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의경 시절 후임병 1-11편까지 (고전,스압)

자뭅 작성일 16.05.23 15: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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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의경 시절 후임병-1|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747|추천 1|2012.07.29. 22:52 http://cafe.daum.net/nde1/7qge/7431 
이글역시 꽤나 오래된 글이네여..그냥 편하게 읽으시길....아마 한창유행중인 귀신보는 친구의 원조격 글이 아닐까 싶네요... ================================================================================================================== 제가 귀신을 처음 접하게 된건 잘 생각을 해보면 예전에도 몇번이 있었지만, 그게 귀신인지 알게된건 군대에서 였습니다. 
저는 의경출신으로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제가 일경(육군의 일병입니다.)을 달자마자 졸병이 한명 왔는데, 알고보니 학교 후배였습니다.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육개월만에 처음으로 온 졸병이었기에 고참들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둘만 있을때에는 나름대로 많이 챙겨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좀 특이하다 못해 엽기적인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의 더블백을 열었더니, 거기에 진짜 박으로 만든 바가지와 식칼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참들은 놀라서 그걸 갖다 버리려 했으나, 이 친구가 죽기 살기로 놓지 않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어쩔수 없이 그냥 놔뒀는데, 더 어이없는 것은 점호가 끝난 후 침상 머리맡에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식칼을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고참들은 또 한번 놀라서 뺏으려고 했고, 이 친구는 완강히 저항을 했습니다. 
이때 전경관리반장(의경들과 숙식을 같이 하면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이 이 광경을 보고 졸병과 면담을 했고, 이상하게도 졸병 맘대로 하도록 놔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고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놔둘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나는 왜 그러는지 너무 궁금해서 그 졸병을 몰래 불러다가 물어보았습니다. 
이 졸병의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사실, 자기한테 귀신이 씌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이 씌운탓에 자신의 전생을 볼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데, 자신이 전생에 퇴마사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어보았습니다. 
니가 퇴마사였으면 그 귀신들을 쫓아나면 되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 졸병은, 자기한테 씌운 귀신이 3명인데, 다들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귀신이랍니다.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배신한 타락천사이고, 하나는 지옥의 신 하데스가 데리고 다니던 불개의 귀신이고, 또 하나는 기억이 잘 안납니다...^^; 
아무튼 그렇게 3명의 귀신의 씌워있는데, 이 귀신들이 지금은 서로 견재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누구도 뺏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는 한명의 귀신이 승리를 하면 자신의 몸을 뺏길수 밖에 없답니다. 
그래서 그런일이 일어날때 자신의 피를 뿌려서 쫓아내려고 식칼을 머리맡에 놓고서 잔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이상스러운 졸병이 들어오면서 이상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졸병과 같은 내무반을 쓰면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졸병은 워낙 이상한 짓을 했기때문에 고참들한테 찍힐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괴롭힘도 많이 당했습니다. 
저는 학교 후배라는 이유로 어쩔수 없이 나름대로 잘해주려고 했습니다. 
그 졸병과 같은 내무반을 쓴지 한달정도 지난 후 부터는 그 졸벼을 심하게 괴롭히는 고참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한명씩 가위에 눌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제일 많이 괴롭히는 사람부터 차례대로 하루에 한명씩 가위에 눌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위에 눌려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아무리 깨우려고 해도 깨어나지 못하다가, 그 졸병이 잠에서 깨어나면 그때서야 가위에 눌렸던 사람도 깨어나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결국은 우리 내무만에서 저와 그 졸병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위에 한번씩 눌리게 되었고, 가위에 눌린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꿈속에서 그 졸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그 졸병을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고, 가위에 눌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든 고참들이 그 졸병과는 같이 군생활을 못하겠다고 한 탓에 나중에 그 졸병은 교통의경에서 경찰서 유치장 관리 의경으로 보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졸병이 학교 후배였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그 졸병과 어떻게 만났는지, 그런 시시한 얘기만 했는데, 지금부터는 정말 실제 경험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통의경은 가끔씩 야근이라고 해서 저녁 8시 부터 11시 까지 야간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관내 순찰을 합니다. 
그 졸병이 들어온지 두달정도 지났을때 입니다. 
고참들이 그 졸병을 무서워 하는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저와 그 졸병이 한조가 되어서 야근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둘이 후레쉬봉을 흔들면서 순찰을 하던중에 그 졸병이 갑자기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 아주 태연한 얼굴로 아주머니 등에 귀신이 따라다니네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대답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갑자기 그 졸병의 손을 덥썩 잡더니만... 
"총각, 어떻게 알았어? 요즘 주위에 하도 나쁜일만 생기길래 며칠전에 점장이 한테 갔었는데, 점장이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구... 그래서 점장이한테 부적 한장 써달라고 해서 가지고 다니는데, 아직도 귀신이 있는거야?" 
"아직도 있어요. 그 점장이가 써준 부적좀 보여주세요." 그 아주머니는 지갑에서 부적한장을 꺼냈습니다. 
졸병은 그 부적을 보더니만.... 
"이것 봐요, 여기 이 획이 완전히 아래까지 연결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다가 받치고 썼는지, 중간에 끊겨 있네요... 이것만 연결하면 되겠네요..." 
"그냥 빨간 물감으로 연결만 하면 되는거야?" 
"아니요, 이건 그 점장이가 그린 부적이라서 다른 사람이 연결을 하려면 그 사람의 피를 가지고 연결해야 되요... 제가 연결해 드릴께요..."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 새끼손가락을 깨물더니만, 손가락에서 떨어지는 피를 볼펜으로 찍어서 부적에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머니, 이제 됐어요. 이것 봐요 이제 귀신도 없어졌네..." 
전 그날 이후 3일동안 잠을 못잤습니다...--;  
댓글 5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세이세르 12.07.29. 23:05어떤 퇴마사길래 후세까지 세분이나 달라붙는거여 ㅋ전 생에 양인이었나?! 귀신 둘다 서양쪽애들이네답글 | 신고    수희 12.07.30. 03:00전생의 업보로 현세에까지....답글 | 신고    아다모 12.08.01. 09:44즐감해요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1. 18:44아..다 읽고 나혼자 헛웃음이 나왔다;;;답글 | 신고    sky girl 12.08.08. 10:05헐........................이런 사람이 있다니.........................완전 현재판 퇴마사????답글 | 신고

펌)의경 시절 후임병-2|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642|추천 0|2012.07.29. 22:59 http://cafe.daum.net/nde1/7qge/7432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그 졸병은 고참들의 가위사건이 있은후 두달정도 함께 생활을 하다가, 고참들의 사정에 의해 교통의경에서 경찰서 유치장 관리 의경으로 보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보직이 바뀐후로도 학교 선배인 저한테 자주 오곤 했는데, 그래도 학교 후배인 탓에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겁나기도 했지만 솔직히 제가 직접 경험을 한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친구가 혹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이 생각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제가 상경(육군 상병입니다.)2호봉때였나... 아무튼 이때쯤 내무반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내무반이 있는 3층에는 교통의경들이 쓰는 내무반 2개와 경찰서장, 각 과장들 운전병 의경들이 쓰는 내무반 1개가 있었고, 창고로 쓰는 내무반 2개가 있었습니다. 
창고로 쓰는 내무반은 침상이나 관물대는 그대로 있었고, 그냥 아무렇게나 비품들을 쌓아놓은 곳입니다. 
하나는 데모 막을때 사용하는 헬멧, 방패, 봉, 방독면... 등등을 놓아두었었고, 한군데는 정말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곳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잡동사니를 모아두는 곳에서는 가끔식 다림질을 하기도 하고, 빨래를 널어놓기도 했는데... 
제 한달 고참이 야근을 끝마치고 돌아와서 빨래를 하고 그 내무반에서 빨래를 널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다들 놀라서 뛰어갔더니, 그 고참이 바닥에 앉아서 덜덜 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귀신같은걸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그 내무반에서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고참이 어쩔수 없이 내무반을 자물쇠로 잠궈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후 유치장으로 내려간 졸병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에게 놀라운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귀신 나오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 내무반에 귀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지만, 호기심에 그 졸병한테 그 귀신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만, 그 졸병은 흔쾌히 같이 가서 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까지 그 졸병하고 어울리면서 쫓겨갈수는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 그 졸병과 몰래 그 내무반으로 갔습니다. 
그 졸병은 새끼줄에 숯을 3개 매달고, 그 숯 하나하나에 이상한 부적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새끼줄을 문에 묶고나서 저한테 같이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같이 들어갔습니다. 
그 졸병은 나한테 아무말도 하지말고 가만히 있다가 자기가 손짓하는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10분정도를 가만히 있었는데, 갑자기 기 졸병이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헉... 진짜 사람같은 뭔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관물대에서 뭔가를 꺼내는듯한 동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졸병과 나를 쳐다보더니만 갑자기 문쪽으로 날듯이 가더니만, 다시 관물대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차례 반복을 하는 것입니다. 
졸병은 아까 걸어놓은 새끼줄을 걷었고, 그 귀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문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졸병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아까 걸어놓은 새끼줄이 부적 비슷한 것이라서 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 귀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있었던 관물대에 뭔가 소중한 것이 있어서 계속 그곳으로 오는 것이라고... 
전 너무 무서운 탓에 그날 잠을 하나도 못자고, 그 졸병 옆에 계속 있었습니다. 
날이 밝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다시 그 내무반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그 관물대로 갔습니다. 
관물대 안에는 그냥 수북한 먼지와 낡은 양말 몇켤레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석에 지포라이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지포라이터에는 송곳으로 새겨놓은 여자 글씨로 이런 말이 쓰여있었습니다. 
"꼭 기다릴께... 사랑해..." 
지포라이터는 그 졸병이 가지고 갔고, 전경관리반장에게 몇년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91년도에 그 내무반에서 구타사고로 한명이 죽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관물대가 그 죽은 사람이 쓰던 관물대였을거랍니다. 
아무튼 그 졸병이 그 지포라이터를 가지고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내무반 귀신 사건이후로 저는 귀신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항상 귀신을 만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잤죠...^^; 
아무튼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그 졸병은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거의 존경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슬슬 피하기만 하던 고참들이 이제 그 졸병을 마주치면 담배라도 한갑 사주고, 음료수라도 하나 뽑아주는 등, 아무튼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몇달이 지나 제가 상병 말호봉쯤 됐을때 일입니다. 
그 졸병은 계속 유치장에서 근무를 하였고, 그날은 그 졸병이 유치장 밤샘 근무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 사건을 목격한건 갑작스런 정전 비슷한 사태때문이었습니다. 
새벽 1시쯤이었는데, 불이 꺼져있던 내무반에 갑자기 불이 켜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비록한 몇명이 갑자기 켜진 불때문에 잠에서 깨었고, 다시 잠을 자려고 스위치를 내리려고 보았더니, 스위치는 이미 내려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등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5분동안을 그렇게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다가 잠잠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밖에 소란스러워 지는 것이었습니다. 
창밖을 보았더니 유치장으로 사람들이 막 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귀신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했고, 귀신때문이라면 그 졸병하고 같이 있는게 차라리 안전하다는 생각에 유치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유치장에 도착하고 나니 그 졸병이 유치장의 여러개의 방중 하나의 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삥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그 졸병이 뭔가를 중얼거리자 어디에선가 갓난애기 울음소리 같은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그 졸병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다 해결됐으니까, 이제 걱정말고 다들 돌아가세요..."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고, 그 졸병과, 저, 그리고 그 졸병과 함께 근무를 했던 다른 의경 이렇게 3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전 그 졸병한테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졸병은 저한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2년전에 아까 그 유치장의 방에서 한 여자가 자살을 했답니다. 
그 여자가 유치장에 들어오게 된건 물건을 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한 집에서 가정부를 했었답니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랐던 그 여자는 아버지의 약값을 벌기 위해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가정부 생활을 했었는데, 가정부를 했던 집이 졸부의 아들이 사는 집이었답니다. 
그 졸부의 아들은 행실이 바른 사람이 아니어서 그 가정부를 겁탈하다시피 해서 잠자리를 같이했고, 그 여자는 임신을 했답니다. 
그 여자는 비록 없이 살긴 했지만, 엄한 가정교육을 받았던 탓에 그 졸부의 아들때문에 임신을 했기때문에 그 졸부의 아들과 결혼을 하려고 했답니다. 
그 졸부의 아들도 처음에는 결혼을 하자는 명목으로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임신까지 하니까 그 여자를 어떻게든 쫓아보내려고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씌웠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여자는 경찰서에 오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그여자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죽고 말았답니다. 
그 여자는 너무 죄스러운 마음에 유치장에서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조용하던 유치장에서 난리가 난 이유는 바로 그 졸부의 아들이 그날 술을 먹고 지나가는 행인 2명을 크게 다치게 한 탓에 경찰서로 잡혀 들어와 유치장에 들어와서 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여자가 자살했던 유치장 방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아까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것은, 갓난아기의 혼령이 그날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의 혼령은 비록 그 졸부의 아들로 인해 아버지와 자신이 죽게 되었지만 이미 용서를 하고 떠난 상태였지만, 엄마의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갓난아기는 떠나지 못하고 계속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날 그 유치장에 들어와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자신들의 죄를 크게 뉘우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유치장 사건으로 인해 경찰서 안에서 그 졸병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고, 지난번 내무반 사건과 유치장 사건을 원만히 해결을 해준탓에 경찰서장도 암암리에 그 졸병에게 많은 해택을 주었습니다. 
제가 수경(병장입니다.)을 달자마자 제대를 한 고참이 한명 있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보름쯤 있다가 경찰서로 그 고참이 찾아왔습니다. 
그 고참은 유명한(?) 졸병을 급히 찾았고, 둘이 한참을 이야기 한 후에 그 고참은 다시 집으로 갔다가 그 다음날 경찰서로 와서 그 졸병과 함께 집으로 갔습니다. 
전 나중에 그 졸병한테 둘이서 도데체 뭘 한건지 물어보았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 고참이 제대하기 한달전쯤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3일동안 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고참이 제대하기 한달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그 고참이 제대해서 집으로 간날 이후 그 고참한테는 이상한 일이 계속 되었습니다. 
계속 꿈속에 할머니가 나왔고, 깨어있을때에도 계속 할머니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한테 너무 잘해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때문에 할머니를 잊지 못해 그런 환청이 들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사람이라서 제대후에는 헬스크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핼스크럽이 끝난후에 청소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청소를 다 끝내고 밴치프레스 하는 곳에 앉아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는데, 창문이 다 닫혀있던 헬스크럽안에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었고, 밴치프레스 위에 놓여있던 무거운 역기가 갑자기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고참은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졸병을 찾아왔습니다. 
그 졸병이 내용을 듣고 보았더니, 그 할머니의 신상에 어떻 변화게 생긴 것 같았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신상에 변화가 생길일이라는게 바로 무덤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고참과 함께 할머니의 무덤에 다녀왔답니다. 
고참 할머니의 무덤은 용인에 있는 어느 산이었는데, 그 곳이 명당자리였답니다. 
원래 예전부터 용인지방이 살아서는 정승이요, 죽어서는 진천이라... 하는 말이 있을정도로 명당자리들이 많은 지방인데, 그 고참 할머니의 무덤은 그런 명당자리중에서도 드문 명당자리였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그 자리에 모시고 나서 며칠후에 돈 많은 집안에서 그 고참 아버지를 찾아왔었답니다. 
자신들의 조상을 모시려고 하는데, 그 묫자리를 자신들한테 팔아달라고... 
하지만, 그 고참의 아버지도 자신의 어머니를 명당자리에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후에도 며칠동안을 계속 귀찮게 찾아왔었고, 그때마다 거절을 했답니다. 
그런후에는 더이상 찾아오지 않아서 포기했으려니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답니다. 
그 사람들은 밤에 몰래 그 무덤으로 찾아가서 고참 할머니의 시신을 다른곳으로 옮겨놓고 자신들의 조상을 그 무덤에 묻었답니다. 
그 내용을 고참이 처음 온날 졸병은 다 알고 있었는데, 그다음날 고참과 함께 갔던 이유는, 사라진 할머니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였답니다. 
아무튼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 시신을 찾았고 그 고참한테도 더이상 그런일이 없었답니다. 
그 일이 있은후로 그 고참하고 졸병은 지금도 엄청나게 친합니다. 
제대한지 4~5년이 지나서도 항상 친하죠... 가끔은 저도 둘이 만나는데 같이 만나곤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시신을 옮겼던 사람들은 신고를 했는데, 마땅한 죄목이 없어서 절도죄를 적용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에 계속... 
댓글 3  | 손님댓글 0 0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07재밌게 잘 읽었습니다..답글 | 신고     ENDLI 12.07.31. 14:07헐;; 우찌 남의 집안 무덤을 파헤칠 생각을;;;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5:26너무 집중해서 읽었다........들고있던 아이스크림 다 녹아뿌고.....흠;;;

