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 쌔빠지게 썼는데.. 계속 업로딩중이라 날렸네요

씨바둥 작성일 17.07.10 00:08:32
댓글 4조회 2,280추천 9
장황하게 설명했는데...짧게 얘기하겠습니다.

유일한작가의 어느날갑자기라는 책의 한 에피소드를 올립니다 유일한 작가님이 지금은 작가생활을 안하시고 일안삶을 사신다기에..저는 엄청니게 몰입해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던 책이라...짱공인들에게도 뵈드리고 싶네요

유일한님ㅣ과 가까운 분이시라던가 펜이시라 불편하신분께선 댓글이나 쪽지 주시면 빛삭 하겠습니다. 용량이 좀되서 나눠 올리겠습니다..



1953년 7월 23일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춰지자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수천 개의 군부대가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살던 민간인은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강제로.
- 철규와의 대화 중에서

가도가도 창 밖으로는 산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벌써 5시간이 지났
지만 아직 철규가 있는 부대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정도는 더 가야 했다. 녀석의 부대는
인제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도 한참 더 들
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기분인지 새벽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던 지영이 잠잠하
다 싶어 돌아보았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지영으로부터 철규에게 면회 가자는 제의를
받은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철규가 지영에게
는 틈틈이 편지도 보내고 한 모양이었다.
철규가 지영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가
급적 둘 사이에 끼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영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형, 철규는 전방에 배치되어 있어. 부모님
에게도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아서 면회 오는 사
람도 없는 모먕이야.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일
주일 영창 갔다왔다는 거야. 형은 철규가 무슨
일로 영창 갔다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방이라면 지영 혼자서 면회 가는 것도 무
리겠다 싶기도 하고, 입대한지 넉 달밖에 안
된 놈이 무슨 사고를 쳐서 영창까지 갔다왔는
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지영의 면회길에 다
라나선 것이었다.
버스로 한참을 달리자 군부대가 하나 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국방색 천지
였다. 점점 산악지대로 들어가니,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단풍과 낙엽이 벌써 아름답게 피어나
고 있었다.
버스에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면회객으로 보이는 두 가족하고, 이곳 주
민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아주머니 둘이 타
고 있을 뿐이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고 있으니 문득, 술자
리에서 식인(食人)을 했던 지난날들을 들려 주
며 울먹이던 철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단풍 참 예쁘죠? 오빠.”
언제 잠에서 깨어났는지 지영이 내 생각을
끊었다.
“오빠, 배고프지? 김밥 먹을래?”
“난 됐어. 철규 줘야지. 면회 오면서 아무것
도 .”
“됐어, 오빠!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해.”
지영이 금세 토라졌는지 샐쭉해서 창 밖으
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한 마디 더 할까 하다
가 그만두었다.
난 아침 여섯시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지
영을 만났을 때, 지영이 멘 배낭부터 살폈다.
배낭은 예상대로 불룩했고, 저 정도면 철규와
철규가 군대에서 사귄 동기생들과 함께 나눠 먹
을 음식은 충분하겠다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판단은 금세 깨어지고 말
았다. 지영은 출발하면서부터 김밥이니, 계란
이니 하는 음식을 권해서 나는 출출하던 터라
아무 의심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런데 한참 먹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지영에게 철규 줄 음식은 따로 있겠지, 하고
물어 보았다. 지영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군대에서 음식이 잘 나온다고 해서 준비를 안
해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배낭에 든 음식
은 오고가며 먹으려고 준비해 온 거라고.
지영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여자라지만 군대에서 뺑뺑이
돌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도 모른다 싶
었다.
나는‘동작 그만!’을 외친 뒤 먹던 음식을 다
시 챙겨 배낭에 넣게 했다. 우리야 배 고프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면 되지만 철
규는 그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지영은 나의 핀잔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그
래도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배낭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근데 일한 오빠, 이 근처에 부대가 왜 그렇
게 많아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군인이니
까 이상해요.”
“전방이니까 그렇지, 뭐.”
군대 얘기가 나오니까 나의 특이했던 군대
생활이 생각났다. 혼자 피식거리니까 지영이
나의 군대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오빠는 어디 있었어요? 아, 맞다. 오빠 방
위죠?”
“그래 나, 유디티다.”
“오빠가 무슨 유디티야, 방위지?”
“마, 유디티(UDT)가 우리 동네 특공대의 약
자 아니냐.”
“흥! 도시락 폭탄을 들고 다니는 특공대?”
“야, 너 방위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마. 방위
도 힘든 데가 있어. 훈련소에서 자살하는 사람
도 있고.”
“진짜 자살해요? 거짓말 같은데. 설마 그 까
짓 한 달을 못 참아서 훈련 도중에 자살을 할
까? 그것도 남자가.”
“너 군대를 우습게 아는 구나. 하긴 방위가
정규군에 비하면 편하긴 하지.”
“오빠, 그런데 정말로 군대에서 죽기도 해
요?”
“그럼! 남들 다 갔다온다고 군대를 우습게
보면 안 돼. 사실 군대란 곳이 그렇게 녹녹한
데가 아냐.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지. 통계에 의하면 80년도부터 95년 6월까
지 군대에서 사망한 젊은이의 수가 8,950여
명이래. 이 속에는 물론 자살한 사람의 수도
포함되어 있어. 실로 어마어마한 수야. 거의
일개 사단 병력이지.”
“군대가 정말 무섭긴 무서운 데구나.”
“그럼! 지금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에는 아주 무시무시했지. 사실 우리가 평화시
니까 심각하게 못 느끼는 거지만 군대 가는 것
은 목숨 걸고 가는 것과 같아. 그럴 리는 없겠
지만 만일 전쟁이라도 나 봐? 그러니 앞으로
군대가는 사람 있으면 잘해 줘. 특히 현역 입
대하는 애들.”
“알았어, 이제부터 방위 들어가는 애들 술
사 줄 돈 모았다가 현역 가는 애들 사 줘야지.”
