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귀신 '그것만 없으면'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큰 청년이 있었습니다.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얼굴이 가려질 정도로 크다보니 무게도 엄청나서 엄지를 지탱하는 관절이 항상 문제였습니다.
하루는 밭일을 나갔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너무 더웠습니다.
그렇다고 쉴 수 없어서 힘들게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놈의 엄지손가락만 없어도 좀 수월하겠는데...'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귀한 몸을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함을 참으면서 열심히 일만 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곡괭이를 드는 순간...
곡괭이가 너무 무거워서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들리지가 않아서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을때...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진짜로 그것만 없으면 되는 거야?"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혹시 나무위에 누가 올라가 있나 살펴보아도 사람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날씨가 너무 더워 환청이 들렸나 싶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일하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신기하게도 무겁게 느껴졌던 곡괭이가 너무 가벼워서 평소보다 빨리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고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음... 그래? 대답을 안 해? 알았어....."
분명 낮에 잠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들렸던 목소리입니다. 벌써 두 번째로 환청이 들리다니... 무슨 대답을 안했다는 거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혹시 뭔가를 대답해야 하는 건가? 청년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리고 낮에 청년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분명 낮에 환청이 들렸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하지만 자꾸 두 번째 환청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음... 그래? 대답을 안 해? 알았어...'
뭘 알았다는 거지? 무슨 대답?
다음날! 잠을 설친 청년은 밭일을 나가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무더운 날씨에 짜증이 나던 청년은 중얼거립니다.
"아... 어제도 덥더니 오늘도 땀이 억수로 나네..."
바로 그때 또 환청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진짜로 그것만 없으면 되는 거야?"
어제 처음 들었던 환청이 그렇게 기억이 안 나더니 또다시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톤으로 단어도 전혀 틀리지 않게 들렸습니다. 청년은 걸음을 멈추고 어제 일을 떠올려 봅니다. '그래 이거였어. 그런데 그게 뭐지? 뭐가 없으면 된다는 거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청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내...가...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혹시.."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엄지손가락은 어제랑 별 차이 없이 잘 붙어 있었고 멀쩡했습니다.
'설마... 내 엄지손가락만 없으면 되는 거냐고 묻는 건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것 때문인가 싶어서 손가락을 유심히 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존재는 같을 말만 반복합니다.
"그것만 없으면 되는 거야?"
청년은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봅니다. 왼쪽의 논두렁에 누군가 있나 싶어서 유심히 보기도 하고 오른쪽 숲도 봤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도 좌우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그때 또다시 알수없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궁금한가 보군! 그러나 너는 나를 볼 수 없어...."
"거기.. 누구.. 요.."
청년이 물어보지만 알수없는 존재는 그저 웃기만 합니다. 계속해서 웃는 소리에 청년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청년의 모습을 본 알 수 없는 존재는 조용해졌고 한참 후에 다시 말을 겁니다.
"진짜 그것만 없으면 되는 거야?"
겁이 났지만 점점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게 뭡니까?"
"니 손가락 말이야. 그 엄지손가락만 없으면 되는 거냐고?"
청년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아... 내 소원을 들어주려는 건가? 맞아 내 엄지손가락이 불편한 걸 알고 신령님이 나를 도우시려는 거야...'
청년은 금세 무서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손가락을 들어 앞으로 쭉 뻗은 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네 이만한 크기의 엄지손가락이 아닌 평범한 크기로 작아지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다시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니 엄지손가락을 원하는 크기로 만들 수는 있지. 그런데...조건이 있어"
뭔가 딱 떨어지는 대답은 아니지만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말에 감사해 하며 물었습니다.
"조... 건이 뭐죠?"
"내가 너의 손이 되어주는 대신 너의 영혼은 나를 대신해야해. 나는 항상 여기 있어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니가 나를 대신해서 이곳을 지켜주면 나는 기꺼이 너의 정상적인 엄지손가락이 되어 줄 수 있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습니다.
'내 엄지손가락을 정상적인 크기로 만들어 주는 대신 내 영혼을 팔라는 건가? 그러면 나는 죽는다는 건데... 차라리 힘들어도 이대로 사는게 좋겠다'
"미안하지만 제 영혼을 팔수는 없습니다!!!"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는 청년의 말에 알 수 없는 존재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합니다.
"이보게 이봐! 내가 자네 손가락이 된다고 해서 자네가 죽는 게 아닐세. 자네는 그냥 이곳만 지켜주면 되고 100일이 되기 전에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되고 신체든 어떤 대상이든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상관없어. 그냥 그런 사람만 찾으면 자네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손가락도 멀쩡하게 남게 되는 거지. 대신 100일이 될 때까지 적임자를 찾지 못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려주지! 우리가 바뀌고 열을 셀 때까지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자네는 진짜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거지 어떤가?"
청년은 이게 뭔 소린가 싶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100일간 열심히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찾으면 되고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니까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좋습니다!!! 하하~! 진짜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는 사람만 찾아 드리면 되죠? 그리고 못찾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고... 좋습니다!"
바로 그 순간 청년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얼굴만 한 손가락이 작아진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엄지손가락을 유심히 보니까 지문이... 지문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뭐 그런 것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서 이곳저것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00일간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마음으로는 생각해도 직접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죠. 청년은 보고 들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계약은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찾아서 원상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알 수 없는 존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네. 이게 바로 인간답게 사는 거구만. 몸을 바꿔 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인간의 몸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나는 인간의 몸을 갖기 위해서 100년을 참아 왔네. 이제부터 자네는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찾아서 그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나와 같은 방법으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방법을 제안하게. 하하하~"
알 수 없는 존재는 이어서 말을 합니다.
"나도 힘들었다네...내가 자네의 손을 작게 만들 수는 있어도 지문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은 없었지. 그래서 자네가 눈치 채고 계약을 취소할까봐 얼마나 긴장한 줄 아나? 이제는 자네 차례야 인간의 몸을 찾아서 열심히 여행을 해 보게나 하하하~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만나거든 조심하라구.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똑같이 만드는 건 불가능해. 이점만 명심하면 자네도 인간의 몸을 가질 수 있다구"
청년은 그 말을 듣고 생각에 빠집니다. 처음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와 엄지손가락을 봤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지문이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자신을 원망하며 괴로운 비명을 지릅니다.
"으아~~~"
혹시 지문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조심하세요. 손가락귀신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