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당의 말
과거 여자친구와 궁합을 보기위해
부산 당감동에 용하다는 무속인이 있는 곳에 갔다.
그러나 봐달라는 궁합은 안 봐주고 무당은 나를 계속 쏘아봤다.
표정을 너무 무섭게 지어서, 궁금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며 슬며시 물어봤다.
“혹시.. 제가 무슨 잘못 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당은 혀를 계속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톤으로 나에게 말했다.
“니 저년이랑 살면, 원귀(寃鬼)가 될 팔짜다...
어디 만나도 저런 년을.. 아이고 불쌍한 아들아, 아들아...
때가 되면 좋은 여자 나타 날 테니 쪼매 기다리라.”
그리고는 여자친구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보라고 손짓했다.
물론 복채를 받지 않았고 여자친구가 나가자 어떤 여자가 소금을 마구 뿌렸다.
그 후 이상하게도 우리는 헤어졌다.
2. 택시기사의 말
작년 7월에 친한 선배의 문병을 가기 위해 잠실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자신이 신통한 능력이 있다며 운명을 볼 줄 안다고 했다.
기사의 말로는 총각시절, 기인열전에 나왔다며 사람의 운명도 맞췄다며 으스댔다.
앞자리에 탄 오맹달을 닮은 선배와 뒷자리에 탄 나에게
재물복이 가득하다며 ‘립 서비스’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냥 비위 맞춰 주느라 “아... 네.” 정도로만 대답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기사양반이 백미러로 나를 보며 히쭉 웃었다.
“뒤에 있는 총각은 만약에 도화살이 있는 여자를 만났으면 끔찍했겠네요.
여자 때뭉에 자살해서 귀신이 될 운명이었는데... 다행히 그 시기가 지났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주 예쁘고 귀여운 여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와 결혼 할 겁니다. 하하..”
딱히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감동 무당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리곤 옆에 있는 선배 얼굴을 한 번 보더니
‘허허...’ 웃기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적지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오맹달 선배는 자신에게는 왜 여자나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그 선배는 38년째 솔로였기 때문이었다.
오맹달 선배가 모태 솔로이던 말던 무당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3. 용제아버지의 성묘
용제아버지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집에 찾아와서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무섭고 불안한 마음에 도대체 어머니께서 왜 오셨냐고 물으니,
웬 정신 나간 여자가 어느 날부터 찾아와서 계속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1주일을 비슷한 꿈을 꿨는데, 꿈에 나타 날 때 마다 어머니는 매우 수척해 보였다.
마침 명절도 얼마 남지 않아서 가족들과 성묘를 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진해에 있는 공동묘지에 도착해서 어머니의 묘소를 보는 순간...
용제아버지는 경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커먼 옷을 입은 여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쥐고 뺨을 때리고 있었다.
분명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용제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달려갔다.
두 령(靈)은 용제아버지가 다가가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용제아버지는 그것이 환영(幻影)을 본 것인지,
진짜 귀신을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노가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은 무슨 문제가 있냐며 물었지만, 별것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묘소 옆을 보니, 새로운 무덤이 안치 되어 있었다.
이전에 있던 무덤을 이장(移葬)시키고 다른 시신이 들어 온 것 같았는데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가족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용제아버지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고 불안했다.
그래서 옆 무덤의 주인을 집요하게 수소문해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냈다.
이후... 용제아버지는 형제자매를 모두 불러 모아서
어머님 묘소를 이장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무덤의 주인은 보험금 때문에 남편과 자식을 살해한 여자로
경찰에게 발각 되자 목을 매달아 자살 한 여자였던 것이다.
용제아버지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따지려고 하니,
상대와 시끄럽고 일 처리가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냥 어머님의 묘소를 자신이 옮기는 것이 백번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후 이상하게도 어머님은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4. ‘악마를 믿습니까?’를 읽고...
후배 중에 한 녀석이 내가 쓴 이야기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렸단다.
녀석은 항상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휴대폰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와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배에서 신호가 왔다.
여느 때처럼 변기에 앉아 휴대폰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하필 내가 쓴 글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악마를 믿습니까?’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려고 했던
술주정뱅이와 불쌍한 그의 아들 이야기였다.
이상하게 그날은 녀석이 과거에 앓았던 ‘연기병’이 도져서 소리 내어 읽었다.
“이봐요, 홍씨. 여기 선생님이 그라시는데...
느그 마누라 말이야? 앞집 대학생 놈이랑 바람이 났다고 하네? 허허허..”
이내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며 홍씨 역할을 했다.
“마, 니.. 미.. 미쳤나? 어데 남에 가정에 그런 막말을 하노?”
그리고 다시 점잖은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읽었다.
“그 자리에서 싸울 번한 것을 우리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리가 ‘퍽’하고 깨지는 것..”
이 부분을 읽는데 뒤에 있던 화장실 창문이 정말 ‘퍽’하고 깨져버렸다.
너무 놀라서 볼일을 보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빨리 뛰었고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화장실 창문을 봤는데 산산조각이 나서 쎄한 찬바람이 들어왔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서 원인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한 동안 화장실 안에서 멍을 때렸다고 했다.
그 뒤로 내가 쓴 글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사준 술은 잘 처먹으면서 말이다.
5. 데쓰노트
2002년 고등학교에 입학 한 후 ‘국제문화탐방부’라는 동아리를
친구와 함께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불량서클이었다.
매주 국제문화는커녕 국제에서 유명한 술 담배를 즐기는 동아리였고
매주 또래의 학우로부터 돈을 걷어 상납해야 했다.
