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모자로 지목된 사람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수행한 사람이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의 전모는 완전히 암스트롱 한 사람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 자신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방조자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수사관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대체로 신뢰하기 어려운 유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함께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등 그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탐문 조사했다.
그 결과 네 명으로부터 암스트롱이 웰스 사건의 자세한 세부 사항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드스타인의 집에 시체로 냉동되어 있던 동거남 제임스 로든에 대한 것도 있었다.
로든은 암스트롱과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재소자 동료들에게 떠벌인 데 따르면, 실은 그 역시 은행 강도의 공모자였으며,
강도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암스트롱이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피자 배달원 웰스의 목에 맞는 고리를 찾기 위해 웰스의 목 둘레를 잰 것은 암스트롱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은 암스트롱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가 웰스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방증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은 모두 참고 증언이었을 뿐, 사건의 전모를 밝히거나 암스트롱을 이 사건으로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케네스 반스
2005년 말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피자 배달원 웰스(사망), 중계탑 옆집 로드스타인(사망), 무서운 여자 암스트롱, 그녀의 동거남인 냉동 시체 제임스 로든(사망, 실제 가담 여부는 불명확)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이 사건 모의에 가담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텔레비전 수리공이었다가 마약 판매상으로 변신한 케네스 반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상태였다.)
그는 암스트롱의 또다른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남자 관계도 상당히 복잡한 아줌마가 아닐 수 없다.
반스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내부 관계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를 수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사람은 그의 처남이었다.
반스는 암스트롱이 자백한 사건 진술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웰스 사건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반스를 데려다 놓고, 웰스 사건에 가담한 혐의가 입증되면 형기가 대폭 연장될 것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하여 압박했다. 반스는 형기 연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데 동의했다.
반스의 진술은 암스트롱의 주장과 큰 차이가 났다.
반스는 사건의 모든 계획이 다름 아닌 암스트롱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이 범행을 계획하고 주변의 남자들을 총동원해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
암스트롱은 자기 아버지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탓에, 집이고 뭐고 다 날리고 자기에게 유산을 한 푼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고 한다. 그런 일을 막는 방법은 유산을 바로 상속받는 길밖에 없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아버지가 빨리 죽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오랜 친구이자 마약상인 반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은행 강도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반스의 진술은 일관성이 있었으며, 수사관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한 정황과 잘 맞았다.
웰스 사건은 2년 반 만에 드디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2006년 2월
FBI 수사관들은 암스트롱과 그녀의 변호사를 접견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므로 그녀를 웰스 사건의 주모자로 기소하겠다고 통지했다. 암스트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펄펄 뛰었으나, 특이하게도 수사에 협조하는 데에 동의했다.
현장 검증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이리 시 여러 곳에서 벌어진 현장 검증에서 암스트롱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 자신이 있던 곳과 사건 관련 장소들을 정확히 지목했다. 범행 장소를 차량으로 이동하던 도중, 암스트롱은 형을 경감해 주겠다는 증서를 써 주지 않으면 더 이상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만으로도 그녀를 기소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웰스 사건이 벌어진 지 4년 만인 2007년 7월
연방 검찰 펜실베이니아 주 이리 지부의 검사는 마침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암스트롱과 반스가 사건 관련자로 처벌되리라는 것이었다.
검찰은 공모자로 확인된 사람이 둘 더 있는데, 하나는 로드스타인이고 다른 하나는 피자 배달원 웰스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4년 동안 수천 회의 면담과 조사를 통해, 그 동안 불쌍한 희생자로 알려진 웰스가 범행 모의의 초기부터 가담해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웰스는 은행 강도 계획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인질 역할을 하기로 하는 데 스스로 동의했다고 한다.
범행 지시서를 들고 보물찾기 흉내를 내다가 돈을 다른 공범에게 전해주면 그의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보물찾기는 물론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장치였다.
범행이 끝난 뒤 웰스는 인질로 간주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날 것이었다.
그러나 웰스는 범행 계획이 진행되면서 점점 주저하기 시작했으며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고 한다.
그가 손을 떼고 싶어 한 결정적인 계기는 목 폭탄이었다.
맨 처음 웰스가 인질 역할에 동의한 것은 목 폭탄을 가짜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이 폭탄은 진짜인 것으로 바뀌었고, 그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설정된 것처럼 보였던 보물찾기는 실제로 웰스의 목숨이 걸린 죽음의 레이스로 변질되었다.
웰스는 이러한 계획 변경에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자기 목에 진짜 폭탄을 달고 째깍째깍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은행 강도를 벌이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검찰의 기자회견장에는 웰스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검찰이 발표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고함을 치며 항의했다.
웰스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검찰 발표가 허위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검찰 발표에는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여럿 있었다.
웰스의 범행 동기는 무엇인가.
그는 자기 목숨이 실제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 당일 태연히 범행을 수행했단 말인가.