그믐뜻음력으로 그 달의 마지막 날  뜻(1개) 더보기http://search.daum.net/search?w=tot&nil_profile=dragsearch&nil_ch=cafe&nil_search=btn&q=%B1%D7%B9%CA

펌)의경 시절 후임병-3|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84|추천 0|2012.07.29. 23:00 http://cafe.daum.net/nde1/7qge/7433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군대에서 경험한 일이 아닌, 예전에 경험을 했지만 당시에는 그게 귀신인지 모르고 나중에 졸병을 통해서 그게 귀신이었다고 확인했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 고향은 충남 태안입니다. 
사실 제 고향이 거기는 아니고, 아버지 고향이 거기입니다. 
아무튼 어렸을때에는 방학때 누나들과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갔다가 저만 남고 다 올라가곤 해서 시골에 있던 시간이 오히려 서울에 있던 시간보다 많습니다. 
덕분에 시골에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 귀신을 본게 제가 중학교 2학년때 였습니다.(1989년도 입니다.) 
할아버지 제사로 시골에 갔는데, 오랫만에 친구를 만나려고 친구네 집에 갔습니다. 
솔직히 태안이라는 동네가 지금도 가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촌동네 입니다. 
그래서 집들도 정말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 아무튼 친구네 집까지 가려면 버스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40분쯤 가야 합니다. 
친구네 집에 가려면 좀 큰 개울 하나를 건너가야 되는데, 개울이라고 하긴 약간 큰 것이라서 넓은 다리도 하나 있습니다. 
그 다리 옆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친 아저씨 한분이 가게를 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그래서 인지 결혼도 못하고 혼자 가게를 하던 아저씨 입니다. 
그런데, 4일전에 비가 많이 와서 그 개울에 물이 많이 불어났었는데, 그 아저씨가 술을 먹고 개울에서 수영을 하다가 그만 빠져서 죽었습니다. 
혼자 살던 아저씨였기 때문에 친척들 연락처도 모르고 해서, 우선 친척들한테라도 연락될때까지 장사를 지내지 못하고, 마을에 상을 당한 집을 위해 공동으로 쓰는 상여가 있는 창고에 우선 놔 두었을 때였습니다. 
아무튼 며칠전 그 개울에서 사람이 죽어서인지, 평소에 보이지 않던 순경들이 다리 위에서 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별 생각없이 친구네 집으로 향했고,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서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놀았습니다. 
해지기 전에 큰댁으로 가려고 했는데, 놀다가 보니 이미 해가 져서 어두어 졌습니다. 
그때가 11시쯤 됐었는데, 우리 큰댁은 제사를 12시가 넘어서 지내기 때문에 서둘러서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친구네 집을 나섰습니다. 
급하게 나오느라 친구한테 랜턴을 빌린다는 걸 잊어버려, 어쩔수 없이 자전거 바퀴를 이용한 불빛 하나만을 의지해서 큰댁으로 향했습니다. 
그날은 이상했던 것이 분명히 그믐날인데, 이상하게도 모든게 훤하게 잘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찬가지지만, 그믐날 밤에는 정말 1미터 앞도 잘 안보입니다. 
아무튼, 저는 급한 마음에 이상한 것도 모른채 큰댁으로 향했고, 너무 급했던 탓에 자전거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타이어에 펑크까지 났습니다. 
어쩔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서 부지런히 갈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자건거를 끌고 가려니 걸음도 늦어질 수 밖에 없었고, 약간 무섭다는 생각에 계속 주위를 둘러보면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개울의 다리에 가까워 오자 갑자기 아저씨가 죽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괜한 생각을 해서 무서워 지자, 크게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저쪽에 상여를 놓아두는 창고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더 무서워 졌습니다. 
괜히 그쪽을 쳐다보면 안될 것 같아서 일부러 딴쪽을 보며 걸었습니다. 
전방에 있던 창고가 이제 내 옆쪽에 있을때까지 걸어갈 무렵 나도 모르게 얼핏 창고를 돌아보았습니다. 
창고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앞만 보며 걸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니 다리가 보였습니다. 
다행히도 다리 위에 순찰을 돌던 순경이 아직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호기심은 다시 한번 그 창고를 쳐다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창고 앞에 사람같은게 안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쳐다보았는데, 그 사람같은게 창고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조금만 더 가면 저기 순찰 돌고 있는 순경이 있다는 생각에 약간은 대담해져서 다시 한번 그 사람같은게 어디 있나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창고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그 사람같은게 바로 내 뒤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순경이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내 뒤쪽에서는 뭔가가 따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따라오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 지고, 저는 소리르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소리를 듣고 순경이 이쪽을 바라보는 순간, 뭔가에 걸려서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면서 몸이 공중으로 붕 떴고, 몸이 한바퀴 돌면서 처음에는 하늘이 보이고, 나중에는 땅이 보이면서 그대로 고꾸러 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기절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큰댁이었습니다. 
제가 오질 않아서 어른들이 저를 찾아 나섰고, 제가 쓰러져 있는 걸 순경이 업고 오고 있었답니다. 
이 일을 겪을 당시에는 내가 그냥 무서운 생각에 귀신이라고 생각을 했으려니 하고 넘겼던 일인데, 이 일을 졸병한테 얘기했더니 졸병이 그게 귀신이 맞다고 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때 졸병이 귀신에 관해서 해준 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귀신이 평소에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두번째는 그런데 특별히 음기가 넘쳐나는 날에는 귀신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세번째는 특별히 음기가 넘쳐나는 날은 그믐이며, 그날은 그믐이면서도 이상하게 너무 밝다는 것이다. 네번째는 이렇게 귀신에게 해를 당할때 하늘을 한번보고, 땅을 한번보고, 그리고 사람을 한번보면 살 수가 있다. 
졸병의 말을 듣고 보니, 바로 그날이 음기가 넘쳐나는 날이었고, 내가 쓰러지기 전 다리위에 있던 순경을 보았고, 공중에서 한바퀴 돌면서 하늘을 한번 보고, 땅을 한번 보았기 때문에 살수 있었다는 걸 알수 있었습니다. 
제 졸병이 음기가 강한날에 대해 자세히 말을 해주었었는데, 이상한 한자어랑 섞어서 말해준 덕에 기억은 잘 안납니다.^^; 
아무튼 그믐날이면서 이상하게도 밝은 날 밤에는 조심하세요... 
이번에는 풍수지리에 관련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던 경찰서 관내에 지하철 기지창이 있습니다. 
그 기지창 위치가 떡산이라고 불리우는 조그만 야산 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떡산이 생긴 모양이 반달 모양입니다. 
그 산때문에 기지창에 필요한 면적이 나오질 않아서 떡산의 가운데 부분을 파서 기지창을 만들었습니다. 
아무튼 처음에 기지창을 만들 당시에는 제가 경찰서에 없었으니까 당시 상황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 동네 사람들이 떡산을 깎지 말라고 데모도 많이 했었답니다. 
하지만, 공사는 진행이 됐고, 떡산의 중간을 파서 기지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지창 공사가 끝났을 무렵에 제가 경찰서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해에 경찰서 관내에서 교통사고 사망사고가 37건이 났었고, 그중에서 어느 검문소 앞 횡단보도에서 사망사고가 18건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은 떡산의 정기를 해쳤기 때문에 화를 입는 거라고... 
그리고 정말 공교롭게도 18명이 모두 떡산 근처 동네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 떡산에서 귀신을 한번 봤습니다. 
그 떡산이란 곳에 기지창이 생기면서 울타리를 쳤는데, 떡산이 별로 크지 않은 정말 언덕 비슷한 야산이어서 기지창 울타리 안에 떡산이 다 들어 갑니다. 
아무튼 그 울타리에 순찰차 순찰함이 있고, 시간마다 순찰한 사람이 싸인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날은 제가 싸인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새벽 3시쯤 되었는데, 싸인을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위를 쳐다보았더니, 떡산 꼭대기에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같이 순찰차를 타던 경사님한테 이야기를 했고, 그 경사님도 그 사람같은 걸 보았습니다. 
그 경사님이 사람이겠지... 했지만, 떡산에는 철조망 때문에 사람이 올라갈수가 없다고 했더니 순찰차 지붕에 달린 엄청 밝은 서치 라이트로 떡산 위를 비춰보았습니다. 
꼭대기라고 해도 실제 거리로는 40미터 정도밖에 안되고, 서리 라이트가 워낙 밝기 때문에 사람이 있었다면,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분명히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한 점은 눈은 보이는데, 코나 입이 보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경사님과 저는 귀신이라는 생각에 순찰차를 타고 도망치듯이 왔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해 년말에 그 동네에서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고 난리를 쳤고, 그 효험이 있어서인지 그 다음부터는 그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죽은일은 없었습니다.(저 제대할때 까지) 
그래서 그 다음해에는 관내 교통사고가 15건 밖에 일어나지 않았고, 교통과장은 1계급 특진이 되었답니다.^^; 
 
댓글 4  | 손님댓글 0 0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13재밌게 읽고 있습니다.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5:45잘보고 갑니다~답글 | 신고     비즈크리스탈 12.08.02. 19:57저두 잘보구가요~`답글 | 신고     물빛광대 12.08.19. 17:55잘 보고 갑니다~~^^




