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남자 ---
야심한 시간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집 컴퓨터가 고장이나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일을 다 끝내고 가야해서 말이죠
혼자 남아있으려니깐 어쩐지 외로워서 퇴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나랑 늦게까지 일할사람~ " 하고 소리를 질러봤는데
다들 외면하고 가버렸습니다
은근히 남아주길 바랬던 그녀도 물론 집으로 갔구요
그런데 그녀의 핸드폰은 지금 내 손안에 있습니다
야무진 그녀가 어쩐일로 깜빡한거죠
실은 그녀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휴대폰을 두고 나갔다는걸 알았거든요
금방 달려나가면은 엘리베이터앞에 서있는 그녀에게
전해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구요
그런데 내 한쪽의 시커먼 누군가가 막 속삭이더라구요
"전해주지마~ 전해주지마 절대! 그래야 다시 사무실로 오지
그럼 너랑 둘이 사무실에 있을 수 있잖아~ "
저는 그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근데 이상하다 지금쯤 전화가 와야되는데
제가 전화기 주인인데 혹시 누구세요? 그러면서 말이죠
아직 휴대폰이 없어진 것두 모르는가 보죠?
--- 그여자 ---
정말~ 눈치없는 남자 연애엔 관심도 없구요
오늘 같은 일요일 출근하는 것도 모자라서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남자가 있어요
진짜 참 답답한 사람이죠
근데 문제는 그 남자가 좋다는거구요
그리구 아직 내 마음을 전할만한 기회가 없었다는거죠
예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애하던 시절에는요
이런 눈치없는 남자가 있으면 손수건을 슬그머니 흘리곤 했대요
자... 여기 내 마음을 흘려놓았어요
빨리 주워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런데 2002년인 지금 차마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실은 아까 손수건 대신 핸드폰을 흘렸걸랑요
사무실엔 아마 그 사람혼자 있을꺼에요
지금쯤 핸드폰 핑계로 돌아가면
우리 처음으로 단 둘이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거죠
아... 여기 지금 사무실 앞인데요
아직은 못들어가겠어요
사실 떨리기도 하구 벌써 들어가면 일부러 흘린거 눈치챌가봐요
힘들게 만든 기회 놓치면 안되잖아요
- 이소라의 FM음악도시 '그남자 그여자' 中
연인이라 불리는 또는 연인이라 불리웠던 두 사람
같은 시간, 같은 상황 밑에서 그남자와 그여자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녀의 심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남자...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