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 할머니는 잔치국수를 기깔나게 잘 하셨다.
잔치국수 따위에 특별한 레시피 가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도통 그 맛을 재현해내는 것이 힘들었다.
맛있다는 국숫집을 죄 뒤져보았지만 그 맛을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는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그 국수맛이 기억속에서 가물가물해질 무렵, 나는 회사에 갓 입사한 막내 사원이 되어있었다.
그 시절의 야근은 사회에 이제 막 내던져진 젊은 청년에게는 매우 가혹했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리라..
끝내지 못할 업무를 데스크에 쌓아둔채 꾸벅꾸벅 졸고 있을 즈음이었다.
꿈속의 불 꺼진 사무실에는 할머니가 생전에 당신이 그러셨던 것 처럼 옆에 앉아 내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고 계셨다.
“이제 고만 자고 밥묵자. 국수 해놓았으니까네 얼른 오거라”
꿈속이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나는 말 없이 뚜벅뚜벅 할머니 뒤를 쫓았다.
그저 맛있는 국수를 뱃속에 채워넣기 위해 철부지 손주 된 마음으로 할머니 뒷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희한하게도 꿈속 풍경은 어릴적 살던 집이 아닌 야근에 지친 삭막한 회사였음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일절 없었다.
할머니를 따라 불꺼진 복도를 한참 지나 1층으로 내려오니 그렇게 그리워하던 국수가 차려져있었다.
허겁지겁 국수를 들이킨 나는 잊고 있었던 그 국수맛에 정신을 못차릴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 쌉싸름하면서도 알맞게 미온한 국물에 적셔진 면발을 젓가락으로 왕창 집어 입속으로 쑤셔넣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거칠게 밀어 넘어뜨리며 달콤한 꿈을 방해하였다.
“당신 뭐하는게요? 갑자기 와가지고는 말이야"
정신을 차린 나는 꿈속에서 먹고 있을거라 생각했던 면발을 한가득 입에 우물거리며, 회사 앞의 자그마한 노포집 앞에 널부러져 있었다.
상황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나를 두고 국수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발길질을 하려던 찰나, 국숫집 아주머니가 건물을 보며 소리쳤다.
“어메야? 저기 불난거 아니오? 시꺼먼 연기가 저래 나오는데?”
시선이 향한곳에는 방금전까지 내가 야근에 시달리던 회사 사무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추후 경찰 조서에는 합선으로 인한 화재였으며 구사일생으로 나는 도망쳐 나온것으로 처리되었다.
가족들은 아직까지도 제사 때가 되면 할머니가 손주를 구해주었다는 말을 하며 껄껄 웃는다.
해당 노포집을 찾아간적도 있지만 꿈속에서 먹었던 할머니의 국수 맛은 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할머니의 잔치국수맛을 그리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