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9살 무렵 잠깐 살았던 집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일년 정도 살았던 것 같네요.
그 집은 원래 폐가나 흉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나오게 된 어떤 계기로 폐가가 되어 버렸죠.
그 집에서 이사나오게 된 계기를 잠깐 적어볼까 합니다.
그 집 지붕은 주황색 슬레이트...(맞나요? 올록볼록 물결모양의...)로 되어 있고 벽은 겉 면만 시멘트로 된 집이었죠.
아주 촌이었기 때문에 시멘트로 된 그 집이 당시에는 그래도 좀 괜찮아 보였는데, 안에서 보면 흙집이었습니다.
흙 위에 도배를 해 놔서 뭐 안에서 봐도 흙집 느낌은 나지 않고, 여름엔 시원하고.. 좋았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에러인 것이.. 집 바로 옆에 무덤이 두 개 있었다는 것이죠.
(집 주소도 당시엔... XX2리 주황색집 또는 XX2리 무덤옆집 이었어요. 진짜... -_-)
저는 무덤이 무서워서 근처에 잘 가지는 않았지만, 동네에 저보다 조금 어린 아이들에게 그 곳은 딱 놀이터로
적당했습니다. 낮에는 무덤 바로 옆에 사는 저희 집 부모님도 모두 안 계신 터라 무덤에서 놀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없었고,
또 무덤은 아시다시피 온통 잔디밭이었으니까요. 제가 살던 곳은 워낙 깡촌이라 놀이터 그런거, 없었습니다. ;;
여튼 그러면 안 되지만, 무덤 위에 올라가서 서로 편을 나눠 무덤위를 차지하며 밀쳐내는 놀이 등을 하곤 했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무덤에서 몇번 놀기도 했구요. 부모님이 그러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하셨고 동네 어른들에게 가끔 혼나기도
했지만 어디 말을 들어먹나요. 얼마나 무덤 위에 올라가 놀았는지, 무덤 위엔 잔디가 다 닳아서 흙이 드러날 정도였지요.
(그러면 안되는건데... 너무 어렸네요 ㅠㅠ)
그 무덤 옆에 위치한 당시 저희 집은 방이 3개였는데, 무덤이 있는 방향인 가장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던 방은 창고처럼
쓰고 나머지 두 방에서만 지냈지요.
그 가장 오른쪽 방에는 무덤 방향으로 벽에 창문이 하나 있었고, 그 창문을 열면 집 옆켠의 무덤이 정말 한 눈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창문과 무덤 거리가.. 한 3~4m 정도 될 정도로 엄청 가까웠습니다.
방 위치 자체가 햇볕도 잘 안들고, 창문을 열면 무덤이 너무 정면에 바로 보이고 해서... 여튼 그 방엔 잘 안들어갔네요.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인데, 그 무덤 중 하나는 그 집 주인 아저씨의 무덤이었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젊은 아주머니가
남편의 무덤을 집 안에서 항상 지켜보려고 창 바로 앞에 무덤자리를 낸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남편 사별 후 정신 쪽으로 좀 안 좋아 지셔서 집을 비운 채로 몇 년씩 전국을 돌아다니곤 했다는 겁니다.
저희 가족이 그 집을 얻은 건 그 아주머니가 없어지고 십수년도 훨씬 더 되었을 시점이었을 걸로 생각되구요.
여튼 이사나오기 일주일 쯤 전 까지는 아무일 없이 그 집에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사건이 생겼지요.
집에서 자고 있는데 어디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셋다 동시에 그 소리에 놀라 깼죠.
어두운 방에서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쿵쿵.... 쿵쿵... 쿵!!! 쿵!!!"
하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렸고, 겁에 질린 저는 이불속에
엄마와 숨고, 아버지가 "누구야?!" 하고 크게 소리치셨죠. 그런데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3~4초 간격으로 계속...
자세히 들어보니 소리는 가장 오른쪽 방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고 나가시더니 한참 후...
"누구요???!" 하는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알고 보니 저희 집에 살았다던 그 아주머니가 몰래 그 방으로 들어가서는 도배지로 막아버린 창문을 열려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였던 것이었죠. 그 아주머니 등장에 야밤임에도 동네 어르신 몇 분이 저희 집에 찾아오셨고,
그 아주머니는 아마 어르신들과 다른 집으로 가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잠깐 그 아주머니를 봤는데 약 50대 정도 되는
얼굴이었는데 머리는 반 백발에 헝클어져 있고, 정말 꼬질꼬질했습니다. 그저 당시엔 너무 무섭기만 했죠.
다음 날 날이 밝고, 학교를 가서 하교 시간이 다 되어갈 때 쯤 교무실로 어머니의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은 학교 근처에 당시 가족들끼리 친하게 지내던 친구 집으로 하교하라는 어머니의 전화였습니다.
저는 영문도 모르고 신나서 그 친구 집으로 하교를 했고, 그날 그 친구 집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집 부모님과 저희 부모님이 나눈 말씀을 잠결에 듣고, 집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인 즉슨, 그 아주머니가 다음날 정신이 돌아와서... 낮에 남편 무덤을 보려고 가족 한명과 함께 왔는데, 무덤 위가
다 까져 있는걸 보고는 이성을 잃어서 동네 애XX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길이길이 날뛰어서 진정시켜러다가,
벌초하려고 가져온 낫을 휘둘러서 같이온 가족 한명이 크게 다치셨다고... 그리고 그 사단이 났는데 그 아주머니가 그대로
사라져버린 거였죠. 일단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별다른 뭐 별 다른 소득도 없었던 것 같구요.
여튼 그래서 그 아주머니가 또 언제 찾아와서 헤코지 할 지도 모르고... 여튼 그래서 그 집에는 더 이상 가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동네에 사는 동안 그 집엔 아무도 살지 않게 되었고, 결국 정말 낮에 봐도 소름끼치는
폐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엔 정말인지 모르지만 낫을 든 아주머니가 무덤 위에 서 있는걸 본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돌기도 했지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희 가족이 그날 밤 무사했던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작년에 고향에 가서 보니, 그 집은 아직 당시 그대로 있더군요. 그 일이 생긴지 거의 20여년이 더 넘게 흘렀음에도...
적고 보니 별거 없었던 기억인 것 같네요. ;; 죄송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