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일 때 이야기다.
그날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간 반 정도 있다가
체육관에서 전교생이 모일 예정이었다.
나는 점심시간 내내
친구와 교실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문득 어쩐지 조용하다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같은 걸 느꼈는지
주변을 돌아보다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왜 벌써 2시지?]
변명이고 뭐고, 당황해서 체육관을 뛰어갔다.
다른 반 아이가 체육관 문 앞에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있었다.
아, 쟤도 늦었나보다 싶었다.
나와 친구도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온거야!] 라고 잔뜩 혼이 났지만,
스스로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선생님은 더 화를 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반에서도 지각한 아이들이 달려왔다.
그것도 몇 명씩 연달아서.
최종적으로는 30명 가까이 됐던 것 같다.
늦게 온 아이들은 모두 [왜 늦게 왔는지 모르겠어요.]라던가,
[정신을 차리니까 집합시간이 한참 지나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도 나와 친구처럼,
다들 자기 교실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지경이 되니 화가 잔뜩 나 있던 선생님도
늦게 온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당황했던 것 같다.
결국 어영부영 다들 체육관으로 들여보내는 걸로 그 자리는 마무리가 됐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빠졌는데도 담임 선생님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전교생이 모이는 집회 때는 전원이 모였는지 꼭 세어보곤 했었는데
종종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도대체 무슨 조화였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카미카쿠시라는 건 이렇게 시간을 벗어난 뒤,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