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에 처음 글 써보네요. 갑자기 비도 오고 장마철이 되니 제가 겪었던 일이 생각나 써볼게요. 실화라서 별로 무섭진 않을 수도 있지만 여름인 만큼 무게가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에 써보겠습니다.
경찰서 방순대에서 약 2년간의 의경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있던 경찰서는 동네 산 아래 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큰길에서 200미터 정도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교통의경중대와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입구를 봉하고 부적을 붙여놓았다는 장소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죠. 경찰서 입구 앞쪽에는 외부 주차장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높이가 5미터 정도 돼보이는 나무들과 두 개의 묘, 그리고 그 뒤로는 마당이 있는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의경 생활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던 2009년 여름의 시작 즈음이었죠. 그 날... 그 날은 운이 좋았어요. 저는 기율(소대장 아바타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이였기 때문에 소대장님이 당직이실 때면 외박 외출을 포기하고 소대를 지켜야했지만 범칙금 미납 수배자를 잡은 보상으로 특별히 외박을 허락 받아 낮 근무를 마친 뒤 기분 좋게 외박증을 챙겼죠. 경찰서 현관을 나서며 하늘을 보니 이미 해는 산을 넘어가고 있었고 어슴푸레한 달빛만이 경찰서 주변을 밝히고 있었어요. 같이 나가기로 한 소대 동기놈을 기다리며 경찰서 앞에 서있는데 평소 큰길로 나서야 들릴만한 자동차 소리가 경찰서 앞까지 들릴 만큼 너무 조용했죠. 경찰서 앞 위경소를 들여다보니 전경아저씨들도 그 날은 다들 어딜 갔는지 없더군요. 이런 상황은 2년여의 생활동안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따라 조용하네.’ 혼잣말을 내뱉으며 외부주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경찰서를 돌아보는 그 때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멀리서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귀 안에서 말하는 듯 그리고 웅얼대는 듯한 이상한 소리였죠. 근데 신기하게 외부주차장 너머에 있는 마을 쪽에서 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시간에 누구를 저렇게 부르지?’하는 생각에 시선을 돌려 자세히 쳐다보니 누군가 불꺼진 집 마당에 서서 제 쪽을 쳐다보고 있었죠. ‘뭐지?’ 하고 고개를 다시 경찰서로 돌리는 순간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다급해졌어요. 바쁘고 빠르게 부르는게 아니라 왜 나를 안보냐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말투 있잖아요. 딱 그 말투로 부르더군요. 그래서 다시 쳐다보니 손짓까지 하면서 부르고 있었어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인가? 나를 부르나?’ 라는 생각을 하며 점점 그쪽으로 다가갔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외부주차장과 마을사이는 거리가 좀 있었기 때문에 좀 안심하고 갔던 것 같아요. 근데 주차장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를 부르는 사람과 제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소리는 커지는데 사람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원근법이 무시되는 그런 현상이었죠. 근데 그 때는 무섭지 않았어요. 그냥 ‘헐, 뭐지? 착시인가? 신기하다.’ 이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부르던 소리도 부르던 사람도 동작을 갑자기 멈췄어요. 그리곤 처음에 가만히 보던 자세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뭐야 이거. 이거 뭐지?’하고 뒤 돌아서 경찰서 앞을 보는데 그 곳에 어떤 아줌마 한분이 교통중대로 가는 그 오르막길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근데 좀 이상했죠. 머리는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에 윗옷은 검정색 티, 바지는 호피 파자마를 입고 검정색 힐을 신고 있었습니다. 중요한건 얼굴이 잘 안보였어요. 옆모습이라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약간 얼굴 쪽만 짙은 그림자가 져 있는 것 같았죠.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마당을 보니 그 사람이 없어졌는데 그 옆 무덤쪽 나무들 사이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그 때부터 정신이 없었어요. 한 5초간 멍 했다가 불현 듯 ‘아 진짜 x됐다. 홀렸다. 여기 있으면 진짜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빨리 큰 길로 나가려고 발에 힘을 주는데 힘이 안 들어갑니다. 발에 힘이 안 들어가요.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가위 눌렸을 때처럼 몸이 굳어 버렸죠. 당시 제가 나이키 에어를 신고 있었는데 제 몸무게와 중력이 곱하기 된 것처럼 발에 모든 하중이 쏠린 느낌이었고 에어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점점 더 숨은 가빠지고 분명 눈은 앞을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인식이 안되는 그런 현상이 동시에오면서 미치는 줄 알았죠. 그 짧은 사이에 발 좀 움직여주라고 제 몸에게 ‘제발’을 몇 천 번 외쳤던 것 같아요. 수천년같은 몇초가 지난 후 마치 가위에서 깨어나듯 모든 몸의 끝 쪽부터 감각이 살아나 겨우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부터 다시 제 눈도 주변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겨우 몸에 점점 힘이 실어지는 그 때 마치 그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경찰서 앞에 서 있던 아줌마가 얼굴을 점점 제 쪽으로 돌리더라구요. 진짜 미칠 것 같았죠. ‘저 아줌마는 그냥 사람일거야. 민원인이겠지.’라고 혼자 최면을 걸 듯 생각을 되뇌이며 신경 안 쓴다는 듯 일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외부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그 장소를 빠져 나가려했어요. 갑자기 뛰면 제가 지금 상황을 다 알고 무서워한다는 걸 알려주게 되고 더 제대로 홀릴 것 같았으니까요. 아줌마의 시선을 무시한 채 외부주차장을 천천히 빠져나오면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죠. ‘정말 민원인이였나?’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주머니는 어느새 저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어요. 여전히 얼굴은 짙은 그림자가 낀 것처럼 안보였지만 몸은 절 보고 있었죠. 놀란 저는 바로 얼굴을 돌려 앞을 보면서 빠르게 걸어가는데 바로 뒤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립니다. 등 바로 뒤에서요. 발걸음을 멈추면 등 뒤에 부딪힐 것만 같은 그런 거리요. 저는 그 소리와 함께 진짜 태어나서 처음으로 숨도 안 쉬고 전력질주 했습니다. 큰 길까지 미친 듯이 달렸어요. 달리기를 태생적으로 못해 학교 체력장 때도 100미터, 오래달리기 모두 꼴찌였고 입대 후에도 훈련날만 되면 소대 분위기 잡치는 주범이였던 저였죠. 근데 그 때만큼은 정말 숨도 안 쉬고 엄청 빠르게 전력질주 했습니다. 큰길에 겨우 도착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차를 보고 나니 그때서야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바닥에 앉아 방금 제가 뛰어온 골목을 돌아봤습니다. 방금까지 들렸던 하이힐 소리와 공포는 온데 간데 없고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골목일 뿐이였죠. 그리고 시계를 보니 외박증을 들고 나온지 채 몇 분도 안됐더라구요. 저한테는 정말 제 인생을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긴 시간으로 느껴졌는데 말이죠. 그 날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약속도 깨고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씻고 잤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별 탈이 없이 부대도 복귀하고 남은 의경생활 재밌게 지냈어요. 근데 이게 시작이었던 걸 저는 몰랐죠.
별일 아니였는데 제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나 생각들, 그리고 상황묘사들을 제대로 전달 해드리고 싶다보니 말이 많이 길어졌네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로 이어지는 몇 가지 일화가 더 있는데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또 써보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