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는 커다란 본섬이 있고 그 옆으로 동쪽 이백 미터 정도 지점에 까끼섬 혹은 관음도라고 하는 섬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다시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댓섬 혹은 죽도라고 하는 작은 섬이 있다.
이 댓섬에는 큰 배가 한 척쯤 들어갈 수 있는 굴이 몇개 있는데, 그중 북쪽에 있는 작은 굴을 자비굴이라고 한다.
이 굴이 자비굴이라고 이름 붙게 된 이유는 1930년대에 있었던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당시에도 울릉도 사람들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사람들은 평소처럼 고기잡이를 나섰다. 돛단배에 다 함께 타고 근방으로 고기잡이를 나왔는데, 한참 고기를 잡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태풍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파도가 집채처럼 높게 일어서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돛단배이니 배가 그리 큰 것도 아니라서 배는 결국 본섬까지 오지 못하고 댓섬을 방파제 삼아 간신히 파도를 피하며 버티고 있었다.
본섬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부의 가족들은 바닷가에 나가서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날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은 거의 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배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섬에 횃불을 켜고 했으나 돌아오는 배는 없었다.
그중에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낙이 한 사람 있었다. 밤이 깊도록 남편이 탄 배가 오지 않자 아내는 걱정에 잠겨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서 남편이 나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나 여기 있소."
"여기가 어딥니까?"
"죽도의 굴에 있어."
"다치지는 않았습니까?"
"아직은 괜찮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고 아내는 안도했다.
그 뒤로 폭풍우는 이틀이나 더 불어오다가 마침내 멈추었다. 돌아오지 못하던 배들이 한두 척 들어왔으나, 나머지는 배의 파편만이 파도에 밀려올 뿐이었다. 꿈을 꾸었던 아낙의 남편이 타고 있던 배 역시 파편만 파도에 밀려왔다.
"다 죽은 게로군."
"불쌍하기도 하지. 어쩌다 그렇게 갑자기 폭풍이 불어서."
동네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해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파편이라도 주워 장사를 지내 주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며칠 전에 꾼 꿈을 생각하고는 사람들을 말렸다.
"분명히 꿈에서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했어요."
"너무 생각을 해서 꿈을 꾼 게지. 그게 사실일 리가 없잖소?"
다들 위로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다독이는 것이었다. 여자는 사람들의 말을 믿고 파편만 주워 모았다.
그런데 그날 밤에도 잠을 자는데 또 남편이 나와서 다그치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 댓섬에 있다니까! 왜 빨리 와서 구해 주지 않고 그렇게 어물거리고 있는 거야? 빨리 여기로 오라고!"
하루 이틀은 남편 생각에 꿈을 꾸는 것이려니 했으나 사흘째에도 똑같은 꿈을 꾸자 여자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들었다. 최소한 댓섬을 뒤져 보기라도 해야 성이 찰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밝은 다음 도동에 있는 관청을 찾아가서 댓섬을 수색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낙이 하도 열심히 애원하니까 결국에는 소방대원과 청년회원 등을 모아 수색대를 편성하여 댓섬을 한 바퀴 돌게 했다.
이 자비굴은 그리 크지 않지만 굴의 맞은편 바위에 사람이 매달려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조금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정말로 여자의 남편이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나흘 만에 사람을 만난 어부는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사람 살려. 여기 사람이 있소. 사람 살려요!"
파도 소리가 높아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눈으로 빤히 보이니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밧줄을 가져오라, 삿대를 올려라, 이래라저래라 외치며 마치맨 꽁꽁 얼어붙어 바위에 매달려 있던 어부를 구해냈다.
사람들은 나흘 동안 이런 극한 환경에서 버텨낸 어부와 꿈을 믿고 사람들을 움직인 아내에 대해 감탄했다.
"하늘이 도운 게지."
"부부 금슬이 좋아서 하늘에서도 더 오래 살라고 꿈을 보내 주신 게야."
"놀라운 일일세."
마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한참이나 회자했고, 이 어부는 그 후로도 십년을 더 부인과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 바다기담 5.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