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루 엄마가 자살을 한 후 얼마동안
아파트 우리 층 주민들은 거의 패닉에 빠졌어.
우리는 신문과 방송에서 날마다 자살에 관한 소식을 접하지만 실상 그 일이 내 옆에서 일어 났다고 생각해봐.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하던 그 사람이 갑자기 죽은거야.
그것도 우리가 사는 층에서 투신으로.
다른 층 주민들은 어땠는지 알수 없지만 하여간 우리층 사람들은 공포에 빠졌어.
그때 우리 아파트는 복도식 이라 층에 12가구가 살았어.
그리고 집집마다 모두 친했는데 일종에 단체 공포심이 생겨 난거지.
물론 나도 그떄 굉장한 공포감이 들더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집에 들어갈때 까지의 스산함은 물론이고 머리 감기도 무서워.
특히 머리 감을 때 제일 공포감이 극대화 되더군.
누가 쳐다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야.
눈감고 머리를 비비고 있는데 손이 하나 더 스윽~ 내려와 내 머리를 만질 것 같은 공포심 같은것 말이지.
그리고 그때 참 웃겼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그런 일이 있었나 의심이 갈 정도지만
그 일이 일어났던 다음날 어딘가 나갔다가 조금 어둑어둑할 때 집에 들어 가는데 우리 층수에 서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바로 정면에 시커먼 관이 바로 떡 서있더라구.
정말 심장 멎는줄 알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스윽 열리는데 정면에 시커먼 관이 벽에 기대져서 떡 하고 서있는 거야.
문짝에 한문으로 뭐라고 크게 두글자가 써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잘 모르겠고.
정말 놀라서 집앞까지 한달음에 뛰어 들어 갔지.
그런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가물가물 한거야.
분명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던건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정말 그런일이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도 들고 말이지.
왜냐하면 너무 이상하잖아? 그 집으로 관 자체가 들어올 일이 없는 상황 이거든.
집안에서 죽은것도 아니고 시신이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서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내 스스로 그 기억들을 무엇인가 오류가 난 기억의 칸에다 편제를 바꿔 놓았던 것 같아.
분명 내가 봤던 시각의 형상들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지.
내가 그 일이 있고 한달정도 있다가 미루 엄마를 본것도 그저 기시감 비슷한 걸로 치부해 버렸어.
미루 엄마가 죽고 한달쯤 후에 아파트 복도를 지나 우리집으로 가는데 미루네 집 문이 열려 있는거야.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데 말이지,
얼핏,
집안에 미루 엄마가 거실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더라구.
그때 왜 그랬는지 그냥 ‘아! 미루 엄마가 청소를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 하고 집에 들어 갔는데.
집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 놓고 책상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쫙~ 올라오는거야.
이상하지? 왜 그때 미루 엄마가 청소 하고 있는 상황에 전혀 괴리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한 동안 두려움에 떨었는데, 그 얘기는 가족이나 아무 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어.
왜 그런거 있잖아, ‘내가 착각 했겠지’
사실 이라면,
사실이라면 그 공포감을 견딜수가 없잖아.
그렇게 진실의 저편 깊숙히 어딘가에 담아 놓기로 했어.
그러니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수 없었던 거지.
사람의 망각 이라는게 참으로 신기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또 내가 무엇인가 잘못 봤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는거야.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이잖아.
뭐 어쨌든, 사실 이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아.
그렇게 한동안 우리 아파트 주민 대부분이 공포에 휩싸인채 지나갔어.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나갔고 우리의 공포심은 딱 그 하루의 시간만큼씩 희석되어 갔어.
물론 중간중간 1002호집 아줌마가 복도에서 미루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적이 있다고 목소리 낮춰 은밀히 얘기하는걸 지나가다 들은 적도 있었고,
1006호 아저씨가 고주망태가 되어서 밤에 들어 오다 복도 끝에 서있던 미루엄마의 형상을 보고 깊은 새벽에 복도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등의 몇번의 소동이 있었지만,
그것도 그때의 작은 소동일뿐 결국 우리는 차근차근히 평범한 자기 일상으로 돌아 왔어.
그런 것 아니겠어?
결국 인간 개개인 누구나의 삶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잖아?
남겨진 자는 결국 스치운 자국을 어떻게든 하루하루 메워가며 제자리를 찾아 간다구.
