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큼한 국물 한 술에 잃었던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 제기랄.
얼마 전 나는 병원에서 깨어났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우스운 꼴로 깨어났는데
원인은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강타 당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를 친구가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날 있었던 일과 더불어 기억을
일부분 잃어버렸다.
경찰에서는 흉기로 사용된 둔기는 찾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사건 당일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모습을 감추었고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 역시 사고 후
후유증으로 룸메이트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 친구가 어떤 친구였고 나와 어떤 사이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지금 그 기억의 일부가 돌아왔다.
나를
향해서 둔기를 무참히 휘두르는 놈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광기에 휩싸여 둔기를 휘두르던
그 놈.
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기억이 돌아온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둔기를 휘두른 녀석이 나의 친구고, 오늘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표정이 왜 그래? 맛이 없어? 좀 오래된 재료를 써서 상했나?”
그렇게 말하고는 녀석이 매운탕의
국물을 한 술 떴다. 핏기 없는 입술을 두어 번 쩝쩝 거리더니 나를
다시 바라본다. 국물이 녀석의 거뭇거뭇한 턱수염을 타고
흐른다. 짐승 같다.
“맛에는 이상 없는데?”
입맛을 다시며 녀석이 붉은 혓바닥으로 입가를 훔치는데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알던 친구의 모습이 아닌
광기에 휩싸여 둔기를 휘두른 녀석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그랬다.
“아냐, 오랜만에 먹었더니, 맛있어 괜찮아”
젓가락을 더듬거리며 반찬을 헤집었다. 김치,
계란찜, 멸치 볶음 자취방에서 해먹는 거 치고는 화려하다.
나는 자잘한 멸치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최대한 기억을 찾기 전
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멸치를 잘근잘근 씹었다. 입 안에 짭조름한 향이 퍼졌다.
“기억은 잃었어도 미각은
돌아왔나 보네, 혹시 기억도 돌아온 거 아냐?”
목구멍 안이 근질거리더니 이내 기침을 쏟아냈다.
“뭐?
콜록 콜록”
“야, 뭘 놀라고 그래”
사래가 들어 기침이 나왔다. 기침을 하는 순간에도 녀석의 눈치를
봤다. 지금 나를 떠보는 건가?
그 날 기억이 내게도 남아있는지 묻는 건가? 아직 기억의 일부라서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녀석이 둔기로 내 머리를 강타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모른 척을 하며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아직은 기억나는 게 없다.”
“그래? 빨리 돌아 와야 할 텐데”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건네는 말 한마디에도 몸이 움찔했다. 머리가 복잡하다.
경찰에 우선 신고를 할까? 아니면 좀 더
알아봐야하나?
사실 기억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룸메이트가 나를 둔기로 강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모습을 감췄으니까.
“왜 이렇게 못 먹어? 더 먹어”
녀석이 내 그릇을 들고 직접 매운탕의 국물을
펐다. 시뻘건 국물을 국자로 퍼내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조금만 줘, 입맛이 없다.”
“왜? 많이 먹지?”
“근데 말이야”
“응?”
녀석이 그릇을 내
앞에 둔다.
“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친구들이 나를 응급실에 데려다 준 거 말고, 그날 있었던 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거나 아니면 룸메이트는 그날 어땠는지”
뒤로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진다. 점점 작아진 목소리 끝에는
적막만이 남는다.
모르는 척하며 넌지시 물었다. 녀석이 왜 그랬는지 왜 숨기는지 알고 싶었다.
“쪽”
녀석이 국물이 묻은 손가락을 쭉 빤다.
“룸메이트는 네가 더 잘 알지, 그래서 네가 기억을 빨리
찾아야 하는 거고”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줘?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기억을 조금 되찾고 나서부터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미 친구와 우정을 다지기 위한 단촐
한 저녁식사는 없다. 녀석이 내게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게 거짓일 수도 진실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들어 보기로
했다.
“말해줘”
녀석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누가 네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는지는 몰라, 그건 정말 몰라”
순간 머릿속에 둔기를 휘두르는 놈이 겹쳐 보인다. 거짓말,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룸메이트에 대해선 알아, 룸메이트에 대해 말하자면”
“룸메이트는?”
