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무실은 9층 건물의 6층에 입주해 있다.
우리 사무실 건물이 위치한 블럭은 대부분 10층 내외의 건물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래서 서로 10~20미터 거리를 두고 볼 수가 있다. 가까운 곳은 5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우리 사무실 흡연구역은 뒷문 비상구 계단인데, 평소에는 거길 이용하지만 야근이나
잔업을 할 때는 거기를 이용하지 않고 가까운 사무실 복도 맨 끝창을 이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야근으로 인해 저녁 11시까지 일을 해야 했던 나는 10시 쯤 되어서 복도 맨 끝창으로 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바로 앞 건물 컴퓨터 학원내에 어둠속에서 누가 서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불도 다 꺼져 있고 학원생들도 없는 시간인데..
나는 누구인가 하고 눈을 찡그리며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어둠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학원 건물 창에 몸을 최대한 가까이 붙이고..
나는 순간 움찔하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떨어진
담배를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몸은 창을 향하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를 창에 기댄 채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힐끔힐끔 곁눈질로 그 학원을 다시 바라보았는데 그 여자가 안보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 쉬며 탄식을 내뱉았다.
"아이씨.....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저 여자 도대체 뭐야?"
그 날 나는 집에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그 여자 영상이 머리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새하얀 얼굴에 투피스인지 원피스인지는 모르지만 위에는
밝은색 아래는 어두운 색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가위라도 눌릴 것 같은 기분에 잠에서
자꾸 깨어나게 되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나는 입사 동기인 2살 많은 형에게 어제의 일을 얘기했다.
그러자 그 형이 깜짝 놀라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도 그랬냐? 나도 전에 너하고 똑같은 일 겪었어. 그 때 나는 더 했다.
창 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 학원 창에 좁은 폭으로 까만 커튼 같은게 쳐 있더라구. 어두워서 잘 안보였는데
난 그냥 커튼인 줄 알았지. 아 씨.발..욕하면 안되는데 아 지금 생각해도 욕나오네.
검은색 커튼 같은게 좁게 늘어져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커튼이 확 돌더라구."
"돌아요?"
"사람 등이었어. 커튼이 사람 머리카락이었던거야. 머리를 엄청나게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등을 돌려 날 쳐
다보는거야. 와...나 진짜 그 때 심장마비로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뭐하는 여자일까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학원하고 관계있는 여자겠지."
"아니 그런데 야밤에 애들 컴퓨터 학원에서 밤에 뭐하는 걸까요? 불도 꺼 놓고, 창가에 서서.."
"그러게 말야"
나는 너무 찜찜했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지만 이번 일은 너무 찜찜했다.
그 뒤로 웬만하면 나는 야근시간에도 복도창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 여자가 너무 소름끼쳤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야근으로 나는 늦게까지 남아 있었는데 밖이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소방차 1대와 구급차가 1대가 컴퓨터 학원 건물앞에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봤는데 누가 화재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실제로 화재가 난 것은 아니고 컴퓨터 학원에서 퇴근할 때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연막식 퇴치제를 살포하고 문을 닫고 퇴근해 버려서 다른 층 입주자들이 학원 건물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화재로 오인하여 신고를 한 것이다.
나는 구급차 옆에서 여자 학원원장에게 소방대원이 훈계하는 것을 엿듣고 있었다.
"아니, 원장님. 연막탄 터트리면서 건물주나 다른 입주자에게 말도 안해줬습니까?"
"아이 죄송해요. 말해줘야 한다는 것 몰랐어요. 그냥 문만 닫아놓으면 될 줄 알았죠."
"옛날에 이 건물에 불이 나서 여자가 죽었어요. 그 뒤로 건물주나 입주자들이 얼마나
민감해져 있는지 아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소방대원에게 물었다.
"여자가 죽었어요?"
"2년 넘었죠. 이 학원이 들어서기 전에 무슨 미술학원인가 있었는데,
불이 나서 보조교사 한 명이 질식사 했어요."
나는 으시시한 기분을 억누르게 옆에 있는 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저..원장님. 원장님 학원 말인데요? 9시 넘어서도 학원 수업하시나요?"
"아뇨. 왜요?"
"밤에 보면 불꺼진 학원안에 누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예? 그럴리가요? 우리는 강화유리문이랑 방화벽 철문에 모두 시건장치를 하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도둑맞은 물건도 없구요. 컴퓨터 학원인데 웬만한 시건장치는 다 해 놓거든요."