그렇게 아무일 없이 3년이 지났어.
아 참! 아무 일이 없지는 않았지. 아까 말한대로 일련의 작은 소동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바쁜 일상으로 공포감을 꾸역꾸역 지워가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구.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나는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어.
그리고 삼년이 지난 그해
미루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다.
사실 우리는 미루네집이 이사를 갈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계속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 집에 계속 살더라구.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미루의 할머니가 오셔서 미루를 봐주셨던 걸로 기억 나는군.
지금 생각하면 왜 이사가지 않고 계속 그 집에 살았는지는 많이 의아해.
내 기억에 사건 당시 미루가 초등학교 1학년쯤 됐을거야.
아무것도 모를 나이가 아니란 거지.
그 아파트에서 계속 큰다면 모친의 죽음이 여러가지 종류의 트라우마로 작용할 위험도 있는데 말이지.
어쨋건 내 알바 아니지만 미루네 집은 여전히 그 집에 계속 살았어.
그리고는 재혼을 하신거지.
물론 미루 엄마가 돌아 가신 뒤에 동네 아주머니들도 그 집과 왕래가 전혀 없어서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그 집에 들락날락 하니까, 그리고 미루가 갑자기 그 처음 보는 낯선 여자에게 “엄마” 라는 단어를 쓰니까 알게 된거지.
당연한 일이라고 라고 생각 했어.
미루도 조금씩 커가는데 당연히 엄마가 있어야지.
“근데 너는 요즘 이상한 소리 못들어?”
라고 어느날 옆집 미란이가 뜬금없이 나한테 묻는다.
미란이는 우리 옆집에 살던 동갑내기 여자 아이야.
같은 학년에 동글동글, 뽀얀피부에 이쁘장하게 생긴 아이 였어.
나는 숫기가 없고 사교성이 부족한 반면 그 아이는 아주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어.
그때 동네 아주머니들은 서로의 집에 자주 들락날락 자기 집처럼 드나 들었고,
그 아이도 자기 엄마를 따라 우리 집에 자주 왔었기 때문에 우리는 친했었지.
그 때가 아주 더운 여름 밤 11시경 이었던걸로 기억해.
밤 늦은 시간 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다 잠들어 있었고 나는 내방에서 무언가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내방 창문으로 뭔가 허연게 스윽 나타나더라구.
심장 떨어지는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미란이야.
“너 안자?” 라고 그녀는 나한테 말을 걸었어
“어? 응. 책 좀 보느라고”
“그래? 안자면 나랑 놀자” 라고 얘기 하면서 그녀는 내방으로 들어 왔어.
그때 우리 아파트는 여름이면 현관문을 다들 열어 놓고 있었거든.
그렇게 그 아이가 내 방으로 들어 와서 내방 의자에 앉는데 막상 그 아이가 내 방으로 들어 오고 나니 기분이 묘해 지는 거야.
더운 여름 밤 늦은 시간에 여자 아이가 나시에 숏팬츠만 입고 동갑내기 남정네 방에 들어 오다니,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이건 그림이 좀 이상 하잖아.
그런데 뭐 안방문, 건넌방문, 현관문 다 활짝 열려 있고 하니 그려려니 했어.
“웬일이야? 이시간에” 라고 물으니 갑자기 자기랑 놀자는 거야 공부하기가 너무 지겹다고.
그래서 내가 웃으며 말했어
“잉? ㅋㅋ 이 시간에 뭐하고 놀아? 고스톱 이라고 치랴?”
라고 말하니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우리 고스톱 치자, 화투 가져와봐” 라고 말하는 거야.
이게 적성에 안맞는 공부하다 쳐 돌았나 싶었지.
내가 어렸을 때 굉장히 보수적 이었어.
보수적인 것도 보수적인 거지만 그 상황은 너무 웃기잖아?
아무리 시대가 바뀐다 해도 남녀가 유별한데 다 늦은 밤에 단 둘이 앉아서 고스톱 이라니.
그래서 내가 목소리를 짐짓 가다듬고 낮고 차가운 톤으로 그녀에게 말했어.
“판돈은……… 준비 됐나?”
그녀는 집에서 동전을 가져 왔고 나는 마루에서 화투를 들고 꺼내왔어.
그리고 우리는 내방에서 판을 벌렸지.
