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목포 바닷가의 오막살이에 마누라와 자식 셋을 거느린 가난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벌이는 적었으나 마음이 청렴해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명성이 자자했다.
농토라고는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어서 그는 고기를 잡아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어부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네 번씩은 반드시 그물질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때에 바닷가에 나가 그물질을 하고 있는ㄴ데, 그물이 굉장히 무거운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말뚝을 박아 한쪽 그물끝을 잡아매고 다른 쪽 끄트머리를 열심히 잡아당겨 올린 다음 그물을 보니, 기대와는 달리 고기라고는 한 마리도 없고 죽은 노새만 한마리 걸려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부는 크게 실망해서 노새를 내던지고 다시 그물을 던졌다. 하지만 두 번째 그물을 끌어올렸을 때에도 어쩐 일인지 허탕인 것이었다. 그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늘이시여,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나쁜 짓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 수가 있습니까? 이번에는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고기가 많이 걸리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서 다시 그물을 내렸다. 그러나 세 번째 그물질에도 걸려 올라오는 것이라고는 깨진 항아리 조각과 다 끊어진 바구니, 흙만 담긴 항아리 같은 쓰레기만 딸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고 빌었다.
"저는 하루에 네 번만 그물질을 하기로 했는데, 벌써 세 번이나 그물질을 하였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부디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리고서 다시 그물을 던졌다. 한참 기다려 물이 고요해진 다음, 어부는 큰마음을 먹고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그물은 대단히 묵직했다. 뭔가 큰 게 걸렸나 보다 기대하고서 그는 말뚝에 한끝을 잡아매고 다른 끝을 열심히 잡아당겨 올렸다. 그런 다음 무엇이 걸렸나 하고 보니 놋쇠로 만든 병만 하나 들어있는 것이었다.
어부는 속상한 마음으로 병을 집어 들어 마개를 툭툭 두들겨 보았다. 그런데 마개에 알 수 없는 부적이 하나 붙어 있었다.
"이놈이라도 놋쇠장수에게 팔아서 벌이를 해야겠다."
병을 내려놓으려던 어부는 문득 안에 뭐가 들어있나 궁금해서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안은 묵직하기만 할 뿐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 속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이라도 해 볼까? 혹시 뭔가 귀한 것이라도 들어 있을지 모르니까."
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납으로 된 병마개를 열심히 빼냈다. 한참을 애를 쓰니 마침내 '펑' 소리가 나며 마개가 빠졌다. 그리고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한줄기 올라가더니 좍 퍼지는 것이었다.
어부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연기는 한데 뭉쳐서 부르르 흔들리더니 갑자기 커다랗게 솟구치며 큰 귀신의 모습으로 변했다. 귀신의 다리는 땅 위에 섰는데, 머리는 구름 속에 파묻힐 만큼 커다랗고, 손가락은 물레방아 바퀴살 같으며, 다리는 돛대 같았다. 입은 동굴처럼 커다랗고, 이는 돌처럼 뾰족뾰족하며, 눈은 커다란 등잔 같고, 머리는 사방으로 헝클어진 것이 꼭 가시덤불 같았다.
어부는 귀신을 보자마자 학질에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맥이 풀려서 도망을 칠 수조차 없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장군님.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할 터이니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어부가 고개를 조아리며 열심히 빌었으나 귀신은 커다랗게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거대한 종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놈아, 나는 장군이 아니라 대왕이다!"
"대왕님, 그저 살려만 주십시오."
"안 됐지만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 죽을지 그 방법을 정하는 것뿐이다."
어부는 놀라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열심히 빌었다.
"대왕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죽이겠다고 하시옵니까? 소인은 대왕님을 바다 속에서 꺼내 병마개를 열고 풀어 드린 일밖에 없는데 왜 소인을 죽이려고 하시는겁니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귀신은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천상을 어지럽힌 마왕이다. 옥황상제님께서 내 하는짓을 보고 태상노군을 청하여 나를 잡게 하셨다.
그때 태상노군은 왕노릇을 하는 나를 잡아 저 병에 집어넣고 납으로 막은 다음 부적으로 봉하여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바다속에 있으면서 '백 년 안에 이 병을바다에서 건져내 나를 풀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누구든 큰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 년이 지나가는 동안 아무도 나를 건져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백 년 안에 누가 나를 건져 주면 그 사람에게 땅에 있는 보화를 다 얻도록 해주겠다' 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 백 년이 지나도록 역시나 나를 건져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백 년 안에 나를 건져 주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원하는 세 가지를 다 들어주겠다'라고 결심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또 백년은 지나가는데 나는 이 병에서 나가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화가나서 이제는 '앞으로 누구든지 나를 건져 주면 그 사람을 죽이겠다' 라고 생각했다.
단 한 가지, 죽는 방법만은 그 사람이 선택하도록 해 주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천 년을 있었는데 드디어 네가 나를 건져 주었다. 그러니 나는 너를 죽여야겠다. 어떻게 죽고 싶은지 방법이나 말하거라!"
귀신의 이야기를 듣고 난 어부는 어쩌다 자신이 병을 열어서 이런 화를 자초했는지 원통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귀신에게 빌었다.
"대왕님, 그래도 소인이 대왕님을 건져 드렸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를 살려 주시면 옥황상제께서도 대왕님을 용서해 주실 것이옵니다. 저를 죽인다면 옥황상제님께서 대왕보다 더 기운이 센 분을 보내 대왕님을 죽이실 것이 분명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나는 너를 죽이고야 말 것이니 죽을 방법이나 택하여라."
"대왕님, 소인이 대왕님을 건져 드렸다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저는 인정 있는 행동을 했사온데 대왕님은 그것을 원수로 갚으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다 네가 나를 건져 준 탓이다. 나는 이미 마음을 결정했으니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없느니라."
그때 어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다. 어부는 포기한 것 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잇다가 귀신을 쳐다보았다.
"정 그러시다면 소인이 대왕님께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부탁이나 들어주십시오."
"그게 무엇이냐?"
"이렇게 크신 대왕님께서 어떻게 저 작은 병 속에 들어가 계실 수 있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소인이 보기에는 손가락 하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왕님은 이 안에 들어가 계셨던 것입니까?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사옵니다."
귀신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내가 이 병 속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냐?"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그럼 어디 잘 보아라."
귀신은 온몸을 뒤흔들어 연기로 변하더니, 병 속으로 주르르 빨리듯이 들어갔다.
어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황급히 병뚜껑을 막았다.
마개에는 태상노군(노자)의 부적이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달은 귀신은 안에서 온몸을 흔들며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나올 수가 없었다.
어부는 병을 들고서 호통을 쳤다.
"이놈아, 나는 너를 이 바닷물 속에 다시 집어넣고 여기에 집을 짓고 누구든지 여기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면 절대로 잡지 못하게 막을 것이다. 이 속에 나쁜 귀신을 가둔 병이 있는데, 그 병을 꺼내 귀신을 놓아 주면 은혜를 갚는 대신에 죽이려 든다고 말이다."
귀신은 뒤늦게 다급하게 어부에게 애걸했다.
"그러지 마시오. 나를 도로 꺼내 주면 온갖 금은보화를 다 얻게 해주겠소!"
"이놈아,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아까 전에 나를 놓아 주지 않으면 옥황상제께서 벌을 내리실 거라고 말했었지?
네가 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옥황상제께서 도로 벌을 내리신 것이다.
네 잘못이나 곰곰이 생각하며 병 속에 영원히 갇혀 있어라!"
어부는 병마개를 꼭 막은 후 바다로 던졌다. 그리고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온다.
- 바다기담 1. 옛날 옛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