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대의 초록환타님 작품입니다.
*국어사전
[명사]
1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초일(超逸).
미희는 한 남자의 품에 안겨 영화를 보고 있었다.
밀폐된 공간이었고, 단 둘이었다.
한껏 교태를 부리며 남자에게 안겨들어 보았지만,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는 싱긋 웃고는 미희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박미희, 너. 이러려고 비디오방 오자고 한거야?"
"아얏.. 오빠!"
울상을 지으며 소리쳐보았지만, 남자는 말없이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인영화를 보자는 미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가 선택한 비디오는 "맨 프롬 어스" 라는 영화였다.
동료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신이 1만여년간을 살아온 생명체라고 설명하는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흥미로운 SF영화 였지만, 지금 미희에게 관심사는 그의 옆자리에 있는 민지원이었다.
힘겨운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미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과선배들과 같은 나이의 동기들의 관심을 모조리 빼앗아갈 정도의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여자다루기에서는 모두 한가락한다는 대학교 내의 플레이보이들이 한 번씩 그녀에게 대쉬를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거절이었다.
"첫눈에 반하는 남자가 아니면, 절대 사귀지 않을거야"
미희의 여자친구들로부터 단단한 엄포를 전해들은 남자들은 모두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포기했다.
그후, 대학교 2학년이 될 동안 미희에게 접근해오는 남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었다.
매년 들어오는 신입생들만이 눈을 빛냈다.
"선배, 저랑 커피 한잔.."
"미안, 레포트 써야해서"
하지만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내의 잘생겼다는 모든 남자들이 두발 두손 다 들어버린 그녀.
그런 그녀가 한 남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미희는 자신에게 수도 없이 다가오는 남자들이라면 질리도록 겪어 보았다.
중학교 시절의 풋내나는 남자들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러 제법 남자다운 면모를 보이는
사내들까지.. 대학교에 와서는 캠퍼스 내 열애담에서 그녀가 빠진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았던 남자들중에서, 그녀의 맘에 드는 남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때문에 그만한 미모를 지닌 그녀는 아직까지 순결을 유지한 처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한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한 것은 한 커피숍에서였다.
흔히 그렇듯 아르바이트를 하기위해 찾은 커피숍-
그 날하루 커피숍 일을 익힐겸 예비 알바를 하던 그녀에게 그가 보였다.
딸랑-
아늑하게 꾸며진 커피숍 내부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
커피숍에서 지급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앞치마를 매고 있었다.
피곤해보이는 얼굴은 놀라울정도로 수려했고, 마른듯하지만 단단해보이는 몸이 이채로웠다.
못되어도 185CM는 될법한 호리호리한 장신의 남자였다.
수많은 남자들을 접하고 보아온 그녀지만, 분명 그를 처음 본 순간 심장박동이 빨라지는걸 느꼈다.
"아.. 안녕하세요"
남자는 피곤해보이는 얼굴로 살짝 웃어보이고서는 말했다.
"새로 들어오셨나봐요?"
심장이 점차로 세차게 뛰었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미희는 이런 순간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두근거리고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은 그녀를 앞에둔
남자들이었지,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간신히 대답했다.
"네.. 오늘.. 들어왔어요"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대답했다.
"아, 정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 이름이?"
미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박미희요"
남자가 웃었다.
"저는 민지원이라고 부르세요"
미희는 집에 돌아와서도 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민지원이라구..' 계속해서
그가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그동안 차버렸던 수많은 남자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도 느껴졌다.
그들도 날 보며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친구들과 여행가기로 한 돈을 모으기 위해 대충 한달을 메우고 나올 생각이었던 가게였다.
하지만, 미희는 그러지못했다.
민지원은 바리스타(Barista)였다. 그의 솜씨는 매우 좋았다.
근방의 출근하는 모든 직장인들은 덕분에 이 커피숍으로 왔고, 거기에 상당수가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항상 미희가 가지는 불만이었다. 커피숍알바를 7개월 가량 하고 얻은 것은,
민지원은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헤프다거나, 여자를 밝힌다거나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그냥, '친절' 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아리따운 여사원과 대학생들이 수도없이 핸드폰 번호를 물어봐도 그는 미소지으며
번번히 정중하게 거절했다. 미희는 지원의 모든 면에서 점차로 빠져들어갔다.
외모만 가지고는 그녀를 사로잡을 수 없었다.