"어? 아닌데 진짜로 누가 있거든요? 저만 본 것도 아니구요."
"왜 그러세요? 무슨 귀신이라도 있다는 거예요? "
"아니..그게 아니라"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그 학원건물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이것으로 이상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얼마동안 야근이 있어도 복도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며칠이 지나자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이 다시 그 창가로
가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그냥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입사 동기인 그 형도 그런다고 했다.
그런데 한달이 넘도록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예전에 그 여자가 귀신이었다. 아니었다 하면서 그 형과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 형과 같이 야근을 하게 되었다.
11시가 다 되어갔을 것이다.
업무를 거의 종료할 시점에 나는 복도 창가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불을 붙여 길게 한모금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어 연기를 내 뿜는데 앞건물에
그 여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연기가 목에 걸려 계속 콜록거렸다.
미.친듯이 기침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학원건물을 쳐다보았다.
그 여자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를 계속 응시하며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사무실 안에 있는 형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가는 숨소리로 형에게 외쳤다.
"형! 그 여자야!!. 창밖을 봐!"
사무실 내에서는 정면은 아니지만 창에서 45도 각도로 왼쪽을 보면 그 학원 창문이 보인다.
"형!! 보여?"
"아니. 아무것도 없어."
"잘 봐!! 지금 계속 날 쳐다보고 있어."
"안보인다니까. 잠깐 기다려. 내가 거기로 갈게"
형이 이곳으로 온다는 말에 나는 전화를 끊고 그 여자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 긴머리를 늘어뜨리며....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뭐가 이상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머리카락이 이상했다.
보통 사람이 움직이면 머리카락이 흔들려야 하는데 그 여자가 움직일 때는 전혀
그런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등이 까만 것이다.
분명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형이 복도 창가로 달려 나왔다.
"야!! 어딨냐?"
"갔어"
"장난친 것 아니지?"
"진짜야"
"아 씨바...어떤 년인지 아주 우릴 심장마비로 죽일려나 보다."
"형. 근데 뭐가 이상해. 그 여자 머리카락이 이상해."
"너, 등이 까맣다고 할려고 했지."
순간 형의 말을 듣고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사실 나도 처음 그 여자가 등돌릴 때 긴 머리카락과 몸이 같이 움직이는 것 보고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맞어 형. 그 여자 머리카락이 아냐. 지금 내가 본 것도 머리카락이 아니라 그냥 등이 까만거야."
"아...씨바. 이건 완전히 공포특급이네. 전에 죽었다던 미술학원 선생 귀신인가 보다."
그 뒤로 우리 사무실엔 거의 반은 장난식으로 받아들이며 옆 건물에 귀신이 산다고 소문이 났다.
이 사실을 그 학원 원장도 알았는지 우리만 지나가면 엄청나게 째려보고 경멸의 눈치를 보내곤 한다.
그런데 사실인것을 어찌하랴. 나와 형은 어쩌면 저 원장이 뭔가 감추고 있을 것이다라는
별별 상상을 다 해가며
그 기이한 현상을 풀이하려고 무척 애썼다.
그 후로 얼마동안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나타나지 않은게 아니라 야근시간에도 웬만하면 사무실 뒤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웠다.
잡다한 물건이 쌓여있고, 냄새가 퀘퀘해서 아무도 없는 야근시간때에는 비상계단보다
복도 창가를 주로 이용했었다.
그러나 그 여자와 마주치기 싫어서 그냥 참고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어머니집을 들르게 되었다.
때마침 옆집 형님이 놀러 오셨는데 그 분 직업이 소방관이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화재진압현장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야. 현장에 들어가서 불에 타죽은 시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떻게 구별하는지 아냐?"
"그냥 옷차림이나 몸상태 보면 되지 않아요?"
"야. 그걸 까맣게 탄 놈을 보고 어떻게 구별하냐? 전에 지하 노래방 화재현장에 갔는데
무슨 물건이 탄 줄 알고 만졌는데 뭐가 미끈거리면서 껍질이 벗겨지는 거야.
사람이었어."
"헉. 끔찍하네요.그런데 현장만 보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떻게 알아요?"
"남자는 보통 계속 출구를 찾으려고 바둥거리다가 출구나 복도에 큰 대자로 누워서 죽어.
그런데 여자는 숨을 곳을 찾다가 비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죽지.
