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FO: Unidentified Flying Object, 미확인 비행 물체.
냉전 시대에 미국에서 보고된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담들이 그 시발점으로
이후 이러한 목격담들과 목격자들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이에 동조한 대중매체들로 인해
대중들의 인식은 점차 '적국의 정찰기'에서 '외계인이 탑승한 우주선'으로 변모.
하지만 미국 정부가 냉전 시대 동안 이 UFO가 소련의 정찰기일지 모른다고 걱정해
비밀리에 조사기관을 설립, 무려 17년간 1만여 건이 넘는 UFO 목격 보고를 모아
조사에 착수했지만, 일부 정보부족 및 추가 증언의 부재 등과 같은 목격담을 제외하곤
전부 목격자들의 착각 혹은 거짓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아직까지
'UFO=외계인이 탑승한 우주선'이라는 가설은 증명되지 못함.
어쨌든 지구에서 발견되는 UFO 일부가 정말 외계에서 날라온
우주선이라 할지라도 분명 그 안엔 외계인이 탑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행성에 정찰을 목적으로 우주선을 보내면서 목적형 로봇이 아니라
외계인을 직접 탑승시킬 만큼 무모한 문명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1940년대
1942년 2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일명 'Battle of Los Angeles'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일본이 말레이 작전과 진주만 공격이래 아시아와 태평양 전선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연승을 거듭함과 함께 미국 서해안 연안을 항해 중이던 미국 측의 유조선 및 화물선을 10척 넘게 격침하는 등
일본 해군 잠수함에 의한 본토 피해가 속출하자 미국은 깊은 우려를 하게 됨.
이러한 와중 일본 해군 함정의 공격이 갈수록 심해지자
미국 정부는 일본이 곧 미국 내륙에 상륙작전을 준비 중일 것으로 분석,
서해안 연안의 주요 항구마다 각별한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대비.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일본 해군 함정에 의해 새벽녘 정유시설에
포격이 이루어졌음에도 미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맘.
이 폭격은 1942년 2월 24일 새벽에 시작되어 이날 밤 10시 22분에야 경계 태세가 해제되었는데
경계 태세 해제가 발령된 3시간여 후인 25일 새벽 1시 44분에 문제의 사건이 벌어지게 됨.
새벽 1시 44분, 로스앤젤레스의 육군 방공 레이더가 서쪽 190km 지점에서 일본 군용기로
추측되는 비행 물체의 이동을 감지하며 대공포와 육군 항공대의 요격기가 대기 태세에 들어감.
새벽 3시 16분, 15기로 추정되는 비행 물체가 서행에서 시속 320k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속도로 편대비행 하며 내륙으로 접근하자 탐조등을 비치고 있던
미 육군 제37해안 포병 여단은 12.8파운드의 대공포를 발사하기 시작.
이날 새벽 4시 14분까지 무려 1,430발의 대공포가 발사되었음에도
해당 비행 물체들은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졌으며
오히려 대공포 파편으로 인해 다수 건물에 피해가 발생함과 함께
3명의 민간인이 피격당하며 사망하고 맘.
(이외에 추가로 3명의 민간인이 충격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
당시 육군 참모 총장이었던 조지 C. 마샬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보내는 기밀문서에서 해당 사건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음.
"매우 느린 속력에서부터 시속 320k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속도로 비행 중이던
15기(추정)의 비행 물체가 로스앤젤레스의 대공 부대로부터 사격을 받음.
이 비행 물체들은 고도 2.7~5.4km에서 비행 중이었으며
대공 부대의 사격으로 인해 격추된 비행 물체들은 없음.
이 비행 물체들은 폭탄을 투하하거나 공격을 하지 않아
아군 부대에도 피해는 없음.
현재 조사가 진행 중으로 만약 해당 비행 물체가 적군의 것이라면
이는 공작원에 의해 민간 항공기들이 대공포의 위치를
파악함과 함께 불안을 부추기고자 한 짓으로 추정할 수 있음.
저마다 비행 속도가 제각각이며 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증빙."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드러난 일본 해군 측의 기록에서는
사건이 있었던 이날 어떠한 항공 정찰 및 공격도 하지 않았음이 밝혀짐.