본인들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시에는 끊임없는 갈굼의 연속이었다.
참다못한 나는 “씨이바 안 해!”하고 동아리를 뛰쳐나왔고
친구는 그래도 버텨보겠다고 그들의 비위를 맞췄다.
양아치 생활도 해본 놈이 한다고 그 착한 놈이 술 담배는 전혀 못하지
얘들 삥도 못 뜯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니까 매일 선배들한테 불려가서
빠따로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를 하지 않아서 친구 것을 베끼려고 노트를 펼쳤는데
유독 친구를 괴롭혔던 선배의 이름이 새빨간 펜으로 마구 적혀있는 걸 보았다.
이름 아래에는 선배의 욕을 비롯하여
어떤 식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빽빽했다.
대략 선배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죽길 바라는 저주들이 가득했다.
매우 디테일하게 사망원인과 사망경로가 적혀 있어서 흠칫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정말 녀석의 바람대로 여름 방학을 앞두고 선배가 죽었다.
친구가 저주한 대로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죽었다.
자세한 사망원인을 말하자면 도로 한 복판을 빠르게 달리다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멈출 수 없어 사거리를 지나가던 차와 그대로 충돌했다.
소식을 들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녀석이 노트에 적었던 내용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너무 기뻐하며 나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당시에는 녀석의 저주가 통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녀석이 오토바이에 무슨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6. 아버지의 귀신 꿈
아직도 아버지는 귀신 꿈에 시달리고 계신다.
하필이면 혼자 집에 계실 때에 낮잠을 자다가 귀신 꿈을 꾼 것이었다.
마을에서 남편의 도박 빚 때문에 목을 매달고 자살한 이웃아줌마가 나타나서
아버지에게 제발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끔찍한 모습 때문에 무서운 마음에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하고 담배 한 개비를
대충 던져 주고 냅다 집으로 뛰었다.
뛰어다니는 내내 아줌마의 목소리가 마구 울려 퍼지며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다.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모든 문을 잠그고 이불 속에서 달달 떨고 있는데
아줌마가 당장 문을 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귀를 찢을 듯 엄청나게 울려대면서 고통스럽게 했다.
“당장 문 열어라, 으흐흐흐흐흐...
빨리 문 열어, 문 열라고... 으흐흐흐흐흐...
이히히히히... 용운아 어서 문 열어라!!!!
내 형기 엄마다... 남편 도박해서 목매달아 죽은.. 으히히히히히히...”
아버지는 꿈속에서 아줌마가 내는 굉음에 시달리며 끙끙 앓다가 결국 잠에서 깼다.
꿈이라는 사실이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한 숨을 쉬며 창문을 열었다.
야채장수의 확썽기 소리와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노을 빛 오후에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평소처럼 담배를 피기위해서 베란다로 향했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새끼들 문도 제대로 안 닫고 갔나? 하여튼 새끼들...”
원래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늘 그렇듯 투덜거리며 현관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손이 ‘탁’하고 튀어나오면서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았다.
아버지는 놀라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리고 현관문이 또르르 천천히 열렸다.
꿈에서 본 죽은 아줌마가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내 아줌마는 눈을 ‘휙’하고 뒤집으면서 왜 문을 열지 않았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불... 불도 줘야지... 이 사람아...”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7. 문화류씨
이상하게 ‘끝나지 않는 지배’만 쓰려고 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발을 다치거나, 몸이 매우 피로하거나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10부를 썼던 때, 집에 안 좋은 일이 터져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완성시켜 업로드 했다.
그리고 11부를 구상하려고 펜을 잡고 종이에 뭔가를 쓰려고 하는데
갑작스레 정전이 되었고 이후 컨디션도 따라주지 않아 그냥 덮어두었다.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예전에 충청남도 여행에서 들었던
아이들이 연쇄적으로 사고사를 당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설녀를 썼다.
그러나 2부까지 잘 써지다가 3부를 80% 완성시키고 멈췄다.
단 한 장만 쓰면 완성이 되는데 그걸 못 써서 지금 2주간 애를 쓰고 있다.
여기에 진실을 말하자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에도 글을 쓸 수 있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다음 편을 빨리 쓸 수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가 변명을 한 것 같다.
사실은 바닥이 보인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자신을 의심하고 싶다.
매우 극소수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는 독자들이 생기니
진짜 작가가 된 것 같았고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스스로 배신자가 될까봐 무섭다.
절대 그들의 응원이 부담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부응하지 않는 ‘사이코 패스’같은 자신이 너무 무섭다.
태생이 게으른 놈이라서 이래저래 핑계만 대고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있자면 한심하고 때론 가증스럽다.
잠깐의 영광이 평생인 줄 아는 아둔한 인간의 유형이기에
정말 그런 어른이 될까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까봐 무섭다.
사는 것도 권태가 들어서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편인데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다가 스스로가 귀찮아지거나
예전처럼 모든 걸 놓고 향락(享樂)에만 빠져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 쓰지 않는다면
극소수이지만 재밌게 읽어주는 독자에게 누가 될 것 같다.
누를 끼치는 순간 스스로가 자멸할 것 같은 마음이라 살고 싶어서
재미없는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반복하며 일곱 편을 준비 해보았다.
물론 7편은 스스로가 느끼는 무서움이라서 가장 재미는 없을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만드는 초심이 변할까봐 무서워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제야 그저 약간의 잔재주가 통한 것일 뿐인데...
슬럼프니 뭐니 핑계를 대서 기다리는 독자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PS : 조만간 끝나지 않는 지배와 설녀를 빨리 완결 시키겠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