펌)의경 시절 후임병-4|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87|추천 1|2012.07.29. 23:06 http://cafe.daum.net/nde1/7qge/7434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 이야기도 제가 야간 순찰시 겪었던 일입니다. 
그 특이한 졸병이 유치장 근무로 보직이 변경된 후 저와 다른 고참 두명이 함께 야간 순찰을 나간적이 있습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순찰을 돌다가 고참과 둘이 담배를 피우려 근처 공원으로 갔습니다. 
원래 의경은 근무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되기에 사람들의 눈이 적은 공원이나 건물 지하 같은데에서 담배를 피웁니다. 
아무튼 담배를 피우려 공원에 갔는데, 평소에는 약간 늦은 밤에라도 한두명 정도는 있었는데 그날따라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약간은 으시시한 생각도 들었을지 모르지만, 고참 한명과 같이 있으니 무섭다는 생각 없이 그냥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 한개피를 거의 다 피울때쯤 한 사람이 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공원 반대편 입구로 들어왔기때문에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한 40대 정도 되는 남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벤치로 다가가 벤치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 남자 뒤쪽에 전봇대에 나즈막히 붙어있는 가로등이 있었기에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였으나 그림자는 거의 우리 근처까지 드리워 졌습니다. 
우리는 아쉬움에(?) 한개피를 더 피우려고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고, 둘이 얘기를 하느라 그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담배도 다 피울무렵 그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였습니다. 
벤치에서 일어나는 듯한 동작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사람이 가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하고 별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담배를 계속 피웠는데, 그 그림자가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그 사람을 보려고 앞을 보았는데, 앞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다시 그림자를 쳐다보았는데, 그 그림자느 계속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은 없는데 그림자만이 이쪽으로 혼자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온몸의 솜털까지 서는 느낌이었습니다. 
고참은 그 사실을 좀 지난후에 깨닫고 거의 실신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둘이 발이 땅이 붙은듯이 꼼짝도 못하고 계속 그 그림자만을 쳐다보고 있는데, 그림자의 모양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40대 남자의 형상이었던 것이 점점 알수 없는 형체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손에서 날카로운 칼 같은 것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예전에 그 졸병이 이야기 해준 것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귀신에게 해를 입을 상황이 온다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한번씩 보면 살수 있습니다.' 
얼른 하늘과 땅, 그리고 옆에있는 고참을 쳐다보자 처음에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던 그림자가 갑자기 고참이 있던 방향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거의 실신지경에 이른 고참을 흔들면서 얼른 하늘한번, 땅한번, 그리고 나를 한번 쳐다보라고 소리쳤습니다. 
고참도 겨우 정신을 차리며 내가 시킨대로 했더니 갑자기 그림자가 점점 작아지더니만 담에 의해서 생긴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한참 동안을 그 자리에서 떠나질 못하고 굳어 있었고, 나중에 정신을 수습하고 얼른 경찰서로 들어가서 그 졸병을 찾았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만, 졸병은 피식 웃으면서 얘기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믐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밝은 밤이라면 그날은 조심하라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제가 일주일전에 오늘이 그런 날이라고 말씀도 드렸었는데 기억 안나십니까?" 
다시 생각을 해보니 정말 일주일 전에 그 졸병이 얘기를 했던것 같았습니다. 
그 졸병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아 봉변을 당할뻔 했닥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날이 1997년 9월 2일 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때쯤 이상한 일을 경험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바로 그날일겁니다. 
  제가 다섯살때에 경험했던 일을 얘기할까 합니다. 
좀 시시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그 일을 겪었던 저는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다섯살때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연히 부모님과 저는 큰외삼촌 집으로 내려갔고, 시신을 병풍 뒤에 모셔놓았었습니다. 
그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저로서는 그냥 부모님이 하시는대로 따라서 절을 두번했고, 절을 하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만 그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병풍이 앞으로 넘어지고, 병풍뒤에 모셔놓았던 외할아버지 시신이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일어섰다는 것은 아니고, 상체만 일어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부모님, 그리고 이모, 외삼촌들 모두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더 오싹했던 것은 외할머니의 말씀이었습니다. 
다들 너무 놀라있는 상황에서도 외할머니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으신 상태로 태연히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종철아, 지붕위에 손님이 오셨나 보구나... 얼른 모셔와서 음식이라도 대접해서 보내드려라..." 
다섯째 외삼촌한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외삼촌은 무슨말인지 잘 모르면서도 외할머니가 시키신대로 지붕위로 올라가더니만 고양이 한마리를 끌고 내려왔습니다. 
외할머니는 그 고양이에게 상위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조금 던져 주었고, 고양이는 그 음식을 물고는 어디론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고양이가 사라지자마자 외할아버지 시신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원래대로 누웠습니다. 
전 그당시 너무 충격을 받아서 거의 보름동안을 실어증에 걸리다 시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그 졸병한테 이 이야기를 했던적이 있었는데, 그 졸병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고양이는 원래 영적으로 발달한 동물이긴 하지만, 가끔씩 사람이나 죽은 영혼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고, 특히 금방 죽은 시신의 경우 영혼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접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외할아버지 시신이 그렇게 급작스레 몸을 일으켰던 이유는, 고양이에게 해를 입을까봐 그것을 알리려고 그랬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 아무튼 그 일 이후로는 고양이가 정말 싫습니다. 
 
댓글 5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18어릴적에 고양이가 지붕에 올라가면 저런 현상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긴 한데..사실일까?답글 | 신고     민물장어 12.07.30. 14:49정말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여태껏 후기들중 탑3안에 들어가는데요ㅎㅎㅎ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5:49와...신기해...답글 | 신고     비즈크리스탈 12.08.02. 20:06잘보구갑니다`~답글 | 신고     짱까는오빠 12.08.03. 15:43잼나네...ㅋㅋ잘보고갑니다...^^





펌)의경 시절 후임병-5|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48|추천 1|2012.07.29. 23:09 http://cafe.daum.net/nde1/7qge/7435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제가 초등학교때 보았던 일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을 했다기 보다는 저와 제일 친한 친구가 당했던 일입니다. 
제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것은 7살때 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녔지만, 저는 활동적인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태권도장을 다녔습니다. 
그 친구를 태권도장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같은 성씨를 쓴다는 이유 하나로 친해졌습니다. 
당시 그 친구의 아버지는 사업을 했었는데, 사업이 잘 되어서 8살이 될 무렵에 부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 이후 초등학교 2학년때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전학을 왔고, 저와 같은 반으로 전학을 왔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서 더욱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거의 매일 서로 집을 오가면서 함께 놀곤 했습니다. 
당시 그 친구 아버지가 무슨 사업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지하게 잘 되어서 처음에는 평범한 양옥집에서 2층집으로, 다시 고급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불광동이었는데, 서울 변두리 지역이라 근처에 달동네도 많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못사는 편에 속했지만, 특정 지역에는 아주 고급 저택이 몇몇 있었고, 그중에 한곳에 지금으로 말하면 강남에 있는 고급 호화 빌라 비슷한 곳이 있었는데, 그 친구네 집이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제가 살던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조그만 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정말 궁궐과도 같은 집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속물 근성이 있어서 그랬는지 조그만 우리집 보다는 그 친구네 집에서 노는게 더 좋았고, 거의 매일 그집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그 빌라가 새로지은 빌라였기 때문에 주위 조경이라던지 이런 것은 집의 규모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원래 정원 가꾸는 것을 좋아해서 그곳으로 이사를 가서도 혼자 그 넓은 흙을 모두 뒤엎으면서 화단을 가꾸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그날도 어김없이 그 친구네 집으로 놀러와서 빌라 앞 마당에서 친구와 놀고 있었고, 친구 어머니는 화단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할머니가 지나가면서 혀를 쯧쯧 차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필 여기에 집터를 잡았누... 여기는 산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데..."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와 친구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를 나이였고, 친구 어머니도 그 말에 대해 그저 정신나간 노인네가 헛소리를 했으려니 하고 넘겨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며칠후, 친구 어머니가 제법 큰 나무를 심으려고 땅을 약간 깊숙히 파다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을 했습니다. 
거무튀튀한 색깔의 널판지 같은 것이었는데, 나무를 심으려고 불렀던 인부들이 삽으로 힘껏 내리쳐도 약간의 흠집만 날뿐 부숴지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도 어떻게 해보려고 손에 들고 있던 부삽으로 콕콕 찍어보았지만 흠집만 날뿐이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그 널판지를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옆집(옆 호실)에 사는 아주머니도 그 광경을 보고서 부숴보려고 시도를 해보았지만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저물때가 되서 인부들은 어쩔수 없이 돌아갔습니다. 
저도 계속 옆에서 그 널판지가 언제나 깨지려나 기대를 하며 구경을 했지만, 깨지지는 않고 시간만 흘러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학교에서 그 친구에서 어제 그 널판지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더니, 밤 늦게까지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노력을 한 끝에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인부들이 오면 부술수 있을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을 했고, 비가 와서 인부들은 오지를 못했습니다. 
하교길에 친구네 집에 들러서 그 널판지를 보았더니, 비가 오는 동안에도 친구 어머니와 옆집 아주머니가 더 부쉈는지 이제 애들 손 정도는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 널판지 속에 동화속에서 얘기하는 금은 보화라도 있을것 같아서 은근히 기대도 했었습니다. 
인부들이 오면 금방이라도 부술수 있을것 같은 널판지는 며칠동안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오히려 파 놓았던 흙이 널판지 위로 다시 쏟아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 그 소리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갔는데, 옆집 현관문 안으로 뭔가 희미한 물체가 들어가는 것 같았답니다. 
너무 놀라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치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 또한 꿈인듯 싶었답니다. 
그냥 꿈이려니 생각을 하고 지나쳐 버렸는데, 그다음날 아침에 아저씨와 아들이 함께 지방으로 출장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어머니는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옆집 아주머니에게 자신이 보았던 것을 얘기했고, 옆집 아주머니 역시 뭔가 이상한 물체가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옆집은 아저씨와 아들의 장례를 치뤘고, 친구 어머니는 장례를 치루는 곳까지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친구의 증조 할아버지를 보았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아랫 이가 모두 빠진 상태로 친구의 여동생 이름을 계속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마찬가지로 친구 어머니 꿈속에서 계속 친구 여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고, 친구 역시 꿈속에서 증조 할아버지를 보았답니다. 
친구의 꿈속에서는 며칠전 흙속에 파묻힌 검은 널판지 위의 흙이 어디로 갔는지 거의 없어져 버렸고, 그 위에서 증조 할아버지가 다급히 흙을 퍼서 그 위를 덮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친구에게는 얼른 도망가라고 손짓을 했답니다. 
친구와 친구 어머니는 너무 이사한 생각에 급히 집을 팔았고, 그주 일요일날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친한 친구였기때문에 서운한 마음에 아침부터 친구가 이사짐을 꾸리는데 옆에서 같이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이삿짐을 다 꾸리고 떠나려고 할 즈음에 친구 여동생이 뭔가를 놓고 왔다면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들 놀라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더니 친구 여동생이 집에 놓고온 열쇠고리를 가지러 갔다가 그만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넘어지면서 중심을 잃고 얼굴이 먼저 땅에 떨어져서 그만 혀를 깨물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친구 여동생이 넘어진 곳에 검정 고무신이 하나 떨어져 있어서 머리를 다치는 것만은 면할수가 있었습니다. 
친구 여동생은 급히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잘려진 혀를 붙이는 것에는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검정 고무신이 친구 증조할아버지가 신으시던 고무신 이었답니다. 
그 일로 인해 친구 여동생은 지금까지도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친구네 집이 겪은 일 이후에도 이상한 소문들과 이유없이 죽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 집은 지은지 1년도 되지 않아 철거가 되었고, 그 자리에는 고물상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그 고물상도 얼마 되지 않아 망하고, 지금은 그곳에 조그만 놀이터가 생겼습니다. 
이후 어른들한테 들었던 소문으로는 예전에 그 자리에 장희빈 묘를 비롯해서 장희빈 일가의 묘가 있었던 자리였고, 제가 태어날때 쯤 장희빈 묘를 지금의 서오릉에 옮겼었다고 합니다. 
장희빈의 묘 옆에는 장희빈이 죽는 순간까지 옆에서 모시던 몸종의 묘가 있었는데, 장희빈이 죽는 순간에 그 몸좀을 꼭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해서 나중에 몸종이 죽었을때 그 옆에 함께 묻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오릉으로 묘를 옮기면서 왕족만을 모시는 왕릉에 일개 몸종의 묘를 쓸수가 없다는 이유로 장희빈 묘 만을 옮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묘를 옮길 당시에도 흉흉한 소문들이 돌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들 했습니다. 
아마도 그 검은색 널판지가 그 몸종의 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4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23여동생이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살긴 했는데 고무신이 그 때까지 있었다는 것은 조금 설정이 지나치다는 생각~~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5:57집터...참 무시못해...잘보고갑니다~답글 | 신고     6펜스 12.10.31. 13:21궁금해서 장희빈묘를 네이버로 검색해봤더니 다음과 같이 나오네요. '1701년 음력 10월 8일 사사된[4] 희빈의 무덤은 처음에 양주 인장리(仁章里, 지금의 경기도 구리시 일대[5])에 있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묘자리가 불길하고 결점이 많다고 하여 1718년(숙종 44년) 음력 2월 20일 숙종은 희빈의 묘를 천장할 것을 명한다. 
이후 당시 예조참의가 1년여 간이나 경기도 내에서 길지를 찾아 헤맨 끝에 그해 음력 12월 장소가 
수원 청호촌(靑好村)과 광주 진해촌(眞海村,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의 두 곳으로 좁혀졌고, 최종적으로 찬반 양론이 있던 수원보다는 광주 진해촌이 좋겠다는 숙종의 결정에 따라 진해촌답글 | 신고 ┗    6펜스 12.10.31. 13:21진해촌으로 옮겼다. 이듬해인 1719년(숙종 45년) 천장이 완료되었는데, (중간 생략)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희빈의 묘는 거의 폐허와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15]. 
이후 1969년 묘소를 통과하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의 서오릉(西五陵) 경내로 이전하였다.
불광동에 있던게 아니라 경기도 광주 오포면에 있었던거군요.


