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썩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과거 함께 글을 쓰던 윤석이 형이 정신과에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나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형은 우연히 같은 공모전에서 함께 입상을 받으며 친해진 사이다. 작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꿈을 좇는 사람이었으며, 매우 털털하고 성격이 좋았다. 한참 아래인 나에게 늘 막역한 친구처럼 대해줬다.
8년 전에 아버지에게 앞으로 글을 써서 작가가 되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다가 집에서 쫓겨났다. 갈 곳이 없었다.윤석이 형은 그런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마음 것 지내라고 했다. 좁디좁은 형의 집에서 종이박스를 책상 삼아 열심히 습작했다. 우리는 매일 한 작품씩 쓰기로 맹세했다. 주로 무서운 이야기를 썼는데, 나는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들은 귀신이야기를 현실에 맞게 각색을 했고, 형은 정말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찾아서 상상의 옷을 입혔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바꿔 읽고 스스로의 소름을 측정하며 평가했다.
“음... 내 작품의 소름지수는 3만원, 형의 소름지수는 10만원...”
늘 나의 패배였다. 연륜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형을 이길 수 없었다.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았던 햇병아리 수준의 나, 명문대 문예창작가 출신에 비평분야의 석사를 가진 형... 승패는 당연했다. 글을 쓴지 일 년도 안 된 내가 중학생부터 20년 동안 글을 쓴 베테랑을 하루아침에 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형의 글은 징그럽게 살인사건을 제대로 표현했다. 문장마다 살인자의 심리와 피해자의 심리를 동시에 느끼게 했고, 살인의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더욱 소름이 돋았다. 형이 쓴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나처럼 괴기스러운 귀신들이 등장해서 믿거나 말거나 방식의 공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오로지 실제로 일어난 잔인했던 사건을 재구성하고 캐릭터 심리를 극한으로 끌어가게 만드는 필력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매일 설거지와 청소는 나의 몫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에게 봄날이 왔다. 일본에 있는 유명 콘텐츠제작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이 썼던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소식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자신의 글이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아쉬워하는 마음 하나 없이 집을 정리하고 떠나버렸다. 단지 나에게는 자신이 소장했던 책과 무수한 연필을 줬고, 재능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했다. 그게 형과 나의 마지막이었다.
지인을 통해서 종종 형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작품이 흥행을 해서 큰돈을 벌었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다고 말이다. 형에게 직접 연락이 한 번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7년간 한 번도 없었다. 서운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막연한 미래를 해쳐나가야 하기에 금방 잊혀졌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어느덧 나도 내년이면 서른 중반으로 접어든다. 그 동안 창작을 위한 글쓰기는 포기했지만,열심히 기획서를 쓴 결과 콘텐츠기획회사에서 인정받는 위치까지 올랐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음 것 창작을 할 수 없음에 갈증이 났다. 생각해보면 먹고 살기 위해 꿈을 잠시 접어놓은 자신과 창작으로 목표를 이룬 윤석이 형을 비교하며 살았기에 늘 마음속이 어지러웠다. 사실 그래서 윤석이 형의 병문안을 가고 싶지 않았다.
윤석이 형의 아내가 간절하게 전화만 하지 않았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제발 와주세요’라는 말에 형을 8년 만에 보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덧 병원 입구를 지나 형이 입원한 병실 앞까지 왔다. 병실마다 괴상한 웃음소리, 울음소리, 비명소리 등 온갖 소음이 나의 정서를 스크레치 냈다.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스르르륵...”
나는 형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혹시나 병실을 잘못 찾은 줄 알고 환자의 이름을 여러 번 확인했다. 형의 이름이 맞았다. 형이 이름은 흔하지만 성이 특이한 ‘탁’씨 이기에 형이 아닐 가능성이 낮았다.
오늘 당장 죽을 만큼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8년 전의 모습은 하나 없이 머리도 하얗게 세어버린 중년의 아저씨였다. 무엇보다 시뻘겋게 충혈 된 눈 때문에 영화 속에 나오는 좀비처럼 무서웠다.
진정 정신에 이상이 생긴 듯 얼이 빠진 상태로 허공만 바라봤다. 내가 자기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넋 놓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형을 이토록 힘들게 하였기에 이런 몰골로 만들어 버린 걸까?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찰나, 형의 아내가 병실에 들어와서 나를 맞이 해주었다. 매우 아름답고 참한 분으로 형이 진짜 일본에서 성공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소하지만 과일 바구니를 줬다.
“고마워요. 마실 거라도 드릴게요.”
