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요.
취업 후 약 10개월만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셨는지요.
눈팅만 하다가 '싸이코패쓰'하니까
생각나는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와 있었던 일을 적어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싸이코패쓰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100%실화입니다만 재미는 좀...
때는 2000년,
겁대가리를 상실한다는 중2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2학기가 시작할 때 즈음...
전학생 한명이 서울에서 왔다.
이름은 전은혜,
엄청 이쁘고 늘 입가에는 환한 미소를 하고 있어
전학오면서부터 시커먼 남자녀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데 나는 은혜가 이쁜건 인정하지만
뭔가 그녀의 얼굴을 계속 보는게 불편했다.
눈에 초점은 없는데 입만 웃고 있다고 해야 하나?
당시에는 기분 탓인지, 뭔지
나는 그녀의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문제는 내 짝이 되었다는 사실...
그래도 전학 온 학생한테 예의일 것 같아서
나도 웃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인사를 완전히 무시하며 자리에 앉았다.
'좀 전까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가 맞나?'
할 정도로 무표정으로 앞을 응시했다.
워낙 까불거리는 성격인 나는 은혜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OO라고 해?"
은혜는 전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서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평소같았으면 화를 내거나, 심한 장난을 쳤겠지만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그냥 내버려뒀다.
우습게도 쉬는 시간에
많은 아이들이 그녀 앞에 왔을 때
다시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반겼다.
아이들은 은혜에게 여러가지 물었다.
서울에서 왜 전학을 왔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핸드폰이 있는지 기타등등
은혜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물음에 답했다.
그런데 대화의 내용이 매우 이상했다.
왜 은혜는 "응" 또는 "아니"로 밖에 대답을 하지 않을까?
'혹시 어디 아픈 아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를 들자면 자폐증이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그런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아이들이 가고 나서 싹 사라졌다.
수업시간이 시작되자 은혜를 둘러싼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은혜는 나에게 물었다.
"너 쟤 알아?"
은혜는 영석이를 가르켰다.
"당연하지 우리반인데? 왜?"
"쟤 발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쟤 발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내 발가락을 밟았거든?"
나는 너무 당황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해도 걔가 흔히 일진같은거 그런거 인줄 알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그런류로 밖에 생각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날 은혜가 학교에 배치된 소화기로 영석이 발가락을 찍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수인척 은혜가 사과를 했지만 영석이 엄지 발가락 발톱이 빠질 정도로 심하게 찍은 것 같다.
터진 덧신 사이로 피가 쏟아져 내렸다.
은혜는 실수인척, 미안한척, 당황한척했다.
이상하게도 그날, 나에게는 엄청난 사건으로 보였지만 그저 실수인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리고 시간이 1주일 정도 흘렀다.
여전히 은혜는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면 웃으며 미소만 지어줄 뿐,
대화를 하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같은반 애들도 뭔가 느꼈는지 은혜 근처에 잘 오지 않았고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음악 시간, 에델바이스를 반 전체가 부르는데
은혜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생님 앞에 나가게 되었다.
당시 음악 선생은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를 굉장히 싫어했다.
깊은 빡침에 은혜를 불러 혼자 노래해보라고 했다.
은혜는 미소만 지으며 선생님을 바라 볼 뿐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선생은 피아노를 치며 따라 불러보라고 했다.
여전히 은혜는 미소만 지을 뿐 부르지 않았다.
화가 난 선생님은 지금 웃음이 나오냐며 은혜를 다그쳤다.
은혜는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폭발한 선생은 쟤 뭐냐며 따라나갔다.
그런데 음악선생이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문 옆에 숨어있던 은혜가 나타나 힘껏 선생의 몸을 밀었다.
선생이 뚱녀라서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은 정도로 끝났지
마르고 연약했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선생을 밀친 사건으로 난리가 일어날 줄 알았지만
교무실을 다녀온 뒤 다시 별거아닌 해프닝으로 끝났다.
나는 은혜가 무서워졌다.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그 뒤로 은혜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은혜는 다른 곳에 전학을 갔다.
무성한 소문만 남기고 말이다.
은혜가 전학을 가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
"너희들 앞에서 일부러 웃어주기 정말 힘들었다 잘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