지원은 확실히 무언가 있었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냐고 물어봐도 웃으며 대답해주지 않고, 고향과 나이를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책을 좋아하던 그녀가 바에 앉아 책을 읽을 때마다
책의 줄거리와 작가의 사상, 그리고 문장의 뜻한바를 정확히 짚어내는 머리로 볼때
절대, 그가 지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항상 그녀가 꺼내는 화제의 몇수 앞을 파악해냈으며, 상당히 풍부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
무어라고 해야할까?
그가 가지고 있는 그것은 지칭하기 힘들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결단력이 뛰어난 온유함?
있긴 있었다.
마치 인생을 거진 살아낸 늙은이의 연륜같은.. 무언가가.
비오는 늦은 저녘, 손님이 아무도 없는 시각 지원은 손수만든 카푸치노 커피를 미희에게
내밀었다. 멋진 솜씨였다.
라떼아트로 꾸며진 잔 위의 하트.
밀크와 크림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사랑의 표식이다. 미희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가 끝나고 잠시 같이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지원은 미소지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것이 미희에 대한 관심일까, 아니면 단순한 '친절함' 일까?
그녀는 오늘 밤 지원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게 지금의 결과였다. 상념을 끝낸 미희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미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원은 옆에서 영화에만 몰두해 있었다.
맨프롬어스는 거의 끝이 났다. 지원과의 데이트에 흠을 남기기 싫었던 그녀는 그가
자신이 이미 본 영화를 보겠다고 꺼내들었을때도 모르는 척했다. 맨프롬어스는 미희가 이미
본 영화였다.
그때였다.
"미희야"
"응?"
대뜸 조용히 퍼지는 지원의 목소리, 왠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미희는 지원이 정색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말했다.
"왜.. 왜 불러?"
지원은 말한마디도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그녀만을 주시하는 하얀
눈동자 두개가 갑자기 섬뜩해 보였다.
분명 좋아하는 사람의 눈동자인데,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다..
미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너, 저 영화 봤지?" 미희는 깜짝놀라 대답했다.
"어, 어? ...응"
왜 못본척 했느냐 따질줄 알았던 그녀는 아무 말없이 있었다.
"저 주인공 말야.. 흥미롭지 않니?"
이건 무슨 소린가 싶어서 어리둥절하던 그녀는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마,맞아! 정말 흥미롭지.. 유전자가 자가변이를 통해서 1만여년을 산 남자라.
난 가끔 저 영화의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해"
"그렇지?" 지원은 눈을 번뜩이며 스크린을 보았다.
"만약 1만여년을 산 남자가 정말 세상속에서 우리들과 섞여 있다면 어떨까?"
"응?"
"그 남자는, 저 영화처럼 단순히 무한한 수명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정말 특별한 유전변이를
거쳤어. 아마 지구상에서 단 한명뿐일거야.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떨거 같아?"
미희는 갑자기 지원이 저런 질문을 하는것이 의아했으나, 보다 많은 말을 나누게 된것이 좋았다.
"글쎄.. 있다면야 한번 만나보고 싶은걸. 그런데 갑자기 왜?"
지원은 다시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이. 만약 너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미희는 비명을 질렀다.
지원의 입가가 양입꼬리부터 길게 갈라지며 열렸다.
마치 물풍선이 찢어지든 순식간에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머리는 커다랗게 아가리를 벌렸다.
침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가로로 쪼개져 벌려진 입사이로 무수한 이빨들이 돋아있는 것이 보였다.
"배..배가 고파"
비명은 잠시였다.
츄왁!!
미희의 머리가 단숨에 사라졌다.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얼굴은 이제 침 대신 피를 흘리며 우물 우물 그것을 씹어먹었다.
고무튜브속을 무엇인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은 입안에든것을 꿀꺽 삼켰다.
이내 한쪽 손으로 다리를 잡아 올린 그것은
남은 미희의 몸뚱아리를 마저 입속에 쓸어 넣었다.
게걸스럽게 씹는 그것의 입사이로 끈적한 피가 떨어지다 맺혔다.
한 여자를 먹어버린 그것은 만족스럽게 트림했다.
긴 혓바닥을 꺼낸 그것은 피가 튄 TV화면과 가죽침대를 핣았다.
한 차례의 식사를 끝낸 지원은 다시 여자를 끌어들이는 마약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수려한 외관은 아름다웠다.
"어느 시대건 미인이 더 맛있더군, 몇년간은 배고플 일이 없겠어"
지원은 가볍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