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계속되는 야근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나였다. 남들은 재수, 삼수를 해서 라도 꼭 가고 싶은 대학을 가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부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당시에는 딱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와 후회를 하는 것은 아마 그때 공부를 조금 더 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까지 고생을 하진 않았을 텐데 하고 드는생각 때문 일 것이다.
“원장님. 오늘도 저에요?”
“미안~ 해줄 사람이 이 선생 밖에 없잖아. 대신 야근 수당은 제대로 챙겨줄게 알겠지? 수고 좀 해줘 나 갈게~?”
그날도 어김없이 혼자 매장에 남아 손님을 받고 있었는데. 내가 일하는 곳은 어느 여자대학교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헤어숍이다. 아침 10시에 출근을 해서 저녁 7시에 퇴근 하는 것으로 딱 적당한 출근 조건 인 것 같아 이곳에 입사 한 것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원장님은 내게많은 것을 바라고 계신 듯 보였다. 조금은 불공평 하다.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일 한 만큼월급을 더 받는 것이니.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아 죄송해요. 저희 영업 끝났는데요.”
일주일 중에 거의 5일을 12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간혹 어떤 손님들 때문에 야근 도 모자라지하철 막차 가 끊기도록 나를 붙잡는 일이 종종 생기기도 하는데 그날은 다행히도 손님이 한발 물러서 주셨고. 나는 딱 10시에 퇴근 도장을 찍을 수가 있었다. 내 짐을 모두 챙기고 가게 불도 모두 꺼 놓은 뒤. 밖으로 나가 가게 문을 잠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셔터 까지 내리고 나서야 나는 매장을 나올 수 가 있었다.
거의 녹초가 된 상태로 나는 지하철 역 까지 걸어가는데. 그날은 정말 이상하게도 다른 날 보다 어깨가 묵직한 것이 굉장히 피곤한 날이었다. 3분쯤 걸었을까 어느새 지하철 역 출구앞에 다다랐고.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빨리 흡입 한 뒤, 진 하게 연기를 내뿜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개찰구로 내려갔다. 여느 날과 똑같이 카드를 찍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 사람이 가장 없는 맨 끝 쪽으로 이동을 한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로 북적일 지하철이 그날은 유난히도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열차가 올 때 까지 스크린도어 앞에서 멍 하니 서있었는데. 언제 온 것인지 내 옆에는 네 살쯤 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서있었고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형아. 나 길 잃어버렸는데 집 까지 데려다 주면 안 돼?”
어찌나 눈망울이 초롱초롱 하던지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나는 그 아이와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잠시 쭈그려 앉아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 엄마는 어디 계셔?”
“몰라 엄마가 여기 서있으라고 했는데 어 갑자기 없어졌어.”
나는 갑작스레 그 아이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지하철 역무실에 도움을 청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도울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때 마침 열차가 들어오고있었고.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는데. 내 손을 꼭 붙잡고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던 아이를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곧 우리가 서있던 자리에 열차가 멈추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일단 열차에탑승을 했고. 제일 한적한 자리에 앉아 제일 끝 좌석에 아이를 앉히고 그 옆에 내가 앉아어쩌다가 길을 잃게 된 것인지 물어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유민이!”
내가 예상했던 나이 라고 보기에는 말을 너무 잘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 아이의 이름과, 나이를 먼저 묻고 싶었다.
“유민이 그럼 몇 살이야?”
“나 여섯 살”
“그렇구나. 유민아 어쩌다가 엄마 잃어버렸는지 형아 가 좀 물어봐도 될까?”
아이가 혹시나 경계를 할까 나는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고 유민이는 서슴없이 내게 이야기를해주었는데. 엄마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던 중, 잠시 이곳에 앉아있으라며 역 안에위치해 있는 벤치에 앉혀놓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에 나는 또 한 번 질문을 했다.
“그럼 유민아. 집 주소 혹시 알고 있니?”
“응 서울시! 00구! 00동! 0000 아파트!”
