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는 귀신이 살고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장실은 귀신에게는 꽤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데다가 습기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을 꼽으라면 역시 여러분과 단 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죠.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 있는 시간동안 편안함을 느낍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함과 동시에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매듭을 해결하기도 합니다. 낮에 읽었던 시 구절을 읊어보기도 하고 개인적인 사색을 하기도 하죠. 물론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합니다. 화장실 귀신은 여러분이 화장실 문을 잠그고 변기에 걸터앉자마자 여러분에게 다가갑니다. 여러분의 어깨 위에 살포시 앉아서 여러분의 머리를 주시합니다. 화장실 귀신에게는 일관된 관심사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머리카락을 세는 일이죠.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세는 것이 마치 의무인 것처럼 모든 귀신들이 몰두합니다. 결코 대충 세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능숙합니다. 머리카락을 다 세면 어떻게 하냐구요? 머리카락을 전부 센 귀신은 그 사람에게 흥미를 잃고 곧 잡아먹어버립니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여러분이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는 팁을 하나 드릴게요. 어렵지 않은 방법이니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귀신이 머리카락을 세는 도중에 고개를 흔들어버리면 그 귀신은 어디까지 세었는지를 잊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세기 시작합니다. 그럼 머리카락이 없는 분은 어떻게 하냐구요? 그런 경우에는 머리카락을 세는 대신 수염을 세거나 속눈썹을 세거나 그 마저도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참, 그렇다고 너무 자주 머리를 흔들지는 마세요. 화장실 귀신도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을성 없는 귀신이라면 머리카락 세는 것 따윈 포기하고 바로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요. 바로 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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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어딘가에서 보신 적이 있다면... 맞습니다. 95년도에 이 책을 읽고 기억에 남아서 거의 20년만에 재구성했습니다. 혹시 원본을 아신다면 꼭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