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배가 고팠다. 서른여섯이라는 어정쩡한 나이에 카드빚과 사채로 직장과 집을 모두 잃었고, 길거리 생활을 한 지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더 이상 추운 길바닥 생활은 하지 않아도 됐다. 직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도둑질은 직업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 돈으로 단칸방이나마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죄책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도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첫 한파가 몰아치자 A는 여기저기 공사장을 기웃거렸다. 겨울이라 인부들이 빨리 자리를 떴고, A가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근방 수 백 미터가 아파트 신축 공사장이 되어버린 서울 외곽. 중장비가 있는 곳에는 A가 노리는 것도 항상 같이 있었다.
해가 진 시각. 번호판이 없는 스쿠터에 휴대용 기름통을 싣고 공사현장으로 들어간 A는 얼굴을 가린 채로 드럼통들이 있는 건물 지하실로 들어갔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막힘없이 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었다. 손전등으로 내부를 비추자 오른쪽 벽에 낡은 소파 하나와 인부들의 작업복을 놓아두는 곳이 보였고, 왼쪽 구석에는 큰 드럼통 열 개 가량이 대충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A는 한 손에 휴대용 기름통을 두 개 씩 들고 드럼통 앞에 섰다. 확인해보니 총 열 개의 드럼통 중 하나는 비어있었고, 나머지 아홉 개는 묵직했다. 묵직한 드럼통 중 첫 번째 작은 뚜껑을 열자 A가 기대하던 석유냄새가 코를 쐈다. 기분이 좋아진 A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드럼통 위에 휴대용 기름통을 얹어놓고 흰색 기름펌프를 사용해 기름을 쭉쭉 뽑아내기 시작했다. 누르스름하고 약간 투명한 경유였다. 그런데, 한 통을 거의 다 채워갈 무렵 펌프를 통과하는 기름의 색이 검게 변했다.
펌프질을 멈춘 A는 다른 기름통으로 바꾼 후 다시 펌프질을 했다. 검은 빛을 띄는 액체가 계속 올라왔다. 기름 냄새가 섞여 냄새로는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A는 하던 일을 멈추고 드럼통의 큰 뚜껑을 열었다. 손전등으로 드럼통에 든 내용물을 확인한 A는 너무 놀라 “끄악!”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드럼통 안에는 사람의 검게 탄 시체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끔찍한 모습에 A는 드럼 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리곤 다리에 힘이 빠져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A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인가. 그러면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냥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저벅 돌아갈까. 그 시체는 저벅 누구의 저벅 시체일까. 저벅. 아차! 발소리다! A가 생각하는 동안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지하실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A는 주위를 살피다가 가지고 온 기름통은 드럼통 사이에 숨겨놓고, 비어있던 드럼통 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고 숨었다.
지하실 문이 삐걱하며 열렸고, 저벅 저벅 발소리가 문 바로 안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찰칵하고 전등스위치 켜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그럼 다른 데서 난 소린가?”
낯선 목소리를 숨죽여 듣던 A는 조금 안도하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이 시간에 인부가 있을 줄이야. 조사할 때 빠뜨렸나.
저벅 저벅 저벅. 낯선 발자국이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뭐지? 들킨 건가? 발자국 소리는 A가 있는 드럼통 근처에서 멈췄다.
“이 지하실만 오면 이상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기름 냄새 때문인가? 아무튼 돌아가서 보고해야지”
저 사람이 나가면 바로 돌아가야지. A는 안심했다.
그때, A의 드럼통의 작은 마개가 열리며 액체가 줄줄 부어졌다.
“라고 할 줄 알았지? 키히히히히”
냄새가 분명히 경유 냄새이다. 으악! A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드럼 위 뚜껑은 무거운 것에 눌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름이 A의 발목까지 차자 이번엔 불붙인 종이가 들어왔다. A는 괴로워하며 죽어갔다. 낯선 사람은 드럼통을 밟고 올라서 있었다. A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결국 A가 조용해지자 그는 씨익 웃으며 드럼통 안을 기름으로 채워 넣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열 명 다 채웠다 키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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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단편소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