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버린 비밀

늑대의눈빛v 작성일 14.06.09 19:3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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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버린 비밀



  옛날 단바국에 이나무라야 젠스케라는 돈 많은 상인이 살았다. 젠스케에게는 오소노라는 딸이 있었다. 대단히 영리하고 귀여운 아이였기에, 시골 선생에게 받는 교육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젠스케는 믿을 만한 친구를 딸려 오소노를 교토에 보냈다. 그러면 수도의 상류층 부인들이 배우는 궁정풍의 예능도 익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후, 딸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던 나가라야라는 이와 결혼했다. 그리고 사 년 가까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둘 사이에는 아들도 하나 태어났다. 하지만 오소노는 병에 걸려, 시집간 지 사 년 만에 죽고 말았다. 오소노의 장례를 마친 날 밤, 어린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돌아와서 이층 방에 있어."

  엄마가 자기를 보고 빙긋 웃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무서워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집안사람 몇몇이 이층 오소노의 방에 올라가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죽은 게 분명한 그녀의 모습이 불단에 켜둔 작은 등불 빛을 받아 똑똑히 보이는 게 아닌가. 오소노는 아직도 그녀의 옷이나 손도구를 넣어둔 장롱 앞에 서 있었다. 머리나 어깨 근처는 뚜렷이 보였지만, 허리 아래부터는 가늘어지다가 사라졌다. 흡사 흐릿하게 투영되기라도 한 듯, 오소노의 모습은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투명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무서워서 방을 나왔다. 계단 밑에서 의논을 하는데, 오소노의 시어머니가 말했다.

 "여자는 자질구레한 자기 물건을 아끼는 법. 오소노도 제 소지품을 아주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분명 그걸 보러 돌아왔겠지요. 죽은 사람은 곧잘 그러는 모양이에요. 이거 세간을 저희 집안 대대로 모셔운 절에 공양해야만 하겠습니다. 오소노의 옷이나 허리띠를 절에 바치고 나면, 분명 오소노의 혼도 진정할 겁니다."

  이야기는 이내 결말이 나, 식구들은 다음날 아침 장롱 서랍을 비우고 오소노의 의상이나 손도구를 전부 절로 운반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밤에도 오소노는 돌아와서 전날 밤과 다름없이 장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다음날 밤도, 또 그 다음날 밤도 그렇게 매일 밤 돌아왔다. 이렇게 되자 집은 공포스러운 곳이 되고 말았다.


 이에 오소노의 시어머니는 절에 가서 주지스님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죽은 이의 영을 깨우쳐 성불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선종에 속한 절의 주지는 다이겐이라는 학식이 풍부한 노승이었다.

 "이는 분명 오소노의 영이 마음에 두고 있는 물건이 장롱 안이나 그 근처에 있는 것이오."

 "하지만 서랍은 전부 비웠습니다."

  오소노의 시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이겐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밤 제가 댁으로 가 그 방을 지키기로 합시다. 그리고 어찌 하면 좋을지 방책을 강구해보지요. 제가 지키는 동안에는 이쪽에서 부르지 않는 한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집안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십시오."


  해가 진 후 다이겐 스님은 그 집으로 갔다. 방은 스님을 맞을 수 있게끔 치워져 있었다. 혼자 그 방에서 경을 읽고 있었지만, 자정 무렵까지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소노의 모습이 장롱 앞에 뚜렷이 나타났다. 망령은 뭔가를 찾는 듯한 표정으로 눈도 떼지 않고 장롱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님은 이럴 때 쓰도록 정해진 경문을 정중히 읊었다. 그리고 오소노의 법명을 부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자네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네. 아마 저 장롱 안에 자네가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없는 물건이 있는 것이겠지. 자네를 위해 내 그것을 찾아줄까?"

  망령은 머리를 가볍게 끄덕였다. 동의한 듯했다.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위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서랍을 순서대로 열었다. 스님은 서랍 뒤쪽과 아래쪽도 세심히 조사해보았다. 서랍 안쪽도 공들여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망령은 전과 똑같이 뭔가를 갖고 싶어하는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뭘 원하는 것인고."

  스님은 생각했다. 서랍 바닥에 깔아놓은 종이 밑에 뭔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제일 위에 있는 서랍의 종이깔개를 들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두 번째 서랍과 세 번째 서랍의 종이깔개를 치워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가장 밑에 있는 서랍의 종이깔개 아래에서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이게 자네가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인가?"

  스님이 물었다. 망령은 스님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 분명치 못한 망령의 눈길이 편지에 쏠려 있었다.

 "자네를 대신하여 태워줄까?"

  스님이 물었다. 여자는 스님 앞에 고개 숙여 절했다.

 "오늘 아침에라도 절에서 태워주겠네."

  스님은 약속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겠네."

  그러자 여자의 모습은 웃음을 짓고는 사라졌다.


  스님이 계단을 내려왔을 때는 이미 동이 트려 하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집안사람들이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스님은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망령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은 편지를 불태웠다. 그것은 교토에서 수업하던 시절, 오소노가 받은 연문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씌어 있었는지 아는 이는 스님뿐이었고, 비밀은 스님이 죽을 때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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