보통 책상밑 같은데서 여자 시체가 발견되지"
"그렇군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형님의 말이 나를 다시 잊혀져가는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여자는 웅크리고 죽기 때문에 앞은 멀쩡하고 등만 까맣게 타는 경우가 많아."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아무 말없이 멍하니 있자 형님이 의아한 듯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너 왜 그러냐?"
"형님. 제가 요즘 회사에서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데요......"
나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을 형님에게 얘기를 했다.
한참을 골똘히 듣고 있던 형이 얘기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귀신같은 건 믿지 않거든. 그런데 이 생활 오래하다보니 별일을 다 듣기도 하지
나는 아니고 부서 선배가 10년전 겪었던 일인데 어느날 화재 진압현장에 갔는데 조립식의
큰 공장 건물이었대.
신고를 받고 갔는데 공장문은 닫혀있고 현장에는 연기만 살짝 피어오르고 멀쩡했다는거야."
"잘못 신고했나요? "
"아니. 너 영화 분노의 역류 봤냐?"
"예............아 !! 백드래프트 현상 얘기하시려구요? "
"맞아. 처음에는 불이 크게 나서 연기도 많이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산소가 고갈되서
엄청나게 높은 온도만 유지되고 작은 불씨만 살아남게 되지.
그 상태에서 문을 열면 공기가 한꺼번에 빨려 들어가면서 공장은 터져버리지.
그래서 소방관들이 가지고 다는 장비 중에 내시경 같은 게 있어.
작은 구멍을 뚫어 내부를 들여다 보는거야."
"그래서 봤나요?"
"그래. 그 선배가 사다리를 타고 건물 윗부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내부를 들여다봤대.
그랬더니 역시나 건물 천장에 파란색 불덩이가 휙휙거리며 돌아다니더래."
"그럼 어떻게 하나요?"
"뭘 어떻게 해? 그냥 건물 지붕과 외부에 엄청나게 물을 뿌려대는 거지. 온도 낮추려고.
그리고 작은 구멍이 있는 곳으로 소방호스 들이대고 건물안으로 신나게 뿌려대는 거야.
그런데 그 선배가 내시경으로 들여다본 다음 사다리에서 내려오려고 하는데 건물안에서
막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야.
죽여버리겠다면서 이 새끼 저새끼하더래. 그리고 비명소리도 들리고"
"헐"
"백드래프트가 일어날 정도의 상황에서는 그 열로 인해 안에 사람이 살아 있을 수 없어.
선배는 뭐가 이상했지만 일단 사람 소리가 들리니까 다른 직원들에게 안에사람이 있다고 외쳤대."
"그래서요?"
"그렇다고 문을 그냥 열고 들어갈 수는 없지. 소방관들도 죽을 수 있으니까. 일단 생존자가 있는지
계속 말을 걸었대. 그런데 공장직원들은 하나같이 안에 사람이 없을거라고 했다는거야.
그리고 그 선배는 내시경 장비로 안을 계속 살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비명소리만 들리더라는거야.
어쩔 수 없이 건물의 온도를 낮추려고 계속 건물 지붕과 외벽에 물을 뿌리고, 안에도 물을 계속
우겨넣었대.
나중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안에는 사람이 없었대,정말 구석구석 찾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인데 몇 년전 바로 그 건물안에서 한 직원이 만취 상태에서 자기 아내와
불륜 관계인 같은 공장 직원을 기계부품으로 때려 죽이고, 자기도 칼로 자살했다는 거야."
"그럼 그 사람들이 귀신으로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래. 그런데 나를 더 오싹하게 만든게 뭔지 아냐? 그 선배가 그 말을 들었대. '김xx !! 이 개.새끼야!! 죽어버려!!'"
"헐. 혹시 이름이 일치했다는 거예요?"
"맞아. 기계부품으로 맞아 죽었다는 그 사람이었다는거야"
"와.... 진짜라면 정말 오싹했겠네요."
나도 별 미스테리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세상에는 더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았다.
회사로 돌아온 나는 온갖 잡념에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입사 동기인 그 형에게 소방관 형님 얘기를 하면서 내 생각을 얘기했다.
"형. 그 여자 정말 귀신일까? 난 귀신같은 거 안 믿는데."
"귀신 맞아. 안그러면 이게 다 무슨 조화냐? 타죽었다던 그 여자가 귀신으로 나타나
저 건물을 맴돌고 있는거야."
"혹시. 형. 저기 학원 원장이 뭔가 감추고 있는게 아닐까? 우릴 쳐다보는 보습을 보면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뭔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그냥 지네 학원에 영향을 줄까봐 그러겠지. 소문이 애들한테도 들어가봐. 피해 막심하겠지."