무엇보다, 주모자로 지목된 암스트롱의 정신 상태로 볼 때, 그녀가 이렇게 복잡하고 치밀한 범행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1주일이 지난 뒤 추가 사항을 발표할 때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검찰은 이 추가 발표에서, 웰스의 보물찾기가 모조리 가짜였던 것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폭탄을 제거하거나 해체할 수 있는 어떤 열쇠나 번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폭탄은 일단 장치된 이상 무조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웰스는 무조건 죽을 운명이었던 셈이다.
2008년 9월
마약상 반스는 웰스 사건을 놓고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범행 공모와 불법 무기 혐의로 기소되어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발표에서 남았던 의문점은 함께 진행되던 암스트롱의 재판 과정에서 깨끗하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그녀의 정신 상태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한 감정이 이루어져야 했다.
밀고 당기는 씨름 끝에,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재판 가능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암(腺癌) 진단이 나왔다.
법원은 그녀가 정확한 의학적 진단을 받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작년인 2010년 8월
웰스 사건이 벌어진 때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암스트롱의 병세에 대한 의사의 최종 진단이 법원에 전달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3~7년 밖에 살지 못하리라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검찰은 재판을 서둘렀으며, 2010년 10월에 재판이 속개되기로 일정이 잡혔다.
암스트롱을 기소하는 검찰의 최대이자 유일한 증인은 공모자인 마약상 반스였다.
반스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검찰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한 상태였다.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반스는, 은행 강도 계획의 총지휘자가 암스트롱이며,
그녀가 로드스타인과 웰스를 끌어들여 계획에 참여시켰다고 증언했다.
로드스타인과 반스는 암스트롱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다(전 애인과 오랜 친구).
피자 배달원 웰스는?
그는 반스의 친구였다.
웰스는 사건 당시 한 매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반스로부터 마약을 사서 매춘부에게 주면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웰스는 반스에게 마약 대금 빚을 지고 있었다.
그도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웰스는 폭탄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범행 모의에 참가했다.
그가 폭탄이 진짜임을 알게 된 것은 사건 당일 피자 배달을 핑계로 하여 중계탑에 나가 다른 공범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그는 공범들과 싸우며 달아나려 했으나, 누군가가 총을 겨누어 그를 제지하고 결국 목에 폭탄을 채워 버렸다.
반스가 이런 증언을 하는 동안, 피고석에 있던 암스트롱은 몇 번이나 "거짓말 마라!" 하고 소리쳤다.
재판 8일째 되는 날, 드디어 피고 암스트롱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그녀는 이틀 동안 5시간 30분에 걸친 발언을 하면서 검찰을 비웃고 조롱했다.
입을 열 때마다 장광설이 튀어나왔으며, 울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했다.
판사는 50회 이상 그녀의 발언을 제지해야 했다.
암스트롱의 주장은 자신이 주모자가 아닌 단순 협조자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전모를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틀 동안 계속 된 그녀의 긴 발언 동안 피자 배달원 웰스가 언급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나는 브라이언 웰스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어요. 사건 당일 주변에 있었지만 누가 강도를 벌이는지는 몰랐어요. 나는 그 이름을 그가 죽던 날 뉴스에서 처음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11명과 남성 5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들은 11시간의 장고 끝에, 은행 무장 강도, 범죄 공모, 범죄에 폭발 장치의 사용 등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영화 같은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몇 년 동안 지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암스트롱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녀는 자동으로 종신형을 받게 된다.
물론 그녀가 감옥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를 진단했던 의료진은 그렇게 생각한다.
사건은 끝났다. 수사도 끝났고 재판도 형량이 확정된 최종 선고만 남겨 놓고 있으므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FBI의 범죄 수사 요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뒤 대학에서 범죄학을 가르치는 짐 피셔가 그다.
그는 피자 배달원이 은행 강도를 벌이다 목 밑의 폭탄이 터져 길 위에서 죽었다는 엽기적인 소식을 들은 이래,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치밀하게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동안 보도된 모든 기사를 분석하고 FBI가 발표한 증거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왔다.
그 결과 피셔는, 검찰의 발표와는 달리 매조리 암스트롱이 이 범죄의 총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피셔가 주목한 것은 사건 직후 FBI의 행동분석팀에서 목 폭탄 계획을 설계한 범인에 대해 분석해 내 놓은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은 일반적인 은행 강도 사건과 전혀 다르며, 여러 정황과 근거들로 볼 때 범인은 여럿의 범행 동기를 가졌음에 틀림없고, 그 중에서 돈은 주요 동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은행 강도는 다른 무언가를 위한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으리라는 것이다.
범죄를 계획한 사람은 웰스가 실제로 돈을 가지고 나오는지,
그 돈이 자신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은행 강도짓은 그저 경찰이 웰스가 소지한 지시서에 제시된 대로 허겁지겁 장소를 옮겨 가며 '보물찾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역할만을 했으리라고 분석됐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암스트롱이 아버지를 죽일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으로 단정한 검찰의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암스트롱이 아니라면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