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이렇게 긴 글이 올라오면 대충 읽고 쭉 내려버리는데, 제가 이런 헤비급 긴글을 올리게 되네요. 그냥 제가 어떤 여자를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좀 많이 써놨어요. 숫자를 달아놨으니 읽고 싶은 부분만 읽으셔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보시고 어떤 내용이라도 좋으니 댓글 부탁드려요.
1. 저는 해가 바뀌면서 23살인 모태솔로입니다. 21살과 22살을 함께 한 고등학교 동창이 있어요. 20살을 마무리하는 2012년 12월 즈음에 이벤트로 당첨된 스마트폰 이어캡을 빌미로 그 친구와 만났습니다. 제가 나는 필요없다고 갖고 싶으면 얘기하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거든요. 자기가 하나 갖고 싶다고 했어요.그 친구는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고, 학교 다닐때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2. 당황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때도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려니 뭘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구요. 전 성격이 소심하고 여자 앞에서는 말도 적어집니다. 알코올이라도 마시면 좀 나을거 같아서 그 친구랑 셀프세계맥주집에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코올을 마신 저는 내일 영화를 보자며 얘기를 했습니다. 맥주집을 나와서 커피숍에서 커피핝나하고 집에 보냈습니다.
3. 다음날이였나, 같이 봤어요.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이란 영화였습니다. 옆자리에 앉았달뿐 그냥 봤어요. 그리고 집에 왔습니다. 제가 보자그랬으니 제가 영화를 보여줬습니다. 이 후에 그 친구와 미스터 피자도 함께 먹었어요. 피자 값은 그친구와 반반 부담하고, 커피값을 그 친구가 더 부담했었습니다.
4. 그리고 한동안 제가 연락을 안했습니다. 20년간 솔로로 살면서 혼자가 더 익숙해선지 그 친구를 잊게 되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알바하면서 얻게 된 베를린 영화할인티켓이 있었는데. 이런게 또 생기니까 그친구 생각이 나서 같이 보러 가자고 톡했습니다. 그렇게 얘기는 했지만 티켓 유효기간도 지나버리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5. 개강하고 한달 즈음 지났나. 집에 가는데 톡이 하나 오더라구요. 영화보여주기로 했는데 어떻게 된거냐.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보여주겠다고 톡을 해놓고 또 잊어버립니다. 사실 그때는 그 친구한테 관심이 없었어요.
6. 저는 인사치레로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 메시지 남겨놓는게 보기 싫어서 생일을 써놓지 않아요. 당연히 생일알림도 안뜹니다. 근데 이 친구가 제 생일 3일 전에 생일 축하한다고 남겨주더라구요.
7. 그리고 다시 만난게 찌는 여름이였는데. 제가 그 사이에 이사를 하게 되어서 원래 만나는 동네나 그 친구가 다니는 학교나 거리가 비슷하더라구요. 그래서 니가 다니는 학교로 가겠다고 갔는데. 티셔츠를 상당히 얇게 입은 겁니다. 그래서 속옷 색깔과 윤곽이 드러날 정도로 보이길래 '바빠서 신경을 못썼나보다'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학교 주변에 치킨 집에서 치킨을 뜯는데 신경쓰여서 혼났습니다.
8. 치킨을 먹는데 자기는 아는 사람한테 뭐 나눠 주는걸 좋아한다면서 커피 사탕이랑 자일리톨 껌을 주더라구요. 둔한 저도 약간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어요. 치킨 먹고 집에 간다길래, 몇 시간 걸리는 거리를 와서 치킨만 먹는게 아쉬워서 아쉬운 소릴 했더니, 노래방을 가자고 하더라구요. 노래방은 원체 싫어해서 거절했어요.
9.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커피샵에서 저는 아메리카노, 그친구는 아포가토라고 하나요? 커피위에 아이스크림있는걸 먹는데, 한번 먹어보라며 떠주는걸 안먹을수 없어서 받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 집안 얘기를 하고 자기 개인적인 얘기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냥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집에 보냈습니다.
10. 제가 그 친구를 한번 더 보고 싶어서, 과제때문에 동대문에 갈 일이 있다그래서 나도 가방하나 사야겠다고 같이 가자고 그랬습니다. 물론 가방은 커녕 천쪼가리 하나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따라갔는데 여전히 옷차림은 속옷을 비추는 하늘거리는 티셔츠더라구요. 옷좀 가려서 입으라고 쭈삣거리면서 얘길 하긴 했네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친구가 과제가 미뤄져선지 어떤 이유에선지 동대문에 안가도 되는 상황인데 저 때문에 따라왔더라구요.
11. 제가 고기사준다고 10시에 불렀어요. 알바끝나고 바로 그 동네로 쫒아가면 9시 반쯤 되기때문에 늦은 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불렀습니다. 잠깐 한시간 정도 삼겹살 먹고 베스킨 라빈스 한 컵 먹고 나니 집에 가야된다며 11시에 갔습니다.
12. 여기까지 보면 이 친구가 확실히 저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요즘은 또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13. 언제는 요금제가 바뀌었다고 월요일에 보낸 카톡을 목요일에 받더라구요. 받으면서 하는 얘기가 늦게 봐서 미안하다고, 요금제를 바뀌어서 카톡이나 문자를 쓸 수 없다고. 아니, 요금제에 데이터가 없더라도 요새 와이파이 안되는 곳이 어딨습니까.
14. 편입준비한다고 잠깐 보는것도 바쁘다고 안된다고 합니다. 카톡 답장은 많이 늦어졌고 귀찮다는 듯 '응ㅎ' '응ㅋㅋ' 'ㅇㅇㅋㅋ' 이런식의 답장도 많아졌어요. 가끔은 처참하게 씹히기도 합니다.
15. 주저리주저리 써놓으니 좀 찌질해보이네요. 저는 더치페이 요구를 한적이 없었는데도 그 친구가 기본적으로 반을 부담했고 커피나 아이스크림같은 디저트를 더 부담했어요. 어쩔때는 제 생각을 해준것도 같고 어떻게보면 저와의 관계에 선을 긋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16. 이렇게는 안될것 같아서 처음 만남 그때처럼 알코올의 힘을 빌려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왜 맨정신에 고백을 할 생각을 못했겠어요. 오늘은 고백할거란 마음을 갖고 만났는데도 그게 참 입밖으로 나오지가 않더라구요. 그래서 술한잔 하고싶다그랬더니, 편입시험이 끝나고 2월 중순쯤 되어야 된다네요. 취중고백도 쉽지가 않아요.