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인 한철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있었다.
성실한줄만 알았던 알바생 지영이가 미리 양해도 구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편의점을 운영하는 철희는 무엇보다 새벽 2시라는 어중간한 시간에 잠에서 깬 것이 제일 화가났다.
마흔번 째 생일날, 다니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종용당한 철희는 담배까지 끊으면서 지독하게 모은 돈으로 연 편의점이다.
알바생이 한시간 째 안 보인다는 맞은편 호프집의 최사장의 전화에 갓 돌이 지난 막내가 깨 울어재끼는 바람에 잔뜩 짜증이났다.
뽑은지 7년이 넘은 스포티지를 몰고 편의점에 도착한 철희는 매장 계산대 앞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손님들을 보고 황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알바생이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손님들은 괜찮다며, '더 원' 세 갑을 사서 돌아갔다.
철희는 카운터 정리를 끝내고 냉장고를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입에서는 "아... 씨파..."하는 한숨섞인 욕지거리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냉장고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었다.
소송을 걸어서라도 전깃세를 받아내야하나 하는 짧은 고민 후에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엎친 데 덮친 격.
주스세트가 터졌는지 버얼건 즙이 바닥에 고여있었다.
"요게 사고치고 도망친 거 아냐?"
순간 욱하는 마음에 옆에 있던 맥주캔을 던지려다가 어차피 자신이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멈췄다.
심호흡을 한 철희는 걸레를 가지러 청소도구함으로 갔고, 그 문을 열자 복부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웬 괴한이 마스크를 쓰고 철희를 찌른 것이다.
충격으로 사고가 멈췄다.
통증에 허리가 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옆으로 쓰러진 철희는 좁은 사무실 구석에 있는 컴퓨터 책상 밑에 눈을 뜬 채 굳어버린 지영이를 발견했다.
"아이 씨/발, 아까 그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벌써 튀는 건데."
철희와 지영을 찌른 남자는 이 말을 남긴 뒤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