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와 승천 ( Master and Mastery )
대사학은 '승천 대사(Ascended Master)들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대사에는 승천한 대사가 있는가하면 아직 승천하지 못한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Master)하면 대부분 승천 대사를 말합니다. 승천하지 않은 채로 지구상에
남아있는 대사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 중에 하나가 초인 바바지입니다.
바바지같은 이는 특별한 목적 때문에 승천을 미루는 경우입니다.
승천 대사(Ascended Master)의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한
이, 그 과정에서 자아를 터득(mastery)하고 자기 카르마의 51퍼센트 이상을 갚고,
자신의 신성 계획을 완성하고, '아앰 댓 아앰'의 현존체 속으로 승천한
이; 영(Spirit)의 영역 속에 사는 이입니다.
대사들은 인생의 목적은 바로 승천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지구는 학교입니다.
이 지구에서 우리는 학습을 합니다. 그 배움의 최종 목적지는 승천입니다. 대사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이 지구의 학교를 먼저 졸업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승천이란 뭐냐? 승천이란 것은 우리 영혼이 영, '아앰 프레젠스( I AM Presence )'와 재결합하여 불멸의 상태에 든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은 Spirit 즉 아트만을 말합니다. 승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절대불변의 영(Spirit)이면서 동시에 진화하는 영혼(Soul)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아는 영(Spirit)과 영혼(Soul)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은 불멸한 것이고 변치않는 것이지만 영혼은 진화하는 것이고 임시적인 것입니다. 영이 자신의 일부분을 물질 우주 속으로 투사한 것이 영혼입니다.
영혼은 영으로부터 나왔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은 물질계에서 진화하며 영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가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영혼은 임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로 바뀌려면 영과 결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영혼의 진화의 궁극은 승천입니다.
승천은 영혼이 물질 우주에서의 자기 사명을 다하고 영과 결합하여 영구적인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부처나 도인들은 해탈한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사들의 존재는 해탈 이후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해탈한 이후에도 뚜렷한 개체로서 이 우주 상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승천 대사들은 여러분의 미래 모습입니다. 그렇게 되는 길 말고 여러분에게 단 한 가지 선택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개체의 완전한 소멸, 그야말로 진짜 죽음이지요. 이 지구에서 여러분은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선택은 딱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 즉 영원히 존재하느냐 영원히 소멸하느냐. 즉 승천하여 대사들처럼 되느냐 아니면 이 우주 속에서 영원히 소멸하느냐 입니다.
흔히 말하는 악마의 길은 바로 영원한 소멸의 길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한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여기서 영생은 영혼이 승천의 비전을 거쳐 불멸한 존재로 바뀐 것을 말합니다. 승천을 하지 못한 영혼에겐 영생이 없습니다. 승천하기 전까지 영혼은 그저 가능성일 뿐입니다. 영혼은 그 선택 여하에 따라 불멸한 존재로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영혼의 소멸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물질 우주로 여행 나온 영혼에겐 무한정의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소진되면 우주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그 영혼은 소멸할 수도 있고 승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영혼이 윤회한다고 하지만 영겁까지 윤회하지는 않습니다. 승천대사들을 보면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흔히 신과 하나가 되었다면 신은 오직 한 분이니까 모두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해탈을 했어도 그 개성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개성은 흔히들 말하는 개성과는 다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개체성(individuality)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individual)의 의미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신이 자기를 더 분할할 수 없는 데까지 쪼갠 것이 바로 개인이란 말입니다. 즉 개인은 신의 세포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몸에서 각각의 세포가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듯이
개개인은 신이란 전체 몸중에서 각자에게 맞는 독특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개인은 이 우주 상에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신을 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성입니다. 오컬트에서는 이를 모나드(Monad)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개성은 인간적 때를 말끔히 벗어난 상태라야 그 참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성의 발현은 승천한 이후라야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 부처님, 마이트레야(미륵), 세인트 저메인같은 대사들은 승천
또는 해탈을 했습니다만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우주의 본질)과 하나가 되었으니까 모두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들의 본질은 동일하더라도 각각 뚜렷이 다른 개성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도 각각 다릅니다.
이렇게 각 개인에게 독특한 개성과 역할은 애초에 그 개체가 신이란 거대한 바다에서 분리되어 나올 때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어둠을 이긴 성자들이 '새로운 이름'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승천이후에 본래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 이름은 하느님과 받은 이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되어있지요.
그럼 어떻게 하면 승천할 수 있을까요? 승천 대사의 정의를 보면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하고, 그 과정에서 자아를 터득하고, 51퍼센트의 카르마를 갚고, 자기 신성계획을 완성하여 승천한 이'라고 했습니다. 대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인 '마스터(master)'는 주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자아를 마스터했다고 하는데 그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아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자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아를 잘 알지 못하고는 주인인 될 수 없겠지요. 시간과 공간을 마스터했다는 건 모든 에너지를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선도에서 보면 기를 콘트롤하여 자기 존재를 변화시키는데 그것과 비슷한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자아와 모든 에너지를 다스릴까요? 여러분은 에고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서 자아니 에고니 '참자아'니 하는게 대체 뭐냐 하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데 그 얘긴 일단 접어두지요. 여기서는 일단 기나 에너지의 진정한 콘트롤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따라서 대사학은 겸손과 순종을 통해 신이 우리 내면의 참 주인이 되게 하는 길입니다.
대사학의 요체는 '과학적 복종 scientific surrender'입니다. 즉 에고를 참자아 앞에 죽여가는 길이지요. 시공을 초월한다 했는데 시공의 주인이 되지 않고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신은 그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51퍼센트의 카르마를 갚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카르마는 네가티브 카르마 즉 나쁜 카르마입니다. 좋은 카르마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나쁜 카르마만이 우리를 속박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카르마도 우리를 구속한다고 얘기합니다만, 그런 건 참으로 좋은 카르마가 아니기 때문일 뿐입니다. 어쨌든 나쁜 카르마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를 그냥 가지고 승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남아 있는 한 승천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카르마를 갚아야만 승천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진여를 깨달았다 해도, 몇날 며칠 신과 합일의 열반에 든다해도 자기의 빚이 없어지진 않기 때문에 승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성자도 다시 태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거두고 설법을 했음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건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자기 카르마의 빚을 다 갚는 것이 또한 중요함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점, 한획의 카르마도 갚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