펌)의경 시절 후임병-6|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08|추천 1|2012.07.29. 23:12 http://cafe.daum.net/nde1/7qge/7436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아버지와 사촌형님, 그리고 제가 함께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 일입니다. 
아버지 고향이 충남 태안이고 집은 서울이었습니다. 
원래 집안 분위기가 엄격해서 무슨 일이 있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제삿날 만큼은 꼭 시골에 내려가곤 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삿날이 우연히 같은날인데, 그때의 제사가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겨서 나은 편이지만 그당시에만 해도 서울에서 태안까지 가려면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양여객이나 충남고속 직행 버스(고속버스가 없었고, 지금도 고속버스가 없긴 마찬가지 입니다.)를 타고 국도를 열심히 달려 5시간 이상을 가야지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해야 차표를 끊고, 저녁이 되기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저는 그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일년전에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나오셔서 계속 제 다리를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큰아버지께 왜 붙잡으시냐고 물어보았고, 큰아버지께서 그냥 제발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꿈속에서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벌써 9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는 8시 30분쯤에는 집에서 출발을 해야 용산 버스터미널에서 10시 버스를 탈수 있었는데, 9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서둘러야 11시 버스를 겨우 탈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부모님이 서둘러서 7시쯤에는 일어나셔서 저도 깨웠어야 하는데, 그날따라 부모님들도 늦잠을 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도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부모님 모두 꿈속에서 큰아버지를 뵈었던 것입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제사에 늦을까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용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때에는 이미 11시쯤 된 시간이었습니다. 
터미널에서 사촌형님을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는데, 그렇게 늦은 시간인데도 사촌형님이 나오지 않으신 것이었습니다. 
사촌형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집에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사촌형님이 늦잠을 잤다고 하며, 금방 간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고 아버지와 저는 사촌형님을 기다렸습니다. 
원래는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11시 출발하는 버스도 못타고 가게 생겼고, 사촌형님이 오는 거리를 생각하면 겨우 12시 차를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튼 어쩔수 없이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출발을 하게 되었고 버스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다시 큰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한없이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차가 멈춰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휴게소에 도착했나 하고 창밖을 보았는데, 밖에는 버스 2대와 덤프트럭 1대가 형편없이 부숴진 상태로 길에 쓰러져 있었고, 앰블런스가 수십대가 와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 2대가 바로 용산 터미널에서 10시와 11시에 출발했던 버스들이었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처음에 10시에 출발했던 버스가 덤프트럭과 충돌을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고, 사고를 수습하고 있는데, 11시에 출발한 버스의 운전기사가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 현장을 보지 못하고 쓰러져 있던 덤프트럭과 버스를 차례로 들이 받고 2차 사고가 났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사촌형님, 그리고 저는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큰댁에 도착을 했고, 큰댁에 도착을 했을때 셋째 큰아버지가 거의 울상이 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셋째 큰아버지도 꿈자리가 안좋으셔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4시간이나 늦으니 엄청 걱정을 하셨던 모양이었습니다. 
큰댁에 도착을 해서 정신을 차리고 사촌형님께 왜 늦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사촌형님도 꿈을 꿨다고 합니다. 
사촌형님은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뵈었는데, 할아버지가 무서운 얼굴을 하시고 방문을 막고 서 계셨답니다. 
사촌형님은 제사 지내려 가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는대도 막무가내로 방문에서 비켜나질 않으셨답니다. 
아버지는 7남매 중에 막내입니다. 
첫째 큰아버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났고, 함께 버스를 타고왔던 사촌형님과는 3살밖에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예전부터 할아버지는 집안의 장손인 사촌형님을 무척 많이 아끼셨고, 첫째 큰아버지는 막내인 우리 아버지를 무척 많이 아끼셨습니다. 
그런 탓에 당신의 손주 보다도 저를 더 아끼실 정도로 잘해주셨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큰아버지께서 저와 부모님의 꿈에 나오셔서 첫번째 사고를 막아주셨고, 할아버지께서 사촌형님의 꿈에 나오셔서 두번째 사고를 막아주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때가 1985년 11월달 이었는데, 그당시 사고에서 80명 정도가 죽었고 10명정도가 중상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차가 지금에 비해 정말 없었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사고였고, 한동안 매스컴에서도 계속 다루었던 사고였습니다. 
저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 무언가에 대한 믿음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나 타 종교에서는 조상님들께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 우상숭배니, 어쩌니 저쩌니 말이 많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상이 있었기에 제가 있을수 있었고, 그리고 조상님들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자손들의 위험을 지켜주고 계시고, 또 그런 조상님들로 인해서 좀더 올바르게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집안의 장손인 사촌형님께서는 이 사건 이외에도 집안에 큰 일이 생길 위험일 있을때에는 항상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뵙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돌아가신 큰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얽힌 얘기를 하겠습니다. 
사촌형님은 장손이라서 그런지 자주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뵙곤 했고, 그때마다 집안에 큰 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주는 아니었지만, 딱 두번 꿈속에서 큰아버지께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집이 그랬지만, 우리집 또한 연탄 아궁이가 있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가끔씩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심심찮게 있었을 때입니다. 
다행히도 우리집은 그때까지 연탄가스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때가 10월달 정도 됐을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연탄 아궁이를 손을 보고나서 처음으로 연탄불을 지핀 날이었습니다. 
우리집은 방이 3개였는데, 하나는 부모님과 제가 함께 잤고, 하나는 누나들 3명이 함께 자고, 하나는 세를 놓았었습니다. 
아무튼 저와 부모님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도 꿈속에서 큰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큰아버지는 제 손목을 잡고서 얼른 따라오라고 재촉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딜 가시냐고 물어보았는데, 큰아버지는 그냥 아무것도 묻지말고 얼른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깨었는데, 눈앞에 큰아버지가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셨고, 저는 큰아버지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자 큰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준희야, 지금 니가 어른 정신을 못차리면 엄마랑 아빠까지 큰일이 난단다. 내가 힘이 없어서 한사람씩 밖에는 데려가질 못하니까 조금만 힘을 내자꾸나..." 
큰아버지께서 하도 슬프게 말씀을 하셨고 저는 큰아버지를 따라서 겨우 마루로 나왔고, 더이상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마루에서 쓰러졌습니다. 
잠시후에 내 옆으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릴 듣고 눈을 힘겹게 떴는데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는데, 잠시후에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힘겹게 눈을 뜨기는 했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갑자기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창문으로 사촌형님이 들어오셨고, 잠시후 안방에서 어머니를 업고서 나왔습니다. 
그것까지 보고선 저는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옆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도 환자복을 입고 누워계셨습니다.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게 저와 부모님 모두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뻔 했는데 다행히도 방안에서 빠져나올수가 있어서 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아까 사촌형님이 왔던게 기억이 나서 물어봤습니다. 
사촌형님도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뵈었고, 할아버지께서 어딘가로 막 뛰어가고 계셨답니다. 
사촌형님이 할아버지를 불러도 돌아보기만 할뿐 계속 뛰어가시길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하고 쫓아가 보았더니 우리집이었답니다. 
그리고 대문앞에서 사촌형님한테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사촌형님이 잠에서 깨어나셨고, 하도 이상해서 우리집에 전화를 했는데, 계속 받지를 않더랍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집으로 왔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촌형님이 혼자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때쯤 되었을때 일입니다. 
당시 사촌형님은 롯데제과에서 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가게에서 건강식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식품이라는게, 토종꿀, 인삼, 녹용... 뭐 이런 것들 입니다. 
당시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3평짜리 가게에서 건강식품 장사를 했었고, 다른 것들은 조금 큰 재래시장에 가서 구입을 하거나 도매상이 직접 가게로 배달을 해주었지만, 진짜 녹용은 당시에도 구하기가 힘들어서 강원도 오지에서라도 좋은 진짜 녹용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차를 몰고 밤을 새워서라도 구해오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 진짜 녹용은 정말 귀한 물건이었고, 소위 돈좀 있다는 집에서나 살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삼이나 이런것들 수십개를 팔아봐야 녹용 하나 파는 것보다도 이득이 안남았기 때문에 사촌형님은 기를 쓰고 구해다 팔곤 했습니다. 
그 사건이 있던날 오후 충남 당진에 좋은 녹용이 나왔다는 얘길 듣고 바로 차를 몰고 당진으로 갔습니다. 
당진이면 당시에 서울에서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아무튼 오후 늦게 출발을 했던 사촌형님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당진에 도착을 했고, 녹용을 샀습니다. 
녹용을 사고 서울로 출발을 하려는데, 거기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답니다. 
10년 넘게 못만났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만나니 너무 반갑기도 해서 같이 막걸리를 마시다가 새벽 4시쯤 출발을 했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면 안되는걸 알지만, 내일 아침에 비싼값에 녹용을 팔 생각을 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출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술에 취한채 운전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나니 속도감도 없어져서 과속까지 하게 되었고, 가로등도 하나 없는 국도를 달리다가 그만 차가 논두렁으로 쳐박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사촌형님을 깨웠답니다. 
사촌형님은 얼른 일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어지러워서 일어날수가 없었답니다. 
사촌형님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자 할아버지는 더욱더 화를 내시고는 갑자기 뒤돌아서시며 앞으로 더이상 나를 안볼거면 거기에 그렇게 계속 있고, 아니면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답니다. 
할아버지 말씀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죽는시늉까지 할 사촌형님이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답니다.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계속 할아버지를 따라서 걸어가다가 보니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라지셨고, 그동안 긴장한 탓에 힘든줄도 모르던 사촌형님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쓰러졌습니다. 
사촌형님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답니다. 
어떻게 된건지 물어보았더니, 어제 밤에 병원에 어느 할아버지가 오셔서 저기 밖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해서 병원 사람들이 급히 그 할아버지를 따라갔고, 한참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그 할아버지가 사라져서 할아버지를 찾는데, 저 멀리 길에 한 사람이 머리에 피를 흘린채 쓰러져 있더랍니다. 
그래서 응급실로 옮겼고, 조금만 늦었더라면 과다 출혈로 죽었을거라며, 그 할아버지가 누구신지는 모르겠는데, 아는 분이라면 꼭 나중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김새를 말해주는데, 바로 우리 할아버지 였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사촌형님은 정말 술을 입에 대기라도 하면 차를 절대로 몰지 않으십니다. 

아무튼 그날도 큰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문에 목숨을 구할수가 있었습니다. 
  
댓글 4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3인쇄|신고    수희 12.07.30. 03:30조상의 은덕을 크게 입으셨네요..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6:06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어여....잘보고갑니다...답글 | 신고     아다모 12.08.09. 09:10즐감해요답글 | 신고     물빛광대 12.08.19. 18:15잘 보고가요~~~^^