한편 사건 당시의 목격담에 따르면 30~40기의 비행 물체가 편대비행을 했으며
그 중 백색 발광체들은 시속 75km 정도로 서행하며 대공포를 무시하는가 하면
한 붉은색 발광체는 시속 29,000km의 속도로 지그재그 비행을 했다고도 함.
<사건 당시인 1942년 2월 26일 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작성자의 개인의견
해당 사건은 UFO와 관련하여 실제로 국가 차원에서
공격이 이루어진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공식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 비행 물체들은 외계인이 탑승한 우주선들이었을까?
당시 실제로 비행 물체를 목격한 이들 대부분은 해당 물체들이 탐조등 불빛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탐조등의 움직임에 따라 비행 물체답지 않은 느린 속력으로 이동했다고 목격했다.
(시속 29,000km의 속력으로 비행했다고 주장한 목격자는 단 1명,
참고로 해당 지식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의 맨눈으로는
자신이 사전에 알고 있던 종류의 비행 물체이거나 또는 한눈에 식별이 가능한 만큼의
거리에서 이루어진 관측이 아니라면 상공에서 움직이는 비행 물체의 크기 및 속력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행 물체들, 아니 비행 발광체는 사실 탐조등의 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만들어진
원형의 발광체와 탐조등 빛끼리의 충돌로 인해 생겨난 빛의 클러스터(cluster)들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발광체라면 폭탄을 투하하지도 않고 대공포를
마치 유령인 것처럼 그대로 통과시킬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해당 현상은 손전등으로 상공을 비추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움>
2004년에 멕시코 공군의 소령, 대위, 중위를 태운 정찰기가 거대해저 유전(油田)에서 내뿜는 불을
UFO로 오인해 추격전을 벌였던 게 각국 유수 언론에 '멕시코 공군이 UFO와 추격전을 벌여'라는
식으로 보도됐던 것을 떠올려볼 때 반세기 전에 벌어진 이 해프닝은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수준이다.
비록 이러한 해프닝의 주인공이 미군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당시 미군은 일본군의 가미가제에 대해 반 히스테리 상태였음)
사실 해당 사건이 UFO의 소행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탓을 할 수도 있겠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당시 여느 신문이 그랬듯 좋지 않은 사진 인쇄술로 인해
사진을 선명하게 싣고자 음영을 강조한 후처리 보정을 했고
이 때문에 마치 탐조등이 UFO를 비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보정판>
<원본>
1947년 6월 14일, 미국 뉴멕시코 주 링컨 군
일명 'Roswell UFO incident'
개요
1947년 6월 14일, 미국 뉴멕시코 주 링컨 군의 J. B. 포스터 목장 부근에
미확인 비행 물체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을 목장 관리인 윌리엄 브라젤이 발견.
이후 7월 4일, 자신이 봤던 게 처음 보는 물체라 내내 신경을 쓰고 있던
윌리엄 브라젤이 가족을 동반해 재차 현장을 방문.
그 이튿날, 윌리엄 브라젤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비행 물체 잔해 이야기를 꺼냈고
이에 친구들은 당시 미국 전역에 핫이슈였던 '케네스 아놀드가 목격한 비행접시'
이야기를 들어 비행접시의 잔해를 목격한 게 아니냐고 반문.
친구들의 말을 들은 윌리엄 브라젤은 처음 기상청에 하늘에서 낙하한 잔해를 수거했다고
신고하지만 기상청에서는 지역 보안관에게 말해보라고 대답, 이에 이튿날인 7월 7일
윌리엄 브라젤은 시내로 나서는 길에 지역 보안관인 조지 윌콕스에게 비행접시를 발견했다고 신고.
신고를 받은 조지 윌콕스는 비행접시가 소련의 정찰기일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근처 군부대인 로스웰 육군항공대에 전화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림.
(당시 세간에 화제이던 비행접시는 외계인이 탑승한 우주선이 아니라
주로 적국의 비밀 정찰기로 인식되고 있었음)
역시 신고를 받은 로스웰 육군항공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제8공군 소속 509폭격부대 지휘관인 윌리엄 블랜차드 대령의 지시하에
정보장교 제시 마르셀 소령을 리더로 한 잔해회수팀이 현장으로 출동.
