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인 T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다.
T 할아버지는 젊을 적, 동료와 함께 산에서 노가다를 뛰었단다.
신입일 무렵, 산에서 하룻밤 꼬박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웬 아름다운 여자가 수풀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민가는 없었기에 이상하다 싶었지만,
영 손에 익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이 여자는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저녁밥을 먹으러 오두막에 돌아와 이야기를 꺼내니,
작업반장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외팔 외다리 여자말이지? 절대 상대해주면 안 된다!]
수풀에서 들여다보는 얼굴만 봤을 뿐이었지만,
T 할아버지는 작업반장의 기세에 눌러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다음날도 여자는 수풀 속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상대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아름다운 얼굴에 가끔 시선을 가니 마침내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는 정말 외팔에 외다리였다.
그런 몸으로 깡충깡충 뛰어와 곁에 오더니, 고간을 만져대기 시작하더란다.
아직 젊은데다 동정이었던 T 할아버지는 기겁하며 냅다 밀쳤지만,
여자는 솜씨좋게 몸을 바로잡더니 능글능글 웃었다.
그리고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여자가 눈에 띌 때마다
아름다운 것만큼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그날 밤, A라는 남자가 오두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걱정했지만 다행히 밤늦게 길을 잃었었다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왔다.
사람들은 멍청한 놈이라며 웃으며 안도했지만,
작업반장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작업반장과 A가 이야기를 나누는 걸 T 할아버지는 봤다고 한다.
능글능글 웃고있는 A의 얼굴은 그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서로 좋은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그 한마디로, A가 그 여자와 잤다는 걸 T 할아버지도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후 A는 물론이고, A와 친하던 B 역시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너는 가지마라. 손발을 잃게 될거야.]
작업반장의 엄포는 믿기 힘든 소리였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그런 여자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일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가는 날,
A는 산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반장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등을 돌려 산으로 돌아가는 A를 막지는 않았다.
그 후 A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음 일터에는 A도, B도 나타나지 않았다.
전해들은 말에 따르면 A는 행방불명되었고,
B는 큰 사고가 나 손발을 잃었다고 하더란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