“야, 내가 방위가 편하다고 한 건 현역병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너, 방위
훈련소에서도 실재로 자살한 사람이 있어, 알
어? 물론 그 사람은 훈련 때문에 자살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왜 죽었는데? 귀신이 홀렸나?”
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영은
무서움을 많이 타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좋
아했다.
“그런 건 아니고.”
나는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지
영에게 들려 주었다.
나는 5X사단에서 훈련받았지. 군대 들어가
기 전에 그 사단에서 자살한 선배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었어. 나보다는 고등학교 3
년 선배인데 훈련소에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
그래서 난 애인이 변심해서 자살을 했거니,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지. 하여튼 훈련소 생활
은 꽤 힘들더라고.
내가 훈련소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은
이주쯤 지나서였어. 훈련소에 입소할 때 들고
간 가방이라든가 옷가지들은 빈 내무반을 하
나 정해서 그곳에 보관하게 되어 있거든.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제일 구석에 있는 내
무반을 비워 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있
는 내무반을 비워 놓고 짐을 보관한 거야. 난
그래서 짐을 분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거려
니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불침번을 서는 아이들이 그 빈 내무반에서
사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야. 조교나
교관이 알면 군기 빠졌다고 뭐라고 할까봐 훈
련병끼리만 속닥속닥거린 거지.
난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그냥 무시해 버렸
어. 그러다 내가 불침번을 서게 되었는데 정말
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슬피 우는 소
린데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건 아니더라
고. 혼자서 그 소리를 들었다면 대단히 무서웠
을 텐데 워낙 많은 아이들이 있다 보니까 그렇
게 무섭지는 않더라.
내가 그 울음소리의 정체에 대해 들은 것은
퇴소하기 바로 전날이었어. 내무반장이 우리
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
자살 사건이 터진 것은 내무반장이 신병이
었던 이 년 전이었대. 훈련병들이 새로 들어왔
는데 내무반장은 그 당시 서열이 가장 낮아 훈
련병 지휘는 못 하고 고참들이 하는 것만 구경
하고 있었대.
사건은 사격장에서 일어났대. 그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사격장을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
다는 거야. 조교들은 사격장에서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인식시킨 뒤 실탄 아홉 발씩을 훈
련병에게 먼저 분배해 주었대. 영점 사격용으
로.
영점사격이란 총의 조준을 정확히 하기 위
해서 하는 예비사격을 말하지. 그런데 2중대 3
내무반에 김석주라는 훈련병이 있었대.
아주 평범한 훈련병이어서 눈에 띄지 않던
사람이래. 그 사람이 끼어 있는 조가 사격을
하게 되어서 실탄을 나누어 주는데 공교롭게
우리 내무반장이 그 사람에게 실탄을 나누어
주었다는 거야.
내무반장 말로는 그 김석주라는 훈련병 눈
빛이 싸늘하게 빛나는 것을 느꼈는데, 순간적
으로 추위 탓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대. 그런
데 일은 벌어진 거야.
김석주란 훈련병이 사격장에 올라가 실탄을
조준하자마자 총을 자기 턱에 갔다 대고 쏴 버
린 거야. ‘펑‘하는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철
모와 피가 십여 미터 높이로 튀어올랐대.
김석주는 물론 현장에서 즉사했지. 조교들
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벌어진 거야. 모두들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담력이 센 한 조교가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는
시체에 다가가더라는 거야.
그 조교는 침착하게 흘러나오는 뇌수를 형
체도 알아볼 수 없는 머리에 집어넣더라는 거
야. 그리곤 응급차에 실어 보냈대. 그 당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에 제대로 움직
일 수도 없었대.
특히 김석주 옆 사선에 누워 있다가 피와 뇌
수를 흠뻑 뒤집어썼던 한 훈련병은 한동안 정
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거야. 생각해봐.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가 갑자기 날아가고 사방이
피바다로 뒤바뀐 상황을.
조교들은 자살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 죽은
김석주의 소지품을 조사해 보았대. 수첩이 발
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딴 얘기는 일절없이, 날
짜마다‘오늘부터 D-DAY 며칠’이런 식의 글
이 적혀 있더래.
그가 기다렸던 디데이는 바로 사격 연습을
하는 날이었던 거야. 그가 자살을 한 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대. ‘드디어 내일이다. 실수
없기를……’
그가 치밀하게 자살을 준비했다는 얘기지.
자살 이유를 조사해 보았더니 부모가 이혼을
하는 등 입대 전부터 괴로운 일이 많았다는 거
야. 그 사람이 바로 내가 군대가기 전에 소문으
로 들었던 자살했다는 고등학교 선배더라고.
여하튼 군대에서는 누가 죽는 불상사가 생
기면 그가 자던 침상하고 그의 물건이 있던 관
물대를 태워 버리는 관습이 있거든. 그래서 김
석주가 쓰던 침상하고 관물대도 역시 태워졌어.
그런데 그뒤로 훈련소에서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대. 내무반마다 온도계가 있
는데, 이유 없이 김석주가 있었던 내무반이 다
른 내무반보다 3, 4도 낮다는 거야. 실제로 그
내무반에 들어가면 싸늘한 기분이 든대.
그러던 어느날 밤에 무슨 전기 공사로 훈련
소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된 적이 있었대. 그런
데 그걸 모르고 있던 한 병사가 자판기에서 커
피를 빼 먹었대. 분명히 정전이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실제로 김석주의 유령
을 보았다는 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야. 제
일 처음 본 사람은 그 김석주를 담당했던 내무
반장이었대.
어느 날 밤 그 사람하고 우리 내무반장이 훈
련소 건물 끝에서 반대편 사무실까지 라면 상
자를 날랐대. 훈련병들이 다 퇴소한 빈 건물이
라, 당직 사무실만 빼 놓고 나머지 불은 모조
리 꺼 놓은 상태였대.