여기서 잔해회수팀에 의해 회수된 잔해들이 상위 사령부로 이첩됐으며
동시에 윌리엄 블랜차드 대령의 지시로 공보장교인 월터 하우트 중위가
소문의 비행접시 잔해를 회수했다는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
곧 해당 소식은 각 신문사는 물론 더타임스를 비롯해 타국의 주요 언론지들에도 빠르게 전파.
<FBI의 종신 국장 J. 에드거 후버 또한 당시 해당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FBI가 회수된 잔해에 대해 완전한 권한을 얻어야 한다고 의견을 타진>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러한 발표 당일에 상위 사령부인 제8공군의 지휘관
로저 래미 준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기자들을 불러모아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잔해가 비행접시의 것이 아닌 기상관측용 기구의 것이라고 정정.
로저 래미 준장뿐만 아니라 육군항공대 역시 대변인을 내세워
해당 잔해가 보통의 기상관측용 기구 잔해였다고 발표.
이후 30여 년 간 묻히게 됐던 해당 사건은 UFO 연구가인 스탠튼 프리드먼과 윌리엄 무어,
그리고 미스터리 작가인 찰스 베리츠에 의해 그 숨겨진 이야기가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
해당 사건의 내막은 다음과 같았다고 함.
"1947년 6월 14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외계에서 온 UFO가 뉴멕시코 주에 불시착하게 됨.
여기서 1차로 산산이 부서진 잔해들은 J. B. 포스터 목장에 떨어졌고
나머지 본체는 마그달레나 근처 샌 어거스틴 평원에 그대로 추락.
7월 3일, 토양관리국 토목기사였던 그래디 바넷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고고학 조사단이 직경 7~9m 정도의 원반형 UFO와 외계인 시신들을 발견.
이 외계인 시신들은 인간과 비슷한 모습에 매우 작고 둥근 몸집,
머리카락이 없고 몸에 비해 큰 머리, 기묘하리만큼 떨어져 있는 작은 두 눈을
가지고 있었고 회색으로 지퍼, 벨트, 단추가 없이 상하가 연결돼있는 의복을 착용.
이 때 한 무리의 군인을 끌고 온 장교가 현장에 비상경계선을 설치하더니
이들에게 지금 목격한 것은 군사기밀이니 절대로 함구하라며 위협.
이후 펜타곤과 육군항공대의 지시하에 빠르게 사건 은폐가 이루어짐.
한편 당시 509폭격부대의 공보장교였던 월터 하우트 중위는 지휘관인
윌리엄 블랜차드 대령을 따라 한 격납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UFO와 외계인 시신들을 목격.
UFO는 직경 3.6~4.5m, 높이는 1.8m였으며 알 모양에 금속성으로
창문, 창, 날개, 꼬리 부분, 착륙장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함.
외계인 시신들은 2~3구 정도로 방수포에 덮여 있어 자세히는
관찰하지 못했지만 대략 10세 정도 아이의 크기였다고 함."
<대략 이런 분위기였을 듯>
작성자의 개인 의견
로스웰 UFO 사건 이야기야말로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뻔뻔한
사기극 중 하나로 어떠한 이야기도 몇몇에 의해 그것이
신화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좋은 사료이기도 하다.
사건 당시 최초 목격자인 윌리엄 브라젤이 해당 잔해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이라고 진술했으며
신문에서도 그러한 잔해들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음에도
사람들은 30년도 더 지난 후에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더욱 신뢰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당시 발견된 잔해물은 미 공군이 시행 중이던 극비 군사 프로젝트의 부산물이었다.
헌데 이러한 부산물이 기상악화로 인해 경로를 벗어나 J. B. 포스터 목장에 불시착하였고
얼마 안 있어 각국 언론에서 비행접시의 잔해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로까지 진행되자
당황한 미 육군항공대 측은 할 수 없이 해당 잔해물이 자신들이 극비리에 진행 중이던
대(對) 소련 첩보 레이더 풍선이었음을 시인한다.
