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여 전달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도 그럴듯이 내 기억속 사건은 뒤죽박죽인데다 현재 진행형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 너그러이 해석해주시리라 믿는다.
기억은 상대적인 것이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사건속에 있다 하더라도 내 기억과 타인의 기억은 다르다.
나의 경우는 그 기억을 도둑맞았다. 다른 예비군 아저씨들이 어떻게 나를 기억할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속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내가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저 묵묵히 버스에 앉아 창밖만 바라봤다.
벌써 두번이나 연달아 기억이 지워진채 예비군을 다녀왔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얼떨떨해 하며 친구에게 허심탄회 털어놓았다.
친구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했지만, 답답함이 가라앉지 않는 내 표정을 찬찬히 살피더니 말해주었다.
니가 자꾸 사고를 치니까 기억을 지우는거 아닐까? 그냥 사고를 치지 않으면 지울필요 없으니 기억을 내버려둘꺼 같다 라고..
내심 그 말을 세겨 들었다. 다음번에는 그냥 순종적으로 착실히 근무만 서다가 오리라..
다시 소집날짜가 잡혔을때는 자포자기 한 사람 마냥 아무 생각도 없이 끌려갔다.
과연 그러했다. 바보처럼 그저 명령대로 근무서고 내무실에서 티비나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니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이제 딱히 대대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 대대에서 몇일을 보내던 내게는 그게 일상이 된 마냥, 정기적으로 캠프에 놀러온다 셈 쳤던것 같다.
그전과 달라진 것은 내무실이 바뀌었다는 점 밖에 없다. 늘 보던 그 내무반 현역들이 아닌 상대적으로 계급이 높은 현역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고, 늘 보던 옆자리 예비군 아저씨도 없었다. 그 내무실에 예비군은 나를 제외한 누구도 없었다.
그전까지는 항상 현역들과 같이 조를 짜서 밥을 먹었었는데, 예비군 동료가 없어지자 모든게 귀찮고 내맘데로가 되버린 나는 밥도 따로 혼자 먹게 되었다. 그냥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먹었던 것 같다. 메뉴가 맘에 안들면 PX에서 대충 떼웠다.
어느 한산한 저녁, 코다리 강정은 전국 어느 대대를 가든 맛이 없구나 하며 삼디다스를 질질 끌며 PX를 향해갈때 였다. 왜그랬을까? PX 옆 철창너머 보이는 탄약고에 눈이 멈췄다. 순간 몰려오는 호기심과 탐구욕이 주체할 수 없도록 심장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었다. 한참동안 주변을 서성이며 탄약고만 바라봤다.
그 안에는 뭔가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탄약이 아닌 그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은 기분. 그도 그럴듯이 탄약고를 들락거리는 그 어떤 보급병도 보지 못했다.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그 탄약고를 멍청하게 지키고만 있던것이다.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입구 외 출입루트가 있을거라 생각한 나는 사고를 치지 않기로 한 다짐은 까맣게 잊은채로 철창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과연 근무자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 철창 밑 지반이 헐렁한 곳이 있었다. 어떻게 몸을 우겨 넣어 기어 들어가면 가능하겠다 싶어 조심히 땅을 까고 기회를 틈타 잠입에 성공했다.
때마침 근무자들은 피곤했는지 저마다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탄약고 문까지 슬금슬금 다가간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철문을 들어올렸으나 큼지막한 자물쇠가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그 자태를 뽐냈다.
아뿔싸 하며 실망하고 있는 틈을 타 뒤에서 근무자가 달려와 내게 소리쳤다.
아저씨 또 그러고 있어? 당신 진짜 돌았어? 소리치며 다가오는 근무자를 멍청하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또]라니...난 이미 예전에 여기까지 왔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릴 스쳤다. 이대로가면 또 기억삭제가 될게 뻔하다 싶어 근무자를 보며 한번만 봐달라고 싹싹 빌었다.
다행히 근무자는 현역이 아닌 예비군이었고, 그는 또 내가 걸리게 되면 지난번 처럼 근무시간만 빡세질게 뻔하다며 내게 다시는 이러지 말라 꾸중을 주고 서로 없었던 일로 합의를 하고는 날 풀어주었다.
PX 앞으로 다시 내려온 나는 황급히 담배를 꼬나물고는 상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나는 예전에 이 대대를 들쑤시고 다니다 여러번 걸렸으며, 나로 인해 근무시간은 더 빡빡하게 배정되었으니 예비군 아저씨들의 원망이 가득한 상황이구나..
처음으로 기억이 지워진것은 아마도 첫번째 시도에서 내가 무언가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그 이후로도 난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대해 알아내려 애를 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상 성급히 진행하는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저 근무에 충실했다.
무려 2개월 가량을 그렇게 바보처럼 흐리멍텅하게 보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동안 그나마 있던 말동무 마져 없이 찌질이 취급 받아가며 버텨야 했다.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퇴소하고는 터벅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몇년이 지났건만 직행버스가 없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지긋지긋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택시를 기다렸지만 오지않았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릴때부터 이렇게 창밖을 보는걸 좋아했던지라 늘 보던 풍경을 여과 없이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닳았다. 지금 이 버스가 달리는 도로와 창밖 풍경은 분명 낯익은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타고 다녀서 익숙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버스를 타고 봤던 풍경이 아닌 다른곳에서 봤던 풍경처럼 느껴졌지만 그게 뭔 대수겠냐 싶어 한숨과 함께 넘겨버렸다.
집에 도착해 하룻밤 자고나니 역시나 세뇌에서 풀린것 마냥 기분이 묘했다. 무엇보다 의아한것은 그 어떤 시차적응도 없지만 기억만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서 차근차근 생각하다보니 탄약고 보다는 버스 밖 풍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디서 봤던 길이더라 싶어 한참을 궁리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급하게 컴퓨터를 켜서는 스트리트 뷰로 내가 살아왔던 지역들과 돌아다녔던 지역들을 하나하나 돌려보았다.
그렇게 한시간 남짓 돌려보던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타고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그 버스는 정상적인 길을 거쳐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길들은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기억속의 길들을 짜집기 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분명 그랬다고 충분히 확신할 수 있었다. 길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눈여겨본 이정표며 주변의 상점들이며, 모두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길이니까..
단지 교묘하게 짜집기 된 허상에 불과한것이리라..
그제서야 조금씩 감이 잡혔다. 그 버스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을..왜 항상 직행 버스가 없었는지를..갈아타는 지점까지 그 버스는 어디로 향하는지 사실 모른다는 것을..나와 같은 방향의 다른 예비군들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을..
이때의 추론 덕분에 나는 그 다음 있을 일들을 조금 더 수월하게 견뎌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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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조금 바빠서 업로드를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