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MC레이제2 작성일 18.08.13 16: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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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의 인생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인지...

물론 이성과의 관계역시 마찬가지다.


그녀 본인에게 정말 도움이 될 사내에 한 해 연애든 결혼이든

'진도'가 결정된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남자들이 모두 그랬다.


하지만 해주는 겉모습이 화려하거나 빼어난 미모를 소유했다거나

심지어 누구나 감탄할만한 몸매를 지닌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약간은 넙적한 얼굴형에 뭉퉁한 코, 여자치고 거친 피부까지...

외적으로 내세울만한 게 없다.


그런 그녀에겐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 자신의 개인사를 이용해 일단 남자로 하여금 최대한 연민과 동정심을 느끼게 만드는 재주다.


처음 연민과 동정심으로 시작된 남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해주는 이 과정을 즐기며 자신에게 맞는 이성을 솎아냈다.


이런 속물적인 근성과 달리 해주는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하고 연애라고는 평생 몇 번 해보지도 못한 쑥맥 그 자체를 외면적으로 연기했다.


그래서 이성을 처음 만나고 몇 번의 만남까지는 최대한 상대에게 맞춰준다.

영화를 보자고 하면 보고, 밥을 먹자면 먹었다.

 

 

단, 계산은 어디까지나 남자의 몫이었고 너무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값어치만 치렀다.

 

그래야 남자의 마음을 묶어둘 수 있고 정체가 탄로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의 만남이 지나면 도움이 될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스스로 결정해 도움이 될 경우 진도를 나가지만 그렇지 않은 남자는

가차없이 버린다.


이를테면 초반 남자에게 관심있는 척 하다가 딱 세번의 만남 후 가치가 떨어진다 느낄 경우 그런 '척'의 횟수를 조금씩 줄이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식이다.


이 방법은 남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애달프게 하는 효과도 있다.


남자들은 처음에 순종적이고 관심을 보여주는 이성이 나타나면 외적인 조건에 상관없이 '내 여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러 나온다.

연애경험이 부족한쪽이 특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상대는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던 관계가 갑자기 틀어졌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해주는 이 점도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그런 남자들에게는 어떤 상황에 의한 연락의 부재를 넌지시 던져주며

자신에게 더욱 '투자'하게 만든다.


그럼 가치가 없는 남자라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뭔가 '빼먹을'게

생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장 속 물고기를 관리하는 '어장관리'에 특화된 것이다.


'정식' 또한 그런 어장 속 물고기 중 하나였다.

아니 하나다...

 

그는 아직 현재행형이기 때문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기술로 소위 '물고기'들을 기르고

조련하던 해주에게 정식은 좀 더 성가신 존재다.

틈만나면 카톡 메신저를 던지고 안부를 묻는다.


이미 정식에게는 세번의 만남과 함께 폐기처분 절차가 들어갔음에도

그 집착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몇 번 더 만나 영화를 얻어 보거나 밥 따위를 얻어먹을 수도 있지만

해주는 그런 마지막 단물까지 빼먹는 것 조차 정식에겐 흥미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꾸 만날 약속을 잡는 정식이 성가심을 넘어

재수없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으면 알아서 나가 떨어지던

다른 물고기들과 달리 정식은 끈질기게 어떻게 알았는지

집 앞에 찾아오는가 하면 심지어 회사 앞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집이야 그렇다쳐도 동료들의 이목이 집중된 회사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래서 해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먼저 선톡을 날린 후 정식과의 약속을 잡았다.


정식은 세상 다 가진 듯 장문의 답문을 보내며 행복해 했지만

최후의 수단을 쓰기 위한 만남이기 때문에 해주는 감흥 따윈 없었고

그저 저 성가신 미친 물고기를 어항 밖으로 확실히 집어던질 계략만을

생각했다.


약속 당일...


어떤 남자를 대하건 심지어 그 대상이 폐기처분을 목표로 할 지라도

언제나 이성을 만날 때 한껏 자신을 꾸미는 해주다.

 

역시 언제나 봐도 설렘은 커녕 후줄근한 모습이 같이 다니기 X팔릴 정도인

정식이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만남조차 거북스럽지만 최후의 수단을 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해주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정식에게 다가갔다.


"오빠, 먼저 왔네? 잘 지냈지?"

 

 

너무나 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인사를 건내는 해주를 향해

정식은 구원자라도 만난 듯 세상 활짝 웃으며 반가운 표현을 했다.

 

별 시덥잖은 안부 인사와 정식만 신나서 떠드는 무미건조한

대화가 시들해질 즈음...


타이밍을 엿보던 해주가 정식에게 슬쩍 언질을 줬다.


"오빠... 나 요새 스트레스 받는 일이 너무 많은데..

우리.. 소주 한 잔 할까?"

 

 

당연히 정식은 OK였다, 그러면서 근처 맛집리스트를 뒤적이며

연신 싱글벙글 댔다.

그런 모습조차 해주에겐 찌질함 그 자체였다.

 

 

어쨌든 정식의 클릭질로 알아낸 근처의 조용한 선술집으로 이동한 그들은 다시 소주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해주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시골에 계신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대..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 200만 원이 부족해서 입원을 못하고 계셔.."


