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택은 친척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일찍 집을 떠나게 되었지요.
“보리가 얼마 남지 않았네? 그래도 아끼지 말고,
자네랑 우리 아가들이랑 잘 챙겨 먹게. 오늘 일가면 영택형님이 말이여.
먹을 걸 잔득 준다고 했어... 조금만 기다려.”
준택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방님이 출근 할 물건들을 챙겼습니다.
지난밤에 너무 놀란 나머지, 몸과 마음이 굉장히 피곤했지만
그래도 가장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준택은 서둘러 나가며 아내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내도 잘 다녀오라며, 웃으면서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지요.
그리고 준택의 아내는 지난밤에 받았던 사과 3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주려고 안방 문 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새끼들, 이 집이 어떤 집인지도 모르고 참 잘 자네?
어제 그냥 콱 죽여 버렸어야 하는데... 팔자도 모르고..
아가? 잠이 오냐? 잠이 와?”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험한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준택의 아내는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순간, 강도라도 들어왔다면 사과라도 던질 마음으로
냉큼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철커덕...”
준택의 아내는 방 안 곳곳을 둘러봤습니다.
하지만 아이들만 쌔근쌔근 자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방 안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어허, 여편네... 지 새끼들 죽일까봐 들어 온 거여?
참 기가 막힐 정도로 들어왔구먼?
어제 저 여편네만 아니었어도, 골로 보내는데... 아쉬워..”
준택의 아내는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을 했습니다.
남자 목소리? 아니 여자 목소리 같기도 한 것이...
이상하고 묘한 목소리가 참으로 기분이 나빴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몹쓸 말을 하니, 엄마로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방 안에 대고 큰 소리로 따졌습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우리 아가들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유.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우리 아가들 털끝 하나 건드려 봐유. 아주 가만 안 둘 꺼니께..”
준택의 아내를 비웃듯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방안 곳곳에 울려 퍼졌습니다.
“으하하하.. 으하하하.. 이히히히히.. 이히히히.....”
웃음소리에 놀란 준택의 아내는 혹시나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까봐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덜덜 떨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겨? 어따메.. 아줌씨 무섭네... 신기라도 가진 거여?
내 아주.. 오늘 이놈의 인간들 혼구녕을 내줄테니.. 각오혀.. 낄낄낄..”
그런데 밖에서 누군가가 준택의 아내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니, 저 윤화에유... 어제 만났던.. 윤화..”
방 안의 목소리는 윤화의 목소리를 당황을 했는지,
위험을 느낀 듯 심한 욕을 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런 육시럴.. 넌 내가 다음에 만날 때는 사지를 찢어버릴 겨..”
윤화는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방 안에는 준택의 아내가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안으며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에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놀란 준택의 아내를 위로 했습니다.
“언니.. 괜찮아유.. 괜찮아유..”
준택의 아내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음이 좀 진정이 되는 듯 윤화에게 대뜸 물었습니다.
“아가씨.. 밥은 드셨어요?”
피죽도 먹고 살기 힘든 찢어지게 가난한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지만 준택의 아내는 보리죽을 써 왔습니다.
윤화는 거절하지 않고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그리고 준택의 아내는 윤화에게 조심히 물었습니다.
“아가씨.. 우리 집에는 무슨 일로 오셨데유?‘
윤화는 그저 빙긋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곤 자신이 싸온 보자기에서 떡이며 사탕 같은 것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꼭꼭 씹어 먹어야혀..”
준택의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그제야 윤화는 준택의 아내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지요.
“언니...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셔유.
놀랄 수도 있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들으셔유...”
윤화가 말하길,
지금 준택네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은
일제시대 때부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흉가란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박씨라는 사람이 이곳에 집을 짓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풍수장이를 비롯해서 동네 무당들이 반대를 하며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음기가 모이는 지점이라,
온갖 잡귀들이 들끓는 장소였기 때문이지요.
박씨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끝끝내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박씨의 노모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든이 넘은 노모가 저 세상에 가는 일이야,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그래도 어제까지 정정하던 노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을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의 동생도 죽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에 질식해 죽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박씨의 아들 둘과 아내가 연이어 죽었고,
마지막에 박씨가 그 집에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박씨는 자살을 했는데,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요망한 귀신 새끼들이 어머니, 동생, 아들 둘과 아내를 죽였네.
무당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나의 잘못이 크다.
죄책감에 가족들을 따라간다.’
이후, 박씨의 먼 친척이 이곳에 이사를 와서 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양반의 일가족도 모두 죽었지요.
그리고 몇몇이 들어와 이곳에 살았지만,
귀신을 보거나, 귀신에게 홀려서 결국 겁이 나서 나가버렸습니다.
온 동네에 ‘귀신이 사는 집’이라며 소문이 난 것이지요.
흉한 곳을 허물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허물기 위해
이곳에 올 때마다 하나, 둘 이유 없이 ‘픽픽’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는 무서워했습니다.
아직까지 이곳을 허물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둔 이유지요.
소문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준택이 이 집의 주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준택의 아내는 윤화의 말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일을 하러 나갔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지, 당장 집을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더욱이 윤화는 준택의 아내에게
지난밤에는 정말 큰일이 났었다며 말을 이었습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