"그런가? 아... 어찌되었든. 그 여자 다시는 안나타났으면 좋겠다.
솔직히 무섭다기보다는 그 여자를 보고나면 그날 잠도 설치고 다음날
하루종일 일이 꼬이고 되는게 하나도 없어,"
"혹시 모르지. 그냥 미.친 도둑년이었을지. 어쨌든 정말 재수없는 년이야"
그러던 어느 날 오후 2시쯤 이었다.
옆 건물 학원 원장이 우리 사무실로 처들어와 막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들 우리 학원 말아먹을거야? 지금 무슨 소문내고 다니는 거야!! 다들 같이 망해볼까?"
계속되는 귀신 소문에 참다 못한 학원 원장이 열받은 것이었다. 마녀처럼 삐쩍 마르고
정말 당찬 여자였다.
사무실에 10명이 넘는 남자들이 있는데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부장이 가까스로 원장을 진정시키고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약속하겠다고 확답을 주었다.
그러자 그 원장은 씩씩거리며 나가면서 나와 형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경고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마. 알았어?"
우리는 그냥 쥐죽은 듯이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원장이 뭐라고 혼자 궁시렁거리며 나가는 것이다.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는데 '니들도...죽은년 어쩌고 저쩌고...'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그 귀신같은 여자만 나타나지 않으면 된다.
원장이 다녀간 뒤로 한달이 넘게 흘렀다.
야근을 하여도 계속 비상계단에서만 담배를 피우니 그 여자를 볼일이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 복도 창을 이용해도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은 점점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사건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형과 나는 또 다시 같이 야근조로 남게 되었다.
11시가 넘어 우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형이 갑자기
"야.. 그 여자 있나 보고 갈래?"
이러는 것이다.
호기심에 나도 그러자고 동의했다.
우리는 복도 맨 끝창으로 뚜벅뚜벅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헐. 이게 웬일인가? 그 여자가 있는 것이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형이 갑자기 마구 손을 흔들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며 여자에게
욕을 하는 것이다.
"야!..썅년아 여기다. 여기!!! 어디 잡아가봐!! 이 못된 년아."
형은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는지, 아니면 내 앞에서 위세라도 보이려고 하는지 몰랐다.
저 앞건물은 우리보다 한층의 높이가 조금 높다. 그 컴퓨터 학원도 우리와 같은 6층이지만
그 학원을 보려면 약간 올려다봐야 한다.
나는 계속 그 여자를 주시했다. 자세히 살피니 이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창에 서 있지만 여자가 멀어 보인다. 창속에 창이 있다. 창에 서 있지만 여자가 멀어 보인다.
창속에 창이 있다. 창에 서 있지만 여자가 멀어 보인다. 창속에 창이 있다.....
나는 갑자기 심장이 터질것만 같고 다리에 힘이 쫘악 풀려 버렸다.
나는 복도 창틀을 잡고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계속 거칠게 숨을 내 쉬었다.
"헉헉....형 가만 있어봐."
"어? 너 왜그래? 귀신 들렸냐?
"헉..헉.. 우와 미치겠다."
"야 너 진짜 왜그래?"
"형. 전에 사무실에서 형이 왜 그 여자를 못봤는지 알겠어."
"왜?"
"헉헉..아 씨.발 욕나오네. 지금 앞에 있는 저 여자 저기 있는게 아냐.
우리 바로 머리 위에 있어. 7층 말야!!
저 여자 이 건물에 같이 있는 거라구-."
형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린 듯 한마디 내뱉았다.
"아.. 씨.발 소름끼쳐. 진짜 저거 뭐하는 년이야?"
나는 눈에 눈물이 다 글썽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채 형에게 물었다.
"형. 아직 그 여자 있어?"
"응."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 보았다.
바로 그 때 그 여자 또다시 그 까만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저 여자 어디 가는거야?"
우리는 복도 맨 끝창에 있었다. 우리가 등지고 있는 반대편 복도 맨끝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저 여자 내려오는 것 아냐?"
형의 이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 경비실로 가자!!!"
우리는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었다.
엘리베이터...엘리베이터...나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무서웠다.
그리고 하필 엘리베이터가 9층에 정지해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7층을 거쳐내려 온다는 생각에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어졌다.
문이 열렸는데 그 여자가 떡 서있다고 상상하니 오금이 저렸다.