둘이서 라면상지를 지고 복도를 걷고 있었
대. 우리 내무반장이 앞장 서서 걷고 있는데,
그 문제의 내무반을 지날 때 갑자기 뒤에서
‘악!’하는 소리와 함께 따라오던 그 내무반장
이 푹 고꾸라지더라는 거야. 깜짝 놀라 다가가
봤더니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는데 기절했더래.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와 간신히
그 사람을 정신 차리게 했대. 그리고 나서 무
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겁에 질린 채로 그가
이렇게 말하더래.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2중대 3내무반
에서‘쓰윽’하고 죽은 김석주가 내 앞에 나타
나더니 경례를 했어요. 정말이에요! 난 똑똑히
봤어요. 그 머리에서 흐르던 피까지.”
그때부터 불안감과 공포가 훈련소에서 소리
없이 퍼지기 시작했대. 병사들은 밤이 되면,
그 앞으로 죽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다는 거
야.
우리 내무반장도 직접 귀신을 목격했대. 자
기 전에 세수하기 위해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
고 있는데 거울을 무심코 보니 복도에 누가 서
있는 것이 언뜻 보이더래. 그래서 돌아서서 자
세히 보니까 그 김석주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
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는 거야.
너무 놀라 뒤돌아보니 그 귀신은 천천히 저
쪽으로 걸어가더래. 뭐에 홀린 것처럼 따라갔는
데, 한참 걷다 보니 사라지고 없더라는 거야.
날이 지날수록 귀신을 목격하는 사병이 늘
어만 가자 장교들은 골치를 썩었대. 사기는 저
하될 대로 저하되어 있지만 상부에 귀신이 있
다고 보고할 수는 없는 처지고 말야.
별 다른 대책이 없어 쉬쉬하고 있는데 사단
장이 직접 이상한 현상을 목겼했대. 뭐냐 하면
밤 3시쯤 사단장이 부관을 깨워서 기습적으로
순찰을 해서 근무 상태를 파악해 보겠다고 나
섰대.
사단장이 부관과 함께 훈련소 앞을 지나가
고 있는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더래는 거야.
처음에는 사병들이 밤에 몰래 TV를 겨 놓고
비디오를 보는 줄 알고 노발대발했대.
그래서 부관 보고 어느 내무반인가 알아보
고 오랬다는 거야. 그래서 부관이 가까이 가
보니 그 내문반은 폐쇄된 지 두 달도 넘은 김
석주가 있던 내무반이었대. 그때는 훈련병들
이 없던 시기라 인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건물이었던 거야.
그런데 파란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았
으니 사단장도 시껍하지 않았겠어. 결국 사단
장은 부관의 보고를 통해서 김석주가 자살했
다는 것을 알았지.
결국 부대 차원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했대.
굿을 한 무당의 말로는 원혼은 쉽게 죽은 자리
를 못 떠나고 맴도는데, 석 달 정도 지나면 괜
찮을 거라는 거야.
그런데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무당의 말처
럼 석 달이 지나니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더라
는 거야. 부대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고.하
지만 그 내무반을 다시 쓰기에는 너무 꺼림칙
해 짐을 놓는 창고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죽은 영혼이 떠났다가 다시 들르는 건지, 그
뒤로도 김석주의 죽음을 모르는 훈련병들이
가끔씩 그 내무반에서 들려 오는 사람의 울음
소리를 듣곤 한다는 거야. 나도 듣긴 들었지만
날이 훤히 밝으니까 내가 환청을 일으킨 게 아
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무섭지? 내무반장은‘김석주 사건’을 처음
에는 집단 착각 현상이라고 생각했대.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김석주의 죽음이 다른 사
람들의 눈에 헛것을 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다가 무당의 굿으로 공포에 질린 사
람들이 심리적 위안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다
는 거야. 하지만 김석주의 죽음을 전혀 모르는
훈련병들이 울음소리를 듣는 것을 보고는 생
각을 바꿨대. 혼령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실
재할지도 모르다고.”
지영이는 내가 이야기하는 도중 무서운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얘기가 끝나자 재미
있게 듣고는 왜 그런 무서운 얘기를 했냐고 도
리어 불평을 해 댔다.
드디어 철규가 있는 부대 앞 마을에 버스가
도착했다. 그곳이 마침 버스 종점이기도 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모두 다 내렸다. 우
리도 사람들에 섞여 마을에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 받은 마을의 첫인상은 황
량함이었다. 부대가 진주하고 있는 다른 부대
들이 그렇듯이 큰 차이 없었다.
초라한 입간판을 달고 있는 여관과 다방, 허
름한 음식점, 그리고 면회객과 외박 군인들을
상대하는 싸구려 술집들.
거리가 이렇게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
쩌면 자기의 목숨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만 하는 병사들의 좌절감이 거리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마을에서 맡아야만 하는 절망의
내음이 너무도 싫었다. 면회소로 걸어가다 보
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라 해 봤자 군인 가족들이 대
부분일 테지만, 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린 이
방인들을 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강한 경계와 공포의 눈길로 우리를 살펴보
는 것이었다. 놀고 있던 아이들을엄마들은 얼
른 집으로 들이고, 우리들을 경계의 눈으로 쳐
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군인들 역시 완전 무
장을 하고 있었는데 철모 아래로 긴장의 빛이
흐르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며칠 전에 전쟁이라도 치렀던 마을 같
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던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면회소에 들어간 우리는 본부중대 박철규
이병의 면회를 신청했다. 특별한 훈련이 없는
한 주말은 언제든지 면회가 가능한 게 대한민
국 군대이기에 철규를 만나게 될 것 믿어 의심
하지 않았다.
같이 온 면회객들도 차례대로 면회를 신청
했다. 면회 신청을 받은 병사는 그 즉석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뒤로 들어가서 걸었다. 여
러 번 면회를 다녔지만 이런 식으로 면회를 받
는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병사들을 유심
히 살펴 보았다. 병사들이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긴장
감으로 예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기소에
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뒤로 돌아갔던 병
사가 되돌아왔다.