한여름 밤에,
고3 남녀 둘이,
핫팬츠에 나시만 입은채 우리는 고스톱 삼매경에 들어 갔어.
어쨋건 가족들이 다 잠든 늦은 시간 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목소리를 상당히 낮춰서 조용히 대화를 했고 고스톱을 쳤어.
그래도 둘이 시간이 지나가며 낄낄대는 소리, ‘탁탁’ 패 놓는 소리가 나잖아.
그녀가 갑자기 아줌마, 아저씨 깰수 있으니까 내 방문을 닫으라는 거야.
사실 나도 덥거나 시끄러운건 둘째 치더라도 문까지 닫으면 분위기가 묘해 질까봐 일부러 열어 놨던건데 문을 닫으라니 좀 망설여 지더라구.
“왜? 덥잖아 그냥 열어 놓자” 라고 말하니 그녀가 직접 일어 나서 문을 닫는거야.
“아줌마 깨시면 나 혼나잖아 그냥 닫자” 라며 문을 닫더라고. (웬지 점점 야설 삘이 되어 간다)
그런데 이게 문이 열려 있을때만 해도 화투를 손에 쥔 고삐리들의 명랑명랑한 분위기 였는데 문이 닫히자 마자 묘오~~~~~한 분위기가 생성 되는거야.
그 날 초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미란이 어머니와 미란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아줌마가 홀겹 파자마 바람에 온거야.
웃도리 속옷을 안 입고 말이지.
뭐 서로 내집처럼 드나드는 사이고 아무리 어머니 뻘이라도 그건 좀 민망 하잖아.
다 비친다구.
웃가슴의 형상이 말이야.
민망해서 마루에 앉아 있다 내 방에 들어 왔는데 미란이는 내방으로 따라 들어 오는거야.
“야 마루에 참외 깎아 놨어. 나가서 참외 먹어” 라고 미란이가 말하는데 내가 됐다고 했어.
별로 참외 생각 없다고.
그러니까 뜬금없이 그녀가 실금실금 웃으면서 그러는거야.
“왜? 여자 둘이 속옷도 안입고 오니까 흥분돼?”
난 아직도 저 워딩 하나하나가 안잊혀져.
잊혀질수가 없잖아? 안그래?
아주 어린 나이였고, 난 아주 순진 했다구.
피가 확~ 꺼꾸로 도는 느낌 이었거든.
‘응?’
‘둘?’
‘여자 둘?’
그럼 미란이 얘도?
그말의 의미를 이해 하자마자 고개를 책상쪽으로 쳐 박았어.
얼굴은 뻘개지고 말은 ‘어? 어…’ 라며 더듬 거리고 있는데 그녀가 낄낄 거리며 나가더라구.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잔망 스러운 아이 였지.
어쨋건 초 저녁에 그 일까지 강렬히 생각 나면서 이상 야릇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 오는거야.
갑자기 그녀의 새하얀 살결이 신경 쓰이고, 어 쟤가 가슴이 저렇게 컷었나? 란 생각도 들고, 웬 침이 이리 고이는 거야?, 라는 생각이 나는 동시에, 근데 왜 자꾸 침이 넘어가냐? ‘꼴딱꼴딱’ 의 상황이 발생 한거지.
그러면서 점점 머리 속이 복잡해 지는 거지. 몸땡이는 단순해져 가……
‘애가 왜 뜬금없이 이 시간에 내방으로 고스톱 치러 온 거지?’ 라는 생각과
‘문은 왜 닫았을까? 설마?’ 라는 생각들과,
‘얘 진짜 나랑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이방에 왔나?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내가 다른 남자들 하고 똑같은 짐승으로 생각하고 이 야심한 밤에 내 방으로 왔다면 정말 커다란 오예인데’ 라는 주접을 속으로 떨고 있을때쯤.
그때쯤,
그떄쯤 미란이의 동전을 내가 홀랑 다 따 버렸어.
그래서 내가 그랬지.
“동전도 다 떨어 졌고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그만하자”
근데 내가 동전이 떨어 졌으니 그만하자며 미란이 얼굴을 보는데 얼굴이 빨개져 있는거야.
‘아니 얘가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져 있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나? 동전이 다 떨어 졌으니 이제……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내앞쪽으로 스윽 다가오는거야.
그러더니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나한테 얘기하는거야.
“근데………… 너는 요즘 이상한 소리 못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