펌)의경 시절 후임병-7|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383|추천 0|2012.07.29. 23:14 http://cafe.daum.net/nde1/7qge/7437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제가 7살때 겪었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은 서울이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제가 시골을 너무 좋아해서 방학때면 온 가족이 시골에 내려갔다가 저만 남고 올라가곤 했었습니다. 
그때도 여름방학때 온가족이 내려왔다가 저만 남았을 때 입니다. 
제가 시골에 있는걸 좋아했던 이유는, 우선 집에는 누나만 3명 있어서 남들처럼 형을 따라다니면서 놀수가 없었고, 그리고 시골에는 제가 좋아하는 벌레들이 많았습니다. 
암튼 그래서 그렇게 혼자 남아서 사촌형들하고 동네 형들하고 몰려다니며 놀때 였습니다. 
큰댁 대문밖에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어느 집안의 가족묘지가 있습니다. 
그 집안에 돈이 꽤 많았기 때문에 묘지에도 각종 돌 석상들이 멋지게 서 있었고, 어렵게 살았던 큰댁에서는 그 묘지를 돌봐주면서 얼마정도의 돈을 받았고, 큰아버지께서는 남의집 묘를 돌봐주시는 것이지만, 묘지는 항상 정성을 들여서 가꿔야 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정말 잔디가 촘촘하게 잘 자랐습니다. 
우리는 큰댁에서도 가깝고, 잔디고 달 자라는 그곳에서 자주 놀곤 했습니다. 
묘지의 제일 윗부분에는 그 묘지에서 가장 잘 꾸며진 봉분이 두개 있었고, 그 봉분이 아마도 서로 부부였던 이유에서인지 바로 붙어있었습니다. 
아무리 봉분이 서로 붙어있다고 하더라도 워낙 규모가 있는 봉분이었기 때문에 양손을 확짝 펼쳐도 두 손이 양쪽 봉분 윗부분에 닿기가 힘들었었는데, 7살이 되어 어느정도 키도 커지자 겨우 양쪽 봉분위에 양쪽 손을 뻗쳐서 올려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전 예전부터 너무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거의 하루종일 그 양쪽 봉분위에 양손을 올려놓고 마치 세상을 다 얻은듯한 기분으로 있었습니다. 
그렇게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분이 지나가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얘야, 함부로 봉분위에 손을 올리는게 아니란다. 특히 그렇게 양쪽 봉분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네 몸을 통해서 영혼이 서로 뒤바뀌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영혼들이 너를 쫓아다니면서 다시 바꿔달라고 하게 된단다." 
저는 순간 소름이 끼쳐서 얼른 그 묘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계속 사촌형들하고 어울려 놀면서 그 무섭던 생각은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워지고 나니 갑자기 낮에 그 아저씨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더 그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해 졌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사촌형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고, 잘때에도 사촌형 옆구리를 끌어앉은채 잠이 들었습니다. 
잠을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에서 깼습니다. 
오줌이 마려운 거라면 오강에다가 누면 될텐데, 하필이면 대변이었고, 며칠전에도 밤에 혼자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서 오강에다가 대변을 보았다가 큰어머니께 혼쭐이 났었기 때문에 그럴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촌형을 흔들어 깨웠고, 사촌형은 귀찮다는 듯이 혼자 갔다오라고 하고는 다시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사촌형을 깨워서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사정을 했고, 앞으로 사촌형의 충실한 쫄병이 되기로 멩세까지 하고서야 화장실에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시골 화장실이라는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고, 더구나 그 당시에는 태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때였습니다.(큰댁은 태안에서도 제일 구석으로 들어간 깡촌이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큰댁까지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무튼 사촌형한테는 내가 일 다 볼때까지 화장실 옆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무서운 생각때문에 거의 1초에 한번씩 사촌형이 밖에 있나 물어보면서 일을 보았습니다. 
급하게 일을 다 보고 신문지로 뒷처리를 하면서 그만 사촌형한테 아직 밖에 있냐고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뒷처리를 다하고 얼른 문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사촌형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있는힘을 다해서 사촌형을 불렀습니다. 
하지만 사촌형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저는 공포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촌형을 찾는것을 포기하고는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내 맘대로 뛸수가 없었습니다. 
큰댁과 그 가족묘지 중간정도 되는 곳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집만 바라보고 뛰어도 시원찮은 판에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 묘지쪽을 바라보게 되었고, 묘지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위에 있는 흰색의 물체를 보고선 그만 몸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는 흰색 물체였습니다. 
그런 흰색 물체가 그토록 가느다란 소나무 가지 위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얼른 소리라도 질러서 다른 사람들을 깨워야 하는데, 목소리도 나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물체를 쳐다볼수가 없어서 그저 큰댁 대문만을 쳐다보며 속으로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야...' 
그렇게 한참을 서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기절하기 직전이 되었는데, 갑자기 어깨를 탁 하고 잡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쓰러지는데, 사촌형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왜이렇게 놀라는거야?" 
휴... 다행히도 사촌형이었습니다. 
전 너무 무서워서 사촌형이 어디 갔다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얼른 들어가자고만 했습니다. 
사촌형 옆구리에 메달리다 시피 해서 방으로 들어왔고, 너무 긴장한 탓에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다가 춥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이 깼는데, 눈앞의 광경이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아까 사촌형과 방에 들어와서 잠이 들었는데, 제가 지금 있는 곳은 방이 아니라 헛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꼭 안고 있었던 것은 장작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그만 기절을 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사촌형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없어졌길래 여기저기 찾다보니 헛간에 쓰러져 있었다며, 왜 거기에서 쓰러져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다 얘기했지만,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저녁때 부터 사촌형 옆구리에 달라붙어 같이 잤었는데, 큰아버지와 사촌형 말에 의하면 분명히 아랫방에서 혼자 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촌형은 저녁을 먹고 친구네 집에 가서 자고 왔다는 것입니다. 
전 너무 놀라서 어제 낮부터 있던 일을 다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내가 어제 보았던 그런 아저씨는 여기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놀라서 다시 한번 기절을 했고, 큰아버지는 사촌형이 저를 놀려주느라 그랬다고 생각하시고 하루종일 보리타작 하듯이 사촌형을 팼습니다. 
사촌형은 한참을 맞더니 자기가 장난을 친거라고 서럽게 울면서 얘기했고,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이상한건 정말 사촌형이 장난을 친거라면 한두대 맞았을때 자기가 장난친거라고 불었을텐데, 거의 죽을만큼 맞을때 까지도 절대로 자기가 장난친게 아니라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제가 너무 놀란게 걱정이 되어서 큰아버지가 저와 같이 주무셨는데, 제가 밤에 몽유병 환자처럼 갑자기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답니다. 
그리고 대문밖을 나서서 그 묘지쪽으로 걸어가더랍니다. 
큰아버지는 급히 저를 따라나와서 저를 붙잡고 흔들었고, 저는 그냥 쓰러졌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큰아버지께 그 얘기를 들었지만, 저는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큰아버지는 정말 뭔가에 씌운것 같다고 하시면서 저를 그 묘지로 데려가셔서 함께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묘지를 향해서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도 안심이 되질 않으시는지 동네에 신들린 아주머니한테 저를 데리고 가셔서 부적을 한장 받아오셨고, 그 부적을 밥풀로 제 등에 꼭 붙여주셨습니다. 
그 부적의 효험을 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날 이후로는 밤에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일 이후로 아무리 모르는 사람의 묘지라 해도 함부로 봉분을 손으로 짚거나 봉분위에 올라가지 않는답니다. 
정말 내가 그때 귀신을 보고, 귀신에 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른살이 다된 지금에도 조심하고 있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졸병한테도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졸병의 말로는 사람의 몸은 영이 들어올수도 있고, 내 몸을 통해 영이 지나갈수도 있기때문에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부적에 대해서는 부적의 효험이라기 보다는, 우리 큰아버지께서 평소에 그 묘지를 잘 가꾸고, 소중히 다뤘기 때문에 큰아버지의 부탁을 귀신들이 들어준 것일 거라고 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도움으로 죽을 위기를 넘겼던 일을 얘기할까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사건은 누구나 다 기억을 하실겁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것은 1995년 여름이었는데, 1994년 겨울부터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셋째 누나가 삼풍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누나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저에게 넘겨주고 그만 두었습니다. 
그래서 1994년 겨울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1995년 여름에도 종강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옷 파는 아르바이트는 남자에게는 잘 시키지 않는 것이었지만, 누나에게 물려받은 자리라 할수가 있었고, 누나의 경력이 저한테 더해져서 같은 아르바이트생에 비해서 하루 5천원을 더 받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사고가 있기 전날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사고 전날 밤 늦은시간에 당시 여자친구가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당시 여자친구는 애인이 아니라 정말 친구사이였습니다. 
제가 1995년 봄에 처음 만난 이후로 줄곧 쫓아다니고 있었지만, 저한테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딱 세번을 만났었습니다. 
한번은 처음 만난 연합 MT에서였고, 두번째는 그 뒷풀이에서였고, 세번째는 어떻게든 다시한번 만나보려고 하나뿐이었던 모뎀을 두개 있어서 하나는 필요없으니까 가져다 준다는 명목으로 만났던 것입니다.^^; 
아무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화를 했고, 애정공세를 펼쳤지만 꿈쩍도 안하고,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던 여자친구였는데, 갑자기 전화를 해서 내일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당시에 청량리 롯데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여자친구가 자기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에 만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끝나는 시간은 저나 여자친구가 같은 시간이었지만, 강남에서 청량리 까지 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한참을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내가 아르바이트 끝나고 올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면 또 나중에 만나자는 핑계로 더이상 만나주지 않을것 같아서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간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막상 약속을 하긴 했지만, 당장 내일 아르바이트를 어떡하나 걱정이 됐고, 친구들한테라도 대신 하루만 해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연락을 했지만, 다들 바쁘다고 발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 조급했던 심정을 생각하면 그놈들을 다신 안보는건데... 솔직히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그놈들을 다시 안볼 생각이었습니다.^^; 
아무튼 대타는 구하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백화점 매대 담당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절대로 안되니까 내일 꼭 나오라고 했지만, 평소에 약간의 안면이 있던 그 형한테 자초지종을 다 설명을 하고, 내 평생의 반려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까지 나오자 매대 당당도 하루만 봐준다고 했고, 어차피 이시간 까지 대타를 못구했으면 내일 대타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대신 아침에 나와서 매대만 창고로 치워놓고 가라고 했습니다. 
전 그 다음날 아침에 매대를 창고로 치우고, 여자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에 목욕탕에 가서 때도 벗기고, 이발도 새로 하고, 옷도 한번 사 입었습니다. 
그리고 청량리행 버스를 타고 청량리 롯데 백화점을 향해 가는데,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저녁무렵이었는데, 갑자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믿을수가 없었습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매대를 치웠던 곳인데... 
놀랍기도 하고, 옆에서 같이 일하던 옆 매장 누나들 안부도 걱정되었지만, 여자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이내 다시 즐거운 생각을 했고, 시간이 되어 여자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여자친구에게 고백 비슷한걸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이후로 호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서지 않아서 지금까지 망설이고 있었다고... 
그때까지 삼풍백화점 사건을 모르고 있었던 여자친구에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이야기를 해주니까 여자친구가 놀라며 이야기 했습니다. 
어제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들어와 너무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서 제가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떠나려고 짐을싸고 있어서 여자친구는 어딜 가려고 하냐고 물어봤고, 지금 날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떠날수 밖에 없다고 얘길 했답니다. 
여자친구는 잠에서 깬 후 자신의 감정에 대해 다시한번 정리를 했고, 어차피 제 마음을 받아들일 거라면 꿈속에서와 같이 내가 떠나기 전에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우리 둘은 더욱더 가까워 졌고, 7년의 연애끝에 작년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와이프와 저는 전생부터 만날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나 봅니다. 
 
댓글 6  | 손님댓글 0 0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38삼풍백화점이야기는 정말 대박이네요..행복한 결혼생활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답글 | 신고     겨울숲 12.08.02. 12:50이글이 진실이라면 ..정말 천생연분임에 틀림이 없군요..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랍니다.생명의 은인인 아내한테 잘하시고요~~^^*답글 | 신고     레드카나리아 12.08.12. 04:16여자친구가 구해줬군요...저도 삼풍 백화점 잊을 수 없는 일이네요...저희 언니 친구도 거기서 일했었거든요.. 그거 무너진 소식에 언니 친구 연락도 안되고...정말 우리는 뉴스만 뚫어져라 봤었어요... 다행히 연락이 되었는데...그날 아파서 출근을 못했다고 하더라구요...그래서 다행히 무사하지만...정말 그때 사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죠..답글 | 신고     미냉이 12.08.14. 21:26아주 신기한 일입니다.. 결혼까지 통과하셨다니 추가추카답글 | 신고     아다모 12.08.16. 15:38결혼 축하해요답글 | 신고     독쓰뤼 12.11.06. 12:29우와 감동적입니다.


펌)의경 시절 후임병-8|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365|추천 1|2012.07.29. 23:16 http://cafe.daum.net/nde1/7qge/7438 


이번에는 그동안 뜸했던 졸병 얘기를 할까 합니다. 
처음에 졸병 이야기를 위주로 글을 올리다가 졸병 이야기를 안했던 이유는 아무리 제가 옆에서 겪은일이긴 하지만 그 친구 동의없이 글을 올리는게 그 친구한테는 불쾌한 일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어제 그 친구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걱정과는 정 반대로 흔쾌히 허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졸병의 현황을 이야기 한다면, 군대시절부터 계속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때문에 솔직히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는게 어려웠습니다. 
제가 먼저 제대를 하고 그 친구가 제대를 한후 학교에 복학을 했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잘 다니는 듯 했지만 얼마 지나서 부터는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기회를 만들어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대후 학교에서도 한번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이후로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친구를 이용하려만 들었답니다. 
그 친구는 사람들에 대해 환멸까지 느끼는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귀신이 씌운 상태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우연한 기회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때를 생각해서라도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졸업할때 까지만 참으라고 충고를 해 보았지만, 또 한번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고 바로 다음날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우선 그 친구가 제대후 첫번째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친구가 제대한게 1999년 1월달이었는데, 그해 입학을 한 신입생들이 신입생 수련회가 있었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보려던 그 친구는 신입생 수련회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신입생 수련회를 갔던 곳의 정확한 지명은 잊어버렸는데, 충주 건대 근처였다고 합니다. 
제 졸병이 그곳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것은 음기가 유난히 강하다는 것이었답니다. 
여러분들도 다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이지만, 음기와 양기는 항상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만약 양기가 더 강하다면 여자들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고, 음기가 더 강하다면 남자들이 요절하는 경우가 더 많게 된답니다. 
이렇게 음기가 강하다면 분명히 근처에 과부촌이 형성이 되어 있는게 정상이지만, 그곳에서 과부촌을 찾아볼수가 없었답니다. 
아무리 유동인구가 많은 현대사회라고 하더라도 어느정도의 토박이들은 있기때문에 아주 작은 규모로라도 있었어야 했답니다. 
하지만 그런것은 없었고, 그 음기는 전반적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형성된 부조화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근래에 급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아무튼 예사로 넘기기에는 과한 음기였기 때문에 무슨 사고가 터질것 같은 예감에 급히 학생회 집행부실로 찾아갔고, 이런 사정얘기를 하고 이곳을 얼른 떠나자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미치ㄴ놈 취급만 받게 되었답니다. 
워낙 강한 음기가 특정 지역이 아닌 전체적으로 퍼져있었기 때문에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정말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보기 때문에 특히 더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답니다. 
어차피 자신이 설득시킬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불상사를 막아보려고 했고, 일정중에서 가장 위험할 것 같은것이 야간 담력 훈련이었답니다. 
제 졸병은 담력훈련 코스 길안내 표식을 자신이 하겠다고 자원하고 나서서 남들에게 티가 안나도록 부적과 금줄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했고, 밤 늦은시간까지 계속 되었던 야간 담력훈련에서는 다행히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야간 담력훈련이 완전히 끝난 후 낮에 설치했던 부적과 금줄들로 인해 전체적인 조화가 깨져서 더 큰 화를 불러오지 않도록 다시 거둬들이려고 그 코스로 다시 갔고, 사고는 그렇게 졸병이 숙소에서 떠난 시간 숙소에서 벌어지고 말았답니다. 
졸병은 부적과 금줄을 제거하는 도중 숙소쪽에서 강한 음기를 느끼고 서둘러 숙소로 향했는데, 당시 사발식을 하던 신입생들 7명 정도가 갑자기 호흡 곤란증세로 쓰러져 있었답니다. 
예상대로 많은 영들이 그곳에 모여있었고 평소와는 다른 흉흉한 기세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중에서 일부가 바로 그 쓰러진 신입생들에게 해를 입히려 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졸병이 어느정도 해 놓았던 부적과 금줄 덕분에 맘대로 해를 끼치지는 못하고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전체 단과대학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으나, 워낙 급한 상황이어서 어쩔수 없이 쓰러진 학생들에게 다가가 주문과 부적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는 학생들이 너무 심한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에 졸병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해들 입힌다는 생각을 한 다른 사람들이 졸병을 제지하기 시작했고, 워낙 다급했던 탓에 자신을 제지하려드는 사람들에게 불쇼까지 보여주며 하던일을 계속 했답니다. 
다행히 그날밤 별다른 불상사 없이 사건이 해결되긴 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졸병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그런 소문은 신입생 수련회가 끝난 후 학교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범대에 졸병이 다니고 있었는데, 삽시간에 그 소문에 공대에 다니던 저에게 까지 퍼져왔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그 졸병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고, 졸병은 충주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후에 충주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댓글 5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42참...그렇게 사람 들은 믿기 어려운 일을 겪어도 눈으로 안 보면 안 믿는 거죠..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7:25도와줄려구했는데..오해했군...답글 | 신고    레드카나리아 12.08.12. 04:22졸병분 많이 힘들겠네요...힘내시길...답글 | 신고    빤쓰풍뎅이 12.08.22. 06:02충주에 무슨 일이 잇는지.. 궁금하네요... 거기 과부촌이 ㅣㅇㅅ다는것 같기도 한데..답글 | 신고    하멜른의夢幻夜史錄 12.10.28. 19:42충주,,,? 거기 인가요/? 사과유망한그곳?

