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공포잡지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모년 모월호 투고 중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겪은 일이다.
전철을 타고 학교에 다녔던 나는 그 날도 미어 터질 듯한 전철에 올라탔다.
처음 이 전철을 탔을 때는 콩시루보다 더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을 보고 질리기도 했지만, 매일 아침 타다 보니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경지까지 올랐다.
체취가 심한 사람이나 향수로 머리를 감고 나온 것 같은 사람 근처만 아니라면 사람들 틈에 끼어서 서 있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같은 전철..
하지만 그런 변함없는 일상 속에서 그 날 아침 나는 조금 이상한 것을 목격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운 나쁘게 손잡이도 잡지 못하는 위치까지 밀려와 버린 나는 가방을 양 팔로 꽉 안고 다리를 조금 벌려서 조금 흔들려도 버틸 수 있는 자세로 서 있었다.
15분만 더 버티면 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철이 내가 탄 역을 출발했고, 나는 사람들 머리 사이로 겨우 보이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역을 지났을 때 즈음, 내 시야에 한 여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긴 갈색 머리카락과 뒷모습으로 봐서는 젊은 여성이라고 생각 됐다.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양복을 입은 남성을 올려다보며 계속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별로 신경쓰일만한 모습도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어서 계속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른 아침이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그런지 갈색 머리의 그녀의 무엇이 잘 못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던 나는 결국 내가 왜 그녀의 뒷모습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아 챘다.
여자의 얼굴 위치가 이상했다.
내가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완전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귀의 위치를 보면 머리도 정면을 보고 있는게 확실했다.
하지만 얼굴은 옆의 남자를 올려다보고 말을 걸고 있었다.
마치 가면을 머리 옆에 쓴 것 처럼..
그리고 더 불쾌했던 것은 그녀의 피부 색깔.
회색빛 피부 색과 보라색에 가까운 입술이 몹시 기분 나빴다.
내 위치에서 얼굴이 전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 높은 코와 바삐 움직이고 있는 그 입은 피가 통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와 1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종종 웃는 듯이 입이 크게 벌어졌지만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바로 귓가에서 말하고 있는데도 옆 남자에게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잇을 때, 전철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바깥이 어두워지자 자연스럽게 차창에 전철 안의 모습이 비춰지게 되었다.
차창에 비친 그 여자의 얼굴은 다행히도 정면을 보고 있었다.
회색 얼굴이 아닌 주위 사람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피부색의 예쁜편의 얼굴이었다.
내가 차창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아주 잠깐 눈을 뗐던 찰나에 그녀 머리 옆에 붙어있던 회색 얼굴도 사라져 버렸다.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그녀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 누가 물어봐도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얼굴이 사라졌는지도, 그 얼굴의 정체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도저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마냥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곧, 지금 떠올려도 식은땀에 오금이 저리고 손이 벌벌 떨려올 정도로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깜짝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려 봤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 본인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혼자..
한번 공포를 느낀 나는 내 시야 한 구석에서 움찔움찔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의 뒤통수를 도저히 다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 보는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그냥 그대로 곁눈질로만 훔쳐보는 듯이 서 있기만 했다.
조금씩 움직이던 그녀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점점 반으로 갈라지고 그 머리카락 사이로 회색의 코가 서서히 나온 것을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큰일이다.. 어쩌지..
콩나물 시루같은 아침 전철에 사람들 틈에 끼어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고개를 들면 그 것을 확실하게 봐 버릴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로 싫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더욱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 귀에.. 분명히 그 것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근소근..소근소근..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죽을만큼 듣고싶지 않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일까..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들릴 것 같은데..
..조금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향해 얼굴을 들려 한 순간 등 뒤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속삭이는 것에 관심을 보이면 안 된다. 모른척 하렴. 어차피 좋은 말은 안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 양쪽 어깨를 잡고 내 몸을 아저씨 쪽으로 돌려 주곤 몸으로 사람들을 밀치면서 나를 문 쪽으로 밀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당황함과 안도가 섞여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됐으니까 다음역에서 빨리 내리라는 말만 했다.
다음 역에서 인파에 섞여 전철에서 내린 채로 가만히 서 있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내리고 닫힌 전철 문에 달려있는 두 개의 유리창 한쪽에 나를 구해준 아저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의 유리창엔 갈색 머리 여자가 원래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옆머리에 아저씨를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노려보는 회색 얼굴이 보였다.
그렇게 전철은 다음 역을 향해 떠나갔다.
밥 꼭 챙겨먹고 좋은 하루 보내요.
출처 - 네이트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