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열지마

므흐읏 작성일 12.10.21 19: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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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귀신을 보거나 영 능력이 강하다거나 그런건 아닌데 어릴적 부터 기이한 현상을 많이 목격했다.

항상 술자리나 모임에서 기이한 얘기를 해주는건 내몫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말하기전 나는 늘 당부한다.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우연의 일치거나 잘못본거니까 믿지마라" 라고..

 

정작 그런 상황을 실제로 목격한 나는 미신을 전혀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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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의 일이다.

 

한참 IMF 로 나라가 들썩일때..

서민가정 하나 무너지는것쯤은 정말 한순간이라, 학생신분이었던 내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전셋집을 얻고 집을 옮기게 되었는데, 그 꼴이 참으로 처량했다.

쓰러질마냥 허름하고 낡았던 집은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길때마다 삐그덕삐그덕 소리가 들렸다.

 

곳곳에 빌딩이 들어섰지만 그 집만은 요지부동 철거되지 않았고, 대낮에도 초저녁마냥 어두침침하였다.

이삿짐을 모두 풀고 방범창 다는것을 도운뒤 한참 나른해진 나는 습기차고 어눌한 방에서 잘도 잠이 들었다.

 

얼마나 뒤척였을까, 눈을 부시시 떠보니 한밤중이었고 급하게 잠이들었던 난 소변이 마려워 미칠지경이었다.

익숙치않은 집 구조를 제대로 숙지하기도 전에 어두컴컴한 밤을 맞이한 내겐 화장실조차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벽을 더듬으며 조심히 움직이던 내게 뭔가 꺼림칙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칼 갈아대는 소리에 가장 근접한 것 같았다.

 

소음의 근원을 찾던 나는 화장실에 다가갈수록 소리가 가까워짐을 느꼈다. 다름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혹여나 가족 중 누군가 화장실을 쓰고 있진 않을까 하고 안방과 작은방을 둘러보았으나 부모님 누나 할것없이 모두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도둑인가? 도둑이 든건가?....하지만 문과 창문 모두 철저하게 잠겨있는 터라 누군가 들어오려면 벽을 뚫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부턴 잠이 확 달아나며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화장실을 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화장실 안에 있는것은 사람이 아닐수도 있을것이라고...

 

오금이 저렸다. 손발이 부르르 떨렸지만 마음속 저 한곳에서 불현듯 호기심과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랐다.

대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인지? 귀신인가? 아니면 그냥 쥐새끼나 벌레인건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장실에선 끊임없이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스슥샥...스슥샥...스슥샥"

 

옳커니, 언젠가 마주쳐야할 상황이다 싶었던 나는 겁을 상실한채 슬며시 화장실 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온힘을 다해 문고리를 꽉 잡고 열까 말까 망설이던 내게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거 열지마"

 

화들짝 놀란 난 말소리가 들린 부엌쪽을 보았으나 거긴 어둡고 음침한 습기만 감돌뿐 아무도 없었다.

분명 내 또래 남자아이 목소리였으나 집에 나를 제외한 어떤 소년이 있을리 만무할터..

 

이내 겁에 지린 나는 후다닥 방으로 뛰어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는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이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 화장실의 소음은 더욱더 빠르고 커져만 갔다.

 

어떻게 잠이 들었을까....할아버지가 날 깨우셨다.

어느덧 해가 밝았고, 어제 못다한 집 정리를 마저 해야 했기에 가족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몸을 일으켜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밤새 참아온 소변도 급했고 전날밤 소음이 혹여 아직 들릴까 궁금했던 터였다.

기대와는 달리 화장실엔 할머니가 들어앉아 온갖 고물가지들을 널어놓고 계셨다.

 

"으이구~ 몬살겄다 참말로. 변기통안에다가 무슨 이런걸 다 쳐 넣어놨을꼬?"

 

널려있는 고물가지들 중엔 칼이며 갈고리며 쇠꼬챙이 따위들이 뒤섞여있었다.

참으로 이상했던 점은 변기통안에 들어있을법한 녹슨 모습이 아닌...하나같이 다 날카로운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집안 어른들께 전 주인이 뭐하는 사람인지 이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수도없이 캐물었으나 끝끝내 대답을 듣진 못했다.

 

뭐였을까?...그 목소리는 또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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