“이철규 이병만 면회가 가능합니다. 권오은
상병과 김영경 일병을 면회 오신 분들은 돌아
가 주시기 바랍니다.”
초병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린 부산에서 왔는데 와 면회가 안 된다는
겨?”
“일요일인데 왜 면회가 안 되죠? 혹시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지금은 특수 훈련을 받고 있기
때문에 면회가 안 됩니다.”
“안 되면 다 안 되는 거지, 누구는 되고 누구
는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훈련에 참가한 사람은 면회가 안 되고 훈련
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면회가 가능한 거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는 행정병이라카던데 뭔 훈련에 참
석했단 말인겨? 그라지 마시고 잠깜만 불러
주이소. 얼굴만 보고 가겠십니더.”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가족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아무리 떼를 써도 면회
는 절대로 안 되니 포기하고 돌아가라며 아예
부대 밖으로 쫓아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철규를 볼 수 있다니 하여튼 다행이었다. 한참
앉아 있으니 군복을 입은 철규가 들어왔다.
철규는 우리를 향해 절도 있게 거수 경례를 붙
였다. 사개 월 전보다 훨씬 듬직하게 보였다.
그는 면회소 사병에게 신고를 하고 나서 우
리는 밖으로 데리고 나섰다. 초소를 나서는데
철규를 바라보는 사병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
다. 철규를 동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지옥으
로 들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철규는 지영의 면회에 매우 흥분해 있었다.
지영은 철규의 그런 모습에 부담을 느끼는 눈
치였다.
우리는 허름한 호프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
영이 배낭을 열고 김밥과 찐 계란, 사과, 보온
병에 타 온 커피 등을 꺼냈다.
나는 치킨과 맥주를 시켰다. 처음 한동안은
초년병은 다 그렇듯이 철규가 군대 생활을 장
황하게 늘어놓았다.
철규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다 보니 철규
가 무척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처음에는 지영이 면회 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마을에 와서 받은 첫인상이 떠올랐다. 나는
철규가 뭔가를 감추고 위해서 군대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일단 철규의 말을 가로막았다.
“철규야, 혹시 부대에 무슨 일 있는 것 아
니니?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고, 면회도 잘 안
되는 걸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말야.”
“이상하긴요.낯선 곳에 와서 형이 그렇게 생
각하는 거예요.”
“그런 건가? 웬지 말이지 아까 초병이 널 보
던 눈빛이 자꾸 떠올라.”
“정 상병님이요? 정 상병님이 왜요?”
“글쎄, 뭐랄까? 아무튼 분명 뭔가 숨기고 있
는 눈치였어. 철규야, 너 우릴 속이려 들지 말
고 솔직하게 얘기해 봐. 뭔가 있지?”
철규는 내 눈동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
개를 술잔으로 떨구었다. 글라스를 힘주어 잡
더니 단숨에 입안에 털어넣었다.
“이거 또 이상한 얘기를 해야겠네.”
“뭔데 그래? 다 이야기해 봐.”
지영이 철규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형, 그친구분연락돼요? 심령학하신다는분.”
“윤석이? 응, 가끔씩 연락이 와. 그런데
왜?”
“나중에 제 얘기 점 꼭 전해 주세요. 사실 요
즘 우리 부대에 기괴한 일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 영창까지 갔다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남들 못하는 면회도 할 수 있게 된 거
고요.”
지영은 철규의 억양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
기를 느꼈는지 나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나
역시 철규가 윤석의 이야기를 들먹거리는 걸
보니 이상한 얘기를 하려나 보다고 짐작했다.
“제가 이 부대에 배치받은 지는 이 개월밖에
안 됐어요. 새까면 졸병이죠.”
철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섬칫한 이
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제가 이 부대에 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 시작되었어요. 지금도 신병이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어디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바로 윗고참을 따라다니며 하
나씩 배워 나갔지요. 우리 부대는 비무장지대
와 접해 있는 최전방부대라 군기가 꽤 세요. 저
도 한동안은 적응을못해꽤힘들어했어요.
밤에는 불침번이다 동초다 5분대기조다 해
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던
한 달 전이었요.
저는 그날 밤 오분대기조였어요. 지영인 오
분대기조가 뭔지 모르지? 오분대기조란 유사
시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밤에도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 조를 말해.
말 그대로 오 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말야.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쯤 되었을 거예요.
윗 고참들은 총을 껴안고 요령 있게 졸고 있었
고, 저는 잠을 쫓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따다다다’하는 총소리가 고요한 부대를 뒤흔
들어 놨어요. 저흰 정말 전쟁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죠.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더군요. 뒤이어 온
부대에 긴급 사이렌이 울렸고, 우리는 즉각 출
동을 했어요. 총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총소리가 난 곳은 바로 부대 뒤 탄약고였어
요. 대부분의 부대가 그렇듯이 우리 부대도 산
을 등지고 위치한 부대예요. 탄약고는 바로 그
뒷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출동했을 때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그 주변에 쫘악 깔려 있었어요. 전부 무장은
하고 있었지만 적이 보이지 않으니 숨어 있을
도리밖에 없었어요.
상관들은 상관들끼리 졸따구는 졸따구끼리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연대장이 도착했어
요. 연대장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참모장이
지휘를 했어요. 우린 명령에 따라서 곧바로 부
대를 이동했어요.
십 분도 안 돼서 총소리가 들려 온 탄약고를
여러 겹으로 물 샐 틈 없이 에워쌌죠. 저는 그
제서야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말로만 듣
던 무장공비가 침투했구나, 하고 생각을 바꿔
먹었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서치라이
트가 탄약고 주변을 대낮처럼 환히 비추기 시
작했어요. 상황을 보고 하라고 무전을 연이어
쳤지만 총소리가 난 탄약고 앞 초소에서는 아
무런 응답이 없었어요.