이러한 군의 시인에 해당 사건은 빠르게 잊혀졌는데 애꿎게도 30여 년 후
뻔뻔한 UFO 연구가들에 의해 'UFO와 외계인의 불시착, 그리고 정부의 은폐'라는
컨셉으로 다시금 재창조되기에 이른다.
여기에 이 UFO 연구가들과 협력하여 당시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였던 찰스 베리츠가
해당 사건을 멋들어지게 집필하면서 이 로스웰 UFO 사건은 본격적으로 상업 콘텐츠화되기 시작한다.
(찰스 베리츠는 버뮤다 삼각지대, 필라델피아 실험, 1999년 지구 종말과 같은 소재들을
마치 실제인 양 꾸며낸 저서들로 수천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한 명실상부 미스터리 업계의 전설,
자세한 이야기는 '이상한 옴니버스' 시리즈 중 '버뮤다 삼각지대의 완전한 진실',
'시공간을 초월한 필라델피아 실험의 진실', '미스터리 업계의 전설들' 편을 참조)
이뿐 아니라 당시 509폭격부대의 공보장교였던 월터 하우트가 로스웰에 UFO 박물관을 설립,
자신이 사건 당시 UFO와 외계인을 봤다고 친(親) 외계인 방송인 폭스 방송사에
보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사막투성이의 로스웰에 UFO와 외계인을 지역산업으로 발전시킨다.
로스웰 UFO 사건과 관련하여 보다 자세하고 개괄적인 이야기는 '이상한 옴니버스' 시리즈 중
'로스웰 사건의 완전한 재구성 1~3부' 편을 참조 바라며 완벽하게 상세한 이야기는
곧 출판될 이상한 옴니버스 블로그 측의 출간물에서 확인 가능.
1947년 6월 21일, 미국 워싱턴 주 몰리 섬
일명 'Maury Island incident'
개요
1947년 6월 21일, 선원인 해롤드 A. 달은 섬 근처를 순찰하던 중 6기의 원반형 UFO를 목격.
이 UFO들은 도넛 모양을 하고 있어 가운데 고리 부분을 통해 상공의 하늘이 보였다고 함.
구름들 사이에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이 비행 물체들은 그의 배 쪽으로 접근해왔는데
이 중 1대는 마치 기체에 고장이라도 난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고 함.
그렇게 고장 난 것처럼 보이던 1기가 곧 경량의 금속 물체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파편으로 인해 해롤드 A. 달의 배(boat) 일부에 손상을 입혔으며 당시 갑판에 있던
자신의 아들 또한 경미한 부상을 입었고 그의 개는 그만 사망하고 맘.
이러한 파편 배출 후 문제의 비행 물체는 이번엔 검은 액체를 방출하더니
곧이어 고도를 높여 다른 5기의 비행 물체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비행했다고 함.
한편 사건이 있은 다음 날, 맨 인 블랙 1명이 해롤드 A. 달을 찾아와
어제 본 것을 절대 발설하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고 함.
작성자의 개인 의견
해당 사건의 목격자가 오직 해롤드 A. 달뿐이라는 점과
그가 사건 1개월 후에 한 유명인에게 편지로 이 사건을 알렸다는 점이 수상하다.
그의 편지를 받은 이는 바로 최초로 UFO를 핫이슈로 만들었던 케네스 아놀드였다.
1947년 6월 24일에 UFO를 목격했다고 밝히면서 단숨에 유명인사가 된
케네스 아놀드는 이러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받고서 자신의 지인인
미 공군 소속 스미스 대위를 대동한 채 해롤드 A. 달을 찾는다.
그러자 여기서 이 유명인이 공군 장교를 대동해 찾아올 줄 몰랐던
해롤드 A. 달은 당황해 하며 자신은 그러한 사건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아마 유명인의 관심을 끌어내려고 했던 게 일이 커지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만남 전에 케네스 아놀드는 스미스 대위와 함께 사건 현장을 찾아
문제의 금속 파편들을 수거해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 파편들의 정체는
부식 방지용 코팅제와 군용 항공기에 사용되는 알루미늄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후 60여 년이 지나 해롤드 A. 달의 자녀가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밝힌다.
