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테이 이야기

늑대의눈빛v 작성일 14.07.10 17: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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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 에치고국 니가타에 나가오 쿄세이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나가오는 의사의 아들로 부친의 가업을 잇기 위해 의술을 배웠다. 그는 젊을 때부터 오테이라는 처녀와 정혼한 사이였는데, 그녀는 부친 친구의 딸이었다. 양가에서는 나가오가 학업을 마치면 바로 혼례를 올리기로 이야기가 돼 있었다. 그러나 오테이는 건강이 좋지 못해 열다섯 살에 불치의 폐병에 걸렸다. 죽을 몸임을 깨달은 오테이는 이승에서의 이별을 고하기 위해 나가오를 청해 불렀다.

 

나가오가 오테이의 머리맡에 몸을 숙이자 오테이는 말했다.

 

나가오님, 저희는 어릴 때부터 장차 하나가 되리라고 약조한 사이였습니다. 올해 말에는 혼인할 예정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죽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정말로 좋은 일일지는 하느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설령 사오 년가량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남에게 폐만 끼칠 뿐인 탄식거리였겠지요. 이렇게 연약한 몸으로는 도저히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하오니, 설령 서방님을 위한 것일지라도 이 이상 살기를 바라는 것은 대단히 제멋대로인 소망이겠지요. 저는 이제 죽을 몸이라고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슬퍼하지 않겠다고 약조해주십시오. 그리고 서방님과 제가 언젠가 다시 만날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니, 정말로 우리들은 다시 만날 겁니다.”

 

나가오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극락정토로 가면 이별의 괴로운도 없을 것이오.”

 

아뇨, 그게 아니에요.”

 

오테이는 온후하게 답했다.

 

서방정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또다시 만날 운명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이 몸이 내일 묻히더라도 말입니다.”

 

나가오는 놀라서 오테이를 바라보았다. 놀라는 그의 모습에 오테이는 빙긋 웃었다. 그녀는 꿈꾸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서, 서방님의 이번 생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사모하는 나가오님. 다만 정말로 서방님이 바란다면 말이에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저는 한 번 더 여자아이로 태어나 어엿한 여자로 자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방님은 기다리셔야만 합니다. 십오 년이나 십육 년쯤일까요. 이는 실로 긴 시간입니다. 하지만 서방님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지요.”

 

임종의 괴로움을 달래고자 나가오는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오. 우리 두 사람은 영원을 약속한 사이니까.”

 

하지만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지요?”

 

오테이는 나가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야......”

 

나가오는 상대가 애처로워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당신이 무언가 표시나 신호를 해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이름을 가진 당신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겠지.”

 

그건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오테이는 말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닌 이상,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짐나 서방님만 괜찮으시다면 저는 서방님 있는 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반드시오. 틀림없습니다. 부디 제 말을 기억해주세요.”

 

오테이의 말은 여기에서 끊겼다. 그녀의 두 눈은 감겼다. 그리고 오테이는 죽었다.

 

나가오는 진심으로 오테이를 사모하고 있었고 그 슬픔은 깊었다. 그는 위패를 만들게 해서 거기에 오테이의 생전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그것을 불단에 두고 매일 그 앞에 공물을 올렸다. 그는 오테이가 죽기 직전에 자신에게 한 이상한 이야기에 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오테이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만일 오테이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다면 그녀를 아내로 맞겠다고 엄숙히 맹세했다. 이 맹세의 말을 종이에 적은 나가오는 거기에 자신의 도장을 찍고 불단 위, 오테이의 위패 옆에 두었다.

 

그러나 나가오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신부를 들여야만 했다. 가족의 바람을 저버릴 수 없던 그는 부친이 골라준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승낙해야만 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도 그는 오테이의 위패에 공양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고, 언제나 애착을 담아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오테이의 모습은 나가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흐려져 다시 떠올리기 어려운 꿈처럼 되고 말았다. 이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동안 몇 가지 불행이 나가오를 덮쳤다. 먼저 양친과 사별한 그는 다음으로 아내와 외아들을 잃어, 언제부턴가 이 세상에 홀로 남고 말았다. 나가오는 적적한 집을 버리고 슬픔을 잊기 위해 긴 여행을 나섰다.

 

어느 날 그는 여행길에 이카호에 닿았다. 이카호는 지금도 온천으로 유명하고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이 산 속 마을의 여관에 묵은 그의 앞에 한 젊은 여급사가 나타났다. 그 얼굴을 한번 보자마자 나가오는 한순간 숨을 죽였다. 그의 마음은 일찍이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설레었다.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오테이와 닮았다. 나가오는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여 제 몸을 꼬집어보았다. 여자는 그의 눈앞을 오가고 있다. 불이나 식사를 운반하고, 손님방을 치우러 온다. 그녀의 움직임이나 동작 하나하나는 나가오의 가슴 속에 예전에 정혼자였던 이의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말을 걸면 그녀는 온화하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감미로운 음색에 지난날의 슬픔이 되살아난 나가오는 마음이 어두워졌다.

 

너무나 이상해서 나가오는 이렇게 물었다.

 

아가씨, 당신이 옛날에 알던 사람과 너무 닮은 탓에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소. 실례지만 당신이 태어난 곳과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겠소?”

 

그러자 곧, 저 잊지 못할 죽은 이의 목소리로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이름은 오테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제 정혼자, 에치고의 나가오 쿄세이 님이십니다. 십칠 년 전 저는 니가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가 여자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돌아온다면 저를 아내로 맞겠다고 맹세해주셨지요. 그 맹세의 말에 도장을 찍고 봉을 하여 불단 안 제 이름이 적힌 위패 곁에 두셨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는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말을 끝내자마자 여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가오는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두 사람의 생활은 행복했다. 하지만 여자는 이후로 자신이 이카호의 여관에서 남자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또 전생의 일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만남의 순간에 불가사의하게 되살아난 전생의 기억은 다시금 사라지고, 이후에는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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