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때,
만약에 그때 집에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가끔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만약에' 라는 단어로 과거를 치환하는건 불가능 하다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에 그때 집에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혹은
내가 어머니를 찾아보겠다며 나서기 라도 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 본다.
"어머니 계시니" 라고 옆집 미루 엄마는 내게 물었다.
나는 중학교 삼학년 이었고
그날, 토요일은 12시부터 보충 학습이 있는 날 이었고.
그래서 나는 11시경 집을 나서기 위해 준비 중이었으며.
어머니는………
어머니는 그때 같은 아파트 다른 집에 마실중 이셨다.
웬일인지 미루 엄마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중학교 3학년의 남자 아이는 단지 목소리가 좀 힘이 빠지고 이상하다는 것 만으로
무언가의 예시를 느낄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어? 엄마 지금 안계시는데요" 라고 빼꼼히 연 문으로 나는 대답했고
"그러니?" 라고 미루 엄마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뒤돌아 섰다.
그때 나는 어머니를 찾아 나서야 했다.
최소한
'잠깐만 계셔 보세요 엄마 금방 찾아 올게요' 라고 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나는 예정대로 짐을 꾸려 학교로 나섰고
평상시 대로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화창한 토요일 보충 수업을 받았고
그리고 옆집 미루 엄마는
10층에 위치한 아파트 복도에서 단단한 시멘트 바닥 아래로 몸을 날렸다.
단지 우연일 뿐이다.
그 시간에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았던 것도.
혹은, 내가 보충수업에 늦을까봐 부랴부랴 짐을 꾸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도.
모든 것은 우연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만약' 이라는 단어로 치환 될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벌어진 일이고 지나간 일일 뿐이다.
미루 엄마는 항상 친절 했다.
항상 밝았고 정말 고운 마음씨를 지닌 옆집 새댁의 이미지 그대로 였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오다 마주치면 웃으며
"이제오니? 힘들지? 요즘 학생들은 힘들어서 어쩌니" 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고
각종 아파트 행사에 앞장서 나섰으며 가끔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낯 모르는 늙은 할아버지에게 집에서 못입는
옷가지를 들고 나가 전해 줄 정도의 넓은 마음을 가진 그런 고운 심성을 가졌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가끔 모여 타인의 신상을 거리낌 없이 풀어 놓는다.
"글쎄 미루 엄마는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친정에서 사위는 무조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 그래서 억지로 헤어지고 지금 신랑하고 결혼 한거라네"
"미루 엄마 시어머니가 여간 아냐 어휴, 끔찍해 끔찍해. 아주 며느리를 쥐잡듯이 잡아"
동네 아줌마들은 타인의 신상을 풀어 놓는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중학교 삼학년의 내 귀에도 미루 엄마의 대략적인 신상정보는 들어 온다.
가끔 노래를 흥얼 거렸다. 미루 엄마는.
복도형의 우리 아파트에다 내방은 복도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루엄마가 흥얼 거리는 노래 소리는 바로 내방으로 타고 들어 왔다.
"흠~ 흐흐흐흠~~흐흠~ 흐흐흠~~~"
나중에 내 나이가 들어,
미루 엄마가 자주 흥얼 거렸던 노래가 모짜르트의 편지이중창 이었던걸 알았다.
미루엄마는 그 노래를 아주 좋아 했다.
가끔 공부를 하다 아줌마가 노래를 부를 때 볼펜을 놓고 가만가만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인 적도 있었다.
노래는 아주 사근사근히
내가슴에 침잔 했다
"글쎄 피가 사층까지 튀었대"
보충 수업을 마치고 저녁나절 집에 돌아오니 우리 집에 동네 아줌마 들이 모여 있었다.
"청소 아줌마가 봤는데 무슨 박스가 떨어진 것 처럼 보였다네"
동네 아줌마들은 늦은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들을 하고 있었고,
궁금증에 나는 누나방으로 건너가 무슨일이 있었나 물었다
"글쎄 미루 엄마가 복도에서 뛰어 내려 자살 하셨대"
누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고, 그 말을 듣는 나는 온몸에 소름이 찌르르 퍼졌다.
한동안 나는 밤에 복도를 나가지 못했다.
화장실에서 문을 닫고 머리도 감지 못했다.
그때,
그 아파트 우리층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 했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더더욱이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죽음을 체험하게 된다면,
공포는 배가 된다.
상상은 극대화 되고 극대화 된 상상은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은 흘렀고.
하루하루의 시간만큼,
딱 그만큼.
우리는 조금씩 미루 엄마를 잊어갔다.
아니.
그렇게 조금씩 잊혀져 가는듯 했다.
내가 미루 엄마를 본 것은
그때부터 한달쯤이 지난 어느날의 저녁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