하긴, 그가 만났다는 맨 인 블랙의 사건 처리 방식이 너무 낯설기는 했다.
1947년 6월 24일, 미국 워싱턴 주 레이니어 산
일명 'Kenneth Arnold UFO sighting'
개요
사업가였던 케네스 아놀드는 1947년 6월 24일, 워싱턴 주 레이니어 산 부근에서
자신의 자가용 경비행기를 몰던 중 9기의 비행물체가 목격했다고 밝히며 일약 유명인사가 됨.
그는 고도 2,800m 지점에서 9기의 발광체들이 편대 비행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직경 8m 정도로 보이는 이 비행 물체들은 지그재그 비행을 하며 시속 2,700km의 속도를 냈다고 함.
한편 현지 신문사 기자였던 빌 베게트가 물 위를 가로지르는 비행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한
케네스 아놀드의 말을 인용해 비행접시(flying saucer)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것을 기점으로
미국 전역에 저마다 비행접시를 봤다는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
작성자의 개인 의견
그는 최초 인터뷰에서 해당 비행 물체의 모양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제트 엔진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비행 물체의 정확한 모습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관측이었다면
그가 밝힌 해당 물체의 크기와 속력 또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긴다.
(현대의 일류 파일럿들 조차 비행 중 상공 물체에 대한 관측에는 종종 오류가 발생
참고로 해당 지식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의 맨눈으로는
자신이 사전에 알고 있던 종류의 비행 물체이거나 또는 한눈에 식별이 가능한 만큼의
거리에서 이루어진 관측이 아니라면 상공에서 움직이는 비행 물체의 크기 및 속력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당시 시기를 감안해 다음의 3가지 가정으로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유성체나 운석.
둘째, 당시 미 공군이 한창 시험비행 중이던 'V'자 형의 폭격기.
셋째, 아메리칸 화이트 펠리컨 무리.
1948년 1월 7일, 미국 켄터키 주 프랭클린
일명 'Mantell UFO incident'
개요
1948년 1월 7일, 이날 아침부터 미확인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르자
오후 2시 45분경 근처를 비행 중이던 켄터키 주의 공군 대위 토마스 F. 맨텔이
함께 비행 중이던 다른 3기의 비행기들과 이 비행 물체를 추적.
여기서 해당 비행 물체를 추적하던 다른 3기의 파일럿들은 연료 부족을 이유로 추적을 중단하지만
토마스 F. 맨텔 대위는 계속해서 위로 상승 중인 비행 물체를 따라 계속해서 추적을 감행.
오후 3시 15분, 토마스 F. 맨텔 대위가 탑승한 전투기가
교신이 끊김과 함께 행방이 묘연해지자 즉시 수색대가 파견.
이후 오후 5시경, 켄터키 주 공군 기지에서 약 150km 떨어진 한 농장 부근에
추락한 노스 아메리칸 P-51 머스탱과 함께 조종석에서 토마스 F. 맨텔 대위의 시신이 발견됨.
한편 사건 당시 토마스 F. 맨텔 대위가 무선을 통해 '비행 물체에서 사람들이 보인다'라고 말했으며
비행 물체가 그의 전투기를 향해 레이저 광선을 발포, 토마스 F. 맨텔 대위의 시신이 사실은
사라진 상태였음, 그의 시신이 고온에 의해 구워진 상태였다라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옴.
작성자의 개인 의견
먼저 토마스 F. 맨텔 대위가 무선을 통해 비행 물체에서 사람들이 보인다고 했던 것,
이 비행 물체가 레이저 광선을 발포했다거나 그의 시신 상태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UFO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제 당시 공군에서 공식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는 해당 비행 물체를 추적하면서
'금속성으로 보이며 엄청난 크기이다'라고 말한 게 전부이고 이후 산소마스크도 없는 상태로
고도 9,000m까지 정신없이 추적을 하다 그만 산소 결핍으로 의식을 잃어 그대로 추락했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물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전투기에서도 어떤 공격을 받은 흔적도 없었으며
파손 형태 역시 지면과 충돌하면서 생긴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또 토마스 F. 맨텔 대위의 시신 역시 조종 도중 의식을 잃은 듯 조종석에 얌전한 상태로 뉘어있었다.
