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 당위성은 없다.

나영선 작성일 11.12.19 02: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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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보편적인 현대 물리학자, 생물학자 들의 잠정적인 결론입니다.

 

인간, 동물 등의 섬세하고 마치 설계된 것인 양 보이는 것의 존재 원인을 가지고

 

"너 핸드폰 있지? 핸드폰은 어떻게 생겼을까? 스스로 땅에서 생겼을까? 아니지?

 

누군가가 만들었잖아. 그러니까 사람도 누군가(지적설계자)가 만든거야." 와 같은

 

구식 신존재 증명을 설파하시는 분들이 종종 보이는 데요...

 

여기에 대한 논란을 기라성 같은 두 명의 천재가 종결짓습니다.

 

첫번째 천재는 데이비드 흄입니다.

 

그는 많은 이들이 맹신하는 인과율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습니다.

 

즉 인과율은 여태까지 관찰된 사실일 뿐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데이비드 흄은 enquiry of human understanding 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비슷한 맥락입니다.)

 

태초에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담이 모든 면에서 매우 통찰력이 뛰어나고 기민한 사람이었다고 하자.

그가 물을 보고 만지는 것 만으로는 이 물이 자신을 질식시킬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이성만으로 깨닫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초에 아담이 공을 살펴본다고 하자. 공의 생김새도 보고 촉감도 느껴본다. 하지만 아담은 한 공이 굴러서 다른 공에 부딪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관찰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인과율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귀납적인 관찰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경험적 사실에 불과하죠. 따라서 어떠한 결과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원인이 있으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천재는 그 유명한 찰스 다윈입니다.

인과율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쳐도 신존재의 당위성은 인과율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킵니다.

인간의 설계자를 주장하는 이유는 복잡한 인간의 형상적 실재성보다 더 큰 형상적 실재성을 갖는 존재가 있어야만 인과율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원인의 형상적 실재성은 결과의 형상적 실재성보다 크거나 같다는 것을 인과원칙이라고 하죠). 그러나 그런 존재를 세움으로써 다시 그 존재 보다 더 복잡한 존재를 원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그럼 신은 누가 창조했나?"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신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인과율에 따른 설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결국 이는 귀류법에 의해 인과율 전제하의 신 존재 주장은 모순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우주의 제 1 원인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장 단순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인과법칙에 모순인것처럼 보이는데요.)

여기서 찰스다윈의 위대한 통찰력이 빛을 발합니다.

 

바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자연선택이라 하면 우연에 의한 작용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은 어떻게 우연의 연속으로 사람이 생길 수 있나? 하며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이런 방식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것은 비행기를 조립품으로 분해하고 상자 안에 넣은 후 상자를 한 번 흔들어서 비행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것이 바로 지구의 45억년이라는 시간 스케일과 자연선택이

밑바닥에서부터의 과정이 아닌 누적적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누적적인 자연선택이라는 것은 오르는 것이 불가능 해 보이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산 한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고 다른 한 쪽은 완만한 능선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뛰어난 등반가라고 하더라도

절벽 밑바닥에서 단번에 산 정상에 오르라고 하면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마치 비행기가 상자로부터 단번에 조립되는것과 같은 일일겠죠.)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완만한 능선으로부터 한걸음씩 걸어가라고 한다면 어린 아이라도 쉽게 (비록 상당히 오래 걸리겠지만)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단순한 원인을 땅 밑바닥. 가장 복잡한 단계의 인간을 산 정상이라고 본다면

 긴 시간 스케일에서 누적적인 자연선택 + 간단한 우연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가장 단순한 입자로부터 가장 복잡한 인간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주 단순한 어떤 것이라도 복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자와 복제 과정에서의 단순한 실수(돌연변이)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복제에 유리한 분자 구조는 자연스럽게 복제에 덜 유리한 분자구조보다 더 많은 자기 자신을 복제해낼 것이고

이런 식으로 분자 구조 사이에서 자연선택이 일어나서 유리한 분자구조가 지배적인 분자구조가 되고, 이 분자구조는 다시

복제 과정에서 서로 조금씩 상이한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이 차이에 의해서 다시 자연선택이 일어나고... 하는 식으로

무생물의 세계에서도 앞서 말한 "복제능력을 가진 분자"만 있으면 쉽게 자연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분자 생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원형질 따위의 애매한 기준에서 벗어나 정보의 복제 능력(DNA, RNA등)의 유무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복제능력을 가진 분자로는 가장 단순한 예로 결정구조를 갖는 무기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리차드 도킨스의 "눈 먼 시계공"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하고싶은 얘기는 이 두명의 위대한 거인 덕분에 우리는 더이상 단순한 신존재 증명 논리에 휘둘릴 이유가 전혀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신의 존재는 전혀 필요 없다는 얘깁니다.

(물론 많은 과학자들이 무지의 대상에 대해 일종의 "시적" 표현으로 "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시간의 역사>에서 스티븐 호킹의 "신의 마음"이라는 표현도 그런 종류라고 볼 수 있죠.)

오히려 신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이 현대과학을 이해하는데 더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나폴레옹이 위대한 수학자 라플라스의 책을 읽고 어떻게 신의 존재 없이 이것을 쓸 수 있었냐고 묻자

그가 짧게 답했습니다.

 

"폐하, 제게는 그 가설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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