적이 난사한 총에 맞아 초소의 병사들은 사
망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고 갔죠. 잠시 후에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가진 대대장이 핸드 마
이크로‘너희는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
하라!’하고 외치기 시작했죠. 여러 번에 걸쳐
외쳤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거
였어요.
숨 막히는 긴장이 흘렀죠. 소대장이 잠깐 대
열에서 빠져 나갔다 오더니 전투 준비를 하라
는 거였어요. 저희 소대는 오분 대기조였기 때
문에 현장에 일찍 도착해서 맨 앞줄에 매복하
고 있었죠. 그 덕분에 우리 소대가 선봉에 서
게 되었어요.
서치라이트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초
소를 향해 우리는 포복을 해서 다가갔죠. 식스
틴의 잠금쇠를 끄르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서 있어서 의식이
아주 명료했죠. 군복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
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철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우리는
초소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가 공격 명령이 떨
어지기를 기다렸어요. 초소는 기분 나쁠 정도
로 잠잠했어요.
원래는 수루탄을 먼저 투척한 뒤에 초소 안
의 움직임을 살피고 초소로 진입을 해야 하는
건데, 우리 병사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기 때
문에 선제 공격 없이 곧바로 진입을 했어요.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미친개의 외침만
이 요란한 가운데 초소로 다가갔죠. 언제 적의
총탄이 날아올 줄 모르는 상황이었죠. 입안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발소리를 죽이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침투해 들어갔어요. 결국 소리없
이 다가가서 초소 벽에다 등을 기댔어요.
소대장이 손짓을 했죠. 저는 죽기 아니면 까
무리치기로 초소 안으로 한순간에 뛰어들었
죠. 그런데 놀랍게도 초소가 텅 비어 있는 거
예요. 초소 안을 둘러본 소대장이 즉시 무전기
로 상황 보고를 했어요.
이어서 주변 수색 명령이 떨어졌어요. 이번
에는 제법 많은 소대가 참여했죠. 헤드라이트
가 숲 속을 핥아 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탄약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분대에게는 탄약고 철책선을 따라서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사방 경
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조심해서 걸음을 옮
겼죠. 부대 고참들에게서 가끔 북한에서 특수
부대 애들이 넘어와 우리쪽 군인들을 죽이고
다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
든요. 그 애들은 가는 철사줄로 쥐도 새도 모
르게 목을 따 버린다는 하더군요.
저는 앞에서 플래쉬를 들고 갔는데 모퉁이
가 나왔어요. 돌아서기가 두려운 거였어요. 저
편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조심해서 돌아
가 보니 숲 속에 사람 같은 것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었어요. 두 명이었어요.
분대장이 즉각 중지 신호를 보냈어요. 엎드
려서 살펴 보았지만 전혀 움직이질 않는 거예
요. 군복을 보니 우리 쪽 사람 같더라고요. 그
래서 용기를 내서 다시 조심조심 다가갔어요.
가까이 가 보니 그들은 탄약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었어요. 완전히 나자빠져 있는 거예
요. 그중 한 명이 총을 꽉 쥐고 있고, 탄피가
널려 있는 걸로 봐서 그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우리는 공비에게 당해 죽은 줄 알고, 시체를
살펴 봤어요. 그런데 아무런 상처도 발견할 수
없었죠. 심장에 귀를 대 보니 살아 있더라고
요. 그들은 단지 기절해 있었던 거죠.
수통을 열고 물을 끼얹었더니 정신을 차렸
리더라고요. 그들은 정신을 차리자 마자‘그,
그 여자 그 여자 어, 어디 있어요?’라고 더듬
거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분대장이‘군부대에
뭔 여자가 있겠느냐’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죠.
“적이 침투했나?”
그러자 그들은 즉시 고개를 저었어요.
“그럼 총은 누가 쏘았나?”
“내, 내가.”
“무엇을 보고 쏘았나?”
“여, 여자.”
“제기랄! 헛것을 본 모양이구만.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걸 보니.”
분대장은 즉시 상황 보고를 했고 탄약고 주
변에 깔려 있던 부대원들은 철수를 했죠.
우리 분대는 그 두 사람을 데리고 탄약고에
서 내려왔죠. 두 사실을 조사실에다 데려다 준
뒤에 내무반으로 돌아오니 여명이 터오르더군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어
요. 그런데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
았던가 봐요.
누군가에 입에 의해서인지 그들이 조사받은
내용이 군부대에 쫘악 퍼졌어요. 대충 이런 내
용이었어요.
그들은 평상시대로 보초 근무를 서고 있었
대요. 고참은 초소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자고
있었고, 쫄따구는 열심히 장교가 오나 망을 보
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졸고 있던 고참이 갑자기 오줌을 누
고 오겠다며, 탄약고 뒤로 돌아갔대요. 졸따구
는 금방 올 줄 알고 혼자서 초소를 지키고 있
었죠. 순찰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연신 사방
을 살피면서.
십 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소변을 보러
간 고참은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고
참이‘큰 것’을 보거나 자신을 놀려 주려고 그
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죠. 기다리면 곧 오겠지,
하고 열심히 근무를 섰지만 고참은 삼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였어요.
이상한 예감이 들었죠. 그래서 총을 들고서
천천히 탄약고 뒤로 돌아갔어요.나무 밑에서
고참이 누워 있는 게 보였죠. 졸병은 고참이
너무 졸려서 그대로 나무 밑에서 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깨우려고 다가갔대요.
가까이 가 보니 바지 자락을 열어 놓은 채로
고참이 누워 있는 거였어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대요. 생각해 봐요. 아무도 없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잘 아는 사람 하나가 바지자락도
추스리지 못한 채 나자빠져 있다고.