한편 사건 당일 주민들이 '아이스크림콘을 거꾸로 한 형상'의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며 신고해왔는데 이는 당시 토마스 F. 맨텔 대위가 쫓던
바로 그 비행물체로 미 해군 측의 스카이 훅 풍선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처럼 당시 해군이 사용하던 스카이 훅 풍선은 거대한 크기에
거꾸로 든 아이스크림콘 모양, 그리고 금속성으로 보이는 외관을 지니고 있음>
사실 이 스카이 훅 풍선은 로스웰 UFO 사건의 경우처럼
해군이 비밀리에 진행하던 대(對) 소련 첩보 관측기구의 일종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건 당시 조사를 진행하던 공군 측은 해군의 이러한 기밀 프로젝트를
알지 못해 토마스 F. 맨텔 대위가 금성을 비행 물체로 오인해 추격하던 도중 변을 당했다고
(실제로 파일럿들조차 종종 금성이나 목성을 비행 물체로 오인함) 1차 발표를 했다가
이후 내막을 알고서 1956년에야 이 고도 수만 m를 떠도는 직경 30m, 높이 180m의 풍선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정정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948년 10월 1일, 미국 노스다코다 주 파고
일명 'Gorman dogfight'
개요
1948년 10월 1일, 노스다코타 주의 공군 소위 조지 고먼은 노스 아메리칸 P-51 머스탱을 타고
다른 파일럿과 함께 비행을 하던 중 저녁 8시 30분경 파고에 도착.
여기서 다른 파일럿은 파고 내 헥터 국제공항에 착륙하나
조지 고먼 소위는 구름 상태로 인해 지연 착륙하기로 결정.
저녁 9시경, 고도 300m 부근에서 비행 중이던 조지 고먼 소위는
전방에서 한 발광체를 발견하곤 7분 후 관제탑에 이를 알린 뒤 접근을 시도.
시속 400km 정도의 이 발광체는 조지 고먼 소위의 전투기가 접근하면 곧바로 급선회해 상승하기를 반복.
결국, 고도 1,500m 즈음까지 접근과 선회를 반복한 이 도그파이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로펠러 달린 비행기들이 공중전을 통해 마치 개들이 싸울 때 서로의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것처럼 상대의 후미를 노리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는 무려 20분간이나 지속됐고
해당 발광체는 끝내 고도 4,000m 즈음에서 조지 고먼 소위의 시야에서 사라짐.
작성자의 개인 의견
해당 사건은 앞서 토마스 F. 맨텔 대위의 경우처럼 일류 파일럿이라도
(실제로 조지 고먼은 사건 당시 25세로 소위에 불과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출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였음) 비행 물체가 아닌 발광체를
보고도 쉽게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을 증빙할 대표적인 케이스로 볼 수 있겠다.
조지 고먼 소위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해당 발광체는 백색을 띠고 있었으며
항상 자신의 전방에 위치해 있었고 전투기 내부에서 볼 때 그 직경은 20cm 미만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건 당일 밤 9시경에 해당 장소에서 목성이 광범위하게 목격됐다는 것이다.
특히 당일엔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기온역전 현상으로 인한 중력렌즈 효과 때문에
신기루 현상이 발생해 실제로 목성이 여러 곳에서 관측되기도 했었다.
사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저녁 9시 20분을 기해 목성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갔기 때문에 당시 그가 저녁 9시부터 9시 27분까지 쫓던
물체(계속해서 상승하던)는 실은 목성이었을 확률이 높다.
추가로 조지 고먼 소위는 해당 발광체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움직였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앞서 멕시코 공군이 거대해저 유전의 불꽃을 쫓았던 것처럼 멀리 있는 발광체가
가만히 있다고 해도 전투기와 같이 움직임에 따라 조종사가 직접적인 요동을 느낄 경우
인간의 시각은 정지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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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문헌: UFO事件簿
위키백과
Forgetomori
The 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
Project Blue Book
출처:http://blog.naver.com/medeiason
[출처] [이상한 옴니버스] 20세기 UFO 사건 역사 1부: 1940년대|작성자 메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