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간 11시 54분. 데이트를 다녀와서는, 뭔가 의무감에 휩싸여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글은 지웠지만, 몇몇분은 보셨으면 아실겁니다. 어제 사소한 문자로 있었던 일은 제가 사과 받음으로서, 오히려 제게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원래 예정에 없던 데이트를 불러왔지요. "어제 미안. 나 오늘 대전인데, 영화보러 갈래?" 여기에 글을 올리고, 그 여자애가 직접 보는 것도 아니건만, 올라온 리플에 마음 한구석이 얹잖았던 저는 그 사과와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한마디씩 하시는 걸보니 죄 짓는거 같았어요.)... 그리고 게시판의 글을 삭제했지요. 일산형님에게 전화해서 한마디 여쭙고 싶었지만, 어제 잘못한 것도 있어서 일단은 그냥 넘어가고 일요일날 아침 대전 cgv로 향했습니다.
"별일 있겠어?" 솔직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고백하기 전에도 잠시동안이었지만, 정말 오래된 친구와 같이 별다른 허물 없이 지내기도 했었고 제가 그 여자애에 대한 흑심만 버렸다면 아무일 없을거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거에 설레발치며 걱정하게 되더라구요. 그 여자애가 영화관에서 눈 찍어두고 골랐다는 영화는 '행복' 이전에 '사랑'을 보러갔을 때, '행복'이 아직 상영이전이고 '사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꽤나 기대했던 영화였습니다. 제 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그 여자애가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랑을 다룬 영화는 우리 둘이 볼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여자애를 타이르고 타일러서 제가 팝콘을 사기로 하고는 '러시아워3'라는 영화로 영화를 바꾸어 택하였습니다. 코미디 영화이니 만큼 괜시리 마음이 찡해진다던가, 그런 일은 없을거 같았으니까 말이죠. 그런 류의 무난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팝콘을 산게 문제였던거 같아요. 무난하게 고른다는 것이 콜라(r) 두개와 팝콘을 주는 cgv콤보 세트를 사서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 팝콘을 둘이 먹으려니 계속 손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의식해서 손을 안 마주치려고, 의식해서 여자애가 손을 빼면 제가 손을 넣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별다를바 없이 손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저에게는 영화보다 그 팝콘이 더 중요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조금조금 신경을 쓰다보니 손은 마주치지 않게 되었지만, 꽤나 뒤척여서 서로 얼굴을 마추치게 되었습니다. '팝콘을 먹어말어...' 성룡영화도 좋아할 뿐더러, 러시아워 시리즈를 모두 챙겨본 저였지만, 영화에 집중하기보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더욱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영화대로 제대로 * 못하고, 팝콘은 너무 의식해서 손도 안 대었더니 여자애 역시 의식한 것인지 아무도 팝콘에 손을 대지 않아 결국 팝콘은 절반도 줄지 않은 채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버리게 되었습니다. 절반이상 남은 팝콘이라니... 돈 아깝습니다.
ㅡㅜ
영화관에서 나온 후, 아침을 늦게 먹고 나왔다는 이야기에 시간을 보낼겸해서 대전에 시내라고 할 수 있는 은행동으로 향하여, 한 카페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메뉴는 무난한 파르페. 그리고 곁들여서 먹으라고 바삭한 토스트가 나오더라구요. 주문한 것들이 꽤나 빨리 나온 편이라, 우리는 조용히 토스트와 파르페를 깨작거리며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말문은 여자애에게서 부터 나왔습니다. 요번 화요일 과제에 대한 것이었는데, 학습자료실에 링크된 자료가 다운로드 되지 않아 애먹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저도 조금씩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죠. 학기 과제에 대한 이야기나,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개인 작품 촬영준비나 학교 선배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입니다. 가끔 집안 *이나, 이전에 놀았던 이야기를 꺼내면 의식적으로 화제를 최대한 돌리며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뭐, 제가 말을 돌려서 무사히 넘어갔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하고는 솔직히 둘이 어색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 것이겠지만요. 다녀와서 남는 기억은 처음 들어가서 2~3분간 아무말 없이 애꿏은 베개나 껴안고 있던 2~3분간의 조용한 시간. 그리고 눈 마주치면 피하게 되는 어색한 분위기. 정말 싫었습니다.
