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이 끝나지 않는다 3

므흐읏 작성일 18.10.08 1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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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여 전달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듯이 내 기억속 사건은 뒤죽박죽인데다 현재 진행형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너그러이 해석해주시리라 믿는다.

 

 

 

한번 들어가면 몇날 몇일 군생활을 반복해야 하는 지옥

내게 그 예비군훈련 현상은 지옥과도 같았다.

 

친구들도 지옥이라 말했다. 만약 군생활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지옥은 없을거라며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 지옥은 분명히 내게 다시 찾아올거라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나쁜예감은 틀린적이 없다고, 네번째 훈련은 현실의 내 예비군 훈련이 사실상 종결 되었을 시기에 찾아왔다.

그때를 대비해 나 역시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반드시 정신을 차려서 그곳의 진실을 파헤치리라 생각했다.

꿈이라면 꿈일것이며, 정신병이라면 정신병일 것이라, 상황을 똑바로 인지해야 그곳을 빠져나온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은 예비군 소집 우편물을 받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최면에 걸린마냥 훈련날짜를 바보처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출발하기 전날 밤 무엇인가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잔뜩 받은 채 잠이들었다. 아마도 상황을 이겨내고 싶었던 내 마지막 남은 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눈을 감고 얼마나 잤던것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잠을 깼다. 노을이 노랗게 지는 오후에 낯선 산골에서 눈을 떴다. 온몸이 피곤하고 쑤신데 멀뚱이 서있는채로..

 

등 뒤에서는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들 하는 위병소 근무자의 답없는 인사만이 이어졌다.

주변은 예비군으로 보이는 군복입은 사내들이 지친 표정으로 산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조금씩 상황판단이 되었다.

내가 잠에서 깬것이 아니라 예비군 퇴소날이 되어서 정신을 차린것이었다. 위병소를 지남과 함께 내 기억이 사라졌으리라..

 

혼자 어버버하며 서있을 동안 낯익은 얼굴의 예비군 아저씨가 어깨를 툭 스쳐지나가며 내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저씨 때문에 피곤해졌네 하며 기분나쁘다는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퉁명스럽게 내려갔다.

 

이쯤되자 내 나름대로 상황이 유추되었다. 저 대대안에서 이번에는 얼만큼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훈련은 종료되었고, 그 기간동안 내게는 무엇인가 사건이 있었으며 어떻게 했는진 모르지만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삭제당했다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막을 알고싶다는 마음에 다시 대대로 들어가려 했으나 근무자에게 가로막혀 뒤로 밀려났다. 근무자는 어찌나 힘이 센지 도무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며, 소란을 일으키자 하나 둘 모여들어 무섭께 쏘아대는 바람에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분이 풀리지 않아 근처 나뭇가지를 꺾어 손으로 분질러가며 길을 내려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계속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진않았다. 무엇보다 몸이 너무나 피곤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꾸벅꾸벅 졸만큼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주머니를 털어보니 아까 분질렀던 나뭇가지 조각들과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청소기로 밀어버리고 침대에 몸을 뉘였더니 순식간에 잠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잠을깨어보니 역시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훈련은 내게 없었던 나날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내 기억이 없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에 빠졌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하며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이 일을 당시 술 안줏거리로 까맣게 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그 중 유일하게 아직 기억해주는 친구 한명과 많은 대화를 했다.

 

친구와 내가 공통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그곳이 평범한 예비군대대는 물론 아닐것이며, 기억을 삭제시킨 것 또한 그 예비군대대 누군가의 짓일것. 내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진 모르겠지만 밖으로 가져갈만한 기억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을것, 뭐 이런 얘기를 한참이나 나누고 있다가 친구가 문득 청소기를 뒤져보라 그랬다.

 

순간 나 역시 앗차 싶었던것이..현실이라면 청소기 안에 나뭇잎 찌꺼기들이 있을것이며, 가짜라면 나뭇잎 찌꺼기는 없을것이라..

 

 

이 사건 때문에 난 아직까지도 이 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것은 청소기안에 들어있던 나뭇가지들과 나뭇잎 찌꺼기였다. 대체 어디서 나온것일까? 그 장소에 갔다 왔다는것이 현실이라면 나는 대체 어느 시간대에 갔다 온것일까? 그곳은 대체 현실 어디에 있는것일까?

 

예비군 훈련 소집을 받지 않는다면 그곳에 관한 거의 모든 단서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직장을 쉬고 버스정류장에 가서 어떻게든 기억해내기 위해 운행 노선을 다 파헤쳐본적도 있다.

하지만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더더욱 괴로웠던 것은 그 이후 예비군소집이 굉장히 잦아졌다는 것이며, 이제 갈때마다 기억을 삭제 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만, 더이상 그 무엇도 그곳에서 파헤쳐낼 수 없다는 것 또한 답답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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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업무에 집중하고 다음화는 다음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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