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남자 ---
오늘로 97번째 시 한편을 옮겨적은 편지를
202호 그녀의 우편함에 몰래 넣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워낙에 글솜씨가 없어서 기껏 써놓고 보면은...
보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좋아합니다...
딱 세마디가 다였죠
내 마음을 적은 시로 대신 전하고 싶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지도 몰랐구요
그런데 몇일전 집을 나서다가 우편함에서
내 편지를 꺼내는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되었거든요
착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반가워 하는거 같더라구요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뜯어서
길지않은 시를 아주 오랫동안 몇번이고 읽어보고 있었죠
이제는 마음을 전하는 것 보다는
그냥 그녀에게 작은 즐거움을 준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번째 전할 시는 정말 특별한 걸로 고르고 싶은데
아... 어떤 시가 좋을지 고민이네요
--- 그여자 ---
몇달전부터 이어지는 편지한통에 내 생활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일 먼저 아침이 달라졌죠
늘 지각할까 허둥지둥 대곤 했었는데
요즘은 우편함 앞에 머무는 시간 제하고도
넉넉하게 도착할 만큼 집을 나서는일이 빨라졌다니깐요
예전에 꾸벅꾸벅 졸던 지하철
이젠 그 편지 아니 그 시를 읽으면서 상상을 하곤 했죠
도대체 누굴까...?
그런데 그렇게 궁금했던 그 사람의 얼굴을 몇일전 드디어 보게 됐어요
수위실 옆에서 잠복하듯 기다리고 있었죠
새벽2시쯤 102호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났어요
키가 작고 조금 마른체격에 그냥 평범한 이목구비
기대가 컸던 탓에 솔직히 실망스런 맘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
그 사람의 표정이 너무 순수해 보였어요
초인종 누르고 도망치는 꼬마아이 같았어요
실망스러움을 간데없이 금새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오늘로 아흔 일곱번째 편지
- 이소라의 FM음악도시 '그남자 그여자' 中
연인이라 불리는 또는 연인이라 불리웠던 두 사람
같은 시간, 같은 상황 밑에서 그남자와 그여자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녀의 심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남자...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