펌)의경 시절 후임병-9|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12|추천 1|2012.07.29. 23:19 http://cafe.daum.net/nde1/7qge/7439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제가 낚시를 다니며 겪었던 일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아버지께서 낚시를 좋아하는 탓에 저도 어려서 부터 낚시를 했고, 그리고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가기도 하고, 가끔은 저 혼자서도 낚시를 가곤 했습니다. 
혼자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대학교에서 첫번째 맞이하는 여름방학때에는 거의 두달동안 저 혼자 낚시에 미쳐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때까지만 해도 대학생활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입학을 했지만, 솔직히 기대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고등학교때처럼 친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혼자 낚시를 다니는 일이 많아졌고, 평소에 가본적이 없던 곳으로도 가보게 되었고, 그중에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곡릉천이라고 하는 개천에서 요즘은 보기 힘든 참붕어가 잡히는 것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매일 가게 되었습니다. 
혹시 낚시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요즘 대부분의 저수지나 강, 개울에서 잡히는 붕어는 대부분이 떡붕어인데, 주로 월남이나 이런 외국에서 들어온 물고기 입니다. 
반면 참붕어는 우리나라 토종 붕어죠... 
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크기는 우선 떡붕어가 더 크고 통통하지만, 오히려 힘에서는 참붕어가 훨씬 좋습니다. 
짜릿한 손맛을 즐기는 낚시꾼들한테는 당연히 크기는 작더라도 짜릿한 손맛을 느낄수 있는 참붕어가 인기가 많을수 밖에 없고, 먹는 입장에서 본다면, 참붕어가 훨씬 맛있고, 영양도 많습니다. 
아니, 영양이라기 보다는 약효라고 하는게 맞겠죠... 
그까짓 민물고기가 무슨 약효까지 있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실텐데, 그건 정말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구상에 살고있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수중생물은 대부분 수(水)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일부의 몇몇 종류는 화(火)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유일하게 토(土)의 기운을 가진 생물이 있는데 그게 바로 붕어입니다. 
한의학적으로 봤을때 물에 살면서 흙의 기운을 가진 생물의 약효가 엄청나게 뛰어나다고 합니다. 제가 한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있는건 아니라 자세히 설명드릴수는 없지만, 암튼 그렇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에서 유용한 참붕어가 유감스럽게도 별로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참붕어가 나오는 낚시터라고 한다면, 낚시꾼들이 환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참붕어에 끌려서 그 곳으로 계속 낚시를 가게 되었고, 천운으로 65센티미터짜리 참붕어를 잡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마악 가슴이 떨려옵니다. 
잉어라 하더라도 그정도의 크기면 사람들 입이 딱 벌어지게 마련인데, 붕어가 그정도 크기였으니... 그것도 참붕어가... 
당시 그 자리에서 100만원 줄테니 자기한테 팔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쯤 이야기니까, 지금 화폐가치로는 100만원이 훨씬 넘는 것입니다. 
에구... 제가 낚시를 너무 좋아해서 그만 얘기가 샛길로 새고 말았네요...^^; 죄송함다... (-,-) (__) (-,-)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런 이유에서 그 곡릉천이라는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 여름 내내 낚시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곡릉천이라는 개울이 개울치고는 긴 편이어서 아마도 몇십킬로미터는 되는데, 제가 낚시를 했던 자리는 봉일천 시장 뒷편에 있는 다리 근처였습니다. 
개울이 길긴 하지만 폭이나 깊이 면에서는 규모가 작은편이었고, 깊이가 깊지 않다는 것은 큰 물고기가 놀기에 적합치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주로 수심이 깊은곳에서 낚시가 잘되고, 그 다리 근처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이곳에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처음 며칠동안은 그저 낚시만 했었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낚시꾼들이 몇명 있었고, 이제 그 사람들과도 친해져서 가끔씩 같이 점심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서로의 낚시 비결에 대해 이야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얼굴을 보는 낚시꾼들중 한사람 만이 소위 명당자리라고 불리우는 다리 근처에서 멀리 떨어져서 혼자만 낚시를 했고, 단 한번도 다른 낚시꾼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낚시를 하던 자리는 좀 특별한 지형으로 수심이 특별히 낮은 곳이었습니다. 
그런 장소에서는 낚시가 잘 될리가 없는데에도 그 사람은 항상 그 자리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위에서 찬바람이 불 정도로 냉랭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볼 용기는 없었고, 그렇게 궁금증만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이상한 꿈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낚시터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낚시대가 활처럼 휘어졌고, 저는 죽을 힘을 다해서 낚시대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을 하다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던 물체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월척이 아니라 사람의 시체였습니다. 
너무 놀라서 잠에서 깨었고, 시체를 건졌다는 점에서 찝찝하고 약간 무섭기는 했지만, 꿈속에서라도 그 생생한 손맛을 잊을수가 없었고, 이상하게도 오늘은 꼭 엄청난 월척을 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낚시도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는데, 처음에는 구름만 끼어있던 날씨가 금새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고, 버스를 타고 낚시터에 도착할 무렵에는 거의 폭우 수준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는 탓에 평소에 거의 매일 낚시를 하던 낚시꾼들도 보이질 않았고, 몇명 있던 낚시꾼들도 막 철수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꿈속에서의 손맛이 잊혀지질 않아서 파라솔 위에 비닐을 씌워서 조그만 텐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낚시를 시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이미 다른 낚시꾼들은 모두 자리를 뜬 상태였고, 저 멀리에 한 사람만이 낚시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나같이 미치ㄴ놈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그 사람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항상 혼자 떨어져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날도 그 자리에 있었고, 이상한 점은 그렇게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우산조차 쓰지않고 비를 맞으며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른 짜릿한 손맛을 보기위해 낚시에 열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탓에 평소 낚시바늘을 물속에 던지기가 무섭게 입질을 하던 곳에서 세시간이 넘도록 단 한번의 입질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질 무렵 제일 짧은 낚시대에 입질이 왔고, 힘차게 채임질을 하자 낚시대가 정말 활처럼 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시간을 넘도록 기다린 입질이었기 때문에 허무하게 놓칠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러질듯한 낚시대를 꼭 붙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시줄이 물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너무 작은 바늘을 썼는지, 바늘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방금전의 그 엄청난 힘을 생각한다면 바늘이 부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 한칸 반짜리 하나와 두칸 반짜리 낚시대 두개를 사용하던 저는 바로 세칸 반짜리 낚시대를 두개 더 꺼냈고, 바늘도 잉어를 낚기위한 바늘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이 적중하여 세칸반 짜리 낚시대에 입질이 찾아왔습니다. 
힘껏 채임질을 하자 아까처럼 낚시대가 활처럼 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낚시대를 적당히 늦췄다가 당겼다가 하며 그놈의 힘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적당히 조절을 하려고 했지만, 낚시대가 부러질정도로 휘어지는걸 막을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놈을 놓치지 않으려는 제 마음을 아는지 낚시대가 신통하게도 버텨주었고, 그렇게 한시간이 넘는 시간을 씨름을 하고 나서야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더이상 끌어당길 힘도 없었고, 손과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한시간이 넘도록 고생한 것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짜냈습니다. 
그리고 십분쯤 후 드디어 힘이 완전히 빠진 그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엄청난 놈이었습니다. 
이젠 그런 엄청난 놈을 물 밖으로 끌어내는 일만 남았는데, 힘이 빠진 상태에서도 간간히 저항을 하는 그놈 때문에 뜰채를 집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도움을 청할 사람이 많았겠지만, 그날은 저와 항상 같은자리에만 있는 그 낚시꾼 두명 뿐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러 그 낚시꾼을 불렀고, 몇십번을 불러서야 그 낚시꾼이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낚시꾼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한시간 반 가량 사투를 벌인 그놈을 물밖으로 꺼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정신력으로 버텼던 저는 그만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웠고, 아직까지도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팔 때문에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켜 도와주었던 낚시꾼에게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낚시꾼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놈이 드디어 잡혔구먼... 내가 이놈을 잡으려고 여기서 일년을 기다렸는데, 결국 나는 이놈과 인연이 없던 모양이네... 하기야, 지금은 이놈을 잡아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오기 하나로 이놈을 기다렸는데, 섭섭하구먼..." 
이렇게 얘기하고는 술이라도 한잔 대접한다는 제 말을 들은척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후, 반나절을 퍼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치고, 활짝 개었습니다. 
그리고 근처 소주집으로 비를 피하러 갔던 낚시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제가 잡은 거대한 붕어를 보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다들 물어보는게 이걸 어떻게 혼자 잡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낚시꾼이 도와줬다는 얘기를 했는데,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낚시꾼은 오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예전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얘기한 그 자리에는 정말 사람이 단 한번도 가지 않았던 것 처럼 풀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귀신에 홀린것도 아니고, 분명히 방금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던 자리였는데...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처럼 대단한 붕어를 잡았다는 기쁨에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주위에 구경하던 낚시꾼 중에 줄자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어 길이를 재 보았더니 자그마치 65센티미터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자기한테 팔면 안되겠냐고 하는걸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고(평소에는 항상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혹시 버스안에서 상처라도 입을까 하는 걱정에 거금 2만원을 주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당시 노환으로 누워계시던 외할머니 약으로 유용하게 썼습니다. 
정말 약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서도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했던 외할머니께서 얼마후 자리에서 일어나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6년을 더 사시다가 2000년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무튼 그때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손맛에 외할머니께 효도한번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이상한 낚시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후 제가 98년도에 재대한 후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아버지께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큰 붕어를 잡은곳 근처에서 낚시를 했기 때문에 옛날 기억을 되새기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이전 얘기까지 하시면서 붕어의 약효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전 얘기라는 것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낚시를 하기 1년반 전에 이곳에 자주 오셨답니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서 부담없이 얼음낚시를 하기 좋았기 때문에 그곳을 계속 찾으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낚시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아예 텐트를 집처럼 크게 쳐놓고 그 안에서 먹고 살면서 낚시를 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몇번 본 후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원래 위암 말기 환자였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너무 늦어서 가망이 없으니 수술보다는 차라리 남은 몇개월 만이라도 편히 살다 죽는게 낫다고 포기를 했었답니다. 
그 사람도 평소에 낚시를 좋아하던 사람이라서 차라리 낚시라도 원없이 하고 죽어야 겠다는 생각에 매일 낚시를 하러 왔고, 잡히는 붕어를 놔주기도 뭐해서 그걸 가지고 계속 약을 해먹었는데, 1년이 다되도록 몸이 점점 안좋아 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건강해 지는 기분이었답니다. 
그래서 남은 여생이라도 건강한 기분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에 계속 붕어를 가지고 약을 해 먹었고, 2년정도 지난 다음에 이상한 생각에 다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놀라면서 암세포가 깨끗이 없어졌다고 했답니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은 계속 낚시를 다니면서 잡은 붕어로 약을 해 먹으면서 지금은 건강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속 낚시를 다니는데, 그 사람의 어머니가 췌장암에 걸렸고, 자신이 나은 생각을 하고 붕어를 잡아서 계속 약을 해드렸답니다. 
그렇게 계속 낚시를 하다가 어느날인가 엄청나게 큰 붕어를 잡을뻔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붕어가 제가 잡았던 붕어일 거랍니다. 
아무튼 그 붕어를 거의 다 잡았다가 놓치고 나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답니다. 
그정도 크기의 붕어라면 약효도 뛰어날 것이고, 그런 붕어로 약을 해드리면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실것 같아서 그 다음날 부터는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 붕어를 놓친 자리에서 거의 한달동안 낚시를 하고 있다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그 낚시꾼과 만났던때에 한참 그 큰 붕어를 잡으려고 할때 였답니다. 
아버지는 며칠 더 낚시를 다니시다가 개학을 하면서 한동안 낚시를 못가셨고, 여름방학이 되어 다시 그곳으로 낚시를 하러 가셨는데, 텐트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답니다. 
주위에 있는 낚시꾼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며칠전에 큰 비가와서 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는데도 그 자리를 뜨지않고 있다가 그만 급류에 휩쓸려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텐트가 있던 자리가 바로 제가 그 이상한 낚시꾼을 보았던 자리인 것이었습니다. 
순간 오싹해지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낚시터에 갔을때가 그 사람이 죽은지 1년정도 지난 때였고, 그 이상한 낚시꾼이 했던 말도 자신이 1년이 넘도록 제가 잡은 그놈을 기다렸다고 하고...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께 그 붕어를 잡아서 약을 해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번 얘기는 제가 워낙 낚시를 좋아하는 탓에 좀 샛길로 많이 빠졌습니다.^^; 
 
댓글 6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3:59글 쓴이는 보통 사람보다 기이한 경험이 많으시네요...답글 | 신고     민물장어 12.07.31. 01:04그러게요.이런얘기는 tv에제보해도 시청률꽤나오겠는데요?답글 | 신고     아베바바 12.08.02. 07:03신기하고도 신기합니다답글 | 신고     indora 12.08.02. 12:12
쉽게 구할수 있는 土 기운을 가진 생물이라면 지렁이가 있는데.
 옛날에 설화중에 남편은 도시로 일하러 가고 며느리 혼자 눈먼 시어머니를 봉양하는데. 맨처음에는 물고기를 잡아서 매끼마다 드렸는데.
여자혼자 물고기 잡기는 힘든거라 나중에는 궁여지책으로 지렁이를 요리해 잡수게 했는데.
이게 전화위복으로 약이돼 눈먼 시어머니가 눈을 떳다는 이야기가 있죠..성경에도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는 구절이 있는걸 보면 사람에게 土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듯.

