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여름휴가

카레낙 작성일 12.08.25 23: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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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히 무덥던 1994년 8월의 일이었다. 군대에 있던 희두라는 친구가 휴가를 나왔다.

오랜 만에 친구들 몇 명이서 한탄강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 야, 해마다 한탄강에서 몇 명씩 익사하는 사람이 나온다고하더라. "

"수심이 깊은가 보지?"

"그렇지두 않대, 소문에는 물귀신이 있다더라 ."

"요새 세상에 무슨 물귀신이야?"

"빠져 죽은 사람들이 많다니까 원혼들이 강 주위를 떠돌고 다니는가 보지 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한탄강

기슭으로 걸어갔다. 휴가철이라 곳곳에 텐트가 쳐져 있고. 간편한 복장의 사람들이 

물가에서 활기차게 뛰어놀고 있었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 텐트를 쳐 놓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확 트인 강가에 서니 가슴 이 시원했다.

나는 물가로 다가가서 강물에 발을 담갔다.

" 야 , 이렇게 얕은 물에 빠져죽는 사람도 있냐?"

"접시물에 코박고 죽는 사람도 있다잖아."

기차 속에서 땀에절은 우리들은 배가 고픈 것도 잊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몸의 열기를 식히는 차가운 물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나는 찰랑거리며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무릎이, 허벅지가 차례로 물에 잠겼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친구들 틈에서 벗어나 강 한쪽 구석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발을 

한 번 내딛는 순간 갑자기 발밑이 꺼지는 느낌에 섬뜩 했다. 하지만 다시 발로 가늠해 보니

물이 허리에 정도밖에는 차지 않아 안심했다.

저쪽에 있는 치구들은 물장구를 치고 서로에게 물을 끼얹으며 놀고 있었다. 바쁜 일상에

해방되어 자연속에 있으니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드는가 보았다. 나는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오슬오슬 떨려왔다.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바라보니 여전히 그 자리에서 놀고 있었다. 나 혼자만 외톨이인 것 같아

그들 틈에 끼고 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왠일인가? 발이 안 떼어지는것이 아닌가? 

나는 몇 번이나 움직이려 했으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는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던 물이 어느새 가슴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아찔했다. 얼토당토않게도 갑자기

물귀신 얘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 동안 빠져 죽은 사람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죽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장 가슴팍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졌다.

나는 위기 상황임을 직감하고 큰 소리로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면...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것일지도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모두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낯선 사람들

몇명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나마 그들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관심없다는 듯 고개를 돌러버렸다.

나는 엄습해 오는 공포감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숨만 더욱 가빠질 뿐이었다..

그때 마침 한 친구가 눈에 띄었다. 그는 나를 찾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소리를 질렀다.

"희두야 !!!, 살려줘!!! 어푸어푸."

친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한 그는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움직일 수가 없어, 네가 꺼내줘! "

나는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지만, 친구는 장난으로 알았는지 웃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하찮게 사라져버릴 수 있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죽음은 영화에서처럼 비장하고 엄숙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가다 잘못해서 똥을 밟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었다. 자신이 웃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동안 내가 죽어버린다면, 

그 친구는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

어느새 물은 내 턱가지 차올랐다. 내가 다급하게 친구를 불러댈 때마다 강물이 입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희, 희두야., 나, 나좀 살려줘!"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본 친구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둘러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팔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끌었지만, 내 몸은 무속에 뿌리를 내린듯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친구는 몇 번 힘을 쓰더니, 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도와주세요!"

아저씨들 몇 명이 내 쪽으로 왔다.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몸부림만 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잡고 끌었다.

함참을 애쓴 끝에 나는 구조되어 강가에 눕혀졌다.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도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따.

한낮의 햇빛에 눈이 부셔 다시 감았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꿈 속에서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살았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계속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연신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사람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제풀에 지쳐 떨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캄캄했다. 벌써 밤이었다. 친구들이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텐트

안이었다. 어느새 친구 녀석들이 나를 여기로 옮겨놓은 모양 이었다.

악몽을 꾼뒤라 다시 잠을 청하기가 꺼림칙했다. 잠시 담배라도 피려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이 속살을 간지렵혔다 . 몸외 쇠한 탓인지 금세 소름이 돋았다.

나는 강가로 다시갔다. 모두들 잠이 든 시간이라 사방은 괴괴했다. 어둠에 젖어 검은 강물이 달빛에 반짝거리며

부서지곤 했다. 그러고 있으려니 마음이 잔잔해짐을 느꼈다.

무심코 낮에 사고가 났던 곳을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바로 그곳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던 갑자기 여자가 고개를 내쪽으로 멈추었다. 먼 거리였는

데도 내 몸을 훑는 듯한 매서운 시선에 한기가 느껴졌다. 여자의 입가에 비웃음 같은 차가운 미소가 잠시 

어린 듯 했다. 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나에게 계속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 태규야!!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를 돌아다 보았다. 희두였다 . 나는 이미 반쯤 물에 잠긴 채였다. 정신없이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은 것을 느꼈다. 나는 되돌아서서 첨벙대며 

강가로 나왔다.

"잠이 깨서 보니 네가 없어서 나왔어. 그런데 너 뭐 하는거야? 자살이라도 하려는 거야?"

희두가 나를 다그쳤다. 나는 그에게서 사실대로 말했다. 그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믿기지 않았

다. 하지만 새까만 밤에 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생생해서 아직도 내 눈앞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일가? 볼을 꼬집어 보았따. 그 여자의 모습만큼이나 아픔도 생생했다.

허겁지겁 텐트안으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세상 모르게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낮설게 느껴졌다. 나는 희두와 함께 구석에 쪼그리고 앚았다. 그날 밤 나는 공포에 휩싸여 거의 

한숨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나와 친구들은 텐트를 걷고 짐을 쌌다. 

"더 놀다 가지 그래? 원래 오늘 오후에 돌아가기로 했었잖아, 괜히 나 때문에 신경쓸 것 없어."

" 야 어제 진짜 우리 십 년 감수했다. 네가 죽는 줄 알고, 이런상황에서 더 있어봤자 썰렁하기만 할 뿐이야."

"맞아, 어디 무서워서 다시 강물에 들어갈 수 있겠냐? " 너 어젯밤에 물귀신도 봤따며."

'언제는 요즘 세상에 왠 물귀신이냐고 하더니......"

"물귀신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수심이 갑자기 깊어지고 발이 빠지지 않는다니 으시시하지 않니?"

돌아가는 길에는 다들 아무 말도 없었다. 우리는 도중에 그곳 관리사무소에 들러서 어제 있었떤 일들을 모두

해주었다..

" 글세요, 그 동안 그런일이 여러번 있어서 저희는 정밀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얕아서 

안심하고 있으면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고,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발을 뺄 수가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곳을 우리는 찾아낼 수 없었어요."

"거기서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요?"

"숱하게죽어 나갔지요, 구조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그곳에 사람이 빠지면 안전요원들맞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요."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밤, 나는 방에 누워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정말 귀신이 존재 하는 것일까? 내가 헛것을 보았다 치더라

도 어제 일어났던 일은 분명히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현상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서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존재들을

귀신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이다.

밤이 깊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는 불을 끄기 위해 일어서다가 무심코 다리를 내려보

았다. 순간 나는 그대로주저않고 말았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발목에 생긴 뚜렷한 흔적을.... 그것은 분명 사람의

손자국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국이 정말 강 속에서 난 것일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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