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희 외갓집 옆에 방앗간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방앗간집과 외갓집은 친하게 지냈던 데다,
돌아가신 분 역시 어머니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 안면이 있었던 때문인지,
외갓집 식구들은 그 집안의 사고를 안타까워하시며 도와드렸죠.
저나 동생은 그저 놀러 가면
떡을 바리바리 싸주시기에 그저 좋아할 뿐이었지만요.
여러 사람들이 빈 소리로나마 아들들이 장성해서 큰 걱정은 없겠다고 위로했지만,
돌아가신 분이 가업을 잇겠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려오셨던 효성 깊은 분이라
방앗간집 할머니나 주위 분들의 상심은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그 집 상을 치르고 얼마 뒤,
부모님이 또 외갓집으로 가게 되셨습니다.
저와 동생은 어렸기 때문에 같이 따라갔죠.
아버지께서 일을 마치고 오신 후에 출발했기 때문에,
외갓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이미 굿판이 한창이었습니다.
외갓집의 큰형이나 누나들도 있었고,
동생들도 멀리서 구경하기에 저도 거기 끼어서 구경하기 시작했죠.
그곳에서 굿을 보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보통 굿을 하다 보면 혼 건지기라며
쟁반에 받아 놓은 물에서 머리카락을 건지는 것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매개로 하여 접신을 한다고 하고요.
그런데 무당이 계속 실패하면서 머리카락을 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수군대기 시작했죠.
[무당이 영험하지 않은 게야.]
[계속 안 건져지는데 어쩐대요?]
그 무당분도 이를 악물고 머리카락을 건져내려 하는 듯했지만,
결국 머리카락은 건져지지 않았습니다.
무당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 무당분이 부른 다른 무당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을 허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간은 어느새 한밤중이 다 되었고,
마을 사람 대부분은 귀가해서 자리에 남은 것은 친지와 이웃, 친구분들 정도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이들은 어서 들어가 자라고 쫓겨났고요.
그런데 잠을 청한 지 한참이 지날 무렵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웅성거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점점 커졌죠.
그리고 [가란 말이여, 이놈아! 여기 니가 있으믄 안되는 거여!]라는
방앗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난생 처음 듣는 할머니의 앙칼진 목소리였습니다.
저와 동생은 방 안에 있었지만,
너무 무서웠던 탓에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죠.
다음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외갓집에 모였던 식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어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습니다.
차를 타고 돌아오다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여쭤봤지만 눈물이 빠지도록 혼만 났습니다.
나중에 명절이 되어서야 외삼촌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굿을 하게 된 이유가 마을 어르신 몇 분이 약주를 드시고 방앗간을 지나가시다
죽은 방앗간집 아들이 셔터가 닫힌 방앗간 앞에 앉아 있는 걸 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계속 돌자,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굿을 차려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봤던 굿이 바로 그 굿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날 다른 무당이 와서 한참을 헤매다
갑자기 병풍 뒤를 가리키며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외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들 병풍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 와중에 몇몇 분이 병풍 뒤 방앗간 구석에
울면서 서 있는 죽은 방앗간집 아들을 봤다는 겁니다.
역시 그 모습을 보셨던 방앗간집 할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이젠 저승길로 가라며 아들에게 소리치셨던 겁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저도 듣지를 못해서 지금도 잘 모릅니다.
다행히 굿을 한 이후로는 그분의 혼령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방앗간집은 그 후로도 계속 할머니께서 하시다가
지금은 돌아가신 그분의 동생이 물려받았다고 하는데,
이사를 가서 명절 때가 아니면 자주 찾아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방앗간 한구석에는
항상 물이 담겨 있는 접시가 놓여 있더군요..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