나와 형의 아내가 대화를 하는데도 형은 허공만 바라 볼 뿐이었다. 단 한 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허공을 바라봐서 눈이 새빨갛게 충혈이 된 것 같았다.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도대체 왜 저렇게 된 거에요?”
형의 아내는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결혼을 하고 얼마 안가서 형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고 했다.눈을 감으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해괴망측하게 생긴 귀신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점처럼 작은 무언가가 보였는데, 그것이 차츰차츰 가까이 오더니 이내 귀신의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 시간이 갈수록 둘, 셋... 귀신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계속해서 눈을 감을 때마다 그것들이 가까이 왔고, 당장 자신을 헤칠 것 같은 공포에 잠도 못잘 지경에 이르렀다고...
처음에는 직업이 공포물이나 스릴러물을 쓰는 작가이다 보니 직업병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이 형의 작품에는 귀신이 전혀 나오지 않았기에 의사도 의문이 들었다. 또는 감은 눈에 힘을 주면 다양한 모양이 보이는‘포스핀 현상’이라고도 의심했다. 이 역시도 어떤 모양이라기보다 사람의 형체가 정확하게 보이기에 아니라고 결정을 내렸다. 꽤 오랜 시간을 봐온 결과, 의사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고 했다.
“아마도 탁윤석 씨는 무언가를 보고 심하게 놀랐나 봅니다. 보통 겁에 질릴 정도로 무서운 것을 보게 되면 뇌가 반드시 기억을 하죠. 그리고 그 잔상이 저절로 기억되면서 공포증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꿈에라도 나타나면 굉장한 트라우마를 겪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탁윤석 씨는 무언가를 보고 심하게 놀란 나머지 눈을 감을 때 마다 자신이 본 무서운 무언가가 투영되는 것입니다.”
의사는 형에게 모든 것이 환영(幻影)이라고 말했지만, 형은 그것들이 눈을 감을 때면 계속해서 앞으로 온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말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대체 일본에서 무엇을 보고 놀란 것일까? 그러나 형의 아내는 일본에서 딱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형과 같이 살았던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은 늘 아르바이트와 글만 쓰던 사람, 뭔가를 딱히 무서워하는 것이 없었다. 단지 형에게는 창작으로 돈을 버는 목마름뿐이었다.
바로 그때, 비명소리가 크게 들렸다. 형이었다.
“으아아아악, 제발 오지마! 씨발... 으악 제발 오지마...”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을 움켜잡았다. 등 뒤부터 따가운 감각을 느끼자, 동시에 땀이 흘렀다. 형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눈을 감지 못하게 했다. 한참을 난리를 친 뒤에 나를 발견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나 역시 놀란 나머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혀어엉... 좀... 괘.. 괜찮아?”
의외로 형은 나를 반가워했다. 이상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쑥스러운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잠깐 잠이 든 동안에 형 앞에 귀신들이 더욱 가까이 나타나서 겁을 줬다며 쉰 목소리로 했다.
“말도 마라, 그 귀신들 진짜 무섭다. 병원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굿이라도 한 판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이 든다. 의사새끼는 내가 뭔가를 보고 놀랐다는데,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귀신들이 튀어 나오는데 죽을 것 같아.”
형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고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 형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거나, 다른 곳을 봤다.
“그런데 형, 도대체 어떤 귀신들이기에 그렇게 무서워 해?
형은 시뻘겋게 충혈 된 토끼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눈을 마주치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온 몸이 새카맣게 탄 모습의 남자, 여자로 둔갑한 살쾡이, 피 눈물 흘리는 무당귀신, 방방 뛰어다니는 처녀귀신, 병원환자복을 입은 칼을 든 여자... 전부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다가오잖아? 걔네들이 날 죽일 것 같아... 지금도 보기 싫어서 눈을 못 감겠어.”
형은 말하면서도 무서웠는지 목소리를 떨어댔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참는다고 힘들었다. 무진장 괴로웠다. 화장실이 급하다며 병실을 나왔다. 세면대의 물을 틀어 놓고 마음 것 웃었다.
“푸하하하, 푸하하하, 푸하하하...”
기억나지 않겠지만 형이 본 귀신들은 과거 내가 썼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함께 살 때, 습작했던 것을 공유할 때 본 것이다. 아마도 형은 내가 쓴 이야기를 읽을 때 상당히 무서워하며 읽었던 것이 틀림없다.상상력이 뛰어난 형은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인상적인가 보다. 나는 화장실에서 크게 외쳤다.
“나의 승리다, 나의 승리다, 나의 승리다...”
PS: 본 내용은 브릿G에서 개정 된 내용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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