나는 그 아이에게서 집 주소를 듣고 깜짝 놀란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말한 집 주소는 현재 내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 였기 때문이었다.나는 이런 게 인연이구나 생각을 하고서 아이의 집을 찾아주는데 좀 더 수월해 질 것 같아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고, 어느새 지하철은 달리고 달려서 그 아파트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지하철역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서둘러 아이의 손을 잡고 열차에서 하차 했고.아파트와 가장 가까운 출구 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유민이 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민아. 몇 동 몇 호인지 알려줄래?”
그러자 그 아이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는데. 내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은 그 아파트의 207동 1305호 인데. 그 아이가 말한 집의 호수는 1306호 라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아이였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어?! 형네 집은 1305호 인데?”
그러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대답해 왔다.
“형아 엄마 아빠 사는 곳이잖아 헤헤”
하긴. 그 아파트에 이사를 간 이후 한 달 정도 살다가 나 홀로 독립했으니 서로 못 본 것이당연할 터 였다. 나는 아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이 걱정이 돼 얼른 아이를 데리고207동 이 적혀있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올라가는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13층입니다’
이내 안내음성이 흘러나왔고. 나는 유민이의 손을 잡고 1306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려고했는데. 아파트 복도 벽에 잠시 기대어 서는 듯 하더니 내게 말을 건네 오고 있었다.
“형아.. 나 나중에 형아 집 놀러가도 돼?”
“그럼! 당근이지! 형이 유민이 보러 자주 올게. 알겠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서운하다는 듯 날 바라보고 서 있었지만 내 대답에 그 아이는 금방 화색이 돋아 나에게 약속을 해달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서 있었다.
“정말?! 정말이지! 약속!”
나는 웃으며 아이의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해주었고. 곧장 초인종을 눌렀다. 한번. 두 번.. 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인지 대답이 없었고. 세 번째 초인종을눌렀을 때 나는 짐작했다. 바로 내 뒤에 서있던 아이가 없어진 것을 말이다.
“어라..? 유민아?!”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벽에 기대어 서있던 아이가 잠시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없어져 버렸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서 층수를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내린13층에 머물러 있을 뿐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계단 쪽으로 이동해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은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1층으로 다시내려가 놀이터와 주차장을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아이는 없었다. 대체 어딜 간 것인지 점점 걱정이 된 나는 다시 아이의 집으로 올라가 보려고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는데 뒤에서 대뜸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영호야. 이 시간에 먼일이냐 니가”
“아..어 아빠. 그냥 일 끝나고 잠깐 들렸지..”
아직 아이를 찾지 못했지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나는 일단 대충 얼버무린 뒤, 아버지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이 시간에 왜 나와 계셔요”
“쓰레기 버린다고 나왔다가 니가 보이기에 불렀지. 밥은 묵었냐.”
마침 허기도 지고 정신이 없던 나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고. 소파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 하고 계시는 엄마께 인사를 드리고 식탁에 앉아 바로 아버지께 물었다.
“근데 아빠.. 옆에 1306호는 빈집 인가봐..?”
다짜고짜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는데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 하실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선 기분 나쁘다며 이야기를 꺼려하고 계셨다.더더욱 궁금해진 나는 계속 해서 묻고 있었다.
“뭔데 그래 얘기 좀 해줘봐요 궁금하게”
그러자 아버지는 신경쓸 일 아니라며 끝끝내 이야기를 안 해주셨고, 소파에 앉아 계시던 엄마가 말씀을 해주셨는데. 전혀 뜻밖의 이야기 였다.
“너도 알다시피 이 아파트 지은 지 얼마 안됐잖냐. 공사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입구에 타일이 지나가는 애 머리에 떨어졌다는 거야. 지금은 다시 보수공사를 해놨다만은. 그 타일이 좀 무거워야지.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 다섯 살난 애 머리에 떨어졌으니. 말 다한거 아니겠냐..결국엔 애 하나 죽었다고 안 그러냐. 아유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애랑 애 엄마 그렇게 둘이사는가 싶더니만 애기 하나 죽고 나서 새댁도 이사 갔어. 참 안됐지.. 아니 근데 너는 왜물어보는 건데?“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유민이 라는 아이는 어쩌면 스스로 집을 찾아가는 것이 힘들어내게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까지도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기억에 남아 가끔 생각을 하곤 한다. 좋은 곳에서 해맑게 뛰놀고 있을 그 아이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