"형.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자"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는 엘리베이터 옆의 계단으로 미.친듯이 뛰어내려 갔다.
어느 사무실에서 엘리베이터를 쓰는지 내려오는 중간에 "땡"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태어나서 엘리베이터의 "땡"하는 종소리가 이렇게 무서워 본적이 없었다.
평소에 들리지도 않던 종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지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아저씨!!...아저씨!!"
1층 현관에 내려온 우리는 경비 아저씨를 급하게 찾았다.
-순찰중-
경비초소 앞에 놓여 있는 푯말 하나에 우리는 기운이 확 풀어졌다.
그리고 우리 등 뒤로 다시 엘리베이터 종소리가 들렸다.
"땡"
심장이 터져 버릴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경비 아저씨였다.
"무슨 일 있어?"
경비 아저씨는 후레쉬 하나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저씨 7층 사무실에 좀 갑시다."
"뭔일인데?"
"7층에 웬 이상한 여자가 있어요."
그러자 경비 아저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이 야밤에 누가 있다고?"
"아저씨 빨리 가보자니까요."
"거긴 빈 건물인데."
"우리도 알아요. 그냥 사무실안에만 들여다보자니까요."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이 궁시렁거리며, 우리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향했다.
2층...3층...4층...5층...6층....그리고 7층.
"땡"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애써 나는 침착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경비 아저씨는 두꺼운 방화벽 철문을 열쇠로 열기 시작하며 계속 궁시렁거렸다.
"아니..이렇게 잠겨있는데 누가 있다는거야? 이거 말고도 안에 문이 또 있어."
철문이 열리자 강화유리문이 앞에 보였다. 강화유리문은 쇠사슬로 묶여있고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강화유리문까지 열리자 경비 아저씨는 내부 조명 스위치를 켰다.
무슨 사업체가 있었는지 천장과 바닥이 화려하게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교육장으로 쓰였는지 80평이 되는 큰 홀이 하나 있고 작은 방이 세칸으로 꾸며져 있었다.
100평 가까이 되는 텅빈 공간에 퀘퀘한 시멘트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여기저기 마구 뒤졌다. 작은 방의 문을 열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조심스럽게 여기저기 살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아이 진짜..짜증나네. 아무도 없잖아."
그런데 경비 아저씨가 대뜸 우리에게 물었다.
"자네들 여자 귀신 봤구만."
"헉. 아저씨 어떻게 아세요?"
"이 얘기 건물주가 들으면 안좋은 건데....전에 이곳에 다이너스티라는 다단계 회사가
입주해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많았었거든?
그런데 일주일에 한번 꼴로 여자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밤에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여자가 있다는 거야."
"그 여자.....귀신이예요?"
"몰라 나도.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거든. 그냥 한번 보면 왜 나타나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그 여자 때문인지 모르지만 여기 사업이 잘 안되서 사무실 빼고 나갔지.
그 뒤로 계속 몇 달동안 입주도 안되고 계속 비어 있는거야."
"........."
"내가 오기 전인가 본데, 이 건물이 들어서지 얼마있지 않아 불이 났었는데 여자가
한 명 죽었다고 하더군. 그 여자의 혼령일지도 모르지"
"여자가 죽어요?"
"몰라..그냥 여자가 죽었대."
옆에 있던 형이 말을 거들었다.
"그래서 그 컴퓨터 학원 원장이 여기에 여자가 죽었네 어쨌네 했구나.
한참 뒤에 다른 건물에 입주한 여자가 별걸 다 알고 돌아다니네."
그 뒤로 얼마 뒤 7층에 사무실이 입주했다. 큰 교회에 소속된 성경 연구회라는 곳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100평을 모두 사용하지 않고 절반만 사용한다고 한다.
그 뒤로 귀신 나타나면 알아서 기도로 해치우겠지 하며 우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 성경 연구회라는 사무실은 12시가 넘도록 불이 켜져 있고 통성 기도로 인해 그 여자가
나타날 때보다 더 무서운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환한 불빛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여자를 볼 수 없었다. 그 성경연구회도 멀쩡하게 보였고.
야밤에 통성 기도로 시끄러울 때 그 형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한다.
"그 년은 뭐하나? 저 사람들 조용히 좀 시키지."
몇 년 뒤 사무실이 이전할 때까지 다시는 그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나타나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어두운 층만 돌아다니면서 누군가에게 다시 나타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여자가 귀신이라고 확신하진 않는다.
그냥 그 때의 사건이 단지 풀기 힘든 미스테리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