졸병은 총의 안전 장치를 풀르고 천천히 누
워있는 고참에게 다가갔대요. 가까이서 보니
아무런 외상도 없어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
해 몸을 숙였대요. 그 순간, 눈에 파묻인 것처
럼 주변이 새하얘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고개를 들었대요. 그런데 놀랍
게도 눈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더라는 거예요. 눈에서는 파
란 광채가 내뿜으면서.
귀신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전신으로
느꼈대요. 그는 무의식 중에 뒷걸을질을 쳤대
요. 그런데 귀신이 자기를 향해 다가오더라는
거예요. 그는 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졸병의 주장에 의하면 그가 본 하얀
것은 귀신의 몸 안이었다는 거예요. 아주 사방
이 눈이 온 것처럼 환하더래요.
고참은 뭐라고 증언했냐구요? 졸병의 증언
과 비슷했대요. 소변을 보러 탄약고 뒤로 돌아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대요. 그
는 몸을 한 차례 바르르 떤 뒤에 소변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을 뒤에서 뚫어지기 쳐다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래요.
그래서 재빨리 고개를 돌렸더니 졸병이 묘
사한 그 여자가 서 있더라는 거예요. 자기를
빤히 쳐다보면서.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
더래요. 그런데 갑자기 소리나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자기에게 쓰윽하고 다가왔대요.
파란 눈이 점점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
는 것을 보고 그대로 기절했다는 거예요. 둘의
증언은 거기까지였대요.
두 사람의 진술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군대
에서 그런 이야기가 먹히겠어요. 위에서는 자
식들이 노루가 눈앞에서 얼씬거리니까 총을
쐈다가 아무것도 안 맞자 둘이서 입을 맞추고
기절한 척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죠.
우리 부대에는 근무 도중에 총을 쏴도 되지
만 노루나 토끼, 하물며 참새 한 마리라도 쓰
러져 있으면 괜찮다는 규정이 있거든요. 물론
총을 쏘고 나서는 곧바로 보고를 해야지요.
결국 두 사람은 영창 갔죠. 고참은 근무 불
성실로 열흘, 총을 발포한 신참은 무단 발포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부대원들은 거짓말을 엉성하게 해서 영창에
간 거라며 둘 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
고 손가락질 했죠.
그 일은 그 걸로 끝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
었어요. 아무도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도 정말로 귀신이 나타나면 어떡하나 하고 우
려했던 모양이에요. 그 일 이후로 아무도 그
초소에서 보초를 서려고 하질 않는 거예요.
고참들은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를 서지 않
기 위해 행정병에게 압력을 넣곤 했죠. 말년에
비명 횡사할 일 있느냐면서.
그러다 보니 탄약고 보초는 짬밥이 낮은 신
병들에게 돌아갔아요. 결국 저에게도 보초 순
서가 돌아왔죠.
그날 저와 같이 초소에 올라간 고참은, 사실
고참이라고 불리기엔 그 사람도 신병이었지
만, 막 일병을 단 신 일병이었죠. 그러니까 그
사람도 고참으로서 그런 초소에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신 일병은 귀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기
가 졸병 한 명을 데리고, 초소 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우리가 맡은 시
간은 시간은 새벽 2시부터 4시까지로 제일 사
람들이 싫어하는 시간이었어요.
지난번 사건으로 장교들의 순찰도 강화되었
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때까지는 신참이라는
이유로 보초 근무도 제외되어 있다가 그 날 처
음으로 2인 1조가 되어 야간 보초 근무를 서게
된 거였죠.
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주위 경계를 하고 있
는데, 모처럼 사수가 된 신 일병은 자기도 고
참 행세를 한다면서 초소 뒤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오겠다는 거예요.
나는 가지 말라고 말렸죠. 남들은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아예 가지도 않으려는데, 왜 일부
러 거기까지 가서 담배를 피우려 하느냐고.
신 일병은 자기는 보초를 설 때 고참들이 자
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담배를 피는 것이 너
무 부러웠다면서, 고참이 되면 꼭 자기도 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는 거예요.
원래 귀신을 믿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귀신 같은 건 안 믿으
니 눈에 보일 리도 없다면서, 아무 걱정 말고
근무나 잘 서라는 거였어요. 혹시 순찰 나오면
그쪽으로 돌을 던져 달라고 당부하면서.
저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 사람이 너무나 자
신만만해 하길래 그래도 두었죠. 그는 한껏 거드
름을 피우면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갔어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애써 자위하면
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담배 피우러 간 신 일
병은 십 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사방은 칠흙같
이 어두운데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가는 소
리만 유난히 크게 들려 왔죠.
그런데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총을 겨눈 다음, 배운 대로 암
구호롤 물어보았어요. 나는 너무도 긴장해 있
어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그냥 주저 없이 총
으로 갈길 작정이었죠. 그런데 귀에 익은 목소
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우리 내무반장이었어
요. 그날 일직 사령이었대요.
일직 사령이 뭐냐고? 응 일직 사령이란 군대
에서 밤에 상황을 살피는 당직을 말하지. 원래
는 하사나 상사가 맡아야 하는데, 병장이나 군
대 경험이 많은 고참병들이 하는 것이 묵시적
관례로 되어 있어. 일직 사령 위로 장교들이
맡는 일직 사관이 있지.
내무반장은 그날 장교들의 명령으로 밤에
초소 순시를 나왔다는 거예요. 신 일병은 어디
갔느냐고 묻길래 저쪽으로 소변 보러 갔다고
했더니 무슨 말인지 금세 눈치채고는 화를 버
럭 내는 거였어요.
“훈련소에서 먹은 짬밥도 아직 소화 못 시킨
놈이 감히 어디서.”
내무반장이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면서 뒤로
돌아갔어요. 저는 순간, 돌을 던져 신호를 해
주라는 신 일병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엎지
러진 물이었죠.
신 일병이 엄청나게 깨지겠구나 하고 상상
하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나
지 않는 거였어요. 신 일병이 내무반장에게 박
살나고 내무반장이 가고 난 뒤에 신 일병에게
내가 박살나게끔 되어 있는 건데, 이상하게 잠
잠하대요.
