져만 갔는데 이를 잡으려했던 할아버지,할머니, 큰형들,
동생들, 큰누나까지 소를 잡으러 집을 나섰기 때문에 작은 누님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죠.
아버지도 금방 가방을 풀고 소를 찾아 나섰는데 집앞 5~10분 거리의 논뚝 옆으로
할아버지가 소리소리를 치는 것을 들어 그 곳으로 찾아갔는데 작은 동생과 할아버지가
야산앞에서 소가 들어간 산을 앞에두고 고함을 치는 것이 었다고 합니다.
금방 따라가 잡지 못하고 소리소리를 친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 곳은 사유지로 동네 유지 일가의 묘자리를 위한 땅이었는데
그 당시부터 산길로 들어서는 길목에만 설치된 허술한 철문 앞에서도
동네사람들이 쉽사리 그 땅으로 다가가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 유지분의 집안이 대대로 그 지역의 땅이 많은 뼈대있는 집안이었는데
일제시대를 지날무렵 친일파로 전향하여 지역 주변에 미움을 많이 샀다는
것 입니다. 그 때문인지 그 집안에 죄가 없던 몇몇 사람들도 동네사람들의
미움을 샀는데 광복이 찾아온 이후 동네 사람들과 그 집안 사람들간의
삭막하던 분위기와 시대적인 울분이 쌓였던 것이 큰 사건으로 이어져
친일집안의 여자아이가 동네 어떤 남성에게 *살인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아이를 그 곳에 묻었다 어쨌다는 말이 많았지만 어찌되었건
그 무덤터를 굳이 들어가기엔 그당시 사람들에겐 불길한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때부터 미신을 잘 믿지 않았던 큰형님들은
뒤를 쫒지 않고 미리 산길을 옆으로 돌아 뒤로 돌아오기로 하였고
할아버지와 작은 동생은 앞길에서 소가 돌아 나오는지를 지켜 보기로
했던 것 입니다. 아버지도 형들을 따라 묘자리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할아버지께서 불같이 말리셨다고 하네요.
가로등도 없던 시절 안그래도 산속은 더욱 어두운 것인데 해가
지자 금방 밤처럼 날이 변했던 시기였습니다. 아버님 말씀에도
그당시 동네에 가로등은 물론 시멘트포장길도 없었다고 하네요.
집안 큰형 한분이 "저쪽!"하며 큰 소리를 치는 소리가 얕은 산을
울렸는데 작은 동생은 이상한 소문탓인지 겁을 먹고 엉엉 울고 있었다고
하네요. 큰형이 소리를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가 큰소리로 우는 것이
어렴풋이 들렸는데 몇분간을 도저히 그칠 생각을 안더라고 하는 군요.
소가 계속해서 울어댔는데 소리가 점점 아버지 쪽으로 다가오자
큰형들이 소를 잘 잡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더랍니다.
큰형 둘이서 소를 슬슬 잡아 끌고 산을 내려오는데 동생은 더 큰소리로
울부짓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금방 질색을 하셨다고 합니다.
소 등위로 작은 여자아이가 올라타고 싱글벙글 거리며 깔깔대고 있었다는 것이었죠.
나중에서야 작은 동생이 말하기를 아까전부터 철문앞에서 여자아이가 자신을 향해
꺼지라며 쌍욕을 했다면서 할아버지께 소리소리치며 무섭다고 했다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작은 동생이 이런 상황에 실없는 소리를 하여 큰소리로
호통을 치셨던 것이죠. 그 소리에 저희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찾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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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큰형분들의 눈에는 애초에 보이지도 안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에서도 금방 사라졌는데 작은 동생은 소를 집으로 끌고오는 동안 몇번이나
허공을 향해 쌍욕을하며 오열을 했다고 합니다. 시간대가 정확하진 않으나
집으로 돌아오니 밤이 다 되어 달이 크게 떴었고 어머니와 큰누나가
작은 누나를 달래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당시 소라는 것은 굉장히 귀했기 때문에 집안 여자분들도
다들 진을 뺐었다고 합니다...
끗...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 논일을 돕다가 그 철문 앞에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10년도 더 됐는데 할아버지의 말씀이 어디까지 저를 놀리려 했던 것일지는 모르나
최근들어 아버지께 한번 더 일을 물었더니 어렴풋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대로 떠
오르더군요. 재미있게도 그때 할아버지의 논일을 돕던 곳이 그 철문 바로 앞이랍니다...
14~5살때 밤을 따러 그 산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분명해 그 자리에는 묘가 몇자리
있기는 하더군요. 사유지인데 주인이 먼곳에 살아 잘 들리지 않는다고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