녀석이
뜸을 들인다. 내 온 신경의 녀석의 입을 향했다.
무슨 말을 해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해야지.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룸메이트는 네가 죽였어”
무슨 말을
내뱉더라도 놀라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와르르 무너졌다.
놀라서 기침이 다시 나왔다. 잘못 들은 건가? 누가 누굴
죽였다고?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서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지만 사실이야, 룸메이트는 네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고? 사실이야? 내가 왜?”
“이유는 모르지 너랑 그 룸메이트랑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 난 그저 목격했을 뿐이야, 아 물론 네가 머리를 다친 그 날이랑은 상관없어. 그 전에 룸메이트는 이미 죽었었어. 내가 생각해본 건데
아마 네 머리를 내려친 범인은 네가 룸메이트를 죽인 사실을 알고 룸메이트의 복수를 하려는 걸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녀석이 설령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 자체가 듣기 거북했다.
내가 룸메이트를 죽였다고? 그럼 그 기억은 뭔데?
둔기를 들고 휘두르는 너는?
“네가 기억 못 한다고 했을 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 날 이후 너 엄청 이상해졌거든, 뭐
원래 정상은 아니었지만”
“왜 신고하지 않았어?”
의문이었다. 아무리 친구라도 살인사건을 목격해 놓고
신고하지 않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다.
녀석은 지금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나를 속이는
것이다.
“저녁식사"
"응?"
"너한테 대접받은 저녁식사, 그리고 나도 너를
도왔으니까”
“돕다니?”
“죽인 건 너였지만 수습은 같이 했어.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지”
“난 기억이 없어”
“지금 네 생각이 어떻든 말릴 생각은 없어. 덮어달라면 무덤까지 덮어둘
거고, 자수를 한다면 말리지 않겠어.”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어보였다.
네가 룸메이트를
죽이고 나까지 해치려고 했던 거겠지.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잠깐 화장실
좀”
일어나려는 순간 매운탕의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다. 순간 여러 가지의 기억 조각들이 뒤엉켜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왜 그래?”
“잠깐 부엌 좀”
놈들에게
숨이 멎을 때까지 두드려 맞았다. 룸메이트와 그의 친구. 고기는 연해야 맛있다며
나를 미친 듯이 두들겼다. 증거를 먹어서 없앤다는
끔찍한 생각과 함께 그 날 나의 몸뚱이는 잘게
저며진 채 그 사이코들의 저녁 밥상에 올려졌다. 멸치볶음 계란말이 김치 등
자취생치고는
호화스러운 반찬들과 함께. 그리고 며칠 후 눈이 떠졌다. 기억이 돌아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나를
죽인 룸메이트의 몸 안에 있었다.
빙의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녀석이 내 머리통을 통째로 삶아먹어서 그런가?
룸메이트의 몸에 들어 간 나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하다가 집 안을 샅샅이 뒤졌다.
나의 몸으로 생각되는 고깃덩이와
뼛조각 따위를 찾아냈다.
그런 걸 보고도 이 놈의 몸뚱이는 구역질 한 번 하질 않았다.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둔기를
집어 들어 스스로 머리통을 내려쳤다.
둔기가 머리에 닿기 잠깐의 찰나, 아차 싶었다.
‘아 맞다 한 놈 더
있었는데.’
이제야 왜 이 친구가 내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모습이 떠올랐는지 생각났다.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빨간 식칼을 꺼내 들었다. 살금살금 다가갔다. 녀석으 밥 먹는데 집중하느라 아무 것도 몰랐다.
망설임 없이
녀석의 목을 찔렀다.
갑작스런 상황에 놈은 저항도 못했다. 칼을 꾹 쥔 엄지손가락에 녀석에 목에 닿을 때마다
녀석의
목이 덜렁거리며 움직였다. 녀석의 피가 밥상 전체에 뿌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자를 들어 매운탕을 뒤적였다. 자잘한 뼛조각이
나왔다.
터벅터벅 빨간 발자국을 만들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이 녀석이 죽는 모습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 날 저녁 맛있었지?”
-웃대 펌-
작성자:oslo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