내무반장이 달려간 지 10분이 넘었지만 아
무런 기척도 없는 거였어요. 주위가 잠잠하니
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저는 빨리 교대조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았지만, 아직 40분
이나 남아 있더라고요.
그때 내무반장이 사라진 쪽과 반대편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나는 떨
리는 목소리로 암구호를 물어보았어요. 이번
에는 그날 일직 사관이었던 1중대장이었어요.
일직 사령이 왔었느냐고 묻길래 저는 그냥
저 뒤에 있다고 말했어요. 중대장은 얼굴이 시
뻘게져서, 빨리 순찰을 돌고서 수시로 상황 보
고를 하라고 했더니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냐
면서, 돌아갔어요.
중대장도 뒤로 사라지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내무반장이 중대장에게 박살나면
다시 신 일병에게 화풀이를 하겠고, 다시 그
화는 나에게 올 게 뻔했기 때문이죠.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야겠구나, 하고 마음
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또 깜
깜 무소식인 거예요.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으니 어떡해
요. 할 수 없이 마음을 다잡고, 저도 뒤로 돌아
가 보았어요. 플래쉬를 들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았어요. 전신에서 정말 땀방울이 비오듯이
흐르더군요.
누가 뒤에서 불쑥 달려들 것 같은 그런 으스
스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빛줄기
가 보이는 거예요. 플래쉬로 비춰 보니 플래쉬
가 땅에 떨어져 있는 거였어요.
플래쉬로 다시 사방을 비쳐 보았죠. 그런데
느티나무 밑에 세 사람이 벌러덩 드러누워있
는 거였어요. 순간 저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
어요. 소문의 그 귀신보다는 철사로 목을 따간
다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여겼죠.
천천히 쓰러져 있는 그들에게 다가갔어요.
플래쉬가 불이 켜져 있는 채로 떨어져 있는 걸
로 봐서 기습 공격에 당했구나 하고 판단했죠.
저는 초소로 다시 돌아가 보고부터 할까 망
설이다가 초소까지 돌아갈 엄두가 다시 않아
사방을 경계하며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요.
시꺼먼 덤불 속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죠.
너무 무서웠지만 일단 앞에 누워 있는 세 사
람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을 굳
게 먹었어요. 사방을 쉴 새 없이 돌아보며 천
천히 접근했죠.
누가 어둠 속에서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
았어요. 저는 결국 쓰러진 그 세 사람 앞에까
지 접근하는데 성공했어요.
우선 그들의 목부터 살폈어요. 목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어요. 오히려 목젖이 미세하게 움
직이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순간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어요.
얼마 전에 여기서 보초 근무를 섰던 두 사람이
증언한 내용이 떠올랐어요. 이 사람들이 기절
했다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라면 그 귀신
이 다시 나타났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마비되려는지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어요.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
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 툭 떨어졌어요..
그 순간, 정말을 머리가 쭈삣 서는 거였어
요. 저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살폈어요. 놀
랍게도 하얀 소복을 한 여자 귀신이 머리를 늘
어뜨리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였어
요. 파아란 눈으로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한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거였어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죠. 저는 귀신을 향해서 냅다
총을 갈겨 댔어요. 탄창이 빌 때까지 쐈어요.
아니 탄창이 비는 것도 몰랐죠.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걸 어렴풋이 느꼈
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그 귀신이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귀엽다는 듯이 웃음을 띄면
서.저는 총을 버리고 무조건 달렸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아무 기억도 안 나
요.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부대 정문을 나
와 있는 거였어요. 탄약고에서 부대 정문까지
는 아무리 빨리 뛰어서 30분 정도 되는 거린
데, 그 거리를 단숨에 뛰어왔던 거예요.
부대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죠. 나중
에 들은 이야기로는 보초병들이 암구호를 외
치는 데도 저는 들은 척도 않고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는 거예요. 곧바로 보고가 올라갔고, 나
를 발견하더라도 사살하지 말라는 보고가 다
시 떨어졌대요.
제가 정문 쪽으로 달려가자 정문 위병들에
게 나는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대요. 내가
정신없이 달려가자 나를 발견한 위병들이‘정
지! 정지!’하고 외쳤대요. 그런데 내가 무시하
고 그냥 달렸나 봐요. 그 위병들은 미처 나를
잡을 틈이 없었던 거죠.
그런데 웃기는 것은 사건이 정리된 후에 그
위병들은 모두 명령 불복종으로 2주간 영창에
갔어요. 나를 저지 못했기 때문이죠. 만약 나
를 쏴서라도 저지했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포
상 휴가를 받았을 거예요. 그게 군대잖아요.
저는 근무지 이탈에다 부대 탈영을 했지만
서도, 귀신을 보았다는 세 사람의 증언이 일치
해 일주일 영창이라는 예상외로 가벼운 벌을
받았죠.
철규는 자조적인 미소를 띄운 뒤에 담뱃불
을 붙였다.
“안 믿기죠? 아니 일한이 형은 믿을 거야.
지영이가 믿질 못하겠구나. 하지만 지영아, 이
건 내가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데 나는 정말로
귀신을 봤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영은 무서운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곁에
철규 보기 민망할 할 정도로 바짝 붙어 있었다.
나는 무섭증보다는 일종의 호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제 다 해결된 거
야?”
“해결되기는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제
가 일주일 영창을 갔다 와 보니 그 초소에서
귀신을 보았다는 병사들이 몇 명 더 있더라고
요. 그래서인지 병사들은 아무도 탄약고 초소
에 보초를 서려 하지 않는 거예요.
장교들은 휴가다, 열외다 해서 온갖 달콤한
유혹으로 병사들을 달랬지만 소용없었어요.
심지어는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을 보낸다고
겁을 줘도 야간 보초만은 서지 않겠다는 거예
요. 차라리 영창을 가고 말겠다는 거죠. 실제
로 명령 불복종으로 영창에 간 병사도 셋이나
있어요.