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7:33잘읽고 갑니다~답글 | 신고     하멜른의夢幻夜史錄 12.10.28. 19:48흙에서태어나흙으로가는게 사람이지요 인생이지요

펌)의경 시절 후임병-10|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371|추천 0|2012.07.29. 23:21 http://cafe.daum.net/nde1/7qge/7440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요즘 회사일이 바빠서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저 제 경험에 조잡한 글쏨씨에 성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신점은 저로서는 정말 영광입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저 저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서이지 인기를 끌어서 글을 연재하고자 하는것은 아니라는 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가위에 눌리는 경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는 정말 귀신에 의해 가위를 눌릴수도 있고, 강한 영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위를 눌리게 할수도 있고, 수맥때문에 가위에 눌릴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제 짧은 소견으로는 강한 기의 흐름이 가위에 눌린다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TV에서 한번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 달마도가 수맥을 차단하고 좀 특이하게 생각될수 있던것이 글씨로 이루어진 십자가가 수맥을 차단하는 걸 본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걸보고 저는 예전에 몇번 뵈었던 스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사람의 기를 다른 사물에 주입할수가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4학년때 외할머니께서 여름방학때 돌아가시고나서 한참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실의에 빠져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대학교 친구가 함께 고향에 갔다오자고 하여 그 친구와 함께 그 친구의 고향에 갔었고, 그 친구의 소개로 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스님들만 생각하던 저는 그 스님을 뵙고 이런 생각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깎은것 이외에는 어느 한구석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술, 고기도 드셨고, 심지어는 제가 처음 그 스님을 찾아갔을때에는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스님이 땡초라는 생각이 들며 불쾌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그 스님을 찾아갔을때에는 지난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불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찾아온지도 모르고 한참을 불경을 읽고 계시던 그 스님은 제 얼굴을 보시더니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심걱정이 온몸을 뒤덮고 있구나... 그 근심걱정이 비록 그리움으로 비롯된 것이지만, 이렇게 평생을 그리움으로 지낼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불경을 몇자 적어줄테니 그 불경을 보면서 한번 그 그리움을 열심히 살아가는 힘으로 바꿔보지 않을텐가?" 
그러면서 먹과 붓을 꺼내시더니만 큰 종이위에 불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점심때쯤 스님을 뵈러 갔는데, 불경을 다 쓴게 해가 질 무렵이었으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땡중같은 스님이었는데, 불경을 쓰고 있는 옆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 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랜시간 공들여 쓴 불경을 보니, 글자를 보면 불경이 분명한데, 전체적인 모양을 보니 일만만자 였습니다. 
한참동안 불경을 쓰신 스님은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에 번뇌가 생길때마다 이걸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다스릴수 있을거네. 자네의 그리움이 너무 큰 것 같아서 내 명을 조금 깎아서 쓴 불경이니 자네가 소중히 간직만 해준다면 나로서는 큰 보람이 되겠구만..." 
그리고는 아까의 진지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금새 술을 찾으셨습니다. 
그렇게 그 불경을 받아가지고 친구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말로 그 불경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불경을 품속에 넣은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받아온 불경을 저는 항상 품안에 품고 다녔고, 덕분에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불경이 어떤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마음을 편히 해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위력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불경을 받은지 6개월쯤 되던 어느날 길에서우연히 고등학교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도 가끔씩 전화통화를 하고 일년에 한번정도 만나던 친구였는데, 제가 재대하고 얼마후 한번 만난이후로는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였는데, 입시운이 정말 너무 없어서 제가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도 입시준비를 하던 친구입니다. 
부모님은 경기도 파주에서 음식점을 하고 계시고, 그 친구는 입시학원에 다니느라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는 음식점이 워낙 잘되서 돈 걱정은 안해도 되는 친구였지만, 그 나이가 될때까지 집안에 아무런 보탬이 되질 않는게 죄송하다고 조그만 다락방에서 자취를 하였습니다. 
오래만에 만난 친구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그리고 그 친구 얼굴이 너무 수척하고 안되보여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술이나 한잔 하며 이야기를 하려고 친구가 자취를 하던 다락방으로 소주 몇병과 안주거리를 조금 사가지고 자취방으로 갔습니다. 
자취방에 가보았더니 방의 크기는 사람 두명이 누우면 꽉 찰만한 크기였고, 지붕도 낮아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면 겨우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방을 보고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좁은 방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소주를 한잔씩 마시기 시작했고 서로 지난 몇년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새벽 두시가 되었고, 집에 가려는 저를 친구는 계속 붙잡았습니다. 
꼭 자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너무 반가와서 그러는줄만 알고 자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좁은 자취방에서 친구와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친구가 저를 깨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그 친구의 표정이 어제와 달리 밝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나때문에 그 친구가 조금이나마 밝아졌다는 생각에 저도 덩달이 기분이 좋아졌고, 그렇게 친구의 자취방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저에게 자취방으로 빨리 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해서 저는 급히 친구의 자취방으로 갔습니다. 
자취방이 가까워 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기분은 제가 예전에 귀신을 볼때마다 느끼던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분이 친구의 자취방으로 인한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에 그 친구는 방 바닥에 쓰러져 온몸에서 땀을 비오듯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친구를 업고서 병원에 가려고 친구를 안아서 일으키려는 순간 그 친구가 깨어났습니다. 
깨어나기는 했지만, 거의 탈진해 있는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 그리고 내가 도착했을때 왜 그렇게 실신해 있었는지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이 그 자취방을 구한지 한 2년정도 되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재수, 삼수, 사수...그리고 군대에 갔다와서 다시 입시에만 매달리는게 죄송해서 한달에 월세 5만원 밖에 안하는 그 자취방으로 옮기게 되었답니다. 
항상 입시준비 때문에 하루에 세시간 정도밖에 안잤는데, 이상하게도 그 자취방으로 옮기고 난 후로는 그 세시간 마저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답니다. 
항상 이상한 느낌에, 잠깐이라도 잠을 자게되면 항상 가위에 눌리고, 가끔씩은 헛것이 보이기도 했답니다. 
생각같아서는 자취방을 옮길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보증금도 한푼 없이 월세 5만원만 받는 방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취방을 옮기지 못하고, 대신 학원에서 잠깐씩 책상에 누워서 자는 것으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답니다. 
처음에는 그러는게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지낼만 했는데, 일년전 부터는 방안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자취방에 들어서면 이상하게도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답니다. 
그런데 며칠전 내가 자취방에 갔을때에는 그런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자고 가라고 붙잡았고, 그 자취방에서 2년동안 처음으로 제대로 잠을 잤답니다. 
하지만, 내가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예전과 같이 그런 생활이 반복되었고, 저한테 전화하기 전 자취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날따라 정말 자취방에 들어가기가 싫었답니다. 
하지만, 길에서 밤을 지새울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자취방으로 들어갔는데, 자취방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의 힘이 완전히 빠지며, 이런게 죽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 수화기를 들고 저에게 전화를 하고나서 정신을 잃었답니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보았답니다. 
한 젊은 여자였는데, 자신을 계속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답니다. 
자신은 그 여자를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고, 하지만 그 여자는 손목을 움켜쥐고 친구를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 손목을 뿌리칠 수가 없었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우연히 그 친구의 손목을 쳐다보았는데, 손목에 멍 자국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그 친구의 손목을 자세히 보았는데, 그 멍자국은 누군가의 손에 힘껏 눌린듯한 자국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이나 그 친구의 손목에 있는 멍자국을 보니 보통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날 군대에 함께 있던 졸병을 불렀습니다. 
이 졸병이 누군지는 제가 올렸던 글을 보신분은 잘 아실겁니다. 
그리고 제대한 후에는 이 졸병과 형, 동생 하면서 지낸답니다. 
아무튼 그 졸병은 친구를 보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말을했습니다. 
"지금 저 친구분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상태로 놔두면 며칠 안가서 죽을거예요. 무슨일이 있었는지 저한테 자세히 말해주세요." 
저는 지금까지 상황을 졸병한테 자세히 말했고, 졸병과 함께 자취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같이 자취방으로 가는 중간에 졸병은 계속 이상하다는 듯이 제 가슴쪽을 쳐다보았습니다. 
자취방이 가까워 오자 어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졸병도 역시 그 이상한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취방에 도착하자 그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졸병은 다시한번 제 가슴을 쳐다보더니만 저한테 묻는 것이었습니다. 
"형, 가슴속에 뭐 들어있어요? 혹시 부적 같은거예요?" 
"가슴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아... 이거 부적이 아니라 불경인데..." 
전 그 불경을 졸병에게 보여줬습니다. 
졸병은 그 불경을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만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형, 저거 어디서 구했어요?" 
"얼마전에 한 스님이 써 준건데? 왜? 이게 이상해?" 
"어떤 스님인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분인가 보네... 나도 저렇게는 못하는데..." 
졸병은 그 불경때문에 아까 그 이상한 기운이 사라진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이걸 써준 스님이 이것때문에 수명이 몇년은 줄어들었을거라고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졸병은 여러가지 도구를 꺼내서 뭔가 조치를 했고, 며칠 후 다시 친구를 자취방에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자취방에 오는 걸 두려워 했으나, 그 졸병에 대해서 제가 얘기도 해주었고, 저도 함께 간다는 다짐을 받고서 겨우 갈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자취방에 갔을때 졸병은 그 친구는 모르게 저만 알고 있으라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방에서 예전에 분명히 누군가가 죽었고, 그 원혼이 친구에게 해를 끼친 것이라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집 주인한테 한번 물어보라고... 
자취방에 들어와서 예전의 느낌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친구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불안해 하는 친구를 혼자둘 수 없어서 일주일동안 함께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일찍 집 주인이 찾아왔습니다. 
며칠전 부터 방세를 받으러 왔는데 그동안 어디갔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졸병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물어보면 잡아뗄것 같아서 마치 형사인것 처럼 하면서 물어보았습니다.(제가 의경출신이라...^^;) 
"아주머니, 지금 이런 방을 사람한테 살라고 월세를 내준겁니까? 이건 완전히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예요. 알기나 하세요?" 
아주머니는 다짜고짜 제가 하는 말에 놀라며 물어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알면서 지금 형사인 저까지 속이려는 겁니까? 이 아주머니 안되겠네... 같이 경찰서로 갑시다."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이 아주머니가 끝까지... 정말 안되겠네..." 
"제가 귀신을 부리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귀신이요? 아주머니 잠깐만, 좀더 자세히 얘기해봐요" 
"... 아니... 귀신은 무슨 귀신이요... 잘못 들었어요..." 
"정 이렇게 나온다면 경찰서에 같이 가는 수 밖에 없어요." 
"그럼 제가 얘기하면 경찰서에 안가도 되나요?" 
"예, 사실대로 얘기한다면 안데려 갑니다. 제가 약속하죠."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5년전쯤 다락방에 한 신혼부부가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었고, 여자는 미싱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아직 정식으로 식을 올리지도 못하고, 여자가 미싱 공장에서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남자 책값하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되어서 근처에서 제일 싼 그 방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달에 월세 10만원에 남자가 공부하기 위한 책값에 시골에 혼자계신 아버지의 약값, 그리고 두사람 생활비까지 마련하기에는 여자가 미싱공장에서 벌어오는 돈은 턱없이 모자랐고, 그 여자는 매일 야근을 하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는 아무도 모르게 술집에 까지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항상 자기 남편이 고시에 합격만 하면 고생 끝이라며 자랑을 하고 다녔고, 한번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서 그 여자의 바램대로 드디어 남자가 고시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아주머니가 월세를 받으러 갔을때에는 고시 합격을 자축하기 위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었고, 아주머니도 함께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두 부부는 정식으로 연수원에 다닐때까지 한달만 더 있겠다며 한달치 방세를 선불로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 아주머니는 새로 월세로 들어올 사람을 데리고 방을 보여주러 왔는데, 그때 그 여자는 한달만 더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연수원에 간 남편이 연수원 근처 좋은 방을 구한다음에 데리러 오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주머니가 그 여자를 길에서 마주쳤는데, 며칠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던 그 여자의 표정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이유를 물어봐도 별 일 아니라고만 할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다 지나갈 무렵이 되었는데, 어느날 저녁 동네 슈퍼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는 그 여자를 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여자가 울고 있는것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옆에서 통화하는 걸 들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연수원에 가서 연락을 하겠다던 그 남자는 연락이 없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는 그 남자를 찾아서 연수원으로 갔는데, 그 남자는 이미 딴 여자와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던 모양입니다. 
그 여자는 절대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에 어렵게 알아낸 그 남자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의 태도는 단호했고, 여자는 울면서 실신을 하였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여자를 방에까지 데려다 주고 잠드는 걸 보고서 방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걱정된 아주머니는 자기 집에 내려와서 같이 아침을 먹자고 하려고 다락방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계단 난간에 목을 매고 자살한 그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동네 소문때문에 다락방에 월세를 낼수가 없었고, 일년쯤 지나서 소문이 잠잠해 질때쯤 다시 월세를 놓기 시작했는데, 모두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고, 어쩔수 없이 처음에 10만원이었던 월세가 8만원, 7만원,... 5만원까지 내려갔고, 2년전쯤 친구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했던건 이게 아닌데, 그만 얘기가 딴데로 새고 말았군요^^; 
아무튼 졸병한테 그 얘기를 한 다음 그녀를 위해 졸병이 위령제를 지냈고 제 친구는 아직도 그 자취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전 그 스님께 받은 불경을 아직도 보물처럼 소중하게 지니고 다니고 있고, 재작년인가 그 스님을 뵈러가서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올 수 있었고, 제 졸병은 작년부터 그 스님에게 뭔가를 배우겠다고 회사도 그만두고 산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얘기가 딴길로 새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댓글 2  | 손님댓글 0 0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4:08잘 읽고 갑니다...죄 짓고 살지 맙시다..답글 | 신고     아베바바 12.08.02. 07:23도대체 고시합격이 머길래..정말 저런경우가 잇군요..그남편이나 잡아가지..왜엄한사람을 잡아갈려고..그건 죽어서도 맘대로 안되는건가바요안그럼 죽어서 다복수하겟죠 ㅎ