물론 거짓이다.


해주의 '최후의 수단'은 이렇게 최대한 동정심을 유발해

마지막까지 '털어먹은 후' 잠수를 타는 것이었다.


대개는 이런 방법을 쓰면 처음엔 분해하던 남자들이

그것도 결국 '사랑' 이었다는 별 거지같은 순애보로

돈과 함께 마음까지 묻어버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리스크는 있지만

꽤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더구나 잘만하면 짭짤한 수익이 생기는 행위였기 때문에

정식에게 써먹기엔 안성맞춤이다.


해주의 이야기를 듣던 정식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병..신 어차피 줄거면 꼴값 떨지말고 지금 당장 나가서 입금이나 해...'


정식의 반응에 혼자 생각하던 해주에게 이내 정식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정식은 조용하지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주야.. 넌 나한테 정말 특별한 동생이었던거 알지?

넌 그냥 나를 편한 오빠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난 동생 그 이상으로 널 생각했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그 돈 어떻게든 마련해 볼테니까... 오빠랑

진지하게 한 번 만나볼래?"


 

해주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다만, 사귀자는 게 조금 거슬렸을 뿐...

오히려 고백에 승낙해주면 나중에 속은거 알고 정식 혼자 더 괴로워할테니

은근 통쾌하기까지 했다.

 

해주는 나오지 않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며 글썽거리는 눈빛으로

 

 

"오빠... 나 사실 오빠가 나한테 고백해주길 너무 기다렸어...

지금까지 그렇게 기다렸는데 오빠가 아무 반응 없길래...

난 당연히 오빠가 나 마음에 안들어 하는 줄 알고 혼자.."


 

그러면서 해주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 다는 듯 오열하는 연기를 펼쳤다.


정식은 어쩔줄 몰라하며 그런 해주를 다독였다.

 

그리고 정말 그 누구보다 더 잘해줄 자신 있다며... 앞으로 더 잘해줄 거라며

그렇게 해주를 달래줬다.


해주는 자신과 함께 눈물을 짜면서 토닥거리는 정식이 구역질 날 만큼

찌질하게 보였지만 이 순간만 잘 참으면 공돈도 생기고 물고기를 떨쳐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터져 나오는 구역감을 억눌렀다.

 

한편으론 모자란 놈 처럼 보이던 정식에 대한 비웃음도 흘러나왔다.


"병..신 좋단다"


 

정식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해주의 볼에 떨어진 악어의 눈물을

훔쳐주며 말했다.


"해주야! 우리 이제 오늘부터 1일이니까 러브샷 할까?

이거 마시면 내가 얼른 은행가서 송금하고 올게"


 

오늘부터 1일? 러브샷? 정말이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만

바로 송금하고 온다는 정식의 말에 희주는 눈물연기를 멈추고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며 정식과의 러브샷으로 소 주 한 모금을 억지로

삼켰다.

 

 

 

그런 해주를 바라보며 정식은 특유의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점점 해주의 시야에서 그 순박한 웃음이 희미하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천천히..


몇 달 후...


서울 XX구 일대 한 주택가에서는

20대 중,후반 여성과 3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경찰은 시신의 부패정도에 따라 사망시간을 세 달 전으로 추정했다.


사건의 참혹함으로 인해 현장은 아직도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었고

삼엄함 경호속에 몇몇 기자들과 인근 주민들이 주변을 서성였다.


그리고 그 무리들 중 낯 익은 사내 한 명이 보였다.

검은색 모자를 푹 눌러쓴 정식이었다.

 

 

"아이 씨X 년 놈 들... 사람 피곤하게 늦게까지 술은 퍼마셔가지고..

아예 모텔을 잡고 X을 치던가... 그럼 더 쉬웠을텐데...

뭐 아무렴 어때... 미끼 하나로 두 마리를 낚았는데 흐흐흐흐"


 

담배 한모금을 깊숙히 빨아 뱉어낸 정식은 인파를 뚫고 유유히

골목길 쪽으로 사라져갔다.

 

골목 어귀의 한 상점 TV에서는 자그마하게 뉴스 보도 내용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서울 서남부 남녀 변사체 사망사건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피해 남녀는 사망당일 새벽 3시까지 함께 술을 마신 정황이 포착됐고

사건당일 피해여성이 오전부터 만난 남성은 피해남성과 함께 총 6명으로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마지막 만남 후 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유추, 남녀간의 치정에 의한 살인 후 자해 사건으로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중입니다.


다만 문제의 남녀 변사체가 서로 만남을 가지기 직전, 인근 CCTV 분석결과 여성이 앞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했다고 감안해도 비정상적으로 비틀거렸다는 특이점이 발견됐으며 남녀 시신모두 부패정도가 심해

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한 상태로 안구, 신장, 콩팥, 간 등 주요 장기가 훼손되거나 적출된 흔적이 발견된 만큼 국과수 최종 의뢰 결과가 나오는대로 또다른 범죄 가능성에 대해 다각도의 수사가 이뤄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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