부대 사기가 말이 아니죠. 그렇다고 탄약고
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더구나 우리 연대
장은 장군으로 진급하기 바로 직전이어서 이
사건을 잘 처리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어요.
결국 초소 근무를 모두 기피하자 장교들에
게 그 불똥이 튀었어요. 장교들이 직접 초소에
가서 야간 보초를 서라는 거였어요. 것이예요.
하지만 장교들인들 서고 싶겠어요. 마지못해
그 초소로 올라가는 척하다가 다른 곳에서 놀
다 내려오고 했죠.
사령 사관들도 그쪽으로는 순시를 하기 싫
으니 대신 초소로 전화를 해서 근무를 서나 안
서나 확인하곤 했죠. 그런데 사람이 없는데 전
화를 받겠어요? 보초를 선 장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전화벨이 울리지 않
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곤 했죠. 한마디로 부대
로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보다 못한 한 소대
장이 나섰어요. 엄 중위라고 육사 출신인데 요
즘 찾아보기 힘든 아주 전형적인 군인이에요.
의리 있고, 용감하고, 배짱 두둑하며, 장교는
사병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투철한 장교
의식을 지닌 말 그대로 군인이죠.
집안도 군인 집안인데 할아버지가 우리 부
대 초대 연대장이었대요. 정년 퇴임을 한 뒤로
는 이 근처에서 자리를 잡았대요. 마을의 유지
라고 할 수 있죠.
엄 중위는 출세길이 훤한 특권층 장교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그가 흐트러진 부대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탄약고 초소 야간 근무를 자청
하고 나선 거였어요. 그는 공수부대 출신 상사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엄 중위는 초소로 올라가기 전에 자신의 내
무을 돌며서 자신이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면
돌아가면서 그 초소에서 근무를 서야 한다고
사병들에게 한바탕 훈시를 했죠.
그리곤 당당하게 초소로 올라갔어요. 우리
는 엄 중위와 상사가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
했어요. 부대원들은 둘로 갈라져서‘귀신을 만
난다’와‘안 만난다’, 두 편으로 나뉘어서 내
기를 걸기도 했어요.
이윽고 날이 밝았죠.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무척 궁금해하고 있는데 아무도 엄 중위와 상
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아침에 가 보니, 소대장은 초소
안에서 죽어 있고, 상사는 완전히 미쳐 있더라
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귀신 이야기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악령으로 바뀐 거예요. 죽은 소대장의
사인은 쇼크사가 아니라 머리가 180도 돌려진
채 죽어 있더래요. 그러니까 얼굴이 등쪽을 향
하고 있었던 거죠. 같이 있던 공수부대 출신의
상사는 완전히 얼이 나가 있고요.
상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더라는
거예요. 태산을 들 것 같던 그 우람한 사내가.
일부에서는 상사가 엉겹결에 소대장을 죽인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조심스레 나돌았죠. 그
런데 군의관의 말로는 소대장의 머리는 도저
히 사람의 힘으로는 그렇게 돌려 놓을 수 없다
는 거예요. 목뼈는 부러뜨릴 수 있으나 머리
전체를 음료수 뚜껑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
하대요.
이 살인 사건은 상부에 보고되었죠. 사단에
서는 곧바로 특검단을 우리 부대로 파견했어
요. 지금 한창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죠.
그러자 연대장은 열이 받을 대로 받았어요.
그래서 사병들에게 탄약고 초소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모든 병사들의 면회, 외출은 물론
휴가도 일절 금지한다고 선포했죠. 하지만 그
대신 지원자에게는 2주간 특별 휴가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훈련에서 열외시
켜 주겠다는 조건을 내 걸었어요.”
나는 순간, 감전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럼 철규 너 설마?”
“그래요, 형 휴가도 빵빵하고, 훈련도 열외
시켜 준대잖아요. 저 같은 신병에게는 둘도 없
는 기회예요. 더구나 처음으로 면회도 왔고.”
“너 우리 때문에 그랬구나? 이럴 줄 알았으
면 안 오는 건데.”
“아녜요, 형! 아주 잘 왔어요. 대한민국 군대
가 귀신 때문에 우왕좌왕하고 있어서는 체신
이 안 서잖아요. 어차피 이 문제는 누군가 나
서서 해결해야 해요.”
“그래도 하필이며 왜 너야?”
“설마 죽기야 하겠어요? 엄 중위는 운이 없
었던 거라고 봐요. 언젠가 형이 그랬죠? 귀신
은 본래 물리력이 없다고.”
“마, 그거야 일반적인 얘기고 이번에는 다르
잖아. 실제로 죽은 사람도 나왔잖아?”
“걱정하지 마요. 저는 결코 엄 중위처럼 개
죽음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을 테니까.”
철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맥주잔을 쭉
들이켰다. 그리곤 시계를 보았다. 어느덧 시간
이 꽤 되어 있었다.
“이제 저 가 봐야겠어요. 보초 설 준비를 해
야 되거든요. 지영이도 일한이 형도 조금도 걱
정하지 마세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귀신은
퇴마록 같은 데나 나오는 거예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그 귀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괜찮
을 거예요. 혹시 모르잖아요. 그 귀신이 나에
게 반했을지도.”
철규가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서 여유 있는
척 농담까지 던졌으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
다. 눈동자 속에는 잔뜩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
었다.
지영이 초소 근무 서는 것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라고, 차라리 영창을 가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고 권했지만 철규는 이미 결심을 굳힌 모
양이었다. 철규는 부대로 들어가면서 힘껏 손
을 흔들었다.
“지영이도 일한 형도 와 줘서 너무 고마
워요. 얼굴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반드시 살아야겠다는.다음중에 서울에서 만나
요. 휴가 나갈 테니까.”
철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돌아섰
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철규의 뒷모습을 보면
서 간절히 기도했다. 철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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