펌)의경 시절 후임병-11| ☆체험담당신의 등뒤에|조회 407|추천 1|2012.07.29. 23:23 http://cafe.daum.net/nde1/7qge/7441 국내최대 공포커뮤니티 잔혹소녀의 공포체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저작권리 : 글쓴회원)  이번에는 또다시 혼자 움직이는 그림자를 본 얘기를 할까 합니다. 
제 친구가 건대 충주캠퍼스에 다녔는데, 그곳에 가서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친구가 삼수를 해서 제가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학교를 계속 다녔습니다.^^; 
제가 입사 첫해 여름휴가때에 회사일을 핑계로 한동안 못만난 그 친구를 보려고 충주에 갔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친구 두명과 함께 갔습니다. 
낮에 충주호도 구경을 하고 재미있게 논 후에 저녁에 친구의 하숙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의 하숙방에서 4명이 자기에는 좀 좁지만, 방학이라 하숙생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 터라 몇개의 방이 비어있는 상태여서 따로 숙소를 구하지 않고 하숙집의 빈 방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맥주 몇병과 안주를 사와서 하숙방에서 먹고나서 친구들과 오랫만에 스타크래프트를 하려고 PC방으로 갈때였습니다. 
다들 취기가 오른 상태라 약간씩은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서 비록 문화시민으로 할 짓은 아니지만 전봇대를 잠시 이용하게 되었습니다.(죄송합니다. 담부터는 꼭 화장실을 이용하겠습니다.^^;) 
제가 소변을 보려고 하니 친구 한놈도 덩달아 같이 소변을 보겠다고 나섰고, 둘이 소변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27이나 먹고 할짓은 아니지만 어렸을적 했던 것이 생각나 둘이 오줌 줄기를 X자로 교차하며 킬킬거리며 소변을 보자 옆에서 기다리던 친구 두명이 쪽팔리다며 먼저 앞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저와 한명의 친구가 소변을 보던 곳이 큰길로 나가기 전에 있는 전봇대였고, 두명의 친구는 큰길가로 나가있었는데, 큰길가의 여러개의 가로등에 의해 4개의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친구와 저는 소변을 다 보고나서 앞서간 친구들에게 가려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소변을 본 그 친구가 저한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식 왜이렇게 까불고 있는거냐?" 
그 친구가 가리킨 친구를 쳐다보았는데, 그 친구는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의아한 생각에 물어보았습니다. 
"미치ㄴ놈, 너 취했구나? 저놈 가만히 있잖아?" 
"저기 봐라... 저게 까부는게 아닌가... 그림자만 봐도 얼마나 까부는지 알겠다." 
저는 그 친구의 말대로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4개의 그림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하나의 그림자만 혼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순간 술이 확 깨었습니다. 
군대에 있을때 그림자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느꼈던 공포까지 겹쳐져 순간적으로 온몸의 털이 솓구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그림자의 주인이 바로 제 친구인 사실이었습니다. 
무섭다고 혼자 도망을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친구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야! 얼른 하늘한번 쳐다보고 땅한번 쳐다보고 그다음에 나를 쳐다봐!!!" 
그리고 무의식중에 그 친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인지 그 친구는 그저 저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저는 그 친구 머리를 붙잡고 억지로라도 하늘을 한번 쳐다보게 하고 땅을 한번 쳐다보게 할 생각으로 전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제가 달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영적 능력이 없는 저로서도 다급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저는 그 친구한테 최대한 빨리 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친구를 잡는 순간, 그 친구는 땅으로 털썩 쓰러졌습니다. 
저는 아까 그 그림자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았지만 그 그림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한참을 쓰러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까 제가 그 친구를 부를때 그 친구는 이상한 기분이었답니다. 
자신의 몸이 자기 맘대로 움직이질 않고, 이상한 느낌에 옆에있는 친구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답니다. 
그리고 조금후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고, 자신의 몸에 뭔가가 들어오면 안될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 저항을 하려고 했고, 그래서인지 몸이 심하게 떨렸답니다. 
그리고 제가 자신을 잡았을때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려던 이상한 힘이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면서 쓰러졌답니다. 
나중에 졸병한테 물어보았더니, 스님이 써준 불경때문에 그럴거라고 했습니다. 
그 불경에 그 스님의 기가 담겨있어서 웬만한 귀신은 근처에도 오지 못할 것이랍니다. 
졸병은 지난번 다락방에 자취하던 친구사건 이후 다른 물건에 기를 담는 것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대충 이렇답니다. 
간절한 마음이나, 모든 신경을 쓰면 다른 사물에 자신의 기를 담을수가 있답니다. 
특히 기가 강한 사람이라면 사물에 담긴 기도 역시 강한 힘이 있답니다. 
그래서 옛날에 명필들이 글을 많이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명필들의 경우에는 한글자를 쓸 때에도 모든 신경을 써서 글씨를 쓰기 때문에 글자에 기가 담기게 되고, 이로인해 자신의 기가 쇠하기 때문이랍니다. 
달마도가 수맥을 차단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랍니다. 
달마도 자체에 힘이 있는게 아니라, 달마도를 그리는 사람의 기가 달마도 안에 들어가서 그런 힘을 발휘한느 것이랍니다. 
그리고 졸병이 당부했던 말은, 될 수 있으면 충주에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졸병이 충주로 신입생 수련회를 가서 경험한 것도 있고, 아무튼 충주쪽이 뭔가 조화가 맞지 않는 것이 있어 그런 일이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졸병은 스님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있으면서도 두세달에 한번씩은 충주에 가곤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고등학교때 겪었던 일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원래 외가는 안중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여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외가가 안중에 있을때에는 근처에 물이 별로 없어서 놀기에 좋은편이 아니었는데, 여주로 가서는 남한강 줄기가 있어서 여름방학때 놀러가기가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친한 친구들 6명과 함께 외가로 놀러 갔습니다.(이 6명 중에는 그림자 사건때 있던 3명도 있습니다.^^;) 
강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면서 며칠동안 즐겁게 놀았던 우리는 이제 물놀이에도 약간 싫증이 났습니다. 
이때 친구중에 한명이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내일 해가뜨자 마자 남한강 줄기를 따라 상류쪽으로 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모험한다 생각하고... 
길도 모르고, 강 줄기를 따라간다고 뭐가 나올지도 모르면서도 괜한 객기를 부리느라 우리들은 흔쾌히 그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정대로 새벽 일찍부터 강 줄기를 따라 상류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며칠동안 놀던 곳과 다른 풍경을 만난다는 재미와 하류쪽에서는 볼수 없던 신기한 물고기를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든줄도 모르고 상류를 따라갔지만, 점심때가 지나면서 슬슬 싫증도 나고 힘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저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끔씩은 사람사는 동네도 나올줄 알고 아무런 준비없이 점심값만을 가지고 나섰던 우리들은 정말로 뱃거죽이 등거죽에 붙는듯한 허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점에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왔던길로 되돌아 가는게 제일 안전했지만, 온 시간만큼 다시 가야 되는데, 그러다가는 다 굶어죽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무작정 강줄기만 따라서 계속 가기에는 뭐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강줄기에서 직각으로 최대한 떨어지자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가면 차가 다니는 도로도 나올거고, 인가도 나오리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에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지형이 점점 높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산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우리는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어디에 마을이 있는지 확인하고 거기로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오르기 시작한 산길이 해가 질 무렵까지도 산 꼭대기에 올라가지 못하고 산속을 헤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무 지친나머지 모두 탈진상태로 바닥에 널부러 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목탁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10분쯤 달려갔더니만 정말 영화속에서나 나오는 벼랑끝에 메달려 있듯이 있는 조그만 암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문앞에는 승가사라는 현판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에 승가사라는 이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났을텐데 그 당시에는 승가사라는 이름을 몰랐기에 문 안으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도데체 승가사라는 절이 어떤 절이길래 이러느냐고 묻는 분이 계실텐데 좀 자세히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승가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총 5개가 있습니다. 
서울에 한곳, 충청도에 두곳, 전라도에 한곳, 그리고 강원도에 한곳이 있답니다. 
그중에서 제일 큰 절이 서울 구기동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승가사 입니다. 
이곳이 승가사의 본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규모나 여러가지 면에서 꽤 큰 절에 속합니다. 
그 절은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의 승가대사라는 고승이 세운 절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후세에 승가대사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절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타 지방으로 분점까지 생기게 되었답니다. 
대신에 분점에 해당되는 승가사들은 모두 규모가 암자 수준이고, 동네에 승가사가 있더라도 모르는 사람도 많답니다. 
아무튼 이런 승가사에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예전부터 전설속에 귀신이 살거나 원혼과 연관된 절의 이름이 대부분 승가사 입니다. 
물론 발음은 승가사로 똑같지만, 한자로는 서로 다른 글자를 사용합니다.(제가 한자를 잊어버려서 좀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에 해야 될것 같습니다.^^;) 
아무튼 국내에는 전설속에 나오는 그 승가사라는 곳은 정말 전설속의 절 일뿐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발견한 그 절이 바로 전설속의 승가사였던 것입니다. 
경기도에는 승가사가 없거든요...--;; 
제가 승가사의 전설과 내력에 대해 들은게 군대 졸병한테 였으니까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때는 알 턱이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굶으며 험한 길을 헤메고 다녔던 우리들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반가워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승가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록 조그만 암자였지만 내부는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노승 한명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저녁밥을 얻어먹게 되었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비린 음식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나물밖에 없는 반찬이었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며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 노승에게 길을 물어 산을 내려가려고 했지만, 이미 해가 저물었고, 길이 험하니 하룻밤 이곳에서 묵고 가라는 노승의 권유도 있고 해서 그 암자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기쁜 마음에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고, 잠시후에는 눈앞에 놓여진 밥을 조금이라도 뱃속에 집어 넣으려고 기를 썼기 때문에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지만, 노승이 안내한 방에 들어서면서 부터 약간씩 이상한 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조그만 암자라고 하지만 손바닥 만한 불상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지금까지 불상을 단 하나도 보지 못했고, 노승 혼자밖에 없는 암자에 오랜기간 사용하여 심하게 닳은 식기와 수저가 여러개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까는 목탁소리를 듣고 이곳을 찾아왔지만, 그 노승은 목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생각도 몰려드는 잠때문에 금방 잊고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저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잠에서 깨어 쳐다보니 친구중 한명이었습니다. 
왜그러냐고 물으려는 저의 입을 막으며 그 친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고, 딴 애들 얼른 깨워... 얼른 여기서 나가야돼... 이유는 묻지말고 얼른..." 
갑자기 저런 태도를 보이는 친구가 이상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워낙 간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서 그 친구와 함께 친구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7명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자 그 친구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모두들 정신차려서 내 얘기 들어... 내가 문을 열고 뛰기 시작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저 나만 따라서 뛰어야돼... 알았지?" 
안그래도 막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뛰기만 하라고 하니 모두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너무 다급하고 간절히 말하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고 그 친구의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모두들 조용히 누워서 자는 척을 하면서 그림자의 움직임을 주시했습니다. 
그 그림자는 방문 앞에서 한참동안을 서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방문 뒷편 조그만 창문쪽에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그 창문쪽에서 머물러 있는데 방문쪽으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또하나의 그림자가 그 그림자 뒤편에서 나타났습니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친구를 빼고 나머지는 모두 강도쯤으로 생각하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만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림자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이 뒤쪽 창문에 나타날 무렵 그 친구가 문을 힘껏 박차고 뛰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나머지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동시에 그 친구를 따라 뛰기 시작했고, 그리고 산 아래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깜깜한 한밤중이라 주위 사물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터라 나뭇가지에 온 몸을 긁혀가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후에야 산 아래쪽으로 내려올 수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불빛이 보이는 곳 까지 달렸습니다. 
불빛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고 나니 그곳은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이래봐야 8가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을 입구에는 조그만 구멍가게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구멍가게 앞에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처음에 잠에서 깬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친구의 얘기는 이러했습니다. 
원래 민감했던 친구는 비록 몸을 가누지도 못할정도로 피곤하긴 했지만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한참을 뒤척이고 있는데, 방금전까지만 해도 온 세상을 다 얻은듯이 불러왔던 배가 순식간에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상하게 생각되어 방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아까는 분명히 회색 승복을 입고 있던 그 노승이 어느샌가 흰색 옷을 입고서 마당에서 어슬렁 거리고 있더랍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잠을 자려고 옷을 갈아입었다고 별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일이었는데, 그 노승의 머리를 보고서 그만 기절을 할 뻔 했다는 것입니다. 
아까는 파르라니 깍은 머리였는데, 지금은 그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이 절에 도착해서 있었던 일을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모든게 이상하더랍니다. 
절에 불상이 하나도 없던것도 그렇고, 노승 혼자 있는 절에 누군가가 쓰던 식기와 수저가 많이 있는 것도 그렇고, 향불 하나 피워있지 않은 것도 그렇고, 목탁소리를 듣고 찾아온 이 절에 목탁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친구는 그 노승이 분명 귀신일 것이라 생각하고 저를 깨웠던 것이고, 결국 그렇게 모두들 산 꼭대기에서 부터 산 아래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 내려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강도나 도둑들 쯤으로 생각했던 그림자들이 귀신이었다는 생각에 다시한번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고, 아무튼 그 근처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구멍가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때문에 잠에서 깬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외가에 전화를 했고, 잠시후 외사촌 형님이 트럭을 몰고와서 무사히 외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간밤에 있던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하고 외사촌 형님과 어제 그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어제 도와주었던 아주머니한테 그 승가사라는 절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놀랍게도 그 아주머니가 50년을 이 마을에서만 살았지만 근처에 승가사라는 절이 있다는 얘기는 한번도 못 들어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 승가사라는 절이 졸병이 얘기하는 정말 그 전설속에서나 나오는 그 승가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승가사가 전설속에서 흉흉한 절로 나오는 이유와 정확한 한자는 다음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제 머리가 나빠서...^^;)  
댓글 3  | 손님댓글 0 1마이피플트위터페이스북▼SNS 더 보기0스크랩▼2인쇄|신고    수희 12.07.30. 04:16글쓴이는 경험도 다양하시네...ㅋㅋ답글 | 신고     한겨울에는 12.08.02. 17:42그러게요 ㅎㅎㅎㅎㅎㅎㅎ답글 | 신고     물빛광대 12.08.19. 18:54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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