돌리던 이야기 중도에 나온 촬영장에서 쓰는 신발에 대한 이야기로 abc 마켓이라는 신발 매장으로 가서 캔버스화와 운동화를 신어보고 골라주고 하면서 신발도 하나 사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충동 구매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나쁘진 않네요. 그리고 약간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향했습니다. 여자애는 서울지방에 사니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대전에 살아서 그나마 많이 아는 에스코트를 해야했지만, 저도 시내라고 불리는 은행동을 자주 다녔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님들과 함께 가끔 다녔던 철판낚지구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식사로는 영 아니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비벼먹는 참기름에 김가루를 덮어씌운 것은 정말 맛있답니다. 아무튼, 이 곳에 갔을 때 심히 후회하고 있었지만 어쩌겠습니까... 낚지 2인분을 시키고는 조용히 있었습니다. 또 다시 조용해질거 같은 분위기... 그때 여자애가 소주를 한병 추가 시켰습니다. 뭐 낚지가 원래 소주 안 주라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왠지 뜬금없기도 했고 거기에 복잡한 머리로 무슨 의미일가 머리터지게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별일 없었지만요.
이제 해도 뉘역뉘역 저물어가는 시간. 이만 데이트를 끝내야 할거 같았지만, 여자애는 노래방을 가자고 합니다. 그 때는 저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승낙해버렸습니다. 저희가 간 노래방은 이안경원 골목 오른쪽. 피자헛 건물 4층에 위치하고 있는 노래방 안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는 제법 분위기 있고, 시설 좋은 노래방. 그런데 노래는 무엇을 불러야 할가요?
첫 노래는 얼마 전, 노예팅에서도 불렀지만 여전히 진상인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달리는 노래이지만, 어설프게 소주 4~5잔을 먹어서는 잘 불러지지도 않더군요. 그 밖에 왠지 차갑게 가라앉은 가슴으로 부를만한 노래는... 한참을 고민해도 발라드 뿐이 없었습니다. ...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랩 같은 것을 연습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부르는 노래는 저희 동네에선 첫노래 꼽으래서 무난하면 부르는 버즈의 노래들. 1st, 남자를 몰라, 겁쟁이. 그리고 언제나 같이 친구들과 놀러가면 부르던 노래들을 차분히 꼽아나갔습니다. timeless, 너를 위해, 잊을게, 눈물잔, 소주한잔, 내 사람입니다, 사랑의바보... 이런 노래 불러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이런 노래밖에 모르는 제가 미웠습니다. ㅡㅜ
여자애는 중간중간에 자신의 곡을 예약하고는, 노래방에 비치되어 있는 인형을 안고 귀엽게 저를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노래도 진상으로 못 부르는데 otl... 왜 왔을가요...
여자애도 노래를 부릅니다. 서경별곡, 나도 여자랍니다, 오리날다, 낭만고양이, 사랑two, 몇몇 인순이 노래와 핑클 노래들
입니다. 뭐, 솔직히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어차피 저랑 부르는게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입니다. -_-;;
그래도 선곡에 있어서는 중간중간 사랑을 다루는 주제가 아닌 다른 것이 있어서 저보다 낫았습니다.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몇몇 노는 노래들을 예약해봤습니다. 지독한 노래, 바다의 왕자, little baby, 콩가, 말달리자 등등
있는 악, 없는 악 다 빼가며 오버도 한번 떨어보고, 저글링 4마리나 룩셈부르크를 부르며 혼자 쇼도 해봤습니다. 그러자 오늘 처음으로 크게 웃어주더라구요. 물론 제가 민망해서 움츠러 들었기 때문에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
-_-;; ... 깨달은 건 어설픈 사이로 노래방 같은 곳에 함께 오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왠지 오늘 술이 안 받는건지 얼굴이 빨개진 여자애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저는 집으로 왔습니다. 무슨 미련에
거길 나갔던 걸까요. 다시금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래도 좀 어색한 와중에도 같이 지내고 얼굴 한번 더 본 걸로 만족하는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 아우.. ㅠ_ㅠ... 저 왜 또 설레발치죠? 막연한 기분으로 이 곳에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전에 듣고 울었던 이정의 '날 울리지마' 이거 다시 들으니 기분이 착잡해지는 기분이네요.
날 울리지마~ 슬픈 영화속의 주인공은 싫어~ 날 울리지마~ 슬픈 노래처럼 기억되긴 싫어 ~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