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애의 마음이 떠나가기전에, 그리고 다음 주가 추석이기에 주말에 따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는 오늘 어떻게든 승부를 보기 위해서. 새벽내내 떨리는 제 가슴을 진정시키고 차근차근 학교로 고백하러 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학교가 그런 장소는 아니지만...) 일단 그래도 평소처럼 가기는 왠지 그래서 조금은 외모에 신경 써보기로 했습니다. 머리는 괜시리 왁스를 바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드라이하고, 안경은 조금 과감히 빨간 뿔테로 갈았습니다. 그리고 옷 코디는 안경과 흰티를 안에 입고 위에는 빨간티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에는 좀 뭔가 맞춰보기 위해서 예비로 넥타이와 빨간 가디건을 챙겼죠. 그리고 바지는 남청색의 청바지, 신발은 평소 많이 뛰어다녀서 딱히 신어볼 기회가 없었던 올백(白)의 포스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정장을 입을가도 생각했지만... 무슨 맞선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 가는 평소 복장에 한계 범위에서 최대한 잘 입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 평소 비싸서 아끼던 5중날 면도기로 면도를 했다던가, 피부 미백 효과가 있는 로션이라던가,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 약한 향수도 뿌려보았습니다.)
근데 오늘 날이 아니었나보네요. 학교 가는데 원래 2시간 남짓 걸리긴 하지만, 왠지 오늘은 버스가 더욱 밀려서 9시 10분에 도착 예정인 버스는 9시 40분이 훌쩍 넘어 도착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에 가자마자 자취방으로 내려가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버렸습니다. 늦어버린 강의. 어떻게 이것저것 보충해서 교수님에 설명을 듣다보니 오전 강의가 꽉꽉 채워져서 끝나가네요. 다른 반 강의지만, 먼저 끝나고 가서 어찌 해보는 것도 물건너 갑니다. 끝나고 보니까 오늘 오후 강의가 휴강이라네요... 수업도 같이 못 듣습니다 ㄱ-... 하 뭔가 일이 제대로 꼬일려나...
수업도 늦게 끝난 저는 집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어디 친구네 잠시 놀러간건지 집에 없더군요... (뭐가 꼬이긴 하려나 보다) 10분... 20분... 30분을 기다리다가 저는 그 여자애를 찾아나섰습니다. 도서관, 아는 누나의 자취방, 과모임터... 에휴 아무대도 찾아볼 수 없더군요. 그래서 그 여자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 문을 두드려봤습니다. 뭐 역시나 아무도 없습니다. 이거 참!! 고백도 예고를 하고 가야되나요!! 내가 무슨 괴도 루팡도 아니고!! 허탈한 마음 + 조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너 어디야?""나 현상하러 신관나왔는데..."(저희 과가 촬영관련 과입니다.) 그런거 가도 좀 집에 들렸다가 가면 안될가...?
이리저리 말하다가 집에 왔는데 없어서 전화했다고 말했습니다."근데 우리집에는 왜?" 이거 뭐라고 말합니까... "나 고백하러 간다고! 방구석에 좀 처박혀 있으라고 왜 나간거야!!"...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사람 사는거 힘듭니다.
비 온다고 하더만, 날씨 더럽게 맑네요... 30분을 기다리고, 1시간을 찾고, 또 30분을 기다린 끝에 전화 한통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내일 영화를 보자고 하니, 좋다고 바로 승낙이 오네요. 밥은 자기가 집에서 차려준답니다. 이제 고백할 타이밍이 왔습니다. 뭔가 오늘 하루 엄청난 실패를 맛 본거 같아서 허탈하지만, 이제 2라운드 시작이겠죠?
약속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부단하게 잡히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이야기해 본 끝에 보게 될 영화는 '본 얼티메이티드' 적절한 선택이었을가요? 액션 영화라.. 뭐 보고 싶었던 영화이지만, 장르 선택에 있어서 약간 회의가 듭니다. ( 마땅한 다른 영화도 없건만...) 어떻게 영화보러 둘이 간다는 걸 알았는지 같이 보러 가잡니다... 내일도 좀 꼬이려나 걱정부터 앞서는군요. 그래도 어떤 결론이던 그것이 최선이라 믿고 돌진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 나름이지만, 또 하나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만나는 고 2의 여자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녘에 뜬금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습니다. 나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긴거 같다구,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애가 있다면 나 역시 좋아서 먼저 고백해줄거라고... 정직하지만, 나쁜 말을 해버렸습니다. 근데 대답은 의외네요. "그 쪽에 전력투구 하고, 까이면 나한테 전력투구해."... 담담한 목소리지만 제가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소리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 이라는 생각으로 사실대로 털어놓고 막연히 받아들여주기만 바랬지 그 이상에 대답이 나올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쁜 놈이 되었습니다.
예정대로 내일은 올 것이고, 저는 예정대로 고백할 겁니다. 잘되던 못되던... 어쨌건 지금 이 순간에 들떠야할 제 가슴이 답답해지는게 힘들고 두렵습니다.
나쁜 놈이지만, 충고해주십쇼. 응원해주십쇼.. 뭐라도 할 수 있게 욕이라도 해주세요. 눈으로 보